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7)이웅희 청량리현대코아 대표

1998년부터…17년째 버티기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7회는 508억4400만원을 체납한 주식회사 청량리현대코아 이웅희 대표다.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37길 27. 청량리 재래시장 옆에는 대형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청량리 역을 마주보고 있는 청량리현대코아(이하 현대코아)는 지하 7층, 지상 21층 규모로 지난 1998년 준공됐다.

대형 주상복합

착공 때만해도 현대코아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이곳은 대공방어 협조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는 각 건물에 고도제한이 걸려있다는 뜻이다. 자연히 청량리 일대에는 고층 상업빌딩이 세워질 수 없었다. 현대코아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관내에서 가장 큰 상업시설로 허가를 따낸 현대코아는 분양 무렵 롯데백화점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현대코아가 들어설 경우 미도파 청량리점은 기존 상권을 놓고, 신축 상가와 유통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공사를 시행한 주식회사 청량리현대코아는 투자자들의 바람을 외면했다. 거액의 빚만 떠안고 부도를 맞은 것이다. 공사 진행 과정에서 불필요한 지출이 많아졌고, 은행권으로부터 과도한 차입을 받은 것이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폐업 후 청량리현대코아는 고액체납법인에 등록됐다. 청량리현대코아는 1999년 8월부터 주민세 등 28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37억원이다. 청량리현대코아는 1998년부터 법인세 등 19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과세한 세금은 471억4400만원이다.


청량리현대코아의 등기상 대표는 이웅희씨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이 마지막으로 파악된 이씨의 주소지다. 세부적으로는 빌라가 밀집돼 있는 주택가 한 가운데다. 그러나 이씨는 해당 자택에 거주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취인 부재에 따른 수차례의 '공시송달'에도 여전히 답변이 없는 이씨다.

이씨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청량리현대코아의 부실은 이씨가 대표로 취임하기 전부터 예견됐기 때문이다. 1996년 10월14일 청량리현대코아는 이사회를 열고, 은행으로부터 재래시장 재개발자금을 대출받기로 의결했다. 앞서 현대코아는 청량리역 주변의 재래시장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건립됐다.

서울시 37억원 국세청 471억원 체납
재개발 사업 실패…책임 떠넘기기

당시 청량리현대코아의 대표는 안병노씨로 확인된다. 안씨는 관련 대출의 담보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건물이 준공됐을 시 재산권에 근저당을 설정해 되갚는 약정에 사인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20억원에 달하는 대출금 채무에 연대보증을 섰다.

대지면적 3866.8㎡ 땅에 지상 21층, 지하 7층 규모의 현대코아가 완공됐다. 청량리현대코아는 은행과 맺은 약정을 근거로 건물 안에 있던 상가점포 6채에 대해 은행 명의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1997년 12월26일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친 청량리현대코아는 1998년 1월15일 당시 조흥은행에게 근저당권 설정등기를 해줬다. 채권최고액은 26억원이었다.

그런데 조흥은행은 1998년 2월19일 각 점포에 대한 외부기관의 감정 결과, 감정가가 14억1000만원에 불과해 담보가치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조흥은행은 '추가 담보를 제공하라'라고 청량리현대코아에 요구했다. 하지만 청량리현대코아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1999년 8월5일 안씨는 대표이사직을 이씨에게 물려줬다. 안씨는 조흥은행을 포함한 여러 채권단에 자신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음을 통지했다.

문제는 1999년 9월1일부터 청량리현대코아가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았다는 것이다. 이자지급을 연체한 데 이어 각종 세금도 체납했다. 현대코아의 실패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부터 예고돼 있었다. 청량리현대코아는 같은 해 12월20일 상가를 오픈했지만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영업을 중단했다. 이씨는 전기료조차 납부하지 못했다.


억울한 쪽은 소액 투자자였다. 구분소유주인 이들은 각자 1억원 이상을 투자하고도 수익을 올리지 못한 채 토지세와 건물세 등을 납부했다. 반면 안씨는 대표직 사퇴로 채무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고자 했다. 법원은 2004년 안씨의 대출금 상환 의무를 인정했다.

청량리현대코아의 전신은 (주)청량리시장이다. 1948년부터 일대를 지켜온 상인들이 주주다. 이들은 재래시장을 할인 백화점으로 전환해 생계를 잇고자 했다. 여기에 부동산 수익을 보고 들어온 일부 투자자가 섞였다. 각각의 욕망으로 공사비 1000억원이 넘는 대형공사가 발주됐다. 서울시는 1996년 3월14일 청량리 역사 주변의 '도심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투기열을 부추겼다.

이씨마저 대표에서 물러난 청량리현대코아는 폐업 처리됐다. 남은 구분소유주 700여명은 2001년 청량리현대코아관리단을 발족해 상가를 정상화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관리단 수뇌부와 소유주 일부가 자산 매각 문제로 충돌하면서 현대코아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2011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소유주들은 "관리단이 건물 임대료 등을 횡령해 그 피해를 분양주들이 떠안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매각도 못하고

앞서 세무당국은 청량리현대코아의 법인세를 통합조사한 결과 '자기주식처분손실 손금불산입'으로 세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즉 청량리현대코아는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장부가치보다 싼 값에 처분한 것이다.

이를 손실로 처리했지만 세무당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전임 대표는 후임 대표에게 책임을 미루고, 후임 대표는 다시 자신의 잘못을 시장에 떠넘겼다. 이 같은 책임 떠넘기기로 최종 피해자는 국가가 됐다. 청량리현대코아가 체납한 500여억원의 세금은 사실상 2차 납세자를 지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리한 개발 사업은 결국 거액의 세금만 남겼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느 고액체납자와의 대화
"덕분에 고생 좀 했다"

고액체납자 A씨를 처음 봤던 건 올 1월이다. 중소기업 사장인 그는 도박 등으로 수백억원의 재산을 탕진했다. 재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등 약 80억원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그는 "이유야 어찌됐든 체납자가 된 것은 잘못"이라며 "재기해서 꼭 세금을 내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의'를 보이겠다고 제안했다. 광고비 성격의 '뒷돈'일 개연성이 높았다. 당연히 제안을 거절하고 세무당국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A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최근 A씨에 따르면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가택수색 등을 벌여 A씨의 은닉재산을 찾아냈다. A씨는 "덕분에 고생 좀 했다"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A씨가 진행 중인 소송의 인지대 등에도 압류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소송에서 A씨가 이기더라도 환급통장이 국세청에 압류된 상황이라 돈을 빼돌릴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A씨는 "이젠 정말 아무 것도 없다"라며 "힘들다. 더 드릴 말이 없다"라고 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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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