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④이재성 아르누보몽드 대표

돈 없다면서 거대로펌이 변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4화는 14억1100만원을 체납한 이재성 아르누보몽드 대표다.

신문잡지 및 정기간행물 발행 등을 영업목적으로 삼은 (주)민주일보사는 1997년 4월 설립됐다. 민주일보사는 2005년 12월 상법에 따라 해산했다가 2007년 1월 상호를 변경해 당국에 신고했다. 변경된 상호는 (주)아르누보몽드였다. 아르누보몽드의 대주주는 이재성씨였고, 이씨가 보유한 지분율은 100%였다. 2010년 기준 자본금은 5000만원으로 확인됐다.

사기로 구속

아르누보몽드는 회사의 설립목적을 부동산 개발 및 분양, 임대업 등으로 기재했다. 검찰은 지난 5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이씨를 구속했다. 해당 업체 김우영 전무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 등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현지 교민들에게 고수익을 내주겠다고 속여 호텔식 레지던스인 '아르누보시티' 분양대금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LA지사 등을 설립해 투자금을 끌어 모았으며, 이때 받은 계약금과 중도금의 일부를 신탁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임의로 빼돌려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구속을 전후로 법조계에선 아르누보시티와 관련한 정·관계 로비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이씨가 대표로 있는 법인 아르누보몽드는 2010년 9월부터 등록세 등 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14억11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아르누보몽드는 2010년부터 부가가치세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둬갈 세금은 10억400만원이었다.


이씨가 대표로 있는 또 다른 회사 (주)아르누보씨티는 2011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모두 7건의 세금을 빼먹었다. 국세청이 정산한 체납액은 85억5700만원이다. 이씨는 개인체납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씨는 14억3200만원(부가가치세 등 3건)을 2010년부터 내지 않았다. 이씨의 파트너인 김씨도 2006년부터 법인세 등 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징세할 체납액은 27억87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회피하고 있는 세금은 150억원이 넘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회사 등록 주소지를 찾았다. 사무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앞서 아르누보씨티는 강남아르누보 레지던스 호텔을 분양했으며, 아르누보몽드는 서초아르누보 레지던스 호텔을 분양했다. 두 레지던스 호텔에 투자했던 분양사기 피해자들은 관련 주소지로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수취인 부재로 번번이 반송됐다. 이때가 2011년이다.

그런데 이씨 등은 세금을 내지 않고도 3년 넘게 버텼다. 그 사이 미국에 있던 아르누보씨티 투자자들은 한국을 방문해 이 대표와 최모 아르누보시티 회장을 각각 고발했다. 이들이 주장한 피해금액은 42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 회장은 외환관리법 위반과 횡령 혐의 등을 받았으나 미국으로 도피해 기소중지 처분됐다. 이후 최 회장은 2012년 미 사법당국에 의해 체포된 뒤 한국으로 송환됐다.

아르누보시티 분양사기 150억 미납
실소유주 지목 최 회장, 왜 안내나?

피해자들은 최 회장을 아르누보시티의 '실소유주'로 지목했다. 그런데도 최 회장은 100억원이 넘는 체납액과 관련해 외관상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최 회장의 처남 박모씨는 수사 편의 등을 제공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강남경찰서 경찰관 김모씨에게 마사지·유흥·골프접대 등을 2011년 1월∼2012년 9월까지 제공했다.

같은 기간 박씨는 모 법무법인 직원 또 다른 김모씨에게도 로비자금 명목으로 1500만원을 뿌렸다. 최 회장이 국내로 송환되자 구속영장 신청 저지 등 수사무마 활동을 위한 경비를 건넨 것이다. 이들 두 김씨는 지난 9월 나란히 불구속 기소됐다.

이 밖에도 박씨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최 회장으로부터 최대 1억원에 달하는 활동비를 지급받은 전·현직 경찰관은 대부분 구속됐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최 회장이 관련 회사의 실소유주라는 것이 확인되면 세금을 징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씨 등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이 속행됐다. 이날 오후 2시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등장한 이씨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판이 끝날 무렵에야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와 귓속말을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취재결과 이씨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은 국내 굴지의 로펌 Y사 소속 변호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금도 제때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어야 할 이씨는 대체 무슨 돈이 있어 Y사에 사건을 맡긴 것일까.

기자는 담당 변호사를 만나 "이씨는 체납자인데 변호사 수임료는 어떻게 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변호사는 "잘 모르겠다"며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은 아닌 것 같다"고 정중히 답했다. 변호사 수임료는 시간당 과금해 지불하는 방식과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나눠 지급하는 방식, 두 가지가 보편적이다. Y사가 이씨에게만 '특별대우'를 해 무료 변론을 맡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이씨는 Y사 외에도 20여명에 가까운 변호사를 차례로 선임했다. 이 가운데 10여명의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던 L사는 사건을 포기했으며, 여권 고위 정치인의 변호를 맡았던 J 변호사 등 4명도 사임했다.

Y사 변호사는 4명, 또 다른 Y사 변호사는 3명, D사 변호사는 1명이 각각 선임됐다. 담당 변호사는 "수사 단계에서 여러 변호사가 선임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배 째라" 당당

같은 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이모씨는 "전무 김씨가 2010∼2011년께 투자금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이후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며 "나는 신문에 나온 광고를 보고 분양신청을 한 죄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이씨 등은 당시 광고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호텔 상가에 투자하라"고 홍보했다. 최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강모씨도 아르누보시티에 대해 "수익률이 뛰어나다"며 "최고의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고 속였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변호사 수임료 등 의혹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조사해 환수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angeli@ilyosisa.co.kr>

 

[아르누보시티는?]

아르누보시티는 1996년 9월 설립 이후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시행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건설회사다. 시공사인 삼환기업과 손을 잡고 강남 일대에 삼환 베르사이유 오피스텔을 차례로 분양했으며, 레지던스 아르누보씨티도 3차까지 직접 분양했다. 미국 LA 등지에서 투자를 받아 해외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거나 목적 이외의 용도로 유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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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