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빅맨' 삼킨 조폭 풀스토리

독한 형님들 마지막 단물까지 '쪽쪽'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태창은 한때 국내 3대 속옷업체였다. 이런 회사를 조직폭력배가 접수했다. 이들은 회삿돈 수십억원을 빼돌리고 주가조작세력을 끌어들였다. 케이비물산으로 이름을 바꾼 지 2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회생할 '골든타임'을 놓친 경영진은 힘에 눌려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폐업 3년차에 드러난 안타까운 사건의 전모다.

속옷 브랜드 '빅맨'으로 이름을 알렸던 케이비물산에 조직폭력배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폭력조직 송정리파 조직원으로 전해진 정모(53)씨는 케이비물산에서 모두 33억여원을 빼돌렸다. 경영난에 빠진 회사는 회생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철저히 망가뜨려

지난 8일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김관정 부장검사)는 케이비물산의 회삿돈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정씨를 구속기소했다고 알렸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10년부터 2년 동안 케이비물산의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장부를 조작해 공금 33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회사에 자신의 측근을 심은 뒤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포착한 경영진은 측근 A씨에게 항의했지만 정씨는 도리어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경영권을 빼앗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0년대 후반 송정리파에서 활동했던 정씨는 범행 후 도피 행각을 벌이다 지난해 말 검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씨가 케이비물산 대표로 있던 2011년 4월 복수 인터넷 커뮤니티에 케이비물산과 관련한 조폭개입설이 기재됐다는 것이다. 지인의 입을 빌린 게시글에서 작성자는 "주주총회에 험상궂은 사람들이 들어와 주주들의 진입을 강제로 막았다"며 "경영진마저 못 들어가게 한 채 자신들끼리 총회를 끝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주주총회를 장악한 세력은 정씨 쪽이 동원한 조폭으로 짐작된다.


케이비물산은 코스피 상장사였다. 다수의 소액 투자자가 있었다. 주가는 하락세였지만 '개미'들은 쉽게 손을 털 수 없었다. 이 같은 투자자의 심리를 케이비물산 경영진은 악용했다. 발전 가능성이 없는 회사였음에도 '남북경제협력 테마주'라고 홍보했다. 조폭이 회사를 점령하자 주가조작의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1세대 주가조작꾼으로 알려진 김모씨는 다단계수법을 활용해 1400억여원을 조달한 적 있는 이른바 '선수'다. 2011년 4월 감옥에서 출소한 김씨는 매달 10%의 고수익을 약속하면서 다단계 투자자를 모았다. 김씨는 공범 3명과 함께 차명계좌 107개를 확보했다.

이들은 케이비물산의 경영권과 지분을 단기간에 사들였다. 공범 가운데는 케이비물산의 최대주주가 포함돼 있었다. 2011년 7월 1200원대였던 케이비물산 주가는 2달여 만에 3배 가까이 뛰었다. 주가조작으로 이들이 벌어들인 이득은 32억여원에 달했다.

김씨는 케이비물산에서 빠져나와 다른 종목으로 옮겼다. 하지만 다단계 피해자들은 김씨의 범행사실을 금융감독원에 제보했다. 자체조사를 마친 금융감독원은 김씨의 주가조작 정황을 검찰에 통보했다. 검찰은 2013년 11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김씨를 구속기소했다.

김씨 등 세력이 작전을 펼쳤던 케이비물산은 2012년 6월8일자로 상장폐지됐다. 케이비물산의 몰락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케이비물산은 2011년부터 2012년 사이 최대주주가 무려 4차례나 바뀌었다. 이들은 2012년 4월 경영공시에서 2011년 영업 손실이 14억2700만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당기순손실은 116억7400만원이었다.

'송정리파' 장악한 뒤 수십억 빼돌려
작전세력 끌어들여 회사 '공중분해'

같은 달 한국거래소는 케이비물산에 감사의견 비적정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케이비물산 감사인은 '의견거절'을 회신했다. 한국거래소는 법적절차에 따라 상장폐지를 진행했다. 케이비물산 주가는 정리매매 당일 82.6%가 폭락한 75원에 거래됐다.


케이비물산은 같은 시기 1억원 규모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파산선고신청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또 B씨로부터는 9억원 규모의 대여금 청구소송을 당했다. 그럼에도 케이비물산 주가는 일부 반등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흐름을 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돈만 벌고 빠지려는 투기성 자본이 모여든 결과였다.

케이비물산은 메리야스를 주력으로 만들던 내의공장 ㈜태창이 원뿌리다. ㈜태창의 창업자인 이삼노 회장은 1957년 전북 익산시 인화동에 소규모 섬유공장을 차렸다. 당시 기업명은 태창메리야스공업사였는데 규모는 크지 않았다. 수출을 통해 활로를 모색했지만 1970년대 발생한 오일쇼크를 시작으로 경영난에 직면했다.

쌍방울에 근무하던 이기전 당시 전무는 1973년 태창메리야스공업사에 합류했다. 그리고 태창메리야스공업사와 금성메리야스공업사를 합병했다. 회사 이름은 태창섬유 주식회사였다.

같은 해 이기전은 서울에 진출했고, 1977년 부산에도 영업소를 개설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따라서 ㈜태창의 실질적인 창업주는 이삼노가 아닌 이기전으로 알려져 있다.

태창은 1980년대 자사 대표브랜드인 태창메리야쓰를 상표등록하고, 신제품 빅맨을 개발했다. 회사이름도 ㈜태창으로 바꿨다. 1970~80년대 국내 섬유사업 호황기를 타고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1987년 12월 글로벌 패션브랜드인 캘빈클라인과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했고, 1989년에는 캘빈클라인 사업부도 론칭했다. 이듬해에는 캘빈클라인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사업권을 따냈다.

초대회장인 이전노는 자신의 차남인 이주영 전무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태창은 1996년 금강산 샘물 협력사업자로 승인받고, '안나 몰리나리'라는 여성브랜드의 기술도입을 시도했다. 사업 다각화를 꾀한 것이다. 하지만 1997년 IMF의 여파로 태창은 다음해 5월 최종 부도 처리됐다. 당시 태창은 261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했고, 1078억원의 부채를 남겼다.

화의절차를 밟던 태창은 2005년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주력부문인 언더웨어 사업을 이랜드 쪽에 넘겼기 때문이다. 당시 태창은 언더웨어 사업과 관련한 자산과 부채, 사업권은 물론 빅맨·O.X 등 5개 브랜드의 상표와 로고까지 모두 이랜드에 팔았다. 당시 태창은 190억원의 이득을 남겼다.

역사 속으로

이후 태창은 의류 수입 사업과 먹는 샘물 등에 전력을 기울였다. 2006년 1월 의류업체 키슨스㈜를 합병하고 같은 해 5월 금강수를 출시하는 등 명가의 재건을 노렸다. 하지만 1000억원을 넘겼던 매출은 회복되지 않았다. 패션 사업부문도 LG패션에 양도했다. ㈜일경으로 상호를 바꾸고 몇 차례 인수합병을 거쳐 케이비물산을 세웠지만 거기까지였다. 케이비물산은 끝내 조폭과 주가조작세력의 먹잇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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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