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②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

아버지 망했는데 아들은 회장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범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연재될 시리즈에서 기자는 이들이 세금을 떼먹은 원인과 근황을 집중 조명할 계획이다. 2화는 14억4900만원을 체납한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이다.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이하 설원식)은 2010년 5월부터 지방소득세 등 10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14억49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설원식은 2009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5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둬갈 세금은 156억200만원이다.

어디로 숨었나

그러나 설원식은 아무 재산이 없다. 그의 아들딸은 주식부자이고, 손자까지 주식부자인데도 할아버지만은 빈털터리다. 더구나 설원식은 몇 해 전부터 행방이 묘연하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설원식이 집에 없어서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체납자 설원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자는 설원식의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중구 장충동 일대를 뒤졌다. 등기부등본으로 확인한 설원식의 집은 대지면적 1645m²(500평)에 쌓아올린 2층짜리 기와집이었다. 지하에도 324m²(100평) 규모의 주거 편의공간이 있었다.

장충동 땅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채무변제 등의 이유로 매매·증여와 같은 처분이 금지돼 있다가 2012년 말 한국자산신탁으로 소유지분이 전부 이전됐다. 등기부상 지분 공유자는 부인 임희숙씨와 장녀 설경화씨였다. 건물도 같은 기간 한국자산신탁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다시 말하면 설원식이 살던 집이 신탁회사로 넘어간 것이다.


수소문 끝에 설원식의 '가신'으로 불리는 박모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박씨는 "설원식이 지금 요양원에 있다"고 주장했다. 설원식의 나이는 91살로 상당한 고령이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장충동 집이 처분되기에 앞서 설원식이 요양원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설원식은 서울 중구 회현동에 있는 '알리앙스프랑세즈'의 대표를 맡고 있다. 알리앙스프랑세즈는 불어를 가르치는 프랑스문화원이다. 연매출은 22억원 정도며, 재단 소유의 건물과 토지가 있다. 박씨는 "설립자인 설원식이 명목상의 대표를 맡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단에서 챙겨가는 돈은 없고, 정부가 여러 형태로 조치를 취하려 했지만 프랑스와의 협력 관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씨에 따르면 알리앙스프랑세즈 운영에는 프랑스 당국이 직접 개입하고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설원식에 대한 허가 취소도 검토했지만 국가가 공인한 프랑스 어학원인 관계로 일단은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설원식은 프랑스정부가 수여한 '레지옹 도뇌르'란 훈장을 갖고 있다. '레지옹 도뇌르'는 곤충학자 파브르, 화가 샤갈, 디자이너 입생 로랑 등이 받은 권위 있는 훈장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국내 유명 기업가도 해당 훈장을 수훈 받은 전력이 있다. 레지옹 도뇌르는 명예를 지키지 못했을 시 추서가 취소될 수 있다.

과거 설원식은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되는 등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대한방직이 거느렸던 한스종금(구 아세아종금)은 1000억원대의 불법대출과 200억원대의 차명주식 거래, 수십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이 도마에 올랐다. 게이트가 움튼 2000년 8월 설원식은 해외로 출국했고, 사법처리를 피했다. 이후 예금보험공사는 설원식이 부당대출로 상호신용금고에 273억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판단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설원식은 1998년 9월16일 아들인 설범씨(현 대한방직 회장)에게 경영권을 이임했다. 그러나 범씨는 2000년 있었던 검찰 조사에서 "(부당대출은) 아버지가 한 일이라 나는 모른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 14억 국세청 156억…5년째 체납
딸·아들·손자 주식부자 "징세 못 해"


기자는 범씨에게 부친과의 관계를 묻기 위해 여의도에 있는 대한방직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연락도 안 하고 오는 게 어디 있냐"며 직원들에게 쫓겨났다. '명예회장님이 170억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선 "아는 사람이 없다"며 답하지 않았다. 유선으로 재차 문의했지만 범씨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대한방직은 연매출 2700억원(2013년 기준) 규모의 중견기업이다. 최근까지 중국 칭다오에 유한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대표이사 범씨는 대한방직의 지분 15만8577주(14.96%)를 갖고 있다. 그의 외숙모인 민옥기씨는 2만4162주(2.28%)를 갖고 있다. 친모 임씨도 2만6446주(2.5%)를 갖고 있다. 설원식의 손자 설모씨는 2만4496주(2.31%)를 보유 중이다. 딸 경화씨도 1만4967주(1.41%)에 대한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금융감독원, 국세청과 함께 조사했지만 해당 주식이 설원식의 차명 재산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며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현재로서는 기타 상속이 있지 않는 한 추가 징세가 어렵다"고 밝혔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설원식은 국내 미술계의 주목받는 독지가였다. 유명화가의 작품을 수십점씩 구입했고,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무당국 관계자는 "미술품을 압류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미술품을 사들이긴 했지만 다 옛날일인데 그것들이 남아있겠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해외 은닉부동산 매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국세청이 공개하고 있는 고액체납자 명단에는 설원식의 직업이 임대업으로 기재돼있다. 상호도 빠져 있다. 일반 시민들은 대한방직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든 구조다. 일부 중소기업 대표의 경우 상호까지 꼼꼼히 적시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세청은 "설원식이 체납한 세금이 법인세가 아닌 양도소득세였기 때문에 상호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리스트에 오른 고액체납자만 2만명이 넘기 때문에 (작성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녀들은 떵떵

범씨는 지난 2011년 새누리당 당시 권영세 의원(현 주중대사)에게 5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전달했다. 세금 대납보다는 정치인 후원을 선택한 것이다. 세무당국 관계자는 "체납자 자녀에게까지 납세를 강제하긴 어렵다"며 "현재로서는 도의적인 책임만 물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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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