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풍경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이한구

굽이굽이 개천에 서린 굴곡진 현대사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사진작가 이한구의 '청계천, Prologue'전이 서울 중구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렸다. 청계천을 소재로 한 그의 사진은 살아 꿈틀대는 인간의 숨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보다 더 사실스런' 풍경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빛과 어둠의 도시 서울. 그 중심에서 굴곡진 현대사를 가로지른 청계천. 풍요로우면서도 누추하고, 때론 활기차면서도 쓸쓸한 대립각의 정서가 흑백 필름에 뒤섞였다.

뭉클한 감동 선사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한구의 초기작인 '청계천' 시리즈가 지난 17일부터 관객을 만났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브레송은 오는 28일까지 '이한구의 청계천, Prologue'전을 개최한다. 이한구 작가의 청계천 시리즈가 갤러리에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가는 스무살 무렵 찍은 사진을 모은 '군용(軍用)' 시리즈로 사진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을 찍기 위해 1989년 육군에 입대한 그는 최전방에 배치돼 그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무려 20여년이 지난 후 세상에 공개됐다.

이번 청계천 시리즈는 군용보다 앞선 시점에 촬영된 사진이다. 당시 입대를 앞둔 대학생이었던 이 작가는 청계천의 여러 단면을 필름에 기록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청계천 작업을 이어온 그는 "청계천은 변한 것이 아니라 공간의 구성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살아 꿈틀대는 동력이 있다"라고 짚었다. 이 작가가 주목한 동력은 '사람'이다.


그가 찍은 청계천 사진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이 머물고 떠나간 흔적을 포착한 이미지다. 어린 시절 이 작가는 청계천 일대의 장터와 목재소, 철공소, 식당 등을 누비며 놀았다고 한다. 유년기의 기억은 청계천을 떠나 사진가로 돌아온 이 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관찰자'로 마주한 청계천은 섬유, 전자, 전기, 의료, 기계 등 각기 다른 물성의 집합체였다. 메트로폴리탄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용광로에는 저마다의 삶이 쉼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지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이주민들은 도심 한가운데서 거대한 난장을 펼치고 있었다.

갤러리브레송 '청계천, Prologue'전
흑백으로 찍은 풍경…30년 만에 공개

청계천 구석구석엔 몸으로 생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양각색의 공구 사이에서 책을 읽던 공구상 주인, 찌그러진 양은 세숫대야에 얼굴을 묻고 그을음을 씻어 내리던 철공소 청년, 자신보다 훨씬 큰 봇짐을 이고 나르던 짐꾼의 숨소리. 그 '동력'을 보면서 이 작가는 나중에라도 청계천에 돌아와 다시 사진을 찍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이 작가의 사진에는 널어놓은 빨래 사이로 바깥을 응시하는 아이, 눈 오는 날 누군가에게 먹을거리를 배달해주는 식당 종업원 등의 모습이 담겼다. 청계천의 일상을 기록한 ‘청계천 프로젝트’는 30년 가까이 지속됐다. 작업 양이 방대한 까닭에 '서곡(Prologue)' 형태로 이번 전시는 기획됐다.

군용과 마찬가지로 미공개였던 청계천 시리즈는 '제1회 최민식사진상'의 최종 후보로 선정되며 주목을 받았다. 일찍부터 천재에 가까운 재능을 드러냈던 이 작가인데다 역사적 기록물로의 가치도 높아 그의 초기작에 각별한 관심이 쏠렸다.

역사적 기록 가치


리얼리즘에 뿌리를 둔 이 작가의 사진은 형식면에서 다큐멘터리로 분류된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서늘한 서정'이 덧씌워지며 '사실보다 더 사실스런' 풍경이 결과물로 인화된다.

이 작가 홈페이지에 쓰인 소개글을 빌면 이한구는 '종으로 횡으로' 풍경을 찍는 사진가다. 월간 <사람과 산> 사진부 팀장 때부터 산맥을 넘나들었던 그는 백두대간부터 에베레스트까지 '종으로' 풍경을 기록했고, 산간 아래 마을 1000여곳을 돌며 '횡으로' 순간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 제목이 서막인 이유는 바로 그곳 청계천에서 이 작가의 '종횡무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angeli@ilyosisa.co.kr>

 

 

[이한구 작가는?]

▲1993년 신구전문대 사진학과 졸업
▲1993-1997년 월간 <사람과 산> 사진부 팀장
▲1993-1998년 사진집단 <사실>
▲1997-현재 한국산악사진가회
▲2002-2005년 이산미디어 월간 <이마운틴> 사진편집위원
▲2009-현재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 대표
▲2013년 <군용> 2011년 <소소풍경> 2004년 <다큐멘터리 18년만의 외출> 등 다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