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성완종 메모'에 언급된 정치인으로는 처음이다. 홍 지사와 함께 '검찰 1호 타깃'으로 지목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친박으로 분류된 나머지 6인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관련 배경을 놓고 검찰 안팎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진위를 알아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망 후 그가 남긴 '메모'의 파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는 '비박'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 둘째는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캠프로 전달된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 셋째는 과거 정권 때 단행된 특별사면에 대한 청와대의 하명 수사다.
기소 앞둔 홍준표
소환 앞둔 이완구
우선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에 대한 수사는 비교적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8일 검찰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홍 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수사 초기부터 금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앞선 검찰 조사에서 "2011년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받아 승용차 안에 있던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윤 전 부사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홍 지사의 금품수수 여부를 추궁했다. 홍 지사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돈의 출처와 성격, 전달 방법 등이 구체화되면서 수사의 퍼즐이 맞춰진 모습이다. 검찰은 이르면 이주 내로 홍 지사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완구·홍준표 수사 마무리 예정
박 특사 공세 대선자금 의혹 맞불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이달 들어 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전 총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계획이다. 지난 6일 검찰은 2013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이 전 총리(당시 후보)를 도운 자원봉사자 한모씨를 소환하는 한편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인 윤모씨를 다시 불러 조사했다.
한씨는 부여·청양 재보선 후보등록일인 2013년 4월4일 '이완구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을 목격한 인물로 전해진다. 이 전 총리는 같은 날 오후 4시30분께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성 전 회장에게서 현금 3000만원이 담긴 비타500 박스를 선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 금모씨와 또 다른 운전기사 여모씨로부터 "성 전 회장이 당시 선거사무소를 방문했다"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또 성 전 회장과 그 측근들의 통화내역, 성 전 회장의 하이패스차량 단말기 통행기록 등도 확보해 당일 행적을 복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과 독대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전 총리의 일정을 관리한 비서 노모씨와 선거사무소를 총괄한 신모씨 역시 "두 사람이 만난 걸 보지 못했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이들뿐 아니라 반대 진술을 종합해 3000만원의 진위를 가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측근그룹이 윤씨 등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을 확인 중이다. '홍준표 수사'와 비교해 진행속도가 더디지만 관련 인물이 대부분 소환된 만큼 이 전 총리 역시 소환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전 총리에 대한 기소 여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7일 검찰은 현장 검증에서 1억원을 담은 쇼핑백에 대해 "개연성이 높다"라는 결론을 내린 반면 3000만원을 담은 비타500 상자에 대해선 결론을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지사와 달리 이 전 총리에 대한 기소는 박근혜정부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성완종 게이트
핵심은 박근혜
'성완종 게이트'의 뇌관인 대선자금 수사는 마찬가지 이유로 시계가 멈춰있다. '성완종 메모'에 적힌 8인 가운데 6인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혹에 휩싸인 돈이 박근혜캠프와 직접 연결돼 있는 까닭에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 안팎에선 "청와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표면적으로 검찰은 수사 지연의 근거로 증거 부족을 꼽고 있다.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과 했던 마지막 인터뷰가 그 단서다. 성 전 회장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돈을 받은 8인을 열거하면서도 홍 지사를 빼고는 중간 전달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성 전 회장이 남은 7인에게 돈을 직접 건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녹취록에서 성 전 회장은 김 전 실장을 지목하면서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를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2007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 현금으로 줬다"라며 "돈은 심부름한 사람이 가져왔고, 내가 직접 줬다"라고 밝혔다. 남은 녹취록을 봐도 제3자인 전달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전달자의 부재는 검찰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대개의 정치자금(혹은 뇌물) 수사는 뇌물 공여자의 일관된 진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번 수사는 공여자가 사망하면서 추가적인 진술 보강이 어렵게 됐다. 검찰로선 공소장을 작성할 때 간접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검찰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 연이은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핵심 물증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부터 수사가 꼬여버린 셈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영감들' 털어봐야 나올 것도 없는데 일부러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검찰이 가진 딜레마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특별수사팀을 흔드는 '정치세력'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권 보위를 위해 수사 개시를 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일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자신을 겨냥한 수사를 앞두고 측근들과 만나 대책을 의논했으며, 이때 오간 회의 내용을 대부분 복원했다"라고 알렸다. 관련 회의록이 중요한 이유는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8인에 대한 단서가 회의 내용에 언급돼서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는 없다"라면서도 "성 전 회장 사망 이후 회의가 열렸으며, 정치권 로비 의혹과 관련해 측근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놨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의 대책회의는 "이번 수사와 직접 연결된 내용이 담겼다"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성 전 회장이 지난달 윤 전 부사장을 찾아가 '그때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잘 줬느냐'라고 물은 것은 우발적인 행동으로 볼 수 없다. 또 같은 기간 성 전 회장은 '7억원을 줬다'라고 주장한 리베라호텔을 자신의 측근과 둘러봤다.
추론하면 검찰은 회의록에서 남은 6인에 이르는 열쇠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더는 '증거 타령'이 수사의 걸림돌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 법무부
충돌 가능성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특별수사팀장으로 수사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주말도 없이 직원을 독려하며 증거 확보에 열심이다. 그렇지만 대선자금 수사는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된 사안이라 문 지검장이 받는 심리적 압박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문 지검장은 "양심을 지키겠다"라며 '검사직'을 내건 듯한 인상을 내비쳤다. 이른바 '채동욱 찍어내기' 논란으로 파문을 일으킨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아예 수사팀으로부터 직보를 받고 있다. 외부의 개입과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김 총장은 '진인사대천명'이란 당부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국정원 사건을 지휘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닮은 행보다. 공교롭게도 잠재적 수사대상자이자 이해당사자인 청와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검찰총장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위태로운 김진태 "제2의 채동욱 될라"
황교안 총리차출·민정수석 교체 변수
김 총장은 되도록 많은 정보를 언론에 노출시키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알 권리' 차원이란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반면 한쪽에서는 수사팀도 모르는 정보가 새고 있다. 야당 의원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일보>의 '성완종 장부'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3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목하며 "수사에서 손을 떼라"라고 했다.
황 장관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당시 채 전 총장과 선거법 적용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황 장관은 공직선거법을 적용한 기소에 반대했으나 채 전 총장은 선거법 적용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까지 요구했다. 둘의 갈등은 원 전 원장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은 불과 석달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옷을 벗었다.
만약 김 총장이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한다면 채 전 총장보다 더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이 수사를 받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정권에 부담이다. 청와대로서는 검찰을 통제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황 장관은 국무총리 발탁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청와대는 개점휴업 상태인 '부패와의 전쟁'을 황 장관에게 맡기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렇지만 황 장관은 어떤 이유인지 법무부에 남아 있다. 현재로선 성완종 사건 때문이란 것이 주된 분석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김 총장과 교류했던 김 전 실장의 공백이 크다. 검찰 권력은 김 전 실장의 힘이 빠지면서 내부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난 2월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김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현재 김 차장은 김 총장을 거르고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자금 수사가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김 총장의 약화된 조직 장악력이 몫을 하고 있다.
그 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된 채널로 '특사(특별사면) 수사'를 압박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성완종 특별사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말한데 이어 지난 4일에도 "사면제도를 전면 개선하라"라고 지시했다. 사안의 '본질'인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특사 카드는 성완종 메모가 발견된 직후 국정원이 기획하고 제공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앞뒤 정황상 일종의 '물타기 아이템'이란 의심이 짙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0일 '성완종 게이트 ④박근혜 위기탈출 카드 포착'이란 기사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을 알린 바 있다.
문제는 특사를 대가로 참여정부 쪽이 돈을 챙겼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사실이다. 메모와 인터뷰가 있는 성완종 리스트와는 결이 다르다. 이명박대통령인수위 당시 비서실에 있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B 측 핵심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을 특별히 챙겼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친박계는 보름이 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나아가 시중에는 친박계 핵심그룹이 우 수석의 비위사실을 캐고 다닌다는 말이 나돈다. 성완종 사건의 책임을 물어 수사를 컨트롤 한 우 수석을 '찍어내려' 했다는 게 골자다. 이는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정권의 부담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 총장과 말이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이기도 하다.
홍 지사에 대한 기소가 마무리되면 김 총장은 어떤 형태로든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첫 타깃은 언론에 오르내린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에 대한 수사가 부담스럽다면 서병수 부산시장 쪽으로 칼끝을 돌릴 수 있다.
김진태의 반란
첫타깃 홍문종
검찰은 이미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캠프의 김모씨에게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전달했다"라는 진술을 한장섭 전 경남기업 부사장으로부터 확보했다. 한 전 부사장은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지목된 인물이다.
검찰에 따르면 한 전 부사장은 2012년에만 비자금 용도로 9억여원을 인출했다. 이 돈 가운데 얼마가 누구를 통해 어디로 전달됐느냐가 대선자금 수사의 핵심이다. 홍 의원과 서 시장은 나란히 박근혜캠프에서 자금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청와대는 참여정부 당시 있었던 비리도 함께 들추라고 주문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세 갈래 수사 가운데 두 갈래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 더구나 홍 의원 바로 건너편에는 박 대통령이 있다. 김 총장 혼자 돌파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