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국립대 잡도리' 내막

보수성향 '우대' 진보성향 '칼질'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방송통신대학교를 포함한 국립대 세 곳의 총장 자리가 비어있다. 1년 가까이 혹은 1년 넘게 공석이다. 박근혜정부가 총장 임명제청을 반대하고 있어서다. "이유를 알려 달라"라는 세 후보자의 요구에 정부는 어떤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 국립대와 같은 처지였던 한국체육대학교는 네 차례나 후보를 바꾼 끝에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다. '그들'의 선택은 '친박계'로 알려진 김성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다.

지난해 6월19일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는 성낙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신임 총장후보로 선출했다. 투표권이 있는 서울대 이사회 임원 15명 가운데 8명이 성 교수를 선택했다. 국립대인 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교육부가 대학에서 복수후보자(투표 1·2위)를 추천받으면 교육부 장관이 단수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복수후보자를 추천받는 이유는 검증 과정에서 1순위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국립대 총장은
대통령이 재가

서울대는 즉시 성 교수를 신임총장으로 추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달도 못가 임명제청안을 재가했다. 같은 해 7월11일 박 대통령은 성 교수를 제26대 서울대 총장으로 임명했다. 서울대 개교 이래 첫 간선제로 뽑힌 총장이지만 인준 과정에 큰 잡음은 없었다. 성 교수는 7월20일 4년의 총장 임기를 예정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국립대인 충북대학교(이하 충북대)는 서울대보다 하루 앞선 6월18일 윤여표 약학대 교수를 1순위 총장후보자로 선출했다. 충북대는 당시 김승택 총장의 사퇴로 교무처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었다. 충북대는 서울대와 비슷한 시기 윤 교수에 대한 추천서를 교육부로 송달했다. 자체 윤리위원회의 검증 결과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담겼다. 윤리위원회는 후보자의 연구실적과 논문표절 여부 등을 검증하는 기구다.

그런데 청와대는 8월19일에야 충북대 총장 임명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서울대와 비교하면 한 달 넘게 시간을 끈 것이다. 교육부는 내부 사정을 근거로 들었다. 학위수여식은 예정일보다 일주일 늦은 8월28일로 연기됐다. 교육부 사정 때문에 졸업자들은 졸업식 일정을 잡는 데 혼란을 겪어야 했다.


한밭대학교(이하 한밭대)도 정부의 '늑장'으로 신임총장의 임기가 뒤늦게 개시됐다. 같은 해 4월 송하영 건축공학과 교수를 1순위로 뽑은 한밭대는 석 달 후인 7월29일이 돼서야 정부의 재가를 받았다. 신임총장의 임기는 2014년 7월20일부터 2018년 7월19일까지로 공고됐다. 정부가 일처리를 서둘렀다면 공고된 임기를 위배할 이유가 없었다.

총장 임명 거부
이유는 못 밝혀

그나마 두 대학은 사정이 나은 편에 속했다. 공주대학교(이하 공주대)와 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통대), 경북대학교(이하 경북대)는 아직까지 총장 자리가 공석이다. 이들 대학은 총장이 없고, 각각 직무대행이 총장업무를 보고 있다. 공주대는 1년2개월째 총장이 공석이며, 방통대는 10개월째 총장실이 비어 있다. 경북대도 총장의 부재로 8개월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부는 이들 3개 대학이 추천한 총장후보자에 대한 임용제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거부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역대 정부 가운데 '자질'을 근거로 총장 임용이 거부된 사례는 드물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지난 2월 공개한 '국립대 총장 임용제청 거부 사례'를 보면 노무현정부 때는 단 1건의 거부권 행사가 있었고, 이명박정부 역시 5년간 6번을 반대하는 데 그쳤다.

더구나 두 정부는 위장전입 및 위장증여, 공무원 영리행위 금지 위반, 교육공무원법 위반 등의 거부사유를 명확히 고지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2년 동안 무려 7차례나 임명제청을 거부하면서도 그 이유를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공개' 또는 '국립대 총장으로서 부적합'이 전부였다.

공주대와 방통대, 경북대 후보자는 교육부를 상대로 임용제청 거부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는 이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올 1월 공주대 김현규 총장후보자가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승소한 김 후보자는 마지막 대법원 판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방통대·경북대·공주대 총장 공석 논란
한체대 친박 정치인 '낙하산 총장' 의혹


방통대 류수노 총장후보자도 올 1월 1심에서 승소했다. 남은 항소심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승소가 유력한 상황이다. 경북대 김사열 총장후보자의 경우는 같은 달 소송을 제기해 교육부와 법정공방에 돌입했다. 현재까지의 일관된 판례는 "교육부가 행정절차법과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기본권, 대학의 자치권을 훼손했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 대학에 압박을 넣고 있다. 지난 3월 교육부 명의로 '새로운 총장후보자를 선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진행 중인 소송은 '교육부와 개인 간의 분쟁'이라고 못박았다. 교육부는 임용을 거부한 세 후보자와 일체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모두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교육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벌어진 일들이다. 그러나 황 장관에게 '실권'이 있다고 보는 견해는 찾기 어렵다. 더 윗선인 '청와대'의 존재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국립대 총장은 모호한 이유로 임용절차가 지연되는 일이 잦았다. 각 국립대에는 직무대행 체제가 유행했다. 한경대학교(이하 한경대), 부산교육대학교(이하 부산교대), 금오공과대학교(이하 금오공대)는 2012년 12월~2013년 1월 후보자를 추천했음에도 반 년 가까이 총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역시 자율추천한 후보자가 교육부의 반대로 낙마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총장은 시간이 걸려도 청와대의 검증을 통과했다. 한경대 태범석 총장은 보수단체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소속이다. 범사련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적대적인 단체로 알려져 있다. 부산교대 하윤수 총장 역시 보수성향으로 분류된다. 하 총장은 TK(부산·경남) 출신으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금오공대 김영식 총장 또한 이명박정부 때 대통령 자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으로 활동했다.

보수 성향은
무조건 통과

임명제청이 거부된 세 후보자는 나란히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거나 정권 비판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대표적으로 류 후보자(방통대)는 지난 2009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이명박정부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김 후보자(경북대)의 경우도 지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성명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반면 또 다른 김 후보자(공주대)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지난 2011년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퇴진 촉구, 교수 10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린 그는 "서명한 사실이 없다"라는 입장이다. 교육부 안팎에선 '김 후보자가 진보성향으로 찍혀 제청이 거부됐다'라는 설이 파다하다.

한국교통대학교(이하 교통대) 총장 선출 과정에선 지난 정권과 현 정권이 맞부딪혔다. 2013년 4월 장병집 당시 총장이 물러난 교통대는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을 1순위 후보자로 선출했다. 그러나 'MB맨'의 귀환은 역풍을 불러왔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비판여론에 권 전 장관은 같은 해 7월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교통정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교육부는 권 전 장관이 사퇴한 직후 총장후보자 재추천을 교통대에 요구했다.

9개월을 허비한 교통대 총장 공백은 김영호 전 대한지적공사 사장이 2014년 1월 임명돼며 갈무리됐다. 후보군 가운데 유일한 외부 인사였던 그는 행정안전부 1차관을 지낸 관료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정부는 지금껏 세 번의 국무총리를 모두 '성대' 출신으로 지명했다. 김 총장이 임명된 배경에도 '출신학교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TK·구미·성대 출신은 '프리패스'
교육부 묻지마 인사 배후엔 청와대?

표면적으로 국립대 총장 임명제청권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다. 교육부 장관은 '교육공무원 인사위원회'의 자문을 받는다. 인사위원회에는 교육부 소속 고위공무원이 대거 포진해있다. 차관을 위원장으로 기획조정실장, 대학지원실장 등 내부인사 5명과 전문직 외부인사 2명이 후보자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 인사위원회는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이는 지난 2012년 국립대 총장 선거를 간선제로 전환할 당시 우려됐던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을 왜 선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청와대가 결정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사실상 청와대의 결정을 인사위원회가 따르고 있다는 증거다.


이 같은 청와대의 '실력행사'는 국립대를 길들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9일 임명된 이남호 전북대학교 총장은 박근혜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창조경제대상 창업경진 대회'에 적극 협력한 데 이어 지난 20일에는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에 내정됐다. 앞서 이 총장은 '정부의 창조경제 핵심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을 올해의 목표로 꼽았다.

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안동대학교(이하 안동대) 권태환 총장과 창원대학교(이하 창원대) 최해범 총장도 마찬가지다. 먼저 권 총장은 지역 인터뷰에서 창조교육혁신센터 설립, 총장 직속 미래창조위원회 설치 등을 공언했다. 안동대는 지난해 전국 대학 가운데 최초로 '창조경제실천대회'까지 열었다.

최 총장이 보여준 성의도 권 총장에 못지않다. 그는 지난해 총장 도전을 앞두고 응한 인터뷰에서 "창의적이고 도전정신을 가진 인재를 양성해 창조경제 구현에 이바지하고 지역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대는 학내에 'COMPASS 창조경제타운'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부가 주도하는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감사원 움직여
국립대 주물럭

박근혜정부는 국립대 총장을 쥐락펴락하면서 교수들을 상대로는 사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국가 R&D(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연구비 부실 관리 대학에는 서울대와 전북대, 경북대가 모두 망라됐다. 당장 내년 총장 선거를 앞둔 국립대 입장에선 정부의 이 같은 압박이 반가울 리 없다. '후보자를 잘못 뽑았다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던 한체대는 2013년 3월 김종욱 당시 총장이 물러난 뒤 4차례나 총장 후보를 바꿨다. 교육부는 온갖 이유로 한체대가 추천한 후보자에 딴지를 걸었다. 최종적으로 한체대가 고른 안전한 선택지는 김성조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경북 구미 출신안 김 전 의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지낸 '친박계' 정치인이다. 체육계에 어떠한 연고도 없음에도 전체 47표 중 36표를 득표해 지난 1월 후보자로 추대됐다. 반대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바로 다음 달 김 전 의장을 총장으로 임명했다. 교육부 안팎에서 제기된 낙하산 논란에는 꿈적하지 않았다. 'TK·구미·성대' 출신에게만 '프리패스'를 내 준 셈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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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