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퇴임’ 앞둔 이용호 국회 홍보기획관

“뽑아 줄 때와 다른 위정자는 직무 유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회의 얼굴에게선 ‘신사의 품격’이 느껴졌다. 이용호 국회 홍보기획관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점이다. 그는 항상 옅은 미소를 머금고 따뜻하게 방문 인사들을 맞이했다. 바쁜 일정에 힘들 법도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부드러운 아우라를 지닌 그는 인터뷰에 들어가자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전달하기 시작했다.

외유내강이란 사자성어가 가장 적합한 인물 이용호 국회 홍보기획관. 부드럽지만 강한 그의 말 속에는 그간 쉽지 않았을 정치여정이 담겨 있었다. 2004년 정치에 처음 입문할 당시 예기치 않게 찾아온 탄핵바람과 그로 인한 시련, 그리고 19대 총선에서 맞이한 제도의 불합리성 등. 그러나 그는 결코 인터뷰 과정에서 얼굴을 찌푸리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단지 소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 생각하고 어서 그날이 오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 임기가 곧 종료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 2년 1개월간 근무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국회 역할이나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언론을 통해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 근무하면서 하신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국회 진기록관을 개관한 일이다. 국회 헌정사를 기록을 통해 보는 관인데 기네스관이라 보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짧게 직을 수행했던  사람이나 최연소 의원 등을 전부 기록으로 모아놓은 곳이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 중 국민이 잘 모를 수 있는 일을 담고자 노력했다. 견학을 온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함과 동시에 국회사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자부한다.

- 다년간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국회가 바뀌어야 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미흡한 점이 있다. 현재 국회의원이 300명이나 되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거나 뇌물을 받는 등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일부 의원들의 나쁜 행위에 마치 국회 전체가 그런 것처럼 보여 안타깝다.

또한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된다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 의회가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대형버스를 구매해 전시관으로 개조한 후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서 홍보한다. 우리도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 당시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 국민소통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신 이력이 있으신데, 그때 문재인 후보 캠프 불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상황을 얘기해 달라.
▲ 나는 그 당시 민주통합당에 몸을 담고 있었음에도 안철수 캠프 쪽으로 갔다. 당시에는 안 후보자가 국민의 여론이고 여망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과정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후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불참의사를 밝혔다.

친노의 패거리문화, 정치 품격 추락시켜
헌정사 바꾼 DJ, 가장 존경해 닮고 싶다

- 당시 결정에 친노세력에 대한 실망감도 작용했나?
▲ 문재인 캠프에 안 간 것은 그 이유도 컸다. 나는 소위 친노세력이라 불리는 집단이 옳지 못하다 생각한다. 그 이유는 친노의 상징성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첫 번째, 진영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안을 볼 때 옳고 그름이 아닌 자기 편이냐 아니냐는 진영논리로 판단을 한다. 두 번째, 친노들은 패거리를 짓는 정치문화를 가지고 있다.

과거 여야에는 협상의 문화가 있었는데 패거리 문화가 생기면서 정치문화가 대결의 문화로 바뀌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진 않지만 친노의 상당수가 언어적인 품격이 떨어진다 생각한다. 박정희 묘소에 간 문재인 당대표를 두고 히틀러에 비유한 정청래 의원도 같은 맥락이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정치 품격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 그런 논리에는 찬성할 수 없다.

- 2004년 정치에 입문한 후 많은 우여곡절이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 개인적으로 트라우마가 있다. 2004년에 민주당으로 출마를 했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공천을 받았다. 그런데 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바람이 불면서 그 후폭풍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압도적으로 여론에서 앞서가던 상황이라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 지난 19대 총선에선 안타깝게 경선에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억울한 심정이지 않았나? 그래도 다시 정계 진출 의사가 있는지?
▲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에 저를 좋아하는 분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에 제가 가진 철학이나 소신을 펼 기회를 가지고자 준비 중에 있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남원·순창 지역에 출마한 나는 전북에서 민주통합당 공천을 받은 이강래 의원보다 여론에서 두배 정도 앞섬에도 불구하고 모바일투표 같은 제도의 왜곡으로 인해 경선에서 졌다.

이후 공천제도가 투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역풍이 불었고 결과적으로 이강래 의원은 민주통합당에서 공천받고 전북에서 떨어진 유일한 후보가 됐다. 

-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 개인적으로 DJ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 분은 수많은 탄압과 외압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한 길을 걸었던 분이시다. 그분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기여한 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대통령까지 간 인간적인 면 등 그런 의미에서 존경한다.


최근 정치인 중에는 조순형 전 의원과 조경태 의원을 좋아한다. 두 분 모두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본다. 정치인은 국민들의 심중에 있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두 분은 소신 있는 얘기를 가감 없이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정치적 소신은 무엇인지?
▲ 정치는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의정치가 기본이다. 뽑아줄 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직무유기라고 본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살피고 국민들과 눈높이를 나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지령 1000호를 맞이한 <일요시사>와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 <일요시사>가 참 많이 성장했다. <일요시사>만의 독특한 영역인 심층적인 취재를 통해 독자들은 다른 매체에서 다루지 못한 정보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독자들이 <일요시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변화를 많이 읽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일요시사>의 지령1000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chm@ilyosisa.co.kr>


<이용호 국회홍보기획관 프로필>


▲ 전주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사
▲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 국무총리실 공보정책비서관
▲ YM종합건설 대표이사
▲ 민주당 전라북도당 남원·순창 운영위원장
▲ 국회 홍보기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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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