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원정 첫 16강 도전 나선 허정무 감독

호랑이군단 조련사 진돗개 “즐겁고 유쾌한 축구 보라”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할 일은 없다’는 속설은 이미 옛말이다. 경기 중 감독의 판단 하나에 승패가 좌우될 만큼 감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온 것. 8번째 월드컵을 앞둔 한국팀의 키를 잡은 것은 허정무 감독. 그에게 축구는 투쟁이자 삶 그 자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볼을 차던 그가 지금 남아공월드컵에서 즐겁고 유쾌한 축구를 하겠다며 나섰다. 20년이 넘는 축구지도자 인생에서 터득한 ‘여유의 리더십’이다. <일요시사>는 남아공월드컵으로의 출항을 앞두고 있는 허정무 감독의 ‘축구외길인생’을 돌아봤다.


모든 포지션 소화, 원조 멀티 플레이어
악착같은 플레이로 ‘진돗개’ 별명 얻어

     
1955년 1월13일 허정무 감독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서 의동초교 교장선생님댁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삼촌뻘이었던 축구 국가대표 허윤정의 권유로 목포중을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가진 것이라곤 트레이닝복 한 벌과 운동화·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눈 내리던 1967년 1월17일. 153㎝ 단신의 진도 촌놈은 축구를 시작한다. 선배들의 빨래를 도맡고, 새벽까지 개인훈련을 하던 그는 3개월만에 주전을 따냈다.

브라질 대표선수 자일징요처럼 되고 싶던 그는 고향 진도를 대표하는 ‘진돗개’로 불렸다. 끝내 상대를 제압하는 악착같은 플레이와 지능적인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영등포공고-연세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발돋움했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그러던 중 그를 눈여겨보던 네덜란드 PSV는 그에게 입단을 제의 했다. 허 감독은 계약을 체결했고 그길로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네덜란드에서 ‘융(Jung)’으로 불리던 그는 3∼4개월간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다 나선 위트레흐트전에서 ‘패스의 달인’ 판 하네겜을 이겨내며 주전을 꿰찼다.
또 라이벌 아약스에서 뛰고 있던 네덜란드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와 세 차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허정무를 이겨내지 못한 크루이프는 끝내 팔꿈치로 그를 가격하고 말았다.

“허정무는 훌륭한 선수였다”는 크루이프의 발언 때문에 허정무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게다가 1982년엔 트벤테전에서는 수비수 3명을 제치고 결승골을 터트리며 에인트호번을 UEFA컵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허 감독은 1980년부터 3년간 왼쪽 날개와 중앙 미드필더로 77경기에 나서 15골을 뽑아냈다. 2년간 더 재계약하자는 에인트호번 구단의 제안을 물리치고 그는 1983년 귀국했다. 한국에 프로축구가 발족했기 때문이다.

그가 막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을 무렵 고 함흥철 대표팀 감독은 그를 ‘진도’라고 불렀다. 함 감독은 그에게 종종 “잘하면 진돗개가 되지만, 못하면 똥개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가대표 허정무는 진돗개가 되고 싶었다. 197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대회 이라크전 도중 고환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네 바늘을 꿰맨 그는 자청해서 결승전에 출전, 끝내 우승을 거뒀다.

그가 얼마나 집념이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국가대표팀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3년간 A매치 87경기에 나서 30골을 뽑았다. 공격수를 전담하지 않고도 30골(역대 5위)을 뽑아낸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그는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뽑아냈고, 서울 아시안게임을 우승시킨 후 영예롭게 은퇴했다.

비난 속에 떠난 허감독
7년 만에 태극마크 달아

이후 허 감독은 선수시절의 경험을 살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트레이너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선 코치 등으로 국제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대표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허 감독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 등 주요 대회를 지휘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태국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8강에 머물렀다.

시드니올리픽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승을 올리는 성과를 올렸지만 골득실차에서 밀리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컵에서도 3위에 머물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결국 허 감독은 세인들의 모진 비난을 뒤로한 채 대표팀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고 2007년 그는 다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게 된다.

이후 근성과 투지를 강조하던 허정무 감독의 지도 철학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인 축구에 눈을 뜬 것. 이 때 등장한 것이 허 감독의 또 다른 상징인 ‘바둑’이다. 바둑은 상대의 수를 생각하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두뇌 싸움이다. 아마 4단인 허 감독은 축구계에서 바둑 고수로 정평이 나 있다. 상대의 흐름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최고의 전술 중 하나다.

지난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허 감독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의 전략으로 ‘아생연후살타(내 집을 먼저 살려놓고 상대를 잡으러 나간다)’라는 바둑의 전략을 들고 나온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허 감독의 변화된 생각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180도로 바꿔놓았다. 지난 2008년 1월 대표팀 소집 당시 일부 선수들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남아공월드컵서‘유쾌한 축구’ 하겠다”
근성에 생각을 더해… 진화하는 지도철학


전남 드래곤즈 시절 운동량이 많았다는 소문만 듣고 ‘죽었다’고 생각한 것. 때문에 소집 시간보다 훨씬 일찍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예상대로 훈련량은 많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허 감독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 허 감독은 변화의 시도가 없으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소통하는 감독으로 변해갔다.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한 뒤의 대표팀 분위기 변화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 대표팀 버스에서는 정적이 흘렀지만 최근에는 음악 소리와 선수들의 수다가 넘쳐난다. 이는 선수대기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피곤한 기미라도 보이면 휴식을 충분히 보장하기도 한다. 그는 축구선수와 감독으로서 ‘실크로드’를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허 감독은 부인 최미나 씨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1975년 <가요 올림픽>이라는 쇼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허정무)과 MC(최미나)로 처음 만난 허 감독 내외는 1978년부터 비밀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허 감독의 봉급은 10만8000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최미나씨의 봉급 300만원에 크게 못 미쳤다. 게다가 최씨의 집안에서는 “팬티 입고 뛰는 사람한테는 딸을 안 준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리어카를 끄는 한이 있어도 안 굶길 자신이 있다”는 허 감독의 배짱에 결국 ‘스포츠-연예 스타’로선 처음으로 화려하게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그녀는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감독으로 거듭날 수 있게 전심전력했다. 특히 한국대표팀의 시합 다음날 디스크수술 일정을 잡고도 허 감독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수술사실을 비밀로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살신성인’을 대변한다.

한국대표 선수·감독
배경엔 아내의 내조

이와 같은 아내의 내조에 대답이라도 하듯 허정무 감독은 “국내 감독에 대한 편견을 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선수들이 부담 없이 월드컵을 즐기길 바라면서 ‘유쾌한 도전’을 모토로 내걸었다. 자신감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말임과 동시에 믿음으로 대표팀을 성원해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24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쾌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첫발을 뗀 한국 축구. 남아공월드컵에서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 ‘근성’에 ‘생각’을 보태 자신만의 지도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는 허정무 감독. 지금은 그를 믿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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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