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비밀조직 양우공제회 실체 '소문과 진실'

고급 정보로 수천억 굴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는 의혹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국정원 내 비밀조직인 '양우공제회'를 통해 세월호에 투자했다는 가설이다. <일요시사>는 가설 검증을 위해 확인 가능한 사실을 모았다. 양우공제회가 벌려 놓은 투자는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구 중앙정보부)가 자신들의 원훈으로 삼았던 말이다. 김대중정부 들어 국가안전기획부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대정정부는 국정원의 원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꿨다. 하지만 정권이 네 차례 바뀌는 동안 '양지를 지향하는' 국정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의문투성이
양우공제회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는 자신들의 원훈인 '양지'에서 비롯됐다. 국정원 직원들은 설립 초기부터 '양지(陽地)'란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상조모임인 양우공제회에도 양지가 숨어있다. 양우에서 양은 볕 양(陽)자, 우는 벗 우(友)자를 쓴다. 양우공제회는 1970년 발기된 후 지금껏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양우공제회의 실체는 외부로 공인된 바 없다. 국정원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상조회 내지는 친목모임이라는 게 정설처럼 여겨진다. 이에 반해 양우공제회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쪽에선 '정치자금 관리'나 '불법 자산증식'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또다시 고개
이재명 시장 주장…공제회 통해 투자설


일반인들에게 양우공제회는 '먼 나라'의 얘기다. 대선개입 의혹과 간첩조작 혐의로 국정원이 수세에 몰렸던 상황에서도 양우공제회만큼은 특별히 문제되지 않았다. 정치권도 건들지 않았다. 여기에 국정원 특유의 '비밀주의'가 더해져 양우공제회는 어디에도 감시받지 않는 '금고'로 남아있다.

수면 아래 있던 양우공제회는 2014년 연말 뜻밖의 사건으로 재조명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청해진(해운) 명의로 등록된 세월호의 실제 소유자는 누구일까? 나는 여전히 국정원 소유임을 확신하며 '양우공제회'의 존재로 그 확신이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주장의 근거로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세월호 선박의 화장실 휴지에서부터 직원 휴가까지 80여 가지 사항을 국정원이 시시콜콜 지적한 점. 둘째, 세월호 선박 사고 시 가장 먼저 국정원에게 보고토록 한 점, 셋째, '양우공제회'가 선박투자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양우공제회를 취재한 <월간중앙>의 기사도 함께 링크했다.

이 시장은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기조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국정원 현직 직원들이 운영하는 법적근거도 없는 투자기관으로 모든 운영사항이 비밀로 취급된다"며 "수천억대 자산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국정원이 선박을 취득·운항한 사실까지 확인됐으니 '세월호는 국정원 소유'라는 확신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다음날에도 이 시장은 '국정원 지적사항'을 공개하며 "국가정보기관 입장에서 한 것일까요? 아니면 실소유자로서 한 것일까요?"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세월호 실소유주
연이은 의혹제기

앞서 <일요시사>는 '국정원 세월호 개입설 진상(인터넷판 2014년 8월4일)'이란 기사에서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및 세월호 보고체계와 관련한 의혹을 추적한 바 있다. 문건은 A4용지 5장 분량이며 2013년 2월26일 오전 11시56분께 저장한 것으로 돼 있다. 작성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 소속으로 알려졌다.


문건의 정확한 제목은 '선내 여객구역 작업 예정 사항-국정원 지적사항'이다. 항목별로 94가지의 작업 내용이 적혀있고, 5가지의 불량 항목이 기재돼있다. 문서에 적시된 사항은 대체로 국정원 고유의 업무와는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갤러리룸(전시실) 천정 칸막이 및 도색작업, 분리수거함 및 재떨이 위치선정, 레스토랑·편의점 유리 파손면 썬팅보수, 여성샤워실 누수 부분 용접 및 배수구 분리작업 등이 체크리스트에 표기돼 있다.

기자는 문서를 들고 해양대를 졸업한 일등항해사와 만났다. 그는 문건에 적힌 항목을 보고 의아해했다. "국정원이 왜 지적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모두 단순 작업이다. 집으로 비유하면 형광등을 가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조타기·전자변 수리, 비상발전기·마그네틱콘텍터 보수, 메인 엔진 베어링 교환 등 점검 사항이 많을 텐데 그런 사항은 전혀 언급이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등의 대목에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한 합동예비조사(보안측정 등)였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보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CCTV 추가 신설(2건) ▲비상시를 대비한 객실 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 ▲탈출 방향 화살표 제작·부착 등만 지시했고, 나머지 사항(96가지)에 대해선 국정원과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도 "(국정원이 아니라) 항만청을 포함한 6개 기관(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인천해경·기무사·국정원)의 합동 지적사항이었다"고 거들었다.

선박투자부터
부동산투자까지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혹은 여전했다. 왜 하필 문서 제목을 '국정원' 지적사항이라고 했던 것일까. 기자는 문건에 등장한 P사, G사, '차장님' 임모씨 등과 차례로 접촉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작업을 실제로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불분명했다.

이 시장의 주장대로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 직후 최우선 보고 대상이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 직후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에 보고토록 돼 있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은 '국정원 지적사항'이 작성되기 전날인 2013년 2월25일 작성됐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국내 1000t급 이상 내항 여객선의 운항관리규정'을 모두 분석한 결과 해양사고 시 국정원에 별도의 보고체계를 갖췄던 여객선은 세월호가 유일했다"고 밝혔다. 가장 규모가 큰 '씨월드고속훼리'의 '씨스타크루즈'도 국정원보고 체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청해진해운이 정한 것이지 국정원이 문서 작성에 관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선박투자는 어떻게 된 일일까. 국정원이 세월호에 투자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다. 단 국정원의 상조회이자 외곽조직인 양우공제회가 '선박사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양우공제회에 '의무가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례(2010두14800)는 국정원이 작성한 '퇴직금 산출 명세서'에 '양우공제회 퇴직금 산출' 항목이 '공무원연금공단 퇴직금 산출' 항목과 병행 기재돼 있음을 지적했다. 국정원 직원의 급여명세서에는 '양우공제회 기여금 공제내역'이 기재돼 있었고, 국정원 측은 재판 과정에서 "양우공제회 퇴직금은 기여금을 운용하여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지급된다"고 증언해 투자 사실을 확인했다.

상조회? 금고?…역할 해석 분분
직원들 급여 공제해 자금 운용

또 국정원 급여명세서에는 '기금' 명목의 돈이 월급에서 빠져나가거나 환급된 것으로 처리돼있었다. 명절비는 현금으로 지급됐는데 '기타 보너스' 항목을 살펴보면 창립기념일, 휴가, 명절은 물론 크리스마스나 김장 명목으로도 현금이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 경찰관은 "명절 때 보너스는 고사하고 선물세트도 구경해 본 일이 없다"며 "크리스마스 때까지 보너스를 지급한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의 이런 '현금'은 어디서 난 것일까. 과거 <신동아>는 '양우공제회 미스터리'란 기사에서 '딥 스로트(내부 고발자)'의 말을 인용해 "국정원은 국정원 예산과 양우공제회 기금을 분명히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는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양우공제회는 국정원법이 아닌 민법에 의거하여 설립됐으나 사실상 국정원의 비밀금고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논지였다.


지금도 양우공제회의 존재는 공무원집단의 영리추구를 금지한 법령(국가공무원복무규정 25조 1호)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교직원공제회'나 '군인공제회' 등 유사 '영리 공제회'는 각각 현직이 아닌 퇴직 공무원이나 경영 전문가를 두고 운영 중이다. 국정감사도 받는다. 하지만 양우공제회는 감사는커녕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2002년 4월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파크밸리골프장(18홀)의 대주주인 양우공제회를 상대로 감사원의 감사를 촉구했다. 당시 국정원은 파크밸리골프장의 원소유주인 삼양식품으로부터 현금 500억원을 주고 해당 골프장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작성된 파크밸리골프장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양우공제회는 운영사인 강원레저개발 주식 100%를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골프장에 500여억원을 빌려주고 연 8.5%의 이자도 받고 있었다.

양우공제회의 골프 사랑은 남다르다. <월간중앙>은 이들이 소유한 충북 충주시 골프장 부지(약 50만평)가 약 600억원 규모라고 봤으며, 2007년에는 중국 현지의 골프클럽 조성사업을 위한 펀드에 6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2006년에는 골프장 개발업체인 제피로스㈜의 지분을 292억원에 인수했으며, 이후 700억원을 투자했다고 전했다.

기자는 양우공제회가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N골프장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들이 특정 사업을 위해 국토교통부에 도로점용허가나 도로연결허가 등의 민원을 넣은 사실도 확인했다. 골프 사업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는 경기 안양 등에 골프연습장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양우공제회는 부동산 투자에도 관여했다. 검색으로 확인되는 부동산만 수십억원 규모였다. 땅은 물론 일반주택, 공장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물론 직접 투자가 아닌 펀드조성을 통한 간접 투자로 명의를 세탁했다. 돈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다 보니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2006년 모 은행이 양우공제회 예금 120억원을 횡령했지만 국정원 측은 돈의 성격을 놓고 "비밀"이란 말만 중언부언했다.

국가기밀 핑계로
묻지마 자금운용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모든 논란은 그들이 자초한 '비밀주의'에서 시작됐다. 비밀로 해야 할 정당한 근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국정원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 보건복지관실이 2012년 제출한 자료를 보면 양우공제회는 2008년 미래에셋증권이 판매한 항공기펀드(2호)에 67억원을 투자했다. 항공기를 매입해 항공사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챙기는 구조였다. 그러나 태국의 소요사태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양우공제회는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원금의 10분의 1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양우공제회는 대신증권이 모집한 선박펀드에도 참여했다. 대신증권이 작성한 분기보고서(2013년 7월)를 보면 양우공제회로부터 19억69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대신증권은 해양상선에 투자했지만 배가 침몰하면서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후 "국정원이 선박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과연 이 시장의 주장대로 국정원이 양우공제회를 통해 세월호에 투자한 것일까. 이 시장이 피소된 명예훼손 소송에서 그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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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