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는 '민영기업' 포스코 "왜?"

'주인' 없는 태생적 한계…정권만 바뀌면 털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국의 주요 화두로 '부패와의 전면전'이 떠올랐다. 대기업 포스코가 제물이 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족을 맴돌고 있다. '영포회'를 겨냥한 수사는 친이계 전체로 확대될 조짐이다. 박근혜정부의 이번 포스코 수사는 다목적 카드로 읽힌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변수 때문에 청와대가 내상을 입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총리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판을 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화상 국무회의에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사정 드라이브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정윤회 문건
포스코 영향?

포스코그룹(이하 포스코)이 첫 과녁으로 결정됐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유력한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검찰을 지렛대 삼은 언론은 정 전 회장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불거진 비리 의혹이 너무 많아 정리조차 안되는 분위기다.

정 전 회장은 비교적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출국금지가 내려지고, 소환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라며 여유를 부렸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현재 포스코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전담하고 있다. 대다수 언론이 놓치고 있지만 포스코 수사를 특수2부가 맡은 이유가 있다. 포스코 수사의 뿌리를 찾다보면 의외의 사건이 나온다. 바로 지난해 12월 특수2부가 전담한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12일 '정윤회 문건 후폭풍 미공개 박관천 파일 추적'이라는 기사에서 관련한 사실을 전한 바 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포스코가 연루된 비리 정황이 있었다. 앞서 청와대는 "보고서 전부가 찌라시"라고 브리핑했다.

문제는 보고서 내용 상당수가 기업수사 첩보로 활용될 소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 전 행정관이 2013년 6월24일 작성한 'VIP(대통령) 방중 관련 현지 동향 특이 보고'를 보면 "중국 유력인사 S씨가 VIP 친인척(서향희 변호사)을 통해 J씨의 회사 대표 재임용을 청탁했다"라고 돼 있다.

해당 기사에서 <일요시사>는 "여러 정황상 J씨는 대기업 P사의 임원으로 의심된다"라고 보도했다. 기사 작성을 앞두고 만난 검찰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포스코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J씨와 P사는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J씨는 정 전 회장, P사는 포스코를 뜻한다.

해외 비자금
윗선에 상납

박 전 행정관이 작성한 'S2'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J씨가 OOO 회장으로 가려 로비하고, 서 변호사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주변에) 보여주며 세력을 과시한다"라고 적혀 있다. 정 전 회장이 실제 로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 전 회장이 사퇴압박을 받고 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2013년 6월 정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수행했다. 포스코의 재계 서열은 6위로 기업 총수들 가운데 '끗발'이 있는 쪽이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정 전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청와대가 사실상 '왕따 작전'을 편 것이다.

2013년 9월에는 포스코를 겨냥한 세무조사 소식이 전해졌다. 정권 차원에서 스스로 물러나라는 사인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정 전 회장은 미련을 갖고 버텼다. 같은 해 11월 사퇴할 때까지 정부와 어떤 협상을 시도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소문은 무성했다. 현 정권 실세에게 줄을 대려 했다는 얘기부터 거절 당했다는 얘기까지 포스코 안팎이 술렁였다. 포스코 내부에선 '정준양의 사람들'을 노린 내부 감사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었다. 포스코 일부 임원진의 개인 비리가 담긴 투서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기자는 우연한 계기로 포스코 안에서 일어난 감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포스코 관계자는 "지난해 8월 포스코건설 상무급 간부 2명이 베트남 파견업무 중 보직해임 돼 한국으로 돌아와 문제가 됐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두 상무급 직원의 이름과 소속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했다. 당시 관계자가 밝힌 이들의 비위 사실과 사건 개요는 이랬다. 두 박모씨는 2010∼2012년 포스코건설이 운영 중인 동남아사업단에서 모두 12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 직원 10여명과 공모해 하도급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을 이용했다. 1인당 20억원씩 백머니(뒷돈)를 챙겼고, 남은 돈은 '윗선'에 상납했다.

정준양 인사청탁 등 각종 의혹 불거져
포스코 지렛대 '부패와의 전쟁' 선포

그런데 상납된 80억원의 행방이 묘연했다. 여기서 돌발 변수가 생겼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다. 포스코는 이로부터 약 1달 뒤 또 다른 상무급인 A씨를 동남아사업단으로 급파했다. A씨는 뜻밖에도 정 전 회장 쪽 사람으로 알려졌다. 귀국한 두 박씨는 별도의 조치 없이 대기발령 상태로 놔뒀다.

이 과정에서 축소·누락 보고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나아가 회사 차원에서 문제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두 박씨는 올 초 정기인사에서 비상근 임원직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에야 이 같은 소식이 포스코 외부로 터져 나왔다. 검찰은 이 무렵 포스코에 관계된 첩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법조계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검찰이 설마 포스코를 칠 수 있겠냐'라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포스코 수사는 정치권을 겨냥한 사정작업으로 풀이될 가능성이 높았다. 정치권 가운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을 비롯한 지난 정부 인사가 다칠 위험이 있었다. 포스코와 MB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이 정 전 회장이다. 앞서 MB의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정 전 회장이 포스코 대표이사가 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당시 관련 내사를 진행하다가 자체 중단한 바 있다.

사정 신호탄
타깃은 MB?

지난 2월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 관계자는 "포스코 수사의 명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묵은 비리를 들춰내겠다는 것인데 '의도'는 있지만 '계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말 MB는 자신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했다. 회고록에서 MB는 박 대통령을 의식한 듯 날을 세웠다. 시기상 포스코 수사는 대통령이 받은 '모욕'을 MB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문제는 수사에 착수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검찰은 대형 수사를 앞두고 선전포고를 할 때 압수수색을 활용했다. 이어 '타깃'을 잡고 출국금지를 내렸다. 소환이나 체포는 가급적 하지 않았다. 여론전과 함께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서다. 중요도가 낮은 인물에서 높은 인물까지 차례로 소환했다. 포스코 수사라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정 전 회장을 맨 마지막에 부른다.


현재까지 드러난 검찰의 1차 목표는 '정준양의 입'이다. 그의 입을 열어 수사를 정치권으로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내부 고발자'의 존재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내부 고발자를 찾아왔다. 수사의 시작인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선 단 한 가지 혐의라도 사실에 가깝게 입증해야 했다. 나머지 범죄 사실은 압수수색을 통해 차츰 드러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기획수사 또는 표적수사의 패턴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포스코 수사에 매달렸던 것일까. 여러 이유 가운데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일화가 있다. 포스코와 가까운 한 홍보통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캠프에서 포항 유세일정을 짤 때 '포스코 임직원과의 만찬'을 넣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거절해 취소가 된 적이 있다"라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가 포스코를 만들었는데 이를 부인해 온 포스코의 태도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현 정부 실세는 이 같은 감정선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난 2월26일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부패와의 전면전'이 선포됐고, 같은 기간 검찰은 해외 비자금 상납구조의 흐름을 얼추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포회·친이계' 동시 타깃
박근혜 승부수…성패 달려

복수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검찰은 남은 80억원의 관리를 정 전 회장이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이 돈의 일부가 '영포라인'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박 전 차관이 중심인 영포라인은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 공직자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이다.


그간 영포라인은 포스코에 취업하거나 포스코로부터 계약을 따내는 방식으로 이권을 챙겼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돈은 상납을 거쳐 MB정부 실세들이 나눠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MB가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영포라인이라는 말이 연일 언론을 도배하는 것은 검찰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열쇠다.

검찰은 포스코 수사를 시작하면서 만약을 대비해 일종의 보험도 들었다. 자원외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자원외교 카드는 영포라인뿐 아니라 일부 친이계 전·현직 의원을 옭아 멜 수 있고, 현 정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로 꼽힌다. 특히 자원외교 비리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현직 인사가 대거 연루될 수 있어 공직기강을 잡는 데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충수 가능성
실패 시 레임덕

이른바 '사자방'으로 명명된 MB정부 실책 가운데 박근혜정부는 자원외교와 방산비리 수사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4대강은 배제됐다. 이를 두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팟캐스트 방송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MB가 직접 연상되는 4대강은 지양하고, 자원외교와 방산비리를 수사해 '친이계'에 겁을 주려는 것"이란 취지로 분석했다.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MB를 직접 겨냥하진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궁지에 몰린 MB가 무슨 일을 꾸밀지는 알 수 없다. 포스코 주변에선 현 정권과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다. 수사가 틀어져 불이 엉뚱하게 옮겨 붙으면 청와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3년만 해도 포스코 수사는 요원해 보였다. 금융당국의 포스코 계좌 추적에 정부가 나서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설'도 들렸다. 그만큼 정치적인 접근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 2년 만에 '잡도리'를 시작한 이상 전 정권의 잔재는 모두 솎아내야 하는 것이 박근혜정부의 숙명이다. 대통령 자신의 친인척, 청와대 일부 실세의 인사 개입에 대한 소문까지 '마사지'하고 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같은 이유로 박 대통령의 승부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친이계로 전선을 넓힌 이상 수사가 실패할 경우 의회가 등을 돌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점쳐지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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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