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대선자금 수사 막힌 '진짜 이유'

'의혹 투성이' 청와대-검찰 사인 오갔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8일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성완종 메모'에 언급된 정치인으로는 처음이다. 홍 지사와 함께 '검찰 1호 타깃'으로 지목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친박으로 분류된 나머지 6인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관련 배경을 놓고 검찰 안팎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진위를 알아봤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망 후 그가 남긴 '메모'의 파장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는 '비박'인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수사, 둘째는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캠프로 전달된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 셋째는 과거 정권 때 단행된 특별사면에 대한 청와대의 하명 수사다.

기소 앞둔 홍준표
소환 앞둔 이완구

우선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에 대한 수사는 비교적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8일 검찰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홍 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수사 초기부터 금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은 앞선 검찰 조사에서 "2011년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이 담긴 쇼핑백을 받아 승용차 안에 있던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검찰은 윤 전 부사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홍 지사의 금품수수 여부를 추궁했다. 홍 지사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돈의 출처와 성격, 전달 방법 등이 구체화되면서 수사의 퍼즐이 맞춰진 모습이다. 검찰은 이르면 이주 내로 홍 지사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완구·홍준표 수사 마무리 예정
박 특사 공세 대선자금 의혹 맞불


이 전 총리에 대한 수사는 이달 들어 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전 총리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계획이다. 지난 6일 검찰은 2013년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이 전 총리(당시 후보)를 도운 자원봉사자 한모씨를 소환하는 한편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인 윤모씨를 다시 불러 조사했다.

한씨는 부여·청양 재보선 후보등록일인 2013년 4월4일 '이완구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을 목격한 인물로 전해진다. 이 전 총리는 같은 날 오후 4시30분께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성 전 회장에게서 현금 3000만원이 담긴 비타500 박스를 선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 금모씨와 또 다른 운전기사 여모씨로부터 "성 전 회장이 당시 선거사무소를 방문했다"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또 성 전 회장과 그 측근들의 통화내역, 성 전 회장의 하이패스차량 단말기 통행기록 등도 확보해 당일 행적을 복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과 독대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 전 총리의 일정을 관리한 비서 노모씨와 선거사무소를 총괄한 신모씨 역시 "두 사람이 만난 걸 보지 못했다"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이들뿐 아니라 반대 진술을 종합해 3000만원의 진위를 가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측근그룹이 윤씨 등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을 확인 중이다. '홍준표 수사'와 비교해 진행속도가 더디지만 관련 인물이 대부분 소환된 만큼 이 전 총리 역시 소환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전 총리에 대한 기소 여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7일 검찰은 현장 검증에서 1억원을 담은 쇼핑백에 대해 "개연성이 높다"라는 결론을 내린 반면 3000만원을 담은 비타500 상자에 대해선 결론을 유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지사와 달리 이 전 총리에 대한 기소는 박근혜정부에 직접적인 타격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성완종 게이트
핵심은 박근혜


'성완종 게이트'의 뇌관인 대선자금 수사는 마찬가지 이유로 시계가 멈춰있다. '성완종 메모'에 적힌 8인 가운데 6인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혹에 휩싸인 돈이 박근혜캠프와 직접 연결돼 있는 까닭에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 안팎에선 "청와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표면적으로 검찰은 수사 지연의 근거로 증거 부족을 꼽고 있다.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과 했던 마지막 인터뷰가 그 단서다. 성 전 회장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돈을 받은 8인을 열거하면서도 홍 지사를 빼고는 중간 전달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성 전 회장이 남은 7인에게 돈을 직접 건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녹취록에서 성 전 회장은 김 전 실장을 지목하면서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를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2007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 현금으로 줬다"라며 "돈은 심부름한 사람이 가져왔고, 내가 직접 줬다"라고 밝혔다. 남은 녹취록을 봐도 제3자인 전달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전달자의 부재는 검찰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대개의 정치자금(혹은 뇌물) 수사는 뇌물 공여자의 일관된 진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번 수사는 공여자가 사망하면서 추가적인 진술 보강이 어렵게 됐다. 검찰로선 공소장을 작성할 때 간접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검찰은 수사 초기 단계에서 연이은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핵심 물증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부터 수사가 꼬여버린 셈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영감들' 털어봐야 나올 것도 없는데 일부러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검찰이 가진 딜레마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특별수사팀을 흔드는 '정치세력'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권 보위를 위해 수사 개시를 막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일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자신을 겨냥한 수사를 앞두고 측근들과 만나 대책을 의논했으며, 이때 오간 회의 내용을 대부분 복원했다"라고 알렸다. 관련 회의록이 중요한 이유는 '성완종 리스트'에 포함된 8인에 대한 단서가 회의 내용에 언급돼서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얘기해줄 수는 없다"라면서도 "성 전 회장 사망 이후 회의가 열렸으며, 정치권 로비 의혹과 관련해 측근들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놨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의 대책회의는 "이번 수사와 직접 연결된 내용이 담겼다"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면 성 전 회장이 지난달 윤 전 부사장을 찾아가 '그때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잘 줬느냐'라고 물은 것은 우발적인 행동으로 볼 수 없다. 또 같은 기간 성 전 회장은 '7억원을 줬다'라고 주장한 리베라호텔을 자신의 측근과 둘러봤다.

추론하면 검찰은 회의록에서 남은 6인에 이르는 열쇠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더는 '증거 타령'이 수사의 걸림돌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 법무부
충돌 가능성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특별수사팀장으로 수사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주말도 없이 직원을 독려하며 증거 확보에 열심이다. 그렇지만 대선자금 수사는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된 사안이라 문 지검장이 받는 심리적 압박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문 지검장은 "양심을 지키겠다"라며 '검사직'을 내건 듯한 인상을 내비쳤다. 이른바 '채동욱 찍어내기' 논란으로 파문을 일으킨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아예 수사팀으로부터 직보를 받고 있다. 외부의 개입과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김 총장은 '진인사대천명'이란 당부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국정원 사건을 지휘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닮은 행보다. 공교롭게도 잠재적 수사대상자이자 이해당사자인 청와대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검찰총장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위태로운 김진태 "제2의 채동욱 될라"
황교안 총리차출·민정수석 교체 변수

김 총장은 되도록 많은 정보를 언론에 노출시키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알 권리' 차원이란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반면 한쪽에서는 수사팀도 모르는 정보가 새고 있다. 야당 의원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일보>의 '성완종 장부'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3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목하며 "수사에서 손을 떼라"라고 했다.

황 장관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당시 채 전 총장과 선거법 적용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황 장관은 공직선거법을 적용한 기소에 반대했으나 채 전 총장은 선거법 적용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수사까지 요구했다. 둘의 갈등은 원 전 원장을 불구속기소하는 선에서 봉합됐다. 하지만 채 전 총장은 불과 석달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옷을 벗었다.

만약 김 총장이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한다면 채 전 총장보다 더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전·현직 비서실장이 수사를 받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정권에 부담이다. 청와대로서는 검찰을 통제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황 장관은 국무총리 발탁이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청와대는 개점휴업 상태인 '부패와의 전쟁'을 황 장관에게 맡기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렇지만 황 장관은 어떤 이유인지 법무부에 남아 있다. 현재로선 성완종 사건 때문이란 것이 주된 분석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김 총장과 교류했던 김 전 실장의 공백이 크다. 검찰 권력은 김 전 실장의 힘이 빠지면서 내부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난 2월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는 김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현재 김 차장은 김 총장을 거르고 청와대와 직접 소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자금 수사가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김 총장의 약화된 조직 장악력이 몫을 하고 있다.

그 사이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된 채널로 '특사(특별사면) 수사'를 압박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성완종 특별사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말한데 이어 지난 4일에도 "사면제도를 전면 개선하라"라고 지시했다. 사안의 '본질'인 대선자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특사 카드는 성완종 메모가 발견된 직후 국정원이 기획하고 제공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앞뒤 정황상 일종의 '물타기 아이템'이란 의심이 짙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0일 '성완종 게이트 ④박근혜 위기탈출 카드 포착'이란 기사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을 알린 바 있다.

문제는 특사를 대가로 참여정부 쪽이 돈을 챙겼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사실이다. 메모와 인터뷰가 있는 성완종 리스트와는 결이 다르다. 이명박대통령인수위 당시 비서실에 있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B 측 핵심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을 특별히 챙겼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친박계는 보름이 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나아가 시중에는 친박계 핵심그룹이 우 수석의 비위사실을 캐고 다닌다는 말이 나돈다. 성완종 사건의 책임을 물어 수사를 컨트롤 한 우 수석을 '찍어내려' 했다는 게 골자다. 이는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정권의 부담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 총장과 말이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정황 증거이기도 하다.

홍 지사에 대한 기소가 마무리되면 김 총장은 어떤 형태로든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첫 타깃은 언론에 오르내린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홍 의원에 대한 수사가 부담스럽다면 서병수 부산시장 쪽으로 칼끝을 돌릴 수 있다.

김진태의 반란
첫타깃 홍문종

검찰은 이미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캠프의 김모씨에게 성 전 회장이 2억원을 전달했다"라는 진술을 한장섭 전 경남기업 부사장으로부터 확보했다. 한 전 부사장은 성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지목된 인물이다.

검찰에 따르면 한 전 부사장은 2012년에만 비자금 용도로 9억여원을 인출했다. 이 돈 가운데 얼마가 누구를 통해 어디로 전달됐느냐가 대선자금 수사의 핵심이다. 홍 의원과 서 시장은 나란히 박근혜캠프에서 자금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청와대는 참여정부 당시 있었던 비리도 함께 들추라고 주문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세 갈래 수사 가운데 두 갈래를 함께 병행해야 한다. 더구나 홍 의원 바로 건너편에는 박 대통령이 있다. 김 총장 혼자 돌파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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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