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 비자금 진실게임

'검은돈 뇌관' 잘못 건드렸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 직원들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혐의 입증에 나섰다. 본사 직원 A씨와 무역대리점 운영자 B씨는 배임수재 및 사기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이들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조사에 필요한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그런데 A씨 등은 도리어 "회장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라며 자신들을 고소한 회사에 반발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란 추측을 내놓는 상황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아직 모릅니다. 그거 경찰발 기사잖아요. 직원들이 폭로전에 나설 것 같지도 않고요. 단정하듯 추측하는 건 절대 금물입니다." 지난 9일 정유업계 관계자는 금호석화 직원들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경향신문> 등은 경찰이 금호석화 직원들의 불법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고소장을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딸 임원 선임
사건과 연관?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약 한 달간 사건과 관련한 여러 정보를 취합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흥미로운 점은 직원들을 고소한 주체가 금호석화 본사라는 데 있다. 금호석화는 지난 5월 본사 간부 A씨에 대한 감사를 벌여 대기발령 조치하고 경찰에 고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직원은 모두 6명이며 이 가운데 혐의가 중한 A씨와 B씨(무역대리점 운영자)를 먼저 고소했다는 것이 금호석화 측의 설명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A씨 등은 금호석화 구매파트 직원이다. 지난 4월께 금호석화는 자체 감사에 착수해 차장급 A씨를 시작으로 서울과 울산, 여수에서 일하던 직원 6명의 보직을 해임했다. 이들은 모두 '자택 대기발령' 징계를 받았다.

주된 감사내용은 금호석화 전직 직원이 설립한 홍콩 소재 무역대리점(오퍼상)에 이들이 물량을 몰아주고 거액의 뒷돈을 챙겼다는 것이다. 해당 대리점은 2010년부터 올 초까지 수백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리점이 금호석화와의 원자재 거래로 얼마만큼의 이득을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향후 수사과정에서 B씨가 거둔 수익은 쟁점으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 혹여 B씨가 '금호석화와의 거래로 자신도 손해를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당연히 자신 있으니까 회사(금호석화)가 직원들을 상대로 고소장까지 써서 낸 것 아니겠느냐"라며 "물량 몰아주기와 '백머니'는 해외 사업파트에서 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계자가 지적한 백머니는 계약 상대방과 거래할 때 구매대금을 과다 계상하고 남은 돈의 일부를 되돌려받는 관행을 뜻한다.

실제 포스코 수사는 백머니가 발단이 됐다. 지난 2010~2012년 해외 사업파트에서 벌어진 부당 내부거래로 임원 2명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포스코 상무인 두 박모씨는 직원 10여명과 공모해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돈의 일부를 한국에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자체 감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도 고발조치를 하지 않았다.

리베이트 수수 혐의 전현직 직원 고소
원자재 수입 과정서 거액 '뒷돈' 의혹

'표적'을 찾던 검찰로서는 문제의 비자금이 수사로 전환하게끔 만든 구실이 됐다고 한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정권 초부터 포스코를 손보려는 여러 움직임이 있었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라며 "포스코가 비위 사실을 숨기면서 사태를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당시 두 박씨는 보직해임됐지만 대기발령 상태로 올 초까지 임원직을 유지했다. 포스코가 한발 앞서 이들에 대한 감사사실을 외부로 통보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됐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홍콩을 무대로 벌어진 이번 금호석화 리베이트 의혹은 포스코 동남아사업단 비자금 의혹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해외 사업과 관련해 유사한 방식의 부정이 벌어졌고, 의심 직원들이 자체 감사결과 보직해임과 대기발령 통보를 받은 것도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금호석화는 감사 즉시 발견한 비위 혐의를 수사기관 쪽으로 통보했다는 데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포스코 사례도 참조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빠른 자진신고 배경을 놓고 일각에선 '그룹 회장이 연관된 재판이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요약하자면 '수사기관에 약점 잡힐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포석'을 깐 것이란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황병하)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횡령·배임)로 기소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포스코 염두?
자진신고 왜?

앞서 1심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법원 관행상 1심보다 항소심에서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횡령 혐의에 대해 "업무상 임무 위배 행위에 해당한다"라며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이 사실로 인정한 부분은 금호피앤비(비상장 계열사)라는 회사가 박 회장의 아들로부터 원리금을 제때 변제받지 못했음에도 2010∼2011년 34억원을 추가 대출해줬다는 것이다. 이는 박 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시기 아들에 대한 대여가 이뤄지지 않은 정황에 비춰 '특정시기 개인의 필요에 따라 편법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판단됐다.

또 재판부는 31억9880만원을 납품대금 명목으로 금호석화 명의의 전자어음으로 발행하고 지급한 혐의에 대해선 "회사 재산을 적정하게 관리해야 할 임무가 있음에도 개인 용도의 자금을 빌리기 위해 채무를 회사가 부담하게 했다"라며 "결국 회사가 어음금을 갚아야 할 상황이 됐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1심 때와 마찬가지로 협력업체와 공모해 거래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차액을 되돌려받는 등의 수법으로 200억∼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는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박 회장)이 법인자금을 마치 개인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듯 손쉽게 이용했다"라면서도 "원리금을 변제해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2심 역시 "대여금과 약속어음금 등이 모두 변제되고 손해발생 위험이 현실화 되지 않은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라고 판시했다.

직원 협박용에
침소봉대 우려

현재 박 회장의 횡령·배임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확정되지 않았다. 2심 선고 직후 금호석화 측은 "유죄 부분의 혐의 및 금액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간 금호석화 측은 검찰 공소사실에 직간접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1심 판결 직후인 지난해 1월 박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글을 통해 "남은 혐의에 대해 적극 무죄를 입증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또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악연으로 비롯된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3년간 이어진 길고 지루한 공방 속에서도…(중략)"라며 수사와 관련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사 대상으로 오른 A씨 등은 "박찬구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기관에 폭로하겠다"라며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 등에 따르면 A씨 등이 문제 삼고 있는 회사는 화물운송 중개업체 J사다. J사는 박 회장의 처남이 운영했던 회사로 알려졌다. 2005년까지 수십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J사는 2008년 500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A씨 등은 J사가 성장하는 과정에 금호석화의 일감 몰아주기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울산과 여수에 있는 공장의 물량을 J사가 수주해 다시 수수료 형식으로 박 회장에게 돌려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호석화 측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A씨 등을 공갈 혐의로 추가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검찰은 박 회장에 대한 횡령·배임 수사 당시 관련한 조사를 진행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로할 내용이 언론에 알려진 것과 별건이 아니라면 A씨 등이 불리한 상황이다.


"친인척 회사에 일감 주고 수수료"
'보복성' 회장일가 비리 폭로 협박

경찰은 A씨 등으로부터 고소가 들어와 사건이 접수되면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A씨는 현재까지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정유·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 일간지 출입기자는 "다른 문제도 아니고 비자금인데 A씨가 언론에 접촉하든 직접 나와서 얘기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폭로는 의미가 없다고 봐야한다"라며 "기자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호석화에 적대적인 일부 세력은 아예 A씨 등이 입을 열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이 비자금 의혹으로 확대시킬 계획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박 회장의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막후에서 A씨를 설득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 형제는 지난 2010년 그룹 분할로 생긴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고 상호 민형사상 고발을 주고받고 있다. 앞서 동생 박 회장은 자신의 형을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를 거쳐 특수2부로 재배당됐다. 검찰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관련한 비자금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금호석화와 관련한 일련의 움직임은 정황상 회사 차원의 사전 준비 및 조율을 거친 것으로 추정됐다. 금호석화는 지난 3일 "박찬구 회장의 차녀 박주형씨가 의결권 있는 주식 1만4285주를 장내매수 했다"라고 공시했다. 이어 경찰 발표를 앞두고는 "딸 주형씨가 구매·자금 담당 임원으로 신규 선임됐다"라고 발표했다.

주형씨의 임원 선임은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는 그동안 금호일가가 '금녀의 원칙'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금호가는 선대 때부터 여성의 경영 참여를 금지해왔다.


진짜 이유는
직원들 불신?

그런데 다른 분야도 아니고 구매·자금 담당 임원으로 주형씨를 선택한 배경에는 이번 리베이트 의혹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해석이 잇따랐다. 하지만 금호석화 측은 깜짝 인사의 이유로 "구매·자금 운영의 투명성 강화"를 언급하며 "주형씨의 경영 참여는 A씨에 대한 감사 전부터 준비돼 왔었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국민연금공단은 금호석화 주식 65만9853주(지분 2.16%)를 추가 취득해 전체 지분율을 9.33%까지 늘렸다. 이는 시장이 비자금 수사 확대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일부 재계 호사가들의 주장처럼 "비자금 수사 등 예상 밖의 일을 대비해 믿을 수 있는 가족을 임원으로 앉힌 것"이란 의심도 가능하다. 금호석화 측은 "사건을 이상한 쪽으로 끌고가는 세력을 주시하고 있다"라며 "자세한 건 곧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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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