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19)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돈도 사랑도 건강도 잃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0화를 앞두고 서울시 밖의 체납자를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19화는 '황제노역'의 주인공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다.

2013년 말 광주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 맨 꼭대기에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있었다. 그는 2009년 9월부터 주민세 등 모두 2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한 지방세는 13억2000만원이었다.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도 '허재호'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2008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2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밀린 국세는 119억3700만원이었다.

광주시 체납왕

허 전 회장은 이때만 해도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뉴질랜드로 피신해 사업을 확장해도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문제가 없던 인물은 아니었다. 허 전 회장이 남긴 여러 형태의 채무가 대한민국 곳곳에 남아 있었다.

허 전 회장의 회사로 알려진 지에스건설㈜은 광주에서 고액체납법인 1위를 차지했다. 체납액은 14억5200만원으로 2009년부터 주민세 등 9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지에스건설㈜은 같은 해부터 종합부동산세도 체납했다.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은 30억7800만원이었다.

아파트 분양 사업을 벌였던 경기도에서는 지방세 수백억원을 체납했다. 경기도 용인시는 지에스건설㈜에 205억원을 과세했다. 앞서 허 전 회장은 지방세의 2배가 넘는 배상금을 분양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최근 이들은 허 전 회장을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시간이 흘러 검찰의 수사 의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허 전 회장은 전남 목포와 순천, 경북 구미, 충북 청주 등에 세금을 체납했다. 주력회사인 대주건설의 체납 세금은 2000만∼5300만원씩이었다. 또 그는 부산에도 부동산을 매입한 뒤 6억원의 토지세를 내지 않아 고액체납자로 등재돼 있었다.

지난해 허 전 회장은 이른바 '황제 노역'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과세당국은 허 전 회장을 겨냥한 추징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서 벌금과 세금은 다르다. 당시 검찰이 환수한 돈은 벌금일 뿐 세금은 아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허 전 회장은 노역으로 탕감 받은 벌금 30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224억원을 분할 상환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체납 세금은 환수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세청은 2014년 기준 136억원의 세금을 받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양벌리 땅(7만562㎡)을 공매에 넘겼다. 이 땅은 원래 보산물산이 갖고 있던 땅으로 허 전 회장은 과거 해당 부동산에 70여억원을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상 관련 투자금은 채무로 잡혀 있었다. 이를 확인한 국세청은 소송 끝에 토지의 실소유주가 허 전 회장임을 밝혀냈다.

지에스·대주건설·보산물산 수백억 체납
땅·건물·미술품·주식 등 숨겨둔 재산 다양

경매에 넘어간 '오포 땅'은 2014년 5월 한 건설업자가 181억원에 낙찰 받았다. 그러나 낙찰권자가 입찰보증금의 10%를 납부한 뒤 잔금을 내지 않아 지난 1월 재경매에 들어갔다. 오포 땅의 1순위 채권자는 제1금융권인데 이미 4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해 놓아 국세청이 기대할 수 있는 세입은 181억원보다 낮은 상황이다.

국세청은 모자란 세입을 충당하기 위해 가족들로부터 압류한 미술품에 대한 공매 절차를 밟았다. 허재호 일가가 소유한 서양화 54점과 동양화 53점 등 모두 107점의 미술품이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위탁됐다.

하지만 압류 미술품 전체 감정가는 1억8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온전히 팔리지 않아 기대했던 세입을 거둘 수 없었다. 국세청은 허 전 회장 소유로 전해진 광주의 한 빌딩과 관련해 우선순위 채권을 놓고 제1금융권과 소송을 벌이는 등 채권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광주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체납 세금 확보에 성공한 모습이다.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와 공동으로 소유한 ㅇ사 주식에 일찌감치 가압류를 걸었고, 전남 일대의 땅과 광주 소재 일부 상가 등에 대해서도 공매를 진행해 세입을 늘렸다는 평가다.

광주시 체납팀 관계자는 "허 전 회장 소유 ㅇ사 주식 20%(평가액 25억원 추정)에 대해 압류조처를 했고, 그 밖의 재산에 대해서도 파악해 전체적으로 보면 올해 안에 체납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뒤따라 ㅇ사의 '주임종 단기차입금' 채권 100억여원에 대한 압류를 시도했다.

광주시가 알린 허 전 회장의 미납 지방세는 14억원 규모다. 지난해 4월 국세청은 허 전 회장이 보유한 78억원상당의 주식에 대해 양도세와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 바람에 광주시는 따로 받을 세금이 3억원 더 늘었다. 지난해 말 허 전 회장은 "시가 7억∼8억원을 받을 수 있는 상가가 있다"라며 "세금 징수를 늦춰 달라"라고 광주시 쪽에 요구했다.

허 전 회장의 자택은 공매에 나온 지 오래다. 현재 그는 친인척 집에 얹혀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와는 사이가 나빠져 금전적인 도움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엔 지병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을 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회장의 나이는 일흔셋으로 상당한 고령이다. 그렇지만 본인이 연루된 송사가 많아 몇 차례 소환조사를 받기도 했다.

허 전 회장의 한 지인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며 "경영을 잘못해 채무가 거의 1조원에 이른다. 차명 재산이 있어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허 전 회장 쪽의 말만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장 2014년 광주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보면 맨 꼭대기에 남재희씨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남씨는 지방세 3억4100만원을 체납했고, 허 전 회장의 명의 신탁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세청 조사가 아니었다면 허 전 회장의 양도세 포탈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무당국 한 관계자는 "남씨가 옛날 대한화재해상보험 경영권 인수 과정에 이름을 빌려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남씨가 대표로 있는 ㅅ사의 주식을 국가가 일부 확보하고 있고, 주당 가치가 100만원이 넘어 환수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닉재산 있나

검찰은 지난해 9월 국세청으로부터 허 전 회장의 양도세 포탈 사건을 넘겨받았다. 지난 2002년 남씨를 포함한 지인 5명의 명의를 빌려 신탁해둔 대한화재해상보험 주식을 2008∼2010년 매각하면서 양도소득세 6억4000만원을 내지 않았다는 혐의다.

이에 허 전 회장은 국세청의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차명 주식의 일부를 팔지 않고 증여했기 때문에 양도세가 5억원 이하라는 주장이다. 탈세한 양도세 금액이 5억원 이하면 공소시효가 5년으로 줄어든다. 조세심판원이 허 전 회장의 손을 들면 자연스레 2008년 있었던 사건은 사법 처벌을 할 수 없게 된다. 조세심판원의 판정은 올 상반기 내 마무리될 예정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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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