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정국 뇌관 '박관천 X파일' 실체

"박 경정 입이 바로 살생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정부를 흔들었던 정윤회 문건파동이 수사 동력을 상실했다. 검찰은 '박관천 1인 자작극'으로 사건을 봉합하는 모습이다. 파문의 핵심인 '권력암투'는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자 또 다른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박지만 EG회장의 '거짓말'이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박관천 경정은 "내가 입을 열면 국민들이 놀랄 것"이라며 폭로전을 예고했다. '최태민의 망령'을 부활시킨 '보이지 않는 손'을 박 경정은 알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2012년 12월24일. 국민의 관심은 '인사'에 쏠려있었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한 여권 관계자는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어디서 들었는지 "윤창중이 대변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공보수석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첫 인선결과를 발표했다. 인수위 수석대변인에는 윤창중 당시 칼럼세상 대표가 임명됐다. 정치권에선 윤창중 대변인의 탄생을 예상치 못한 눈치였다. 윤 대변인은 다음해 청와대로 입성했다.

박지만은 왜
미행 부인했나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정윤회 문건파동이 전직 청와대 행정관인 박관천 경정의 '1인 자작극'으로 좁혀지고 있다. 지난 1일 개시한 검찰 수사는 속전속결로 마무리 중이다.

청와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검찰은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 모두 신빙성 없는 허위사실로 결론 냈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12~13일까지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에 대해 '신뢰한다'는 의견은 28.2%에 그쳤다.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은 지난 23일 오후 비밀리에 검찰에 출두했다. 전날 <시사저널>은 미행설을 보도하게 된 경위에 대해 "박관천을 취재해서 나온 게 아니라 박지만의 '입'에서 미행 사건이 나왔다"고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박 회장은 앞선 조사에서 "(정윤회의 미행과 관련한) 진술서를 받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통해 미행설을 접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 후폭풍 뇌관 "건들면 터져"
'보이지 않는 손'도 알고 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시중에 떠도는 '박관천 배후설'은 사실이 아니다. 박 경정이 <시사저널> 측에 문건 혹은 구두정보를 흘려 미행설이 보도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 회장이 먼저 사석에서 화를 내며 '미행 발언'을 했고, 취재 기자들은 박 회장의 측근으로부터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해 2월 무렵 취재에 들어갔다. 이들은 기사에서 "당시만 해도 박 경정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지난 3월께 익명의 관계자로부터 "언론이 박관천이라는 사람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아울러 "박 회장과 측근 서너명이 지난해 말 서울 압구정에서 식사를 했다"는 얘기를 미행설과 함께 건네 들은 바 있다. 검찰 브리핑을 위주로 한 일간지 보도를 종합하면 박 경정의 문건 작성 시기는 3월 이후로 추정된다. 미행 보도의 시작이 박 경정이 아닌 것만은 여러 정황상 분명해 보인다.

믿을 수 없는
청와대 해명

당시 식사자리엔 여권의 '숨은 실세'로 지목된 이영수 KMDC 회장이 동석했던 것으로 한 관계자는 주장했다. 이 회장은 MB정부 탄생에 기여한 외곽조직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끈 장본인이다. MB정부 출범 후에는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과 함께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회장과 이 회장의 인연은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을 전후로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배경으로 박 회장과 가까운 사이인 이 회장이 미행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행설의 진위가 중요한 이유는 권력암투를 부인하고 있는 청와대의 해명을 그대로 믿을 수 없어서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수사결과도 의문투성이다. 청와대는 자체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7인 모임'을 특정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몸통'으로 지목했다.


반면 조 전 비서관은 언론을 통해 "국정농단이 사실에 가깝다"는 취지로 대응 중이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가 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5월 유출된 문건을 취합해 박 회장에게 건네는 한편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모 행정관에게 유출 사실을 제보했다. 그러나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은 제보를 묵살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문건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최모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최 경위는 죽음을 앞두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가 있었음을 폭로했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동료 한모 경위를 위로했다.

최 경위는 생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민정수석실이 한 경위에게 '혐의를 인정하면 불입건 처리해 주겠다'고 말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경위는 청와대에서 반출된 문건을 복사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한 경위는 지난 16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민정수석실의 회유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현재 한 경위는 정신적 충격을 입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 다문 박관천
"국민 놀랄 것"

몇몇 언론은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인용해 "박 회장이 '조 전 비서관은 측근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박 경정도 마찬가지다. 박 경정은 관련한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개 행정관이었던 박 경정이 아무 이득 없이 거짓 보고서를 작성했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박 경정은 체포 직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일지 모르겠지만, 충성은 하는 사람 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알아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 들고…"라며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뭐가 문제인지.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 그런 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얘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야. 이 문건 가지고도 책 1권을 쓸 걸"이라고 폭로전을 예고했다.

또 박 경정은 "조 비서관이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다"는 말로 상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최근 조사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음을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정의 깜짝 발언을 놓고 법조계에선 여러 설이 분분하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윗선을 겨냥한 협상용 멘트인지 어느 하나 명확하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박 경정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X-FILE'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윤회-박지만-조응천 폭로 주목
새 키맨 이영수 미행설 증언할까

실제로 박 경정은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주변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같은날 <채널A>는 "박 경정이 지난 6월 정씨와 만나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아내 최순실씨의 사생활 정보를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박 경정은 십상시 회동의 제보자(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를 지목하며 "그가 당신 부인(최씨)과 가깝게 지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민간인'인 최씨와 관련한 의혹을 직접 조사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확인까지 해줬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관리를 담당업무로 삼는 부서다. 최씨 혹은 정씨가 민정수석실 관리 대상에 들어갔다는 증거인 셈이다.

박 경정은 청와대 행정관 재직 당시 고위공무원에 대한 암행 감찰이나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한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 경정이 대검찰청 정보라인과도 안면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수사관'으로 알려진 박 경정은 여러 전화를 사용하며 '고급 정보'를 '컨트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다룬 고급정보 가운데는 정씨와 관련한 내용은 물론 박 회장 주변 동향과 관련한 첩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가 공개한 문건만 놓고 보면 '인사(천거·개입 혹은 청탁)'와 관련한 비위사실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정부에서 누가 인사를 좌우하는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내용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두에 언급한 윤 대변인과 관련한 풍문이 대표적이다.

당시 언론계 일각에선 윤 대변인의 발탁 배경을 놓고 박 회장과의 친분을 의심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는 트위터에 해당 소문을 옮겨 적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가 "착각했다"고 사과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후엔 윤 대변인을 천거한 세력이 정씨를 기점으로 한 문고리 3인방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공적라인'이 윤 대변인을 천거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차례로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있을 당시 사정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밖에서도 박지만의 이름이 들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름을 빌린 누군가가 기관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다.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칭한 조모씨는 대기업에 인사 청탁을 하려다 적발됐다.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청와대 밖에서도 '줄대기'가 끊이지 않았던 셈이다. 심지어 <세계일보> 문건에는 "정씨를 만나려면 7억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당 의혹의 진위 여부는 '찌라시'란 이유로 가려지지 않았다.

찌라시 이유로
측근전횡 은폐


남은 수사기간 동안 검찰이 정씨와 박 회장 세력 간의 권력다툼을 밝힐 확률은 없다. 당장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혐의'를 캐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주말을 기점으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이래저래 사건의 키는 구속된 박 경정이 쥐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보고서 제목(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과 여러 진술을 종합했을 때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개입 가능성까지 점쳐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박 경정이 섣불리 'X-FILE'을 꺼내들지는 미지수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흐름이 좋지 못한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와의 '뒷거래' 의혹이 대표적이다. 진실을 바라는 많은 국민의 염원대로 박 경정이 스스로 잠근 '지퍼(=입)'를 열지 지켜볼 일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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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