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음모론 소문과 진실

"찌라시…" 청와대가 소문 더 키웠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문건파동이 변곡점을 맞았다. 비선 스캔들의 주인공인 정윤회씨는 지난 10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발인이자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정씨는 "국정개입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한 점 의심 없이 '비선실세'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씨에게 불리한 온갖 정황은 ‘음모론’으로 확산 중이다. 정씨를 감싸고 있는 청와대 역시 '찌라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미스터리만 증폭되는 상황에서 음모론의 참과 거짓을 따져봤다. 어느 쪽이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태민 목사(이하 최태민)의 망령이 살아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가 파문의 중심에 서면서 상당수 국민은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을 입에 올리고 있다. 최태민의 사위로 알려진 정씨는 자신의 장인처럼 "큰 영애(박 대통령)를 휘둘러 국정을 농단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태민의 망령
청와대 덮쳤다

지난 2007년부터 최태민은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의 '약한 고리'로 언급돼왔다. 온갖 루머가 생성됐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최태민 관련 소문은 꾸준히 나돌았다. 이중 일부는 명백한 허위사실이었고, 일부는 검증되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박근혜정부 출범 전후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힘없는 시민'들은 법정에 섰다. 일부는 구속됐다.

박 대통령의 결혼설과 출산설은 음모론자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루머의 당사자는 최태민에서 정윤회로 바뀌었다. 지난 2012년 7월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한 월간지를 통해 박 대통령의 사생아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과했다. 문제의 월간지는 정정보도를 했다.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김 전 부소장은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인터뷰를 '한 번'만 했기 때문이다.

각종 설왕설래 확산 미스터리만 증폭
최태민 망령 부활…김재규와 판박이?


출산설을 퍼뜨렸다가 구속된 면면을 보면 대개 관련한 허위사실을 반복 게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음모론은 더욱 진화해서 "박근혜의 숨겨진 아들이 연예인 A씨이고 아버지는 최태민"이라는 형태로 유포됐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정씨까지 '불륜드라마'에 소환됐다.

지난 10월 서울중앙지법은 '박 대통령이 정씨 및 최태민과 불륜관계'라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탁모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과 정씨가 불륜관계가 아니며 최태민과도 불륜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한 여러 주장은 진정되지 않고 꾸준히 유통 중이다. 이른바 '7시간'과 관련한 소문 따위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침묵을 고집한 사이 풀리지 않는 의혹은 사생활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정윤회'라는 이름이 정가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공공연히 퍼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정씨를 'VIP(대통령)의 측근'으로 보고 내사를 진행했다. 이번 파문의 핵심 역시 대통령의 사생활이 아니라 '정씨가 정말로 측근이 맞느냐'에 있다.

과거와 닮은 꼴
비선다툼 격화

생년월일, 출신지는 물론 세부 경력까지 베일에 싸인 정씨가 '막후 실세'로 주목받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그가 박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었던 최태민의 사위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씨가 박 대통령의 정치입문에 도움을 준 전직 비서실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최태민이 유신정권 말기 청와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단순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에 의문점이 많다.

박근혜정권의 '정윤회 문건 파동'과 유신정권의 '최태민 비위 스캔들'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작성한 '최태민에 대한 수사보고서'(2007년 공개)에는 최태민이 큰 영애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파악한 최태민의 비리 의혹은 40여 가지에 달했다. 김 부장은 최태민과 관련한 보고서를 만들어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는 이를 눈감았다고 전해진다. 김 부장은 박정희 살해사건 공판 과정에서 '최태민의 권력형 비리를 '각하'가 눈감은 게 10·26의 한 원인'이라는 취지로 항소이유를 적었다. 이와 관련 김 부장의 주장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기만술'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런데 이번 문건파동을 살피면 당시 상황과 흐름이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정보부를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바꾸고, 최태민 대신 정씨의 이름을 집어넣으면 퍼즐이 맞춰진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등을 문제 삼자 최고 권력자가 이를 묵살하고 옹호하는 그림이다.

신군부가 들어서자 최태민을 겨냥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기업들로부터 모금을 했다는 등의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견제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진술로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김 부장이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과 권력암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충성경쟁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권력'에서 배제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VIP의 눈에 들기 위해 과장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청와대는 관련 보고서를 '찌라시'로 규정함으로써 정씨 측 입장에 힘을 실었다. 나아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문서 유출의 배후로 지목해 궁지로 몰아넣는 실정이다.

십상시는 없는데
양천모임은 있다?

외형적으로 이번 사건의 칼자루는 두 사람이 쥐고 있다.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이다. 한쪽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전화를 넣어 고위공직자(조 전 비서관)에게 "전화 좀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대통령 측근이 연루된 고급정보를 다루다가 지금은 청와대와 각을 세운 사람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최근 자체 감찰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 사건을 조 전 비서관의 '자작극'으로 잠정 결론 냈다. 문건 작성과 유출 과정에 조 전 비서관을 필두로 한 이른바 '7인회'가 개입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선 '양천모임(조응천·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있었다'는 식의 또 다른 음모론이 비등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복수 언론 인터뷰를 통해 7인회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의 감찰결과를 사실로 가정하면 이번 문건파동은 '박지만 라인'인 조 전 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의 인사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타당하다. 앞서 조 전 비서관은 박지만 EG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전모씨를 청와대에 배치시키려다 정 비서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박지만 라인이 정 비서관의 '약한 고리'인 정씨를 건드려 보복을 꾀했다는 주장이다.

설…설…설… 김기춘 가담설
문고리 내분설 박지만 배후설

현재 검찰 수사는 정씨보다는 '양천'을 겨냥한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 주변 인물들에 대해 구속영장(이 가운데 최모 경위 사망)을 청구한 것이 상징적이다. 정씨는 기세등등했다. 고발인이자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한 정씨는 "이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고, 누가 춤을 췄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조사를 받기도 전에 '나는 수사결과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다.

다수 언론은 정씨의 발언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온 민간인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고 논평했다. 정씨를 본 사람들은 그가 상당한 실세라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정씨는 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전화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로 알려졌다.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서도 박 대통령과 정씨가 가까운 사이라는 '팩트'만큼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씨가 실제 국정에 개입했는지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청와대와 검찰은 한목소리로 십상시 회동이 없었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일부 여권에선 '3인방 내분설'을 언급하고 있다. 정부가 출범한 뒤로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세 비서관이 서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소 닭 보듯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경우 정씨로부터 얼마 전까지 전화를 받았고, 그 통화내용을 청와대 내부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지만도 내상
김기춘은 침묵


올 초 <시사저널>은 "정씨가 박 회장에게 미행을 붙였다"고 보도하면서 권력암투설에 무게를 실었다. 당시 정씨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뜻밖에도 음해의 배후로 박 회장을 거론했다. 청와대의 감찰 결과에도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유출된 문건을 회수해야 한다고 직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장 진위가 가려지진 않겠지만 '박지만 배후설'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키는 박 회장의 핫라인인 조 전 비서관이 쥐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유출에 관여한) 오모 행정관에게 문건 작성 및 유출 전반에 걸쳐 조응천이 주도했다는 걸 서명·날인하라고 계속 강요했는데 정씨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며 "7인회(얘기)는 그걸 뒷받침하기 위한 스트럭처다. (정씨가) 청와대 애들하고 대책을 만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씨가 청와대와 공모해 사건을 무마하려한다는 의혹이다.

이 지점에서 외관상 '허수아비'였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가담설'이 음모론 형태로 대두 중이다. 홍경식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가까운 관계였던 김 실장은 보고를 고의누락하면서 사건을 확대시켰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청와대가 지난 6월께 문건 유출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앞서 박 회장 측은 여러 경로로 문건 유출 사실을 청와대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비서실은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들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비선 스캔들의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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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