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①재선 성공 차기 발판 마련 김문수 경기도지사

“경기도민 사랑 받는 내 이름은 ‘김결식’”

김문수 경기지사는 6·2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실속’을 챙겼다. 그는 힘든 싸움이 예상되던 범야권 단일후보 유시민 후보를 19만 1600표(4.4%포인트)차로 여유있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나라당의 구겨진 자존심을 빳빳이 세웠다. 초접전 끝에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힘겹게 이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와 나란히 비교되면서 김 당선자의 존재감은 더욱 빛났다. 그가 재선을 할 수 있던 것은 재임시절 경기도민에게 줬던 신뢰가 밑바탕 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시 한 번 경기도의 미래를 짊어진 김 지사. 그의 지나온 삶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 봤다.

문중의 별에서 운동권 수배자로…25년 만에 졸업장 취득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 바꾼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다. 김 지사의 표현에 따르면 ‘빚 바랜 양반동네’로 유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이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도 서당이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내내 서당에 다니며 ‘사서삼경’ ‘명심보감’을 배웠다.

그의 유년시절은 썩 풍요롭지 않았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친척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어린 4남 3녀를 판잣집으로 나앉게 하는 비운을 맞았기 때문이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에서 호롱불을 밝혀 놓고 공부할 정도로 그의 배움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고 한다.

부동의  1등
‘문중의 별’

영천군 부동의 1등이었던 재능을 아까워한 선생님의 격려로 경북중학교에 입학한 김 경기지사. 이때부터 경북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로 이어진 김 지사의 길고 가난한 ‘유학’생활이 시작된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김 지사가 활동한 주 무대는 수양동우회. 도산 안창호의 유지를 받들어 이광수가 만든 유서 깊은 조직이었다. 대구지역 연대 서클이었던 수양동우회에서 사회의식을 키웠던 그는 고 3때 소위 3선 개헌 반대를 주도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그는 지지 않고 3선 개헌 반대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결국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다행히 대학입시를 몇 개월 남겨놓고 정학이 풀려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분에게 역사적인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 나라를 위해 함께 나서자!”는 한 선배의 동아리 모집 연설을 들은 그의 심장은 뛰었다. 그길로 사회과학동아리인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운동권 인생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행동하는 운동권’으로 변신한 그는 대학교 2학년 때인 71년 10·15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로 제적당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복학 조치가 내려졌지만 학교에 다닐 마음이 사라진 그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방학교를 조직화해 유신반대를 외쳤고,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구속, 고문을 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고초를 겪은 끝에 입학 25년 만에 졸업장을 품에 안게 된다.

노동운동과의 인연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선으로 구로공단에 취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 지사가 맹활약하면서 그가 몸담았던 한일공업노조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조로 명성을 날렸다. 이 가운데 그는 출근길에 사복형사 두 명에게 붙잡혀 악명 높았던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영장도 없고 구속만료도 없었다. 민주화 분위기 탓으로 다행히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일주일간의 파업을 전개한 끝에 임금 30% 인상을 쟁취하며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노동운동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김 지사는 소위 정화대상자가 돼 삼청교육대로 가야하는 수배자가 된다. 갈 곳 없는 그가 몸을 숨긴 곳은 세진전자 노조지부장을 지냈던 지금의 부인 설난영 여사의 자취방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청춘남녀는 한결 가까워졌고 “만인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한 여자를 못 살리겠느냐”는 그의 적극적인 설득 끝에 설 여사에게 결혼승낙을 얻어냈다.

1981년 9월26일. 서울 봉천동 사거리 밑 봉천중앙교회 교육관에서 원피스를 입은 신부와 뿔테 안경을 쓴 깡마른 신랑이 팔짱을 끼고 동시 입장한다. 웨딩드레스도 청첩장도 없는 김 지사와 설 여사의 결혼식이었다.

이날 결혼식장 주변으로 전경버스 다섯 대가 출동했다. 하객보다 경찰이 더 많았던 결혼식. 경찰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시위를 열기 위한 ‘위장 결혼식’으로 의심했던 것이 그 이유다.

이후 김 지사는 정계에 입문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 노동위원장으로 선임되고,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중당 전국구 후보 3번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94년 민주자유당에 입당 후 96년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천시 소사구에 출마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박지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어진 10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은 김문수라는 이름 석자를 국민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깐깐한 성격, 빈틈없는 논리, 청빈한 생활은 한나라당 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가난한 국회의원’은 어딜 내놔도 상대당의 공격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를 폭로하는 등 야당 저격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같은 저력으로 16, 17대 총선에서도 부천소사에서 ‘탄핵역풍’까지 뚫고 내리 3선에 성공한 그는 지난 2006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6월1일 밤 그는 당당히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결식아동 항의에
‘김결식’ 별명 얻어

당선 이후 김 지사는 학교 급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릴 적 죽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랐던 그에게 학교 급식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건의하고 당시 신한국당 정책위원회에도 문제를 제기하여 학교 급식법을 세 번이나 고쳐가며 급식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다. 결식아동 급식 예산비를 삭감하려하자 김 지사가 추경 예산안을 조율 중이던 3당 총무회담을 박차고 들어가 “밥 굶는 아이들에게 왜 밥을 주지 않는가.
아이들이 유권자가 아니라고 이래도 되는 거냐”며 거칠게 항의했던 일은 국회의 전설로 남았다. 그 사건 이후 김 지사는 <김결식 의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그는 ‘김문수 스타일’로 불리는 ‘현장 중심 활동’으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 곳씩 현장을 찾다보니 4년여 동안 관용차로 23만km를 달렸다. 지구 6바퀴를 돈 셈이다.

“정책은 교과서에 없다. 보고서에도 없다. ‘현장’은 살아있는 보고서이며 교과서다”라고 말하는 김 지사의 못 말리는 ‘현장사랑’은 마침내 그를 ‘김지사’에서 ‘김기사’로 변신하게 했다. “골프를 못 치면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는 충고에도 골프 치는 시간이 아까워 여전히 ‘골프 못 치는 정치인’으로 남은 그가 휴일에 골프채 대신 택시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쇼하지 마라,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는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1년 여의 기간 동안 보통 택시 기사와 똑같은 조건에서 택시 영업을 한 김 지사. 하루 12시간씩 핸들을 잡고 총 18번 운행하는 동안 26개 시군을 넘나들며 400여 명의 경기도민을 만났다. “이보다 깊이 도민들과 만나는 방법을 지금까지 나는 찾지 못했다”는 김 지사가 택시 운전석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정책 구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경기도 전체를 한 시간에…수도권 교통 혁명 GTX 추진
골프채 대신 택시 운전대 잡아…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그의 대표적인 정책은 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GTX) 건설 사업이다. 최고 시속 200km 로 지하 40m 이하를 달려 일산에서 강남까지 22분, 강남에서 동탄까지 18분 만에 도착하는 GTX는 경기도 전체를 한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수도권 교통 혁명으로 평가된다.

“세계는 이미 메가시티 패권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의 심장 수도권을 경쟁력 있는 메가시티로 키워야한다”고 말해 온 김 지사는 외국 자본의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위해 경기도가 선결해야 할 과제는 균형발전의 논리로 50여 년간 적용 돼온 ‘수도권 규제 완화’라고 주장해 왔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위한 그의 끊임없는 설득과 노력은 여의도 면적의 8배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개발제한 구역 112㎢ 합리적 조정, 상수원 공장입지 제한거리 대폭 축소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는 <김결식>이라는 별명답게 복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대상’ 복지지원정책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위기가정 무한돌봄사업’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취약계층을 ‘무제한·무기한’으로 지원하는 복지 서비스로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한 가정들을 ‘선지원·후심사’를 원칙으로 지원해준다.

단순한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민간의 풍부한 복지 인프라와 연계한 수혜자 중심의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을 하는 ‘위기가정 무한돌봄 사업’은 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거치며 치열한 내부 경쟁을 극복하고 보수진영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 잡은 김 지사는 지금 다시 한 번 경기도의 앞날을 책임지게 됐다.

이에 따라 향후 GTX 사업, 서해안 골드코스트 무한비상, 무한돌봄 사업 등 3대 핵심사업의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GTX사업의 경우 국토해양부에서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했고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 현대산업개발 등 3개 컨소시엄에서 국토해양부에 민간투자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무한돌봄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2014년까지 총 1977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위기가정은 물론 차상위층까지 자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 지사는 이를 위해 이미 31개 시·군에 무한돌봄센터를 설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경기도 사회복지공제회 확대 지원을 통한 사회복지 종사자의 복지 돌봄을 강화했다. 세부적으로는 가정보육교사 제도 확대 운영, 시간연장 보육시설 확대, 결식아동급식 확대, 중증장애인 연금제도 시행 등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선지원·후심사’ 원칙
‘무제한·무기한’ 지원

또 유니버설스튜디오 코리아 리조트 조성사업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골드코스트 무한비상 사업도 추진 기반을 확고히 하게 됐다. 현재 송산그린시티 내 동측 부지 132만평에 테마파크, 씨티워크, 워터파크, 콘도미니엄을 건설해 2014년 개장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항공산업 육성, 평택항 개발 및 국제물류기지 건설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제 김 지사는 경기도 발전을 위한 움직임에 두 번째 걸음을 뗐다. 앞으로 그의 행보에 경기도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프로필

<주요 경력>
·1951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 중·고등학교 졸업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 후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과 투옥 후 25년 만에 졸업·도루코 노조위원장, 서노련 등 노동운동 ·1986년 5.3 인천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2년 5개월 복역 ·제15, 16, 17대 국회의원 (경기도 부천 소사) ·한나라당 제1 사무부총장, 기획위원장, 공천심사위원장(17대 총선) ·2006년 민선4기 경기도지사


<수상. 자격증>
·1996년~2005년 10년 중 9년 의정활동 국정 감사 최우수의원 선정 ·1999년 결식아동 돕기 의정활동 공로패 수상  ·2006년 국회 출입기자단 선정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위’, ‘일 잘하는 국회의원 1위’ ·2007, 2009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민선4기 광역자치단체 공약 이행도 평가 1위 ·2007, 2009년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공공혁신 부문, 리더십 부문 대상수상 ·환경관리기사, 열관리 기능사 등 국가 자격증 9개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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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