‘찬밥 신세’ 주인 없는 기업들 흑역사

동네북도 아니고…‘서럽다 서러워∼’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주인없는 기업에 바람 잘날 없다. 크고 작은 비리가 끊임없이 터지기 때문이다. 주인없는 기업들의 특징은 낙하산 인사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주인의식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가 비리 복마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2조원의 적자 피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에서 발생한 사건을 두고 이른바 ‘주인 없는 기업의 한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기업이야?
사기업이야?
 
대우조선해양이 과거 2조원대의 손실을 숨긴 혐의가 드러나면서 업계에서는 전 경영진과 정치권 그리고 금융 당국의 과도한 인사 개입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00년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대우조선해양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현재까지 회사에 쏟은 돈은 2조4000억원 규모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은 끊임없이 낙하산 인사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정계는 물론 금융당국의 인사 로비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는 통계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매일경제>가 지난 21일 한국산업은행이 최대주주가 된 이래 대우조선해양의 전현직 사외이사 30명의 이력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현직 사외이사 30명의 출신을 분석해보면 관료와 교수, 금융인 출신이 각각 6명으로 가장 많았다.
 

기업인(5명)과 법조인(2명), 언론인(2명), 정치인(2명), 시민단체(1명)이 뒤를 잇는다. 교수 출신 6명 중 조선 전문가는 김형태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 1명에 불과했다. 안병훈(KAIST), 김지홍(KDI), 신광식(KDI) 전 사외이사는 경제학 박사이고 송희준 전 사외이사는 정부3.0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책학 박사 출신이다.
 
업계에서는 2006∼2012년까지 대우조선해양을 이끈 남상태 전 사장 취임 이후 이 같은 기조가 강해졌다고 평가한다. 지난 2008년에는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감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보낸 감사실장을 해고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어두운 민낯을 드러냈다. 당시 산업은행에서 리스크관리본부장을 거친 신대식씨가 대우조선해양의 감사실장으로 갔으나, 대우조선해양은 회사 경영진의 감사위원회나 이사회 의결 없이 대표이사 전결로 감사실을 폐지하고 신대식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해고했다.
 
정권만 바뀌면 압박…비리 찾아 ‘탈탈’
반복되는 사정칼날 “이젠 익숙해졌다”
 
신대식씨는 징계위원회 회부와 함께 검찰의 고발까지 당했지만 이후 무죄를 받으면서 정치적 희생양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신대식씨는 2011년 ‘이재오 낙하산’에 의해 해고를 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겼다. 이 일을 계기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파견했지만 잡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CFO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영진들이 대우조선해양 직원 및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연임에 성공한 남상태 전 사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에게 1000달러짜리 수표 묶음을 제공한 의혹을 받기도 했다. 남 전 사장은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정권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연임에 성공했다. 이후 남 전 사장은 세 번째 연임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에는 남상태 전 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재호 전 사장(2012∼2015년)이 대우조선해양을 이끌었다.
 
고재호 전 사장은 임기가 끝난 후 연임과 관련 산업은행과 대립각을 세우며 강력한 뒷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고 전 사장은 연임에 실패하면서 대규모 부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고재호 전 사장에 이어 정성립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대우해양조선을 이끌게 되면서 과거 2조원 가량의 손실을 계상하지 않은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이 집권한 2006∼2015년은 대우조선해양에게 흑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측이 이들을 상대로 고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서다. 2조원 가량의 손실은 남상태고재호 전 사장의 대우조선을 이끌던 시기에 계상되지 않은 손실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이들을 향한 사정 칼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임기없는 사장
입맛따라 교체
 
1981년 정부출자로 창립된 KT는 2002년 5월 민영화되면서 각종 구설에 올랐다. KT는 민영화된 후 네 명의 최고경영자(CEO)가 거쳐 갔다. 비교적 무난한 리더로 평가받는 이용경 전 사장(2002년 8월∼2005년 8월)은 민영화된 회사의 첫 번째 CEO가 됐지만 연임에는 실패했다. 이어 2005년 두 번째 CEO로 기록된 남중수 전 사장은 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정권까지 사장직을 역임했다. 그는 2008년 임기 종료를 앞두고 2007년 주주총회를 앞당겨 실시해 연임 건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남 전 사장은 ‘무리한 연임’이라는 비판과 이명박 정권의 사정 칼날을 동시에 받아야했다. 결국 남 전 사장은 납품업체로부터 납품업체 선정 및 인사 청탁과 함께 현금 3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추징금 2억7000만원 등을 받으면서 불명예스럽게 사장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 교체에 따른 찍어내기 수사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연임을 강행한 남 전 사장에 대한 의도적인 사정의 칼날 아니냐는 것이다. 후임 이석채 전 회장(2009년 회장 영전)도 남 전 사장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정작 본인부터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명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석채 전 회장은 취임 전 LG전자와 SK C&C 사외이사로 있었기 때문에 사장 후보로 응모할 자격이 없었다.  KT 정관에 ‘최근 2년 이내에 KT 경쟁업체와 공정거래법상 동일기업군에 속하는 업체에 임원으로 있던 자는 이사가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정관을 개정하는 작업을 거쳐 회장직에 올랐다. 이석채 사장은 취임 후 회장으로 영전함과 동시에 낙하산 인사로 측근들을 고위직에 앉혀 구설에 올랐다. 이 전 회장 체제에서의 고위직 낙하산 인사는 40여명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툭하면 정치권 입김…낙하산이 좌지우지
전문성 없는 경영진 “주인의식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KT 사장에 오르기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던 이 전 회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해 마구잡이식 낙하산 인사로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이 전 회장은 구설을 몰고 다녔다. 2011년 9월 무궁화 2호와 3호를 각각 40억 4000만원과 5억 3000만원에 매각한 것을 두고 불법매각 논란이 일었다.
 
당시 KT측은 위성을 매각한 것을 두고 수명이 다했다고 설명했지만 품질보증기간이 10년 넘게 남은 사실이 드러났다. 유승희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직접 비용만 총 4500억 원 이상 투자한 무궁화위성 2호, 3호를 1% 수준인 45억원에 매각해 고철값도 안 되는 헐값에 국가적 자산을 매각했다”며 “특히, 3호는 설계수명 12년 종료 직후인 2011년 9월에 매각해 잔존 연료와 기기성능 모든 면에서 무궁화위성 2호 보다 훨씬 더 많은 가격을 받아야 타당하다”라고 말하며 불법매각의혹을 제기했다.
 
 
이 외에도 이 전 회장은 △KT 사옥 헐값 매각 △친인척 회사 과다투자 및 고가인수 △비자금을 조성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이 전 회장도 전임 사장의 전철을 밟았다. 이 전 회장이 사임과 동시에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의 고발을 당한 것. 현재 이 전 회장과 관련된 재판은 진행 중이다. KT 내부에서는 이 전 회장의 임기를 두고 잃어버린 5년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현재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황창규 회장이 KT를 이끌고 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로 전환한 포스코도 다른 주인없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새정부 출범때마다 외풍에 시달려야 했다. 포스코의 잔혹사는 초대 회장인 고 박태준 명예회장부터 시작됐다. 이후 회장직에 오로느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 등도 임기를 마지지 못하고 회장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정권교체 하면

회사 죽어난다
 
박 명예회장은 1992년 문민정부 출범과 동시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회장직을 박탈당하고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당했다. 이어 포스코 수장에 오른 황경로 전 회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회장직에 오른지 6개월 만에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정명식 전 회장은 1년 만에, 유상부 전 회장과 이구택 전 회장도 중간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유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됐고, 이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세청장에게 로비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자진 사퇴했다.
 
이어 7대 회장으로 선임된 정준양 전 회장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세청의 포스코 수사 등이 본격화되면서 자진 사퇴 형식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정 전 회장은 연임에 성공해 임기가 2015년 3월까지 남아 있었다. 정 전 회장은 이명박 라인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8년 12월 포스코건설 사장에 오른 뒤 불과 석 달 만에 포스코 회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정 전 회장이 이명박 정권의 당시 최고 실세로 평가받던 영포라인의 힘으로 포스코 회장직에 오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운명도 정권이 바뀌면서 전임 회장과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정 전 회장이 버티기 모드에 들어가면서 박근혜 정부의 사정 칼날을 받아야 했다. 우선 포스코의 악화된 재무구조와 부진한 경영실적이 정 전 회장의 약점으로 부각됐다. 결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시작되면서 정 전 회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현재까지도 정 전회장발 찬바람이 불고 있다. 정동화 전 포스코 부회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의 칼바람은 지난해 8대 회장에 올라 올해 집권 2년차를 맞은 권오준 회장에게는 악재다. 포스코의 잔혹사가 현재 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관들이 수시로 회사를 방문해 서류를 보고, 언론에 부정적으로 오르내리는 상황은 권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002년 공기업에서 민영화가 된 KT&G는 다른 주인없는 기업과는 다른 양상이다. 민영화 이후 현재까지 내부인사가 사장까지 오르면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KT&G에도 박근혜 사정 칼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민영진 KT&G 사장이 회삿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는 민 사장이 지난 2010년 사장에 취임한 뒤 자회사를 통해 회삿돈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와 함께 민 사장 등 KT&G 임직원과 주변인 계좌도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에 따라 KT&G 역사상 첫 불명예 퇴진이 나올 수도 있어 업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사정 칼날이 KT&G까지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복되는 잔혹사
비리백화점 오명
 
민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2010년 2월 KT&G 사장으로 취임해 한 차례 연임하고 현재까지 KT&G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앞서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민 사장은 부동산 개발 용역비를 과다 지급해 회사에 수십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았었다. 일각에서는 주인없는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외풍이 적은 KT&G에도 낙하산 인사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donky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풍’ 포스코 내부 분위기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그룹 차원의 종합적인 쇄신안을 발표했다. 최근 검찰의 포스코 수사로 어수선해진 회사 분위기를 추스르고자 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권 회장은 지난 15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지난 5월 비상경영쇄신위원회 발족 이후 내외부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마련한 5대 경영쇄신안을 설명했다.
 
권 회장은 쇄신안 발표에 앞서 “최근 회사를 둘러싸고 국민과 투자자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하다”고  사과하고 “현재의 위기를 조속히 극복하고 다시는 유사한 사례가 발행하지 않기 위해서 근본적이고 강력한 쇄신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날 권 회장이 직접 발표한 5대 경영쇄신안은 ▲사업포트폴리오의 내실있는 재편성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명확화 ▲인적 경쟁력 제고와 공정인사 구현 ▲거래관행의 투명하고 시장지향적 개선 ▲윤리경영을 회사운영의 최우선순위로 정착 등이다. 
 
권 회장은 시종일관 비장한 표정이었으며 “과거의 자만과 안이함을 버리고 창업하는 자세로 돌아가 스스로 채찍질하고 변화시켜 창립 50주년을 맞는 2018년까지는 또 다른 반세기를 시작하는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포스코는 5대 경영쇄신안을 강력하게 실천하기 위해 전 계열사의 임원진을 소수 정예화해 조직효율을 높이고 경영정상화시까지 임원들의 급여 일부를 반납함으로써 경영진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다짐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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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