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4대악 척결 현주소

국민안전 우선?…흐지부지 대선공약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2년 TV토론에서 '4대악'을 언급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최우선 척결 대상으로 4대악을 꼽았다. 4대악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일컬었다. 박근혜정부의 주요 공약인 '4대악 근절'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었다. 정부 출범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관련 통계들은 달라진 게 없음을 말하고 있다.

'4대악 근절' 또는 '4대악 척결'로 불리는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권 초기 전담팀을 구성해 의욕을 보이던 경찰은 자체 홍보에 더 열심이다. 애초부터 '진정성 없는 공약' '구색 맞추기식 공약'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정성 없는
4대악 척결

박근혜정부는 2013년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라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었던 유정복 현 인천시장은 "이름을 바꾸는 데 1억원 내외가 든다"라고 말했다. 조직 이름을 바꾸면 사무실 명패와 직원 명함을 바꾸는 등의 일에 돈이 쓰인다. 유 장관은 '예산낭비'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 "대통령의 강한 정책의지를 담아 표현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라고 답했다.

초기 안전행정부는 행정사무는 물론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통합·관리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뜻하지 않은 이유로 간판을 내렸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떼어내면서 국민안전처와 분리했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다시 행정자치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사례를 참조하면 이 과정에 다시 1억여원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행정부는 박근혜정부의 4대악 근절을 앞장서 추진하던 부처다. 2013년 6월에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4대악을 중점으로 한 21개 분야 안전관리 대책이 마련됐고, 이 가운데 4대악에 대해서는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안전행정부가 해체되면서 관련 조사는 국민안전처의 소관으로 바뀌었다. 4대악 근절을 일선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찰이 행정자치부 소속임을 고려하면 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는 셈이다. 더구나 안전행정부 시절 이뤄졌던 여론조사 결과와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국민 10명 중
2명은 불안하다

안전행정부가 2013년 8월 전국 성인 및 중·고생 2100명을 대상으로 안전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 전반에 대해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학계·법조인 등 전문가 100명, 중·고생 1000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3.1%P)를 진행했다.

2014년 12월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동일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2명만이 한국사회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국민안전처 역시 ㈜글로벌리서치에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2.83%P)를 의뢰했으며, 표본 변화는 성인 남녀 수를 1200명으로 늘린 것밖에 없었다.

두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세부적으로 살피면 2014년(하반기 기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21.0%였다. 2013년 같은 문항에서는 24.2%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4년(하반기) 기준 42.6%로 집계됐다. 2013년 조사에서는 30.4%만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이번 정부가 추진한 4대악 근절 대책이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분야에서 46.8~49.4%로 조사돼 절반 넘는 국민이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안행부→국민안전처 이름만 바꿔
'안전하지 않다' 응답 1년새 12.2%P 증가


2013년 조사에서 4대악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야로 꼽힌 범죄는 성폭력이었다. 당시 성인 54.3%, 전문가 41%, 중·고생 52.7%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49.3%가 '불안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2014년 조사에서 성폭력에 대한 불안도는 43.6%로 낮아졌다.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정부의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전체 발생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2만2933건을 기록했던 성범죄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2만8786건으로 늘었다. 2014년에도 9월 기준 2만2211건을 기록해 3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2012년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이는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인지수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2년 3715건이었던 인지수사는 2013년 8118건으로 뛰었다. 또 다음해에도 9월 기준 3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7419건의 인지수사를 벌여 전년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실적경쟁이 데이터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인지수사가 많다는 것은 결국 인터넷 음란물 수사나 성매매 업소 수사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성범죄'하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찰이 통계로 뽑는 성범죄에는 간통과, 성매매(또는 알선·중개), 음란물 제조·유포, 통신매체 음란물 이용, 공연음란 등이 포함돼 있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에서 '국민안전'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가해자를 검거하지 못한 비율을 뜻하는 미검률과 재범률을 각각 2017년까지 6.1%와 9.1%로 낮추겠다고 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관련 목표를 이미 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고민거리인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교육당국과 현장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가 컸다. 2013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65.1%(성인 68.6%, 전문가 70%, 중·고생 56.7%)는 '학교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고, 2014년 조사에서는 54.4%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외견상으로는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해석됐다.

그런데 문제는 '폭력서클 집중 단속 및 선도 프로그램 운영'을 해법으로 내놓은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는 "학교폭력이 줄어들었다"라는 그릇된 실태조사 발표로 학부모들을 속였다.

안전과 무관한
무한 실적경쟁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교폭력이 감소 추세"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는 온라인으로만 이뤄졌는데 2012년 8.5%와 비교해 2014년엔 1.4%(1차), 1.2%(2차)로 꾸준히 낮아졌다는 발표였다. '국민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학교폭력 근절 목표는 2017년까지 피해경험율을 5.7%로 낮추는 것이었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학교는 이미 안전한 상태여야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폭력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전국 모든 학교(초·중·고 및 특수·각종 학교)의 폭력 심의건수는 1만662건으로 2013년 상반기에 비해 9.8%(9317건)가량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체 학생수 차이를 반영한 1000명당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3년(상반기) 1.49건에서 2014년(상반기) 1.69건으로 13.2%가량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이 받은 자료는 각 학교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회의를 열어 심의를 내린 건수를 종합한 공식통계다.


학교폭력은 늘었지만 검거된 소년범 건수는 2015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월 경찰청은 "지난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검거된 인원은 1만3268명으로 전년 대비 23.7%(4117명) 감소했다"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면서 "범정부 차원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이후 학교폭력이 감소했다"라고 자찬했다.

정부대책 효과 물음표 국민 50% 부정적
경찰청 홍보비 5억 신설…실효성 의문

흥미로운 점은 폭력과 금품갈취, 기타 강력범죄 등 거의 모든 범죄비율이 2013년과 비교해 18.8~32.9% 줄었지만 유독 성범죄만 전년 대비 21.4%(228명)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 실적을 올리려는 경찰과 학교폭력 건수를 줄이려는 교육부의 '담합'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발표로 의심됐다. 2013년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에 대해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은 21%에 그쳤다. 같은 항목에 55%를 응답한 전문가와는 차이를 보였다.

4대악 가운데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정폭력과 불량식품은 어떨까. 정부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알콜·도박 등 4대 중독 특별 관리' '가정폭력 피해자 안전 확보'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또 2017년까지 재범률을 25.7%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불량식품 사전예방 안전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안전체감지수 목표를 2017년까지 90%로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일요시사>는 2013년 7월29일자 인터넷판 기사인 '어이없는 불량식품 단속 백태'란 기사에서 경찰의 단속 움직임을 전한 바 있다. 기사에는 식약처가 할 일을 떠맡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가정폭력에 대해 '불안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16.2%로 나타났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26.2%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성범죄와 학교폭력의 사례로 미뤄보면 자체 '목표 달성'을 홍보코자 가정폭력 재범률은 줄어들 것이고, 불량식품을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줄어든 결과로 발표될 것이다.

실제 경찰은 지난해 가정폭력 재범률이 10%대로 자체 목표치(11%)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 부작용으로 신고건수에 비해 입건수가 줄거나 긴급 임시조치가 줄어드는 등의 조짐이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국민일보>에 따르면 112로 접수되는 가정폭력 신고(서울경찰청 기준)는 하루 평균 80건이지만 가해자를 형사입건한 경우는 9.6건(12%)에 머물렀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국민일보>는 분석했다. 또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5179건, 5394건으로 소폭 오름세였지만 긴급 임시조치 건수는 268건에서 243건으로 줄었다.

관련 통계에는 암수가 있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경험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전체 응답에서 '부부간 폭력 유경험자'가 절반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따라서 경찰이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면 거꾸로 폭력사범 검거를 줄여야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전국 경찰청
홍보예산 집행

불량식품 근절도 사정은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2013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가운데 1명은 1년 내 식품과 관련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식품에서도 5년 동안 벌레와 금속 등 이물질 250여건이 검출되면서 불량식품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 불량식품업자는 가정폭력만큼이나 재범률이 높았음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다. 식품위생법 사범의 재범률은 1995년 25.3%였고, 2010년에도 24.2%로 큰 변동이 없었다.

4대악 가운데 불량식품 분야는 국민안전처가 아닌 식약처가 설문조사를 맡고 있다. 2014년 상반기 18.2%가 안전하다고 답했으나 하반기엔 25.2%가 같은 답을 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도 2.4%P 낮아졌다. 통계상으로는 4대악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찰청이 집행한 '4대악 관련 홍보비 집행 내역'을 입수했다. 2013년에는 홍보비 편성이 없었지만 2014년 들어 4억9100만원이 신규 책정됐다. 경찰청은 관련 홍보비를 전액 집행했다.

17개 지방청에 차등 배정된 돈은 4억1800만원이었다. 경찰청이 직접 쓴 돈은 7300만원이었다. 홍보비는 리플릿·안내물·플랜카드 제작 및 배부 등에 사용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4대악'을 검색하면 수천 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각 경찰서는 4대악 간담회를 연 것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보비 집행 과정에서 언론에 직접 쓰인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의 4대악 근절 홍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국민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를 위한 것일까.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는 모습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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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