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추적

청와대는 '무관심' 새누리는 '흔들기'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세월호특별법으로 진상규명의 희망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망은 암담하다. 대통령은 무관심, 새누리당은 흔들기로 일관하고 있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던 국민들의 열망은 '세금도둑적 작태'로 매도됐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일까.

올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대회.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이 골프대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 앞서 정홍원 국무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과 환담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골프' 얘기를 꺼냈다. "프레지던츠컵 대회가 권위 있는 골프대회고 내가 명예회장으로 있다"며 "우리나라 골프가 침체돼 있으니 활성화에 힘써 달라는 건의를 여러번 받았다"고 한 것이다.

대통령 무관심
유족들 거리로

이 틈을 타 최 부총리는 맞장구를 쳤다. "국내에선 골프 관련 특별소비세·개별소비세가 붙어 침체돼 있고 사실은 외국에 가서 많이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즉각 "방안을 마련해 보라"고 지시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 총리는 "(그렇다면) 문체부 장관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하시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가뜩이나 '증세 없는 복지' 논란으로 뒤숭숭한 정국에서 박 대통령의 골프 발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물론 지상파 언론에선 이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새해 국정기조로 언급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직접 약속한 내용이다. 같은 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선체인양을 촉구하며 경기 안산부터 진도 팽목항까지 19박20일간의 도보 행진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날 극우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의 한 회원은 '친구 먹었다'라는 제목으로 충격적인 게시물을 올렸다. 김모(20)씨와 조력자 조모(30)씨로 알려진 이들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오뎅)을 든 채 한 손으로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모양을 하고 이른바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어묵은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비하할 때 쓰는 용어다.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는 지난 6일 모욕 혐의로 김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조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 등은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단원고 교복을 구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이드라인 제시
특위 무력화 시켜

국민의 상식선에서 일베는 비정상에 가깝다. 그러나 이를 정상화할 의지는 없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서 세월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발언 내용은 ▲"세월호 사고의 문제점이 대부분 드러났고 관계자들도 문책을 당했다"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이 할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로 요약된다.

정부 여당과 검찰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이행했다. 여야가 합의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특위)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검찰은 대통령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기소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이틀 전부터 노숙하던 50여명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애걸했지만 유가족 수보다 경호원 수가 더 많았다. 박 대통령은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그대로 차에 올랐다.

대통령 세월호참사 침묵…암묵적 가이드라인
친박계 김재원 세월호특위 내부문건 빼돌려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지 않던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소위 종북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며 종북 논란을 지폈다. 황선·신은미씨가 연 통일콘서트 현장에 폭발물이 투척된 것에는 침묵했다. 2명에게 화상을 입히고 집기를 부순 혐의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 오모(19)군은 최근 출소해 일베에 '인증글'을 남겼다. 반면 신씨 등은 국내에서 추방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 정부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은 예외 없이 관철됐다. 만약 박 대통령이 세월호특위에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주문했더라면 어땠을까. 유가족이 또다시 400km가 넘는 고난의 행진을 했을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골프대회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세월호특위다. 대통령의 무관심은 다수 친박계 의원들이 세월호에서 등을 돌린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친박의 대표격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당시 원내수석부대표)은 세월호특위를 겨냥한 거친 표현과 내부문서 빼돌리기로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세월호특위 설립준비단'(이하 설립준비단) 명의의 내부문건을 빼내 지난달 16일 "(세월호특위의) 세금도둑적 작태를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세월호특위 여당 추천위원인 조대환 부위원장(상임직 사무처장)과 세월호특위 실무협상 주체인 해양수산부를 통해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세월호특위가 125명의 인력과 241억원의 예산을 쓸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 중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절차상 확정된 기안은 아니지만 김 의원은 언론을 통해 세월호특위를 '세금도둑'으로 낙인찍어버렸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김 의원에게 독대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 조 부위원장의 '친박' 이력이다. 조 부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의 발기인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에는 초대 민정수석으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조 부위원장과 김 의원은 나란히 검사 출신으로 확인된다.

김 의원의 발언을 시작으로 조 부위원장은 설립준비단 해체를 발의했다. 세월호특위와 달리 설립준비단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설립준비단이 해체될 경우 세월호특위의 실무 진행은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특위는 다수의 의견으로 해체안을 부결시켰다.

그러자 조 부위원장은 설립준비단에 파견돼 있던 담당공무원(해양수산부 소속 3명, 행정자치부 소속 1명)을 지난달 23일 원대로 복귀시켰다. 이들은 설립준비단과 정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특위는 출범도 하기 전 이렇게 한 달을 삐거덕댔다. 두 '친박'의 노골적인 흔들기가 표면화된 결과였다.

갈수록 첩첩산중
사무실도 뺏길 판

기자는 지난 2일 설립준비단 사무실이 있는 서울지방조달청 청사를 찾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상임위원인 박종운 설립준비단 대변인은 당시 상황과 관련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대화로 잘 풀어가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이날 박 대변인은 "이석태 세월호특위 위원장(유가족 추천)과 조 부위원장이 공무원 재파견에 합의했다"며 "공문을 보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일 공문에 응답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3명은 설립준비단에 합류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 공무원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변인은 "상대적으로 세월호특위 운영에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조 부위원장 등 여당 추천위원과 반대 성향의 다수 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일부 위원들이 세월호특위의 출범을 가로막는다면 위원장이 다수 의견을 받아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당면한 논의가 합의점을 찾기는커녕 여권의 '힘빼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변인은 세월호특위의 핵심으로 '독립성'을 꼽으면서 조 부위원장이 가져간 문건은 당초 같은 달 19일에 반대의견을 듣기로 돼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정리하면 세월호특위가 내부 협의를 목적으로 초안을 만들자 조 부위원장이 이를 빼돌려 엉뚱하게도 김 의원과 논의를 한 것이다.

조 부위원장은 지난 4일 열린 전체간담회에서 이 같은 우려를 현실화했다. 초안 기준으로 240억원이었던 예산을 130억원으로 깎은 것이다. 이는 해양수산부가 제시한 158억원,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120억원의 예산보다 실질적으로 낮은 금액이다. 각 부처가 내놓은 예산안에는 직원 인건비와 조사 활동비, 건물 임대료 등이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설립준비단이 임시로 쓰고 있는 사무실 임대계약은 이달 중순 종료된다. 박 대변인은 "공공기관 소유의 사무실 대관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앙부처(기획재정부 포함)들이 '안 된다'고 해 막막하다"고 말했다.

현재 점유자도 없고 예약마저 없는 빈 공간이지만 정부는 무슨 이유인지 대관 얘기에 손사레를 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는 빌딩에 입주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이 경우 비싼 임대료가 장기적으로 부담이다.

조대환, 새누리당에 수시로 정보 보고
'세월호 인양' 예산낭비 공세로 좌절?

새누리당이 추천한 황전원 세월호특위 위원(비상임)은 지난 5일 또다시 설립준비단을 흔들었다. 황 위원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캠프 공보특보를 지낸 '친박'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설립준비단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위원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황 위원의 주장대로라면 설립준비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협의는 무효화될 수 있다. 현재 설립준비단은 세월호특위의 예산과 직제, 시행령 등을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여당의 협조가 없는 한 세부안이 협의되기도 힘들뿐더러 작성된 안을 정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까지 받아야 된다는 점이다. 안건 제출 후 중간에서 이런저런 핑계로 통과를 지연시키면 세월호특위는 정상적인 조사활동에 돌입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각 위원들이 대통령으로부터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아야 하는데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났을 경우 또다시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세월호 인양
비용이 관건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2학년4반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인 박종대씨는 세월호특위의 '중요한 부분'을 이렇게 짚었다. 임의로 요약하면 첫째 세월호특위의 인적구성, 둘째 빠른 시일 내에 발족이 가능하도록 할 것, 마지막으로 세월호특위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감시할 것이다.

현재 세월호특위에는 세월호 참사 직후 일베 게시글을 퍼날랐던 차기환 위원(새누리당 추천·비상임)이 있다. 차 위원이 속해 있는 행복한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행변)은 국정원의 변호를 전담한 바 있다. 해양수산부 한 공무원은 대통령 임명을 위한 세월호특위 위원들의 인사자료를 고의로 누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설립준비단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들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부 여당의 노골적인 방해 속에 세월호 선체인양 문제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특위에는 법률상 인양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다만 박 대변인은 사견임을 전제로 "전체 인양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체인양은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진상규명과 사회적 갈등해소에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박 대변인은 "혹시 인양비용이 부풀려져 언론에 알려지면 정치 쟁점화 될까 두렵다"면서 "국민적인 관심과 합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