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국립대 잡도리' 내막

보수성향 '우대' 진보성향 '칼질'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방송통신대학교를 포함한 국립대 세 곳의 총장 자리가 비어있다. 1년 가까이 혹은 1년 넘게 공석이다. 박근혜정부가 총장 임명제청을 반대하고 있어서다. "이유를 알려 달라"라는 세 후보자의 요구에 정부는 어떤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 국립대와 같은 처지였던 한국체육대학교는 네 차례나 후보를 바꾼 끝에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들'의 선택은 '친박계'로 알려진 김성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다.

지난해 6월19일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는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신임 총장후보로 선출했다. 투표권이 있는 서울대 이사회 임원 15명 가운데 8명이 성 교수를 선택했다. 국립대인 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교육부가 대학에서 복수후보자(투표 1·2위)를 추천받으면 교육부 장관이 단수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복수후보자를 추천받는 이유는 검증 과정에서 1순위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국립대 총장은
대통령이 재가

서울대는 즉시 성 교수를 신임총장으로 추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달도 못가 임명제청안을 재가했다. 같은 해 7월11일 박 대통령은 성 교수를 제26대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첫 간선제로 뽑힌 총장이지만 인준 과정에 큰 잡음은 없었다. 성 교수는 7월20일 4년의 총장 임기를 예정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국립대인 충북대학교(이하 충북대)는 서울대보다 하루 앞선 6월18일 윤여표 약학대 교수를 1순위 총장후보자로 선출했다. 충북대는 당시 김승택 총장의 사퇴로 교무처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다. 충북대는 서울대와 비슷한 시기 윤 교수에 대한 추천서를 교육부로 송달했다. 자체 윤리위원회의 검증 결과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담겼다. 윤리위원회는 후보자의 연구실적과 논문표절 여부 등을 검증하는 기구다.

그런데 청와대는 8월19일에야 충북대 총장 임명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서울대와 비교하면 한 달 넘게 시간을 끈 것이다. 교육부는 내부 사정을 근거로 들었다. 학위수여식은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은 8월28일로 연기됐다. 교육부 사정 때문에 졸업자들은 졸업식 일정을 잡는 데 혼란을 겪어야 했다.


한밭대학교(이하 한밭대)도 정부의 '늑장'으로 신임총장의 임기가 뒤늦게 개시됐다. 같은 해 4월 송하영 건축공학과 교수를 1순위로 뽑은 한밭대는 석 달 후인 7월29일이 돼서야 정부의 재가를 받았다. 신임총장의 임기는 2014년 7월20일부터 2018년 7월19일까지로 공고됐다. 정부가 일처리를 서둘렀다면 공고된 임기를 위배할 이유가 없었다.

총장 임명 거부
이유는 못 밝혀

그나마 두 대학은 사정이 나은 편에 속했다. 공주대학교(이하 공주대)와 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통대), 경북대학교(이하 경북대)는 아직까지 총장 자리가 공석이다. 이들 대학은 총장이 없고, 각각 직무대행이 총장업무를 보고 있다. 공주대는 1년2개월째 총장이 공석이며, 방통대는 10개월째 총장실이 비어 있다. 경북대도 총장의 부재로 8개월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이들 3개 대학이 추천한 총장후보자에 대한 임용제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거부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역대 정부 가운데 '자질'을 근거로 총장 임용이 거부된 사례는 드물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지난 2월 공개한 '국립대 총장 임용제청 거부 사례'를 보면 노무현정부 때는 단 1건의 거부권 행사가 있었고, 이명박정부 역시 5년간 6번을 반대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두 정부는 위장전입 및 위장증여, 공무원 영리행위 금지 위반, 교육공무원법 위반 등의 거부사유를 명확히 고지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2년 동안 무려 7차례나 임명제청을 거부하면서도 그 이유를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공개' 또는 '국립대 총장으로서 부적합'이 전부였다.

공주대와 방통대, 경북대 후보자는 교육부를 상대로 임용제청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이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올 1월 공주대 김현규 총장후보자가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승소한 김 후보자는 마지막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방통대·경북대·공주대 총장 공석 논란
한체대 친박 정치인 '낙하산 총장' 의혹


방통대 류수노 총장후보자도 올 1월 1심에서 승소했다. 남은 항소심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승소가 유력한 상황이다. 경북대 김사열 총장후보자의 경우는 같은 달 소송을 제기해 교육부와 법정공방에 돌입했다. 현재까지의 일관된 판례는 "교육부가 행정절차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 대학의 자치권을 훼손했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 대학에 압박을 넣고 있다. 지난 3월 교육부 명의로 '새로운 총장후보자를 선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진행 중인 소송은 '교육부와 개인 간의 분쟁'이라고 못박았다. 교육부는 임용을 거부한 세 후보자와 일체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모두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교육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나 황 장관에게 '실권'이 있다고 보는 견해는 찾기 어렵다. 더 윗선인 '청와대'의 존재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국립대 총장은 모호한 이유로 임용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잦았다. 각 국립대에는 직무대행 체제가 유행했다. 한경대학교(이하 한경대), 부산교육대학교(이하 부산교대), 금오공과대학교(이하 금오공대)는 2012년 12월~2013년 1월 후보자를 추천했음에도 반 년 가까이 총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역시 자율추천한 후보자가 교육부의 반대로 낙마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총장은 시간이 걸려도 청와대의 검증을 통과했다. 한경대 태범석 총장은 보수단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소속이다. 범사련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적대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다. 부산교대 하윤수 총장 역시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하 총장은 TK(부산·경남) 출신으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금오공대 김영식 총장 또한 이명박정부 때 대통령 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으로 활동했다.

보수 성향은
무조건 통과

임명제청이 거부된 세 후보자는 나란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정권 비판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대표적으로 류 후보자(방통대)는 지난 2009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이명박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김 후보자(경북대)의 경우도 지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반면 또 다른 김 후보자(공주대)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지난 2011년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퇴진 촉구, 교수 10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린 그는 "서명한 사실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안팎에선 '김 후보자가 진보성향으로 찍혀 제청이 거부됐다'라는 설이 파다하다.

한국교통대학교(이하 교통대) 총장 선출 과정에선 지난 정권과 현 정권이 맞부딪혔다. 2013년 4월 장병집 당시 총장이 물러난 교통대는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을 1순위 후보자로 선출했다. 그러나 'MB맨'의 귀환은 역풍을 불러왔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비판여론에 권 전 장관은 같은 해 7월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교통정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교육부는 권 전 장관이 사퇴한 직후 총장후보자 재추천을 교통대에 요구했다.

9개월을 허비한 교통대 총장 공백은 김영호 전 대한지적공사 사장이 2014년 1월 임명돼며 갈무리됐다. 후보군 가운데 유일한 외부 인사였던 그는 행정안전부 1차관을 지낸 관료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정부는 지금껏 세 번의 국무총리를 모두 '성대' 출신으로 지명했다. 김 총장이 임명된 배경에도 '출신학교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TK·구미·성대 출신은 '프리패스'
교육부 묻지마 인사 배후엔 청와대?

표면적으로 국립대 총장 임명제청권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 교육부 장관은 '교육공무원 인사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인사위원회에는 교육부 소속 고위공무원이 대거 포진해있다. 차관을 위원장으로 기획조정실장, 대학지원실장 등 내부인사 5명과 전문직 외부인사 2명이 후보자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 인사위원회는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이는 지난 2012년 국립대 총장 선거를 간선제로 전환할 당시 우려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을 왜 선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청와대가 결정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결정을 인사위원회가 따르고 있다는 증거다.


이 같은 청와대의 '실력행사'는 국립대를 길들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9일 임명된 이남호 전북대학교 총장은 박근혜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대상 창업경진 대회'에 적극 협력한 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에 내정됐다. 앞서 이 총장은 '정부의 창조경제 핵심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을 올해의 목표로 꼽았다.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안동대학교(이하 안동대) 권태환 총장과 창원대학교(이하 창원대) 최해범 총장도 마찬가지다. 먼저 권 총장은 지역 인터뷰에서 창조교육혁신센터 설립, 총장 직속 미래창조위원회 설치 등을 공언했다. 안동대는 지난해 전국 대학 가운데 최초로 '창조경제실천대회'까지 열었다.

최 총장이 보여준 성의도 권 총장에 못지않다. 그는 지난해 총장 도전을 앞두고 응한 인터뷰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정신을 가진 인재를 양성해 창조경제 구현에 이바지하고 지역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대는 학내에 'COMPASS 창조경제타운'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부가 주도하는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감사원 움직여
국립대 주물럭

박근혜정부는 국립대 총장을 쥐락펴락하면서 교수들을 상대로는 사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가 R&D(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연구비 부실 관리 대학에는 서울대와 전북대, 경북대가 모두 망라됐다. 당장 내년 총장 선거를 앞둔 국립대 입장에선 정부의 이 같은 압박이 반가울 리 없다. '후보자를 잘못 뽑았다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던 한체대는 2013년 3월 김종욱 당시 총장이 물러난 뒤 4차례나 총장 후보를 바꿨다. 교육부는 온갖 이유로 한체대가 추천한 후보자에 딴지를 걸었다. 최종적으로 한체대가 고른 안전한 선택지는 김성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경북 구미 출신안 김 전 의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지낸 '친박계' 정치인이다. 체육계에 어떠한 연고도 없음에도 전체 47표 중 36표를 득표해 지난 1월 후보자로 추대됐다. 반대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바로 다음 달 김 전 의장을 총장으로 임명했다. 교육부 안팎에서 제기된 낙하산 논란에는 꿈적하지 않았다. 'TK·구미·성대' 출신에게만 '프리패스'를 내 준 셈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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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