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33)박용철 나인스에비뉴 대표

대기업 낀 분양사기 진실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33화는 28억7000만원을 체납한 박용철 나인스에비뉴 대표다.

서울 구로구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옆에는 '나인스에비뉴'라는 쇼핑몰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주상복합건물로 개발된 나인스에비뉴는 인근 부동산 업계에서 실패한 개발사업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앞서 나인스에비뉴는 한 대기업의 비자금 창구로 지목됐고, 거액의 세금을 체납해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나인스에비뉴의 시행사 ㈜나인스에비뉴는 2012년 11월부터 지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나인스에비뉴가 서울시에 낼 세금은 8억9300만원이다. ㈜나인스에비뉴는 2010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5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7억5400만원이다.

비자금 의혹

㈜나인스에비뉴와 같은 계열사인 ㈜나인스개발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 2010년 5월부터 등록세 등 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한 지방세는 3억7500만원이다. ㈜나인스개발은 2007년부터 법인세 등 2건의 세금도 체납했다. 국세청이 과세한 세금은 8억4800만원이다.

㈜나인스에비뉴와 ㈜나인스개발이 체납한 세금의 합은 28억7000만원이다. 두 회사의 대표는 박용철씨로 확인된다. 세무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박씨의 주소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한 아파트다.


지난 17일 기준 해당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는 1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박씨는 전체 분양가액만 4000억원대로 추정되는 시행사의 대표였음에도 파악된 재산이 없었다. 청주에 살던 박씨가 서울에 주소지를 둔 나인스에비뉴의 대표가 된 경위는 무엇일까.

㈜나인스에비뉴는 2009년 3월24일 설립됐다. 사업 목적으로는 '비거주용 건물 개발 및 공급업'을 명시했다. 사실 ㈜나인스에비뉴는 ㈜나인스개발에서 떨어져 나온 분할 회사다. ㈜나인스개발은 분양대행 및 부동산매매 사업부분을 떼어 내 ㈜나인스에비뉴로 넘겼다. 앞서 ㈜나인스에비뉴는 애경백화점과 연결된 지하 5층, 지상 36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 공사 과정에서 지하 5층~지상 4층까지의 상가 분양권을 중도 인수했다.

문제는 ㈜나인스에비뉴가 수분양자 몰래 상가 분양권을 넘겨받았다는 데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 투자자들은 대기업인 애경그룹으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내용을 살피기 전 ㈜나인스개발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서울시 12억6800만원 
국세청 16억200만원
실패한 개발사업 대표사례

㈜나인스개발의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전신은 피앤에이치네트워크다. 피앤에이치네트워크는 2003년 10월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로 이름을 바꿨다.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는 다시 2009년 3월 두 회사로 쪼개지는데 그중 한 곳이 ㈜나인스개발이다. 2003년 10월 자본금 2억원에 불과했던 ㈜나인스개발(당시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은 무려 890억원을 주고 토지 소유주인 ARD홀딩스로부터 나인스에비뉴 개발 부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ARD홀딩스는 애경그룹의 지주회사였다. ARD홀딩스는 애경그룹의 모기업인 애경유지공업으로부터 해당 부지를 양도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투자자들은 "애경유지공업이 ARD홀딩스로 땅을 넘겼고 다시 ARD홀딩스가 헐값에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로 땅을 매각했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애경그룹이 직접 분양할 경우 평균 4000억원대의 수익이 예상됐는데 890억원에 땅을 판 것은 시행사와 짜고 뒷돈을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원래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는 애경그룹이 직접 추진했던 사업이다. 애경그룹은 지난 2000년 애경백화점 옆 여성전용주차장 부지 1만1359㎡(3400여평) 면적을 주상복합건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공사는 GS건설이 선정됐고, 시행사였던 애경E&C는 지상 5∼36층까지 브랜드아파트인 자이가 들어설 것이라고 홍보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애경그룹의 관계사로 추측됐던 애경E&C는 그룹과는 아무 관련 없는 용역회사였다. GS건설이 분양을 맡은 아파트 299세대는 완공 직후 정상적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반면 ㈜나인스개발이 담당한 상가 분양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입점업체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애경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는 나인스에비뉴에 입점하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브랜드파워가 떨어지는 업체만 상가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인스에비뉴는 2009년 2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수익성은 누구도 담보할 수 없었다. ㈜나인스개발과 ㈜나인스에비뉴가 분할한 시점은 상가가 개점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앞서 수분양자 모임인 '나인스에비뉴 상가관리단'은 토지를 소유한 ㈜나인스에비뉴로부터 상가 운영 등에 관한 권리를 이양 받았다.

박씨는 2010년 4월 ㈜나인스개발의 사내이사로 취임했다. 같은 해 8월 전임 대표이사였던 이모씨가 물러나면서 자리를 대신했다. 박씨는 2012년 12월 대표이사에서 퇴임했다. 등기부등본상 나인스에비뉴 분양사태는 박씨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ARD홀딩스의 부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수사가 진행됐던 건 2008년이다. 당시 대표이사는 이씨였다. 이씨는 ㈜나인스에비뉴의 대표를 겸하며 상가관리단과 협상했다. 그런데 여기서 세 번째 문제가 불거졌다. 과세당국이 이씨가 대표로 있던 두 회사에 세금을 물린 것이다. 이씨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수사결과 나인스에비뉴의 분양대금은 이씨가 아닌 장신호 전 나인스에비뉴 사장에게 흘러갔다. 장 전 사장은 등기이사에도 오르지 않은 일종의 '브로커'였다. 장 전 사장은 일부 주주와 짜고 200억∼30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장 전 사장은 애경그룹으로부터 개발 부지를 사들인 장본인이다. 당시 등기상 대표는 권성식씨로 그는 2008년 9월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나인스에비뉴의 대주주로 지목된 ㈜밀라트산업개발의 대표 강모씨도 검찰에 불려갔다. 사건 막바지엔 이들과 공모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은 채형석 당시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구속기소됐다.

줄줄이 구속

검찰은 채 부회장이 권씨를 도와 PF대출을 일으킨 뒤 ARD홀딩스 부지를 매각하고 뒷돈을 챙긴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법원은 관련 혐의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채 부회장은 2009년 별건으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광복절 특사 명단에 포함돼 2010년 사면됐다.

투자자들은 애경그룹을 상대로 민사사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나인스에비뉴의 실소유주가 애경그룹이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경그룹 역시 "(우리는) ㈜나인스에비뉴와 관계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변변한 자산도 없던 소규모 시행사가 수백억원대의 PF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ARD홀딩스가 보증을 섰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다.

권씨는 서울시와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2010년 11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모두 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억1700만원이다. 권씨는 또 2009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3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13억800만원이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