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5)전탁순 선인산업 대표

돈 없는 상인들 죽이고 자기만 살았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5화는 159억6300만원을 체납한 선인산업 전탁순 대표다.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용산. 용산은 1990년대 후반까지 컴퓨터의 메카였다. 지하철 1호선 용산역 주변엔 수많은 전자상가가 생겨났다. 주말이면 전자 제품을 보러 온 사람들이 거리마다 가득 찼다. 상가 통행로는 흥정과 호객 행위로 북적였다. 전자상가는 용산을 찾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일터였다.

IMF 때 부도

선인상가도 그랬다. 오밀조밀 가게가 밀집한 선인상가는 용산 일대의 랜드마크로 각인됐다. 1997년 부도로 운영사가 폐업하기 전까진 누구도 선인상가의 실패를 예견하지 못했다. 선인상가의 운영업체인 선인산업은 같은 해 11월14일 은행어음을 막지 못하고 부도를 냈다. 1998년 2월에는 선인산업의 대표 전선한씨의 은행 거래가 정지됐다.

선인산업의 부도는 전자 및 IT업계의 큰 사건이었다. 선인산업의 부도를 전후로 여러 컴퓨터 관련 유망 중소업체가 자금난에 휩싸여 문을 닫았다. 비교적 현금이 풍부했던 선인산업은 철강회사인 서울제강의 연대 보증으로 재정난을 자초했다. 당시 서울제강은 선인산업의 계열사 가운데 하나였다.

특수강 전문업체인 서울제강은 IMF 외환위기 여파와 판매부진이 겹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인천에 본사를 둔 서울제강은 당시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 동인천지점에 만기도래한 12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1997년 11월14일 1차 부도를 낸 서울제강은 다음날인 15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선인산업은 서울제강에 400억원의 지급보증을 섰다가 같은 날 부도를 맞았다. 부도에 따른 선인산업의 지급보증 액수는 2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선인산업은 부동산 임대업을 통해 수익을 냈지만 1995년부터는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 및 유통에 나서는 등 사업 확장에 의욕을 보였다. 이 무렵 전자제품 무역은 유래 없는 호황을 맞았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노키아 휴대폰을 대리 판매한 선인산업의 실적은 신통치 못했다. 경영진은 영상사업부를 꾸려 경기 양평 덕소에 카메라 생산 라인을 가동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선인산업은 선인상가를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사업 자금을 융통했다. 선인산업의 부도는 선인상가에 입주한 중소 상인들의 일자리가 사라짐을 뜻했다. 또 상인들과 전대차계약을 맺고 상가를 임대했던 임차인들 역시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선인상가가 채권단의 주도로 경매에 넘어가면 자칫 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었다.

 

이때 선인산업은 1200여명의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임대계약을 전세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상가가 매각되더라도 전세권이 있으면 남은 권리금을 보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선인산업이 제시한 해결책에 찬성하지 않았다. 상인들은 선인산업 주주 부채를 떠안아서라도 상가를 정상화시키고자 했다. 선인산업이 인천지방법원에 화의신청을 냈을 당시 부채는 1218억원, 순부채는 585억원에 달했다.

서울시 29억 국세청 130억6400만원
선인산업 부도 직후 비상장주식으로 뒷돈

선인상가의 전체 부동산 감정가는 700억∼800억원으로 금융권에 정상 매각된다면 순부채를 제하고도 얼마간 버틸 수 있었다. 더구나 임차인들은 350억원상당의 임차보증채권을 갖고 있었다. 1999년 10월 임차인들은 선인산업 주주들과 합의해 경매 없이 선인상가의 근저당권과 채권을 넘겨받기로 약정했다. 또 선인산업 경영진은 미국 론스타펀드에 넘어간 일부 채권을 상인들이 인수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그러나 약정은 휴지조각이 됐다. 선인상가가 법원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이때 등장한 회사가 지포럼에이엠씨다. <일요시사>는 지난 3월26일 연속기획 시리즈인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17)천세명 지포럼에이엠씨 대표'라는 기사에서 관련한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결국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선인상가를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매물에 눈독을 들인 중견기업 대한전선은 임차인조합에 1300억원을 빌려주고 연 25%의 이자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임차인과 상인들이 버틴 것은 당시 'PC방 붐'을 타고 선인상가의 경기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임차인조합과 약정했던 경영진의 태도가 바뀐 것도 같은 이유다. 군인공제회를 포함한 여러 곳이 선인상가 매수에 관심을 보였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당시 선인산업 대표였던 전탁순씨는 상인들의 '뒤통수'를 쳤다. 매각금액 1500억원을 받고 미국계 투자회사인 리만브라더스에 상가를 넘기기로 합의한 것이다. 앞서 경매를 통해 상가를 낙찰 받은 임차인조합은 잔금 850억원을 납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임차인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여론의 반대로 리만브라더스 매각은 무산됐지만 전씨는 선인상가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전씨는 1998년 선인산업에 비상장 주식을 양도하면서 수십억원의 매매대금을 챙겼다. 특히 선인산업은 전씨 소유의 주식을 사들이기에 앞서 주주총회를 통해 감자를 결의하고, 주식매입 직후 자본금을 감소시키는 등 회삿돈을 줄여 전씨에게 안겼다.

전씨는 선인산업에 빌려준 돈을 제하고 투자금을 전액 회수했다. 이 무렵 전씨는 타워크리스탈빌딩 등 부동산은 물론 다른 회사의 주식을 대량 보유한 전형적인 '투기 부자'였다. 선인산업은 전씨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도난 주식의 매매대금을 주당 100만원으로 책정했다. 대법원은 관련 내부거래의 위법성을 인정했다. 과세당국은 전씨에게 세금을 물렸다.

선인산업은 2003년 11월부터 주민세 등 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25억8400만원이다. 선인산업은 2002년부터 법인세 등 5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과세한 체납액은 91억4400만원이다.

선인산업의 대표자 전탁순씨는 개인 자격으로도 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2005년 1월부터 주민세 등 3건의 지방세를 체납했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3억3300만원이다. 국세청에도 전씨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1996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12건의 세금을 체납했고, 확인된 체납액은 39억200만원이다.

전씨 앞으로 달린 세금의 합은 159억6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선인산업의 계열사인 서울제강 역시 고액체납 법인에 올라 있다. 관련 체납액까지 더하면 전체 액수가 200억원에 육박했다. 서울제강은 2004년부터 법인세 등 8건의 세금을 누락했다. 체납액은 32억5200만원이었다.

전형적인 부자

그런데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는 서울제강 대표자의 이름이 생략돼있다. 서울제강이 폐업한 데다 대표자도 없어 부과한 세금은 사실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씨의 주소지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이었다가 경기 용인에 있는 보정동으로 바뀌었다. 지하철 분당선 인근에 있는 3억∼4억원대 아파트가 전씨의 새 주거지로 파악됐다. 현재 전씨는 사업 실패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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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