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측근 잡을' 특별감찰관 타깃 막전막후

대통령 드디어 '워치독' 풀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비선실세' 파문이 여전하다. 아직 다수 국민은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 전횡'이 있다고 믿고 있다. 지난 3일 국회는 2년을 미뤄온 특별감찰관 최종 후보군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인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측근 비리 감시가 주된 목적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특별감찰관. 과연 그는 국민을 위한 '워치독(감시견)'이 될 수 있을까.

'현대판 암행어사'로 불리는 특별감찰관이 베일을 벗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국회가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 이석수 변호사(52·사법연수원 18기)를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 같은 뜻을 밝혔다.

후보자 3인 중
여당 추천 낙점

앞서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를 열고 이석수·이광수·임수빈 변호사를 초대 특별감찰관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는 검사 출신으로 대검찰청 감찰1·2과장과 춘천·전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여당 추천으로 박 대통령의 선택을 받았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이광수 변호사(54·사법연수원 17기)와 야당이 추천한 임수빈 변호사(54·사법연수원 19기)는 외면당했다. 이 가운데 임 변호사는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일 당시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눈 밖에 났다. 현 정권이 임 변호사에게 '칼자루'를 내주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별감찰관은 지난 대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정치권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권력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고, 새누리당은 특별감찰관 및 상설특검 제도를 약속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곳은 새누리당이었다.


특별감찰관과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맥을 같이한다. 다만 예상되는 입법 효과는 다르다. 공수처가 도입되면 검찰권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 사법개혁이 이뤄진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함께 주어지기 때문에 정치적인 위상에서 검찰과 대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공수처와 달리 특별감찰관 제도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 대신 원안은 수사권에 준하는 조사권과 고발권을 주기로 설계됐다. 원안을 작성한 인물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 2012년 9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자격으로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제안했다.

알짜 권한
줄줄이 뺏어

안 전 대법관이 구상한 바에 따르면 원안에는 계좌추적권이 들어 있다. 그는 대검 중수부장 시절 굵직한 비자금 수사를 여럿 지휘해 계좌추적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특별감찰관에게 계좌추적권을 부여해 독립적인 내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가정보원 존안자료 열람권을 비롯한 각종 보안자료 접근권도 제공했다. 압수수색권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조처였다. 특정인에 대한 강제 동행은 제한했지만 통신거래내역 조회와 같은 조사권은 발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초안만 놓고 보면 나름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안 전 대법관은 특별감찰관이 감찰 대상을 임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대통령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을 포함한 친인척,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감사원장 등 권력기관장은 물론 특별감찰관이 지정한 사람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민간인인 정윤회씨는 공직자가 아니지만 특별감찰관이 '특수관계인'으로 지목하면 감찰이 가능했다.

여당 추천 이석수 특별감찰관 지명
대선 전 원안보다 권한·범위 축소


그런데 이게 바뀌었다.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특별감찰관제에 따르면 민간인인 정씨는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없었다. 관련법이 감찰의 범위를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과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원안에 있던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각 권력기관장은 감찰대상에서 빠졌다. 청와대 밖에 있는 '십상시'는 자연스레 배제됐다. 논란이 된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역시 '비서관급'이란 이유로 감찰을 피해갔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더구나 법안에는 계좌추적, 통신거래내역 조회 등에 관한 강제권이 명시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과 짝을 이뤘던 상설특검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고강도 감찰이 이뤄져도 기소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준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앞서 밝혔듯 여야는 모두 3명의 후보를 추천하는데 이 가운데 1명만이 온전한 야당의 몫이다. 추천을 해도 대통령이 신임할 확률은 희박하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3명의 후보 가운데 여당 추천 인사를 골랐다. 누가 됐든 임명권을 쥔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특별감찰관은 감찰 개시와 종료를 대통령에게 그 즉시 보고해야 한다. 감찰 기간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대통령 입장에서 특별감찰관이 누구를 감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 이렇듯 특별감찰관은 기대와 달리 '앙꼬 없는 찐빵'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다.

임기는 3년
목표는 3인방

특별감찰관의 이 같은 운명은 예견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공약 이행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당도 뜨뜻미지근했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다 돼서야 특별감찰관의 존립 근거가 담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마저도 당초 약속한 권한을 상당 부분 축소시켰다. 특별감찰관의 의미는 퇴색됐다.

지난해 6월 법안이 발효됐지만 국회 차원의 후보자 인선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물색한 여러 후보는 인사청문회 등을 이유로 관직을 고사했다.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마침내 '정윤회 문건 파문'이 터졌다. 그제야 여당 일각에서는 특별감찰관의 '숨겨진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청 관계가 소원해진 이유는 인사 때문인데 지도부는 청와대 깊숙한 곳에 직통 채널이 없다"며 "'정윤회 사건' 같은 게 터지면 준비할 시간 없이 당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박지만 (EG) 회장이 조응천(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별도의 채널을 유지했듯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자신들이 추천한 특별감찰관을 통해 청와대 내부 동향을 파악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물론 여당 일부가 의도한 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당사자인 이 후보자가 거래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약 양쪽이 한배를 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래권력 싸움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서다.

가령 특별감찰관이 모은 대통령 측근 비위 사실은 당 지도부로 배달돼 당·청 협상카드로 쓰일 수 있다. 현 정부처럼 폐쇄적인 청와대 운영을 고집할 경우 정보가 가진 파괴력은 배가 된다. 모두가 지켜봤듯 '찌라시'에 불과한 십상시 문건에 휘청댔던 박근혜정부다.

역대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임기 3∼4년차에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당 지지도가 대통령 지지도를 앞지르는 레임덕이 왔을 때 권력기관들이 반응한 것이다. 레임덕 국면에서 특별감찰관의 역할이 따로 주목되는 이유다. 특별감찰관의 선택에 따라 권력의 추가 급격히 기울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특별감찰관이 대통령에 의해 '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국회의 탄핵이나 해임요구,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면직이 불가능하다. 정해진 임기는 3년인데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같다.

제2의 조응천? 문고리 3인과 충돌?
김무성-이병기-박지만 가교 가능성

인사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문고리 권력이 가진 힘의 근원은 대통령 지근거리라는 점도 있지만 신원 보장에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짐을 쌌지만 3인방은 온갖 지탄에도 살아남았다.

행정부 안에서 3인방 정도로 신분이 안정된 공무원은 특별감찰관이 유일하다. 마음만 먹으면 '양천'(박관천·조응천)처럼 '전면전'도 가능하다. 나아가 그들과 달리 쫓겨나지도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 국무총리인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월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개정된 안에는 안 전 대법관의 초안대로 장관급 공무원, 각 권력기관장을 감찰 대상에 포함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여당의 속내는 따로 읽혔다. '비선 실세'를 잡겠다는 것이다. 여권 복수 관계자는 "감찰 대상을 청와대 일반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3인방을 감찰 대상에 집어넣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


우병우 수석
또 다른 변수

특별감찰관의 가장 큰 라이벌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수사권이 빠진 특별감찰관은 민정수석과 역할 및 권한이 비슷하다. 당장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관리를 어느 쪽이 해야 하는가가 첨예한 논쟁거리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권력암투설'이 불거질 수 있다.

대통령은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찰관은 업무 특성상 대통령과의 '독대'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대면보고를 단언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병기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앞서 김기춘호와 김무성호는 소위 말하는 '케미'가 맞지 않았다. 이를 교훈삼아 새롭게 출발한 이병기호가 특별감찰관을 가교 역할로 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실 특별감찰관은 근본부터 정치적인 자리다. 살아 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 중 어느 곳에 줄을 설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국민만 바라보는 '워치독'이 될 수 있을까. 판단은 그의 몫이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청와대로부터 특별감찰관으로 지명된 이석수(52·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공안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98년 일명 '북풍 수사'에 참여해 활약하는 등 검사 시절에는 공안통으로 분류됐으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파견 경력도 있다.

2010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후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 당시 특검보를 지내기도 했다. 이하 약력.

▲서울 ▲상문고·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법학석사 ▲사시 28회(사법연수원 18기) ▲대구지검 경주지청·인천지검·대구지검·서울지검 검사 ▲서울지검 검사 ▲국방대학원 수료 ▲인천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부산지검 부장검사 ▲중앙지검 부부장검사(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파견) ▲대검찰청 감찰 2·1과장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춘천지검·전주지검 차장검사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팀 특검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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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