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분양사기·재산도피 의혹 허재호 고소장 공개

"서민에게 떼먹은 400억 뱉어라"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일당 5억원의 사나이. 이른바 '황제 노역'으로 전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졌다. 허 전 회장은 지난 9월 노역으로 탕감 받은 30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224억여원의 벌금을 완납했다. 그러나 아직 떼먹힌 돈을 받지 못한 분양 피해자들은 억울함에 속 끓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참다못한 이들은 지난 10월30일 허 전 회장을 사기와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황제 노역'으로 몇 달 전까지 전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고소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경기 용인공세지구 피오레 아파트 분양 피해자 47명(대표 황미영)은 '허 전 회장으로부터 단 1원도 돌려받지 못한 억울한 처지'를 읍소하며 관심을 호소했다.

횡령·배임 혐의

본지가 입수한 고소장을 보면 피고소인 명단에는 허 전 회장을 비롯해 그의 처남인 황모씨, 사위인 이모씨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고소인들은 "허 전 회장이 국내로 재산을 은닉하는 한편 뉴질랜드로는 자신의 그룹을 이전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내용은 허 전 회장의 황제 노역 논란이 지펴졌을 당시 본지를 비롯한 다수 언론에 보도됐다. 특히 <일요시사>는 지난 2007년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연속 시리즈로 고발한 바 있다.

고소인들은 허 전 회장을 지난 4월4일 광주지방검찰청에서 볼 수 있었다. 이날은 허 전 회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었다. 고소인들은 허 전 회장을 막고 "수백억원의 분양대금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차에 올라타며 "나는 모르는 일이다. 저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야 한다. 내가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외면했다.


앞서 피해자 대표 황미영씨 등 280여명은 지에스건설(주)이 시행하고, 대주건설(주)이 시공한 용인공세지구 피오레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했다. 지에스건설과 대주건설 모두 대주그룹의 관계사로 확인된다.

지에스건설의 지분 구성은 허 전 회장이 50%, 처남 황씨가 30%, 그의 지인 오모씨가 20%로 사실상 허 전 회장의 1인 지배기업이다. 허 전 회장은 용인공세지구 시행사업을 위해 지에스건설이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했다. 사위 이씨는 허씨로부터 대표이사를 넘겨받아 2009년부터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오레 분양 피해자 47명 고소
"수백억 공사대금 빼돌려" 주장

지에스건설은 2008년 12월 입주예정이었던 피오레 아파트를 공사지연으로 2009년 5월께야 완공했다. 황씨 등은 회사의 책임을 물어 분양계약을 해제했고, 2010년 분양대금 반환소송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회사가 판결 직전 자신들의 자산을 신탁회사에 위임하면서 피해자가 변제받을 길은 봉쇄됐다. 고소인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430억원 규모, 그 사이 빈 아파트들은 대부분 제3자에게 재분양됐다.

고소인들은 공사대금으로 사용했어야 할 자신들의 계약금(혹은 중도금 등)을 허재호 일가가 사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대주그룹 대부분의 계열사는 동시다발적인 매각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때 허재호 일가는 계열사 간 불법 자금거래로 재산 은닉 및 해외 이전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소인들은 대표적인 예로 자본금 3억원인 지에스건설이 대주그룹 계열사인 대한조선(주)에 2007년 200억원, 2008년 124억원 등 모두 324억원을 투자하고 손실 처리함으로써 '투자를 위장한 자금제공 사례'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또 공사에 사용됐어야 할 대금이 투자금 외 대여금 명목으로 2006년 282억원, 2007년 919원이나 계열사에 제공된 것으로 감사보고서에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고소인들은 대주그룹 41개 계열사 가운데 상당 회사가 이 같은 수법으로 대주건설에 자금을 몰아줬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허 전 회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자금을 차명으로 숨겨 해외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대주건설은 2010년 10월 한국에서 부도를 맞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KNC Construction & Engineering Co. Ltd'(이하 KNC)란 현지법인을 운영하며 부동산 투자를 감행했다. 올 3월 검찰이 은닉재산 환수에 들어가자 허 전 회장은 KNC 지분을 타인에게 양도했고, 친인척 임원진도 모두 사퇴했다.

고소인들은 대주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닥쳤을 무렵 지에스건설이 파산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지에스건설은 허 전 회장의 아들로 알려진 스캇허씨가 대주주(85%)로 있는 'KNC Grobal Management'에 투자했다고 덧붙였다. 또 지에스건설이 피오레 아파트 신탁자산 처분 및 정산에 관여한 정황에 비춰 허재호 일가의 비자금이 조성되지 않았겠냐고 의심했다. KNC는 이후 뉴질랜드에서 피오레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아파트 분양사업을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소인들의 주장은 "지에스건설이 분양 피해자들로부터 계약해지를 요구받았을 당시 분양대금을 반환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보유자산과 잠재수익이 모두 대주건설로 넘어간 상황에서 발생한 2649억원의 순부채는 서민들로부터 투자받은 공사대금을 오너를 위해 불법으로 빼돌린 결과"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돈이 없어 못 준 게 아니라 진즉부터 빼돌릴 마음을 먹고 수분양자를 기망했다는 결론이다.

고소인 황씨 등은 12종류의 증거문서를 첨부해 검찰에 제출했다. 허 전 회장 등에 대해서는 업무상 횡령·배임 및 사기 혐의를 적시했다. 고소장을 보면 모두 8가지의 요구를 검찰에 한 것으로 확인된다.

첫째, 허 전 회장의 국내 차명자산 및 해외 탈세자산을 수사해달라. 둘째, 대주건설과 지에스건설의 자금흐름을 수사해달라. 셋째, 지에스건설의 분양 사기행위를 수사해달라. 넷째, 지에스건설의 대여금 및 투자금 흐름을 수사해달라. 다섯째, 지에스건설의 사업소득을 수사해달라. 여섯째, 신탁자산 처분대금 용처를 수사해달라 등이다.

차명자산 쉬쉬

이 밖에도 고소인들은 대한주택보증의 아파트 공정율 조작 의혹, 한국산업은행의 연대보증 누락 의혹 규명을 추가로 요구했다. 그러나 광주지검에서 수사에 착수했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지난 9월 허 전 회장은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6억원대 탈세 혐의 등으로 고발된 바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본 고발사건을 6억원대 탈세 사건과 병합해서 처리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허재호는 어디에?

황제 노역의 주인공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4일 <한겨레>는 허 전 회장의 탈세 수사가 미진하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그의 근황을 전했다.

허 전 회장은 당뇨병 후유증으로 다리가 부어 목발을 짚고 광주시 금남로에 있는 모 개발 사무실로 나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회장의 새 거처는 광주시 동구 옛 도심에 있는 한옥이다. 체납문제 때문에 공매에 들어가 내년 2월말까지는 비워줘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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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