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33)박용철 나인스에비뉴 대표

대기업 낀 분양사기 진실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33화는 28억7000만원을 체납한 박용철 나인스에비뉴 대표다.

서울 구로구 애경백화점(현 AK플라자) 옆에는 '나인스에비뉴'라는 쇼핑몰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주상복합건물로 개발된 나인스에비뉴는 인근 부동산 업계에서 실패한 개발사업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앞서 나인스에비뉴는 한 대기업의 비자금 창구로 지목됐고, 거액의 세금을 체납해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나인스에비뉴의 시행사 ㈜나인스에비뉴는 2012년 11월부터 지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나인스에비뉴가 서울시에 낼 세금은 8억9300만원이다. ㈜나인스에비뉴는 2010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5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7억5400만원이다.

비자금 의혹

㈜나인스에비뉴와 같은 계열사인 ㈜나인스개발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 2010년 5월부터 등록세 등 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한 지방세는 3억7500만원이다. ㈜나인스개발은 2007년부터 법인세 등 2건의 세금도 체납했다. 국세청이 과세한 세금은 8억4800만원이다.

㈜나인스에비뉴와 ㈜나인스개발이 체납한 세금의 합은 28억7000만원이다. 두 회사의 대표는 박용철씨로 확인된다. 세무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박씨의 주소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한 아파트다.


지난 17일 기준 해당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는 1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박씨는 전체 분양가액만 4000억원대로 추정되는 시행사의 대표였음에도 파악된 재산이 없었다. 청주에 살던 박씨가 서울에 주소지를 둔 나인스에비뉴의 대표가 된 경위는 무엇일까.

㈜나인스에비뉴는 2009년 3월24일 설립됐다. 사업 목적으로는 '비거주용 건물 개발 및 공급업'을 명시했다. 사실 ㈜나인스에비뉴는 ㈜나인스개발에서 떨어져 나온 분할 회사다. ㈜나인스개발은 분양대행 및 부동산매매 사업부분을 떼어 내 ㈜나인스에비뉴로 넘겼다. 앞서 ㈜나인스에비뉴는 애경백화점과 연결된 지하 5층, 지상 36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 공사 과정에서 지하 5층~지상 4층까지의 상가 분양권을 중도 인수했다.

문제는 ㈜나인스에비뉴가 수분양자 몰래 상가 분양권을 넘겨받았다는 데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파악한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 투자자들은 대기업인 애경그룹으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내용을 살피기 전 ㈜나인스개발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서울시 12억6800만원 
국세청 16억200만원
실패한 개발사업 대표사례

㈜나인스개발의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회사의 전신은 피앤에이치네트워크다. 피앤에이치네트워크는 2003년 10월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로 이름을 바꿨다.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는 다시 2009년 3월 두 회사로 쪼개지는데 그중 한 곳이 ㈜나인스개발이다. 2003년 10월 자본금 2억원에 불과했던 ㈜나인스개발(당시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은 무려 890억원을 주고 토지 소유주인 ARD홀딩스로부터 나인스에비뉴 개발 부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ARD홀딩스는 애경그룹의 지주회사였다. ARD홀딩스는 애경그룹의 모기업인 애경유지공업으로부터 해당 부지를 양도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투자자들은 "애경유지공업이 ARD홀딩스로 땅을 넘겼고 다시 ARD홀딩스가 헐값에 주식회사 나인스에비뉴로 땅을 매각했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애경그룹이 직접 분양할 경우 평균 4000억원대의 수익이 예상됐는데 890억원에 땅을 판 것은 시행사와 짜고 뒷돈을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원래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는 애경그룹이 직접 추진했던 사업이다. 애경그룹은 지난 2000년 애경백화점 옆 여성전용주차장 부지 1만1359㎡(3400여평) 면적을 주상복합건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공사는 GS건설이 선정됐고, 시행사였던 애경E&C는 지상 5∼36층까지 브랜드아파트인 자이가 들어설 것이라고 홍보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있다. 애경그룹의 관계사로 추측됐던 애경E&C는 그룹과는 아무 관련 없는 용역회사였다. GS건설이 분양을 맡은 아파트 299세대는 완공 직후 정상적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반면 ㈜나인스개발이 담당한 상가 분양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입점업체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애경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는 나인스에비뉴에 입점하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브랜드파워가 떨어지는 업체만 상가를 채울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인스에비뉴는 2009년 2월 문을 열었다. 하지만 수익성은 누구도 담보할 수 없었다. ㈜나인스개발과 ㈜나인스에비뉴가 분할한 시점은 상가가 개점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앞서 수분양자 모임인 '나인스에비뉴 상가관리단'은 토지를 소유한 ㈜나인스에비뉴로부터 상가 운영 등에 관한 권리를 이양 받았다.

박씨는 2010년 4월 ㈜나인스개발의 사내이사로 취임했다. 같은 해 8월 전임 대표이사였던 이모씨가 물러나면서 자리를 대신했다. 박씨는 2012년 12월 대표이사에서 퇴임했다. 등기부등본상 나인스에비뉴 분양사태는 박씨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ARD홀딩스의 부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수사가 진행됐던 건 2008년이다. 당시 대표이사는 이씨였다. 이씨는 ㈜나인스에비뉴의 대표를 겸하며 상가관리단과 협상했다. 그런데 여기서 세 번째 문제가 불거졌다. 과세당국이 이씨가 대표로 있던 두 회사에 세금을 물린 것이다. 이씨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수사결과 나인스에비뉴의 분양대금은 이씨가 아닌 장신호 전 나인스에비뉴 사장에게 흘러갔다. 장 전 사장은 등기이사에도 오르지 않은 일종의 '브로커'였다. 장 전 사장은 일부 주주와 짜고 200억∼30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됐다.

장 전 사장은 애경그룹으로부터 개발 부지를 사들인 장본인이다. 당시 등기상 대표는 권성식씨로 그는 2008년 9월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나인스에비뉴의 대주주로 지목된 ㈜밀라트산업개발의 대표 강모씨도 검찰에 불려갔다. 사건 막바지엔 이들과 공모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은 채형석 당시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이 구속기소됐다.

줄줄이 구속

검찰은 채 부회장이 권씨를 도와 PF대출을 일으킨 뒤 ARD홀딩스 부지를 매각하고 뒷돈을 챙긴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법원은 관련 혐의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채 부회장은 2009년 별건으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광복절 특사 명단에 포함돼 2010년 사면됐다.

투자자들은 애경그룹을 상대로 민사사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나인스에비뉴의 실소유주가 애경그룹이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경그룹 역시 "(우리는) ㈜나인스에비뉴와 관계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변변한 자산도 없던 소규모 시행사가 수백억원대의 PF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ARD홀딩스가 보증을 섰다는 주장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다.

권씨는 서울시와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2010년 11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모두 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억1700만원이다. 권씨는 또 2009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3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세금은 13억800만원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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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