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파문' 5163부대 극비임무

'2012년 비밀지령 내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간 감청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4일 국정원은 "프로그램을 국민에게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밝혔지만 해명을 뒤집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 사찰 의혹은 더해지고 있다. 특히 '5163부대'란 이름으로 가장한 국정원은 대다수 국민이 즐겨 쓰는 스마트폰인 삼성 갤럭시, 채팅 어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 모바일 게임인 애니팡 등을 겨냥해 전방위 해킹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 해킹의 숨은 대상으로 정치권이 지목되는 등 파장은 점차 확대될 조짐이다.


사건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현지시간 5일 밤 밀라노에 본사를 둔 IT기업 '해킹팀'은 메인컴퓨터를 탈취당해 400기가바이트(GB)에 이르는 내부 자료를 유출시켰다. 관련 자료는 국가 비밀문서 폭로사이트인 위키리크스 등에 공유됐다. 해킹팀이 각국 정보기관과 주고받은 이메일, 음성파일, 해킹프로그램 소스코드(프로그램 설계도)는 온라인을 통해 그대로 노출됐다.

400GB 자료유출
국정원 거래확인

해킹팀의 주요 고객 가운데는 한국에 주소지를 둔 '5163부대'가 있었다. 공개된 이메일에서 5163부대의 주소지는 국정원이 사용해 온 우편함 번호와 일치했다. 국내에서 국가 정보기관의 해킹 의혹이 처음 불거진 날은 지난 7∼8일이다. <보안뉴스>, <전자신문> 등 IT전문지가 중심이 돼 보도했다.

각 일간지도 취재에 나섰다. 10일을 전후해 이들 언론은 '국정원 해킹 파문'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10∼14일 쏟아진 기사의 내용은 국정원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불법 감청을 했다는 의혹과 연결됐다. 논란이 커지자 국정원은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14일 국회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은 있으나 북한이 대상"이라고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현재까지 국정원이 인정한 부분은 '5163부대란 이름으로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20개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이 어떤 이유로 실시간 감청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구입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국정원 위장조직 해킹프로그램 구매 확인
국내 정치권 겨냥…무차별 정보수집 했나


국정원이 관련 거래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이름은 5163부대다. 5163부대의 어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쿠데타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당시 소장이 쿠데타를 위해 한강철교를 넘은 시각인 5월16일 새벽 3시를 기릴 목적으로 작명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위장이름 쓴
5163부대 들통

<한겨레>에 따르면 5163부대는 해킹팀과 모두 6번 거래했다. 총 거래대금은 10억2172만원이다. 이 원장은 정보위에서 "2012년 1월과 7월 각각 10명씩 20명분의 원격제어시스템(RCS)을 구입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위키리크스 등에 공개된 자료를 살피면 5163부대(SKA란 이름도 혼용)는 2014년에도 해킹팀과 거래했다.

RCS는 해킹을 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에 링크(혹은 파일)를 보낸 뒤 상대가 이를 클릭하면 '스파이웨어'에 감염되는 방식을 가리킨다. 원리는 보이스피싱 업체가 즐겨 사용하는 '스미싱'과 유사하다. RCS에 공격당하면 해킹을 한 당사자는 상대의 통화내역, 메시지, 사진, 위치정보, 은행거래내역 등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휴대폰 전원을 끄지 않는 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된다.

그런데 5163부대는 이 원장이 밝힌 2012년 1월과 7월은 물론 같은해 3월과 12월에도 이메일을 통해 수십개의 '해킹 회선 사용권' 구입을 시도했다. 3월은 총선을 앞둔 시기이며, 12월은 대선을 목전에 둔 때이다. 이 가운데 12월6일 보낸 메일 제목에는 '긴급'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메일 발신자이자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 대행한 무역업체 나나테크는 "30개의 회선 사용권을 한 달간 임시로 사용하게 해 달라"라고 해킹팀에 주문했다.

또 나나테크는 2012년 9월 국정원을 대신해 '어노니마이저(ANM)'라는 프로그램을 구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킹팀은 자신의 고객들에게 ANM을 RCS에 딸린 보조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관계자로 알려진 아이디 'devilangel1004@gmail.com'(이하 데빌엔젤)은 이외에도 2014년부터 해킹팀과 수시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데빌엔젤이 지난해 11월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은 'RAS'로 기존 RCS와는 다른 형태의 스파이웨어다. 당시 이메일에서 데빌엔젤은 RAS가 안드로이드 폰(삼성 갤럭시 등)을 해킹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또 "상대가 해킹을 눈치채선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데빌엔젤은 지난해 3월 일부 외신을 통해 '해킹팀의 고객 중 한국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보안이 생명"이라며 "(추적이 불가능한) 가상사설서버(VPS)로 프로그램을 옮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해킹팀은 내부 이메일에서 "SKA(한국)가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이라고 언급했다.

며칠 뒤 해킹팀은 나나테크로 이메일을 보냈다. 자체 개발한 해킹프로그램인 TNI를 무료로 테스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TNI는 해킹 상대방이 와이파이에 접속하면 악성코드가 설치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해당 프로그램을 2014년 5월부터 사용하다가 같은해 7월께 반납했다. 공교롭게도 5월과 7월 사이엔 6·4지방선거가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국정원은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감청 프로그램을 돌렸다. 감청 대상은 내국인으로 의심됐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15일 트위터를 통해 "해킹팀이 한국 정보기관(국정원)을 도와 변호사를 타깃으로 감청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라고 폭로했다.

카톡도 감시
국정원 타깃은?

그러나 국정원은 일부 언론과의 접촉에서 "감청 대상은 대공 혐의가 있는 외국인이며, 위키리크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또 국정원은 "감청당한 변호사의 국적이 몽골"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국정원의 해명은 일관되게 북한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오고간 이메일 내용을 살피면 국내 감시용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먼저 국정원은 삼성 갤럭시 모델 해킹에 수차례 관심을 보였다. 새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감청이 가능한지를 해킹팀에 구체적으로 질의했다. 물론 북한 간첩이 갤럭시를 쓰고 있을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국정원이 갤럭시와 함께 카카오톡 서버 해킹(검열)에 대해서도 문의했다는 것이다.

데빌엔젤은 개별 감시 대상자에 대한 해킹뿐 아니라 카카오톡 자체에 대한 해킹 연구 진행상황을 물었다. 사실상 1대1 감시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검열이 가능한지 물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6·4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에는 '안드로이드 폰'에 대한 공격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의미 있는 사실은 '나나테크 외에도 국정원의 구매 대행사가 3곳 더 있었다'는 해킹팀의 언급이다. 국정원이 '특정시기' 각 업체를 동원해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시도했다면 증거가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원장은 이번 해킹 프로그램의 구입 배경과 관련해 "원장이 아니면 이런 일을 하기 어렵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매시점(2012년 1월~12월) 당시 책임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책임을 돌린 셈이다. 반면 원 전 원장은 자신의 측근을 통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원장과 원 전 원장,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정부 들어 국정원은 해킹팀 쪽에 '악성코드를 심어 달라'라며 링크(URL)를 건넸다. 데빌엔젤은 '떡볶이 맛집 소개' '금천구 벚꽃축제' '메르스 Q&A' 등 자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주제를 사용해 스파이웨어 링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포르노 사이트'를 링크로 걸어 스마트폰 해킹을 시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약 7개월간 블랙엔젤이 주문한 가짜 URL이 195개에 달했다고 전했다.

박정희 5·16 쿠데타서 유래
총·대선 때 감청·사찰 의혹

이와 별도로 국정원은 국내 이동통신가입자들의 스마트폰 해킹을 시도했다. 국정원은 지난 2012년 8월 SK텔레콤에 가입된 갤럭시 한 모델을 특정해 해킹을 해 달라고 업체 측에 의뢰했다. 또 기자로 사칭한 5163부대 관계자는 천안함 사건 의혹을 제기한 재미 연구자의 컴퓨터에 접근, 해킹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국정원은 해킹팀과 접촉해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언급한 재미 연구자는 서울대 공대 출신이다.


아울러 국정원은 미국 스마트폰 메신저인 바이버에 대한 해킹도 해킹팀에 의뢰했다. 바이버는 '사이버 검열'을 피해 주로 야당 정치인들이 쓰고 있는 메신저로 알려졌다. 국내 유력 인사를 겨냥한 불법 감청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북용이라는 국정원의 해명이 궁색해지는 증거는 모바일 게임을 대상으로 한 해킹 실험이다. 해킹팀은 SKA의 의뢰로 국내 인기 게임인 '애니팡2' '모두의 마블' '드래곤 플라이트' 등에 대한 악성코드 생성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해명대로라면 북한 간첩은 애니팡 서버에 접속해 국내 유저들에게 하트(게임 내 아이템)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해킹 대상으로 거론되는 유력 후보군 가운데는 야당 정치인, 학자, 언론인 등이 있다. 실제 정치인 A씨는 지난 대선을 앞두고 사정기관으로부터 사찰을 받았다는 풍문에 휩싸였다. A씨를 뒷조사한 여러 문건이 존재했고, 선거가 끝난 후 해당 문건이 소각됐다는 내용이다. 국정원이 직접 연관됐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들이 대선개입을 시도한 만큼 '비밀지령(원장님 말씀)'의 이행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정치권
전방위 사찰?

지난 17일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은 국정원에게 RCS 사용내역 제출을 요청했다. 안 위원장은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악성코드를 보낸 아이피(IP)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 등 타깃의 식별정보가 남아있을 것"이라며 "국정원이 떳떳하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보안상의 이유로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거나 사전 삭제했을 가능성 또한 제기된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해킹팀은 국방부 국방사이버TF팀 소속 중령의 연락처를 가져갔고, 경찰청으로 추정되는 국내 정보기관과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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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