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 5월 위기설 대해부

미·중·일 손잡고 짝짜꿍 ‘한국만 고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사면초가’. 사방을 둘러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적에게 포위된 상황을 이르는 사자성어다. 최근 대한민국 앞에 놓인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이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곤경에 처해있다. 박근혜정부가 외교부문에 있어서 골든타임을 놓쳐버리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정세에 밝은 외교전문가들은 최근 대한민국 외교를 두고 ‘5월 위기설’을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 외교는 중차대한 기로에 서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고립’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고립’은 ‘고사’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외교적 고립

최근 아시아 속 대한민국의 위치를 살펴본다면 이들의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시아 정세가 일본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연하지 못한 선택은 자칫 ‘자충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은 최근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먼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실익을 취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지난달 미국 방문을 통해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과의 극적인 밀월관계를 만들어 냈다.

외교전문가들이 ‘신밀월’이라고 얘기하는 이번 만남을 통해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아시아 맹주로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 경제·안보 분야에 대한 실익을 톡톡히 챙겼다고 분석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미·일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조속 타결을 약속했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개정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확인했다.

아베의 이번 행보가 일본 입장에서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과거사 문제에서 지지자가 생겼다는 점이다. 일본은 그간 한·중으로부터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받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돼 왔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등장은 일본으로선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미국 행정부 또한 일본에 푹 빠진 모양새다. 제프리 베이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4일 ‘미·일 관계의 장래’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아베 총리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일본이 한 행위에 대해 반성했고 아시아인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언급했다”며 “오바마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담화도 수용했다. 역대 일본정부의 (과거사 관련) 성명도 지지한다고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아베 총리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아베의 사과가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국내의 평가와 대치되는 부분이다. 오히려 위안부 사과를 요구하는 대한민국을 머쓱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일본은 또한 중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섰다. 아베 총리와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지난달 22일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만나 서로를 ‘호혜적 관계’라 칭하며 우호관계를 다졌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는 일본의 적극적 노력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있어서 일본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중국의 실리주의적 입장이 맞물려 이뤄진 회담이었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정상회담이었다”며 “지난해 11월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관계도 개선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자평했다.

미·일 관계를 경계해 중국도 빠르게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파트너는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였다. 양국은 특히 군사·안보분야 협력을 약속하며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이 가까운 대한민국이 아닌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를 고려하는 한국에 대해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 보고 있다.

미·일 ‘밀월’ 일·중 ‘개선’ 중·러 ‘협조’
박근혜 나홀로 남미, 외교력 어디갔나?

이렇듯 아시아 정세가 급변함에도 대한민국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호명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5월 위기설’이 나오는 이유다.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실익은 물론 명분도 잃을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언론을 통해 일본정부의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정부에서 조선인 강제 징용 현장 7곳이 포함된 산업시설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한 것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외교부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나가사키현과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5만79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으며, 그중 1700여명이 노역 또는 원폭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정부는 등재신청서에 이러한 내용을 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5일 문제가 되고 있는 장소는 ‘메이지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며 조선인 강제수용과는 관계없다고 했지만 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이라는 것이 국내 외교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정부는 일본 측에 강제 징용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과 징용 대상지 7곳에 대해 폴란드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과 같은 ‘부정적인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 등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나섰다. 나경원 외교통일위원장은 ‘이번 유네스코 등재를 반대하는 내용의 친필서한을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에 발송했다’고 발표했다. 나 위원장은 “일본이 전범국이자 가해자였던 어두운 역사를 근대화의 현장으로 미화하는 것은 우리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외교력 부재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외교력 부재에 여·야 지도부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미국·일본·중국 관계가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우리 정부가 잘 하고 있느냐 하는데 대해 여당 안에서도 걱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추미애 최고위원은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 미·중·일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정작 한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며 “그 기간 동안 대통령은 어디로 갔느냐”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남미 4개국 순방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했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력 실종


대한민국 외교는 잔인한 4월을 보냈다. 그리고 6월에는 박 대통령의 방미가 예정돼 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인 5월 중 돌파구를 찾아야 할 이유다.

이에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투트랙’ 외교를 공식 언급하며 자구책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과거사에 매몰되지 않고 과거는 과거사대로, 한·미동맹, 한·일, 한·중관계는 또 다른 차원에서 분명한 목표를 갖고 소신 있게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일본정부와 언론은 이번 미·일정상회담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이다.” 과연 박 대통령의 투트랙 외교가 이번 난국을 타개할 묘수가 될 수 있을지, 중국 의존적 외교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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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