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스토리> 여중생-40대남 성관계 미스터리

"강제로 했다" vs "사랑해 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연예인을 시켜준다"며 15살 여중생을 꾀어 성관계를 맺은 40대 남성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각각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린 뒤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서로 사랑해서 성관계를 맺었다"는 게 무죄의 이유였다.

중학교 2학년인 여학생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지난달 24일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 B(45)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첫눈에 반했다?

이날 법원은 피해 여학생 A(당시 15세)양이 B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와 편지, 전후 사정 등을 따진 뒤 A양과 연인관계였다는 B씨의 주장을 인정했다. "진심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는 A양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A양이 B씨를 상대로 많게는 하루 수백건씩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점을 살폈다. 둘이 나눈 대화는 연인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법한 내용이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또 B씨가 공소사실(성폭행) 외의 별건으로 구속됐을 때 수십 차례 찾아간 점, B씨에게 '사랑한다, 보고 싶다, 함께 자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점, B씨의 권유로 동거한 점 등이 모두 무죄의 이유로 꼽혔다.

특히 재판부는 A양이 구속된 B씨에게 '성폭행범도 집행유예로 나오는데 (B씨는) 뭘 했다고 못 나오느냐'는 편지를 보냈고, 첫 만남에서 B씨가 추행하려 했을 당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울러 A양은 B씨에게 성폭행 당한 후에도 계속 만남을 유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부는 "A양이 겁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판시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 2011년 7월이다. B씨는 아들이 입원해있던 병원에 갔다가 자신보다 27살이나 어린 A양을 보게 됐다. 마침 A양은 경미한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었다. 이 둘은 병원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B씨는 A양에게 접근한 뒤 자신을 연예기획사 대표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A양에게 "얼굴이 예쁘고 키가 크니 연예인을 시켜준다"며 명함을 건넸다. 그 자리에서 A양은 B씨에게 전화번호를 내줬다.

같은 날 B씨는 A양에게 "바람을 쐬게 해주겠다"며 자신의 승용차로 불러냈다. 승용차 안에서 B씨는 A양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아내고 "대학 학비를 대준다"며 키스를 시도했다. 그러나 A양의 거부로 B씨의 성추행은 미수에 그쳤다.

며칠 뒤 B씨는 다시 A양에게 연락해 영화 시사회를 보러가자고 했다. A양은 얼결에 환자복을 입고 승용차에 탔다. 그러나 B씨는 영화관이 아닌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B씨는 A양과 성관계를 맺었다. 첫 만남으로부터 4일 만의 일이다.

한번 불붙은 욕정은 그칠 줄 몰랐다. B씨는 자신의 집으로 A양을 데려가 성관계를 했다. 둘의 관계는 주기적으로 약 180차례나 계속됐다. 이듬해 4월 A양은 B씨의 아이를 임신했다. A양은 가출해 B씨의 집에 머물렀다. 다음달 B씨는 구속됐고, 같은해 9월 A양은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A양은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구속 상태에 있던 B씨는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양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부모 또래인 남성을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하게 돼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춰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B씨는 자신의 행위가 사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여러 증거와 정황이 가리키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해 B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딸 같은 10대와 동침하고 임신까지
연인관계 인정해 성폭행 혐의 무죄

2심의 판단 역시 1심과 다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A양의 "진술이 비교적 일관되고 구체적이어서 신빙성이 높다"고 인정했다. 성폭행 직후 신고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가족이나 주변에 성폭행 사실이 알려질 경우 수치스러울 뿐 아니라 피고인(B씨) 앞에서 A양이 심리적으로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B씨는 A양이 자신을 보기 위해 구치소에 거의 매일 찾아와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은 점을 연인관계의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양이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웠을 것이고, '사랑한다'는 편지를 적지 않으면 B씨가 화를 냈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내용을 적었다는 진술에 일리가 있다"고 결론 냈다. 다만 변경한 적용 법조를 반영해 징역을 9년으로 낮췄다.

그런데 대법원은 1심과 2심이 법리를 오인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된 A양의 진술에 대해서도 "믿기 어렵다"며 B씨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A양이 억지로 썼다던 문자 메시지·카카오톡도 B씨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못박았다.

A양은 B씨를 '오빠, 자기, 남편' 등으로 호칭했고 ▲편지를 쓸 때도 색색의 형광펜을 사용했으며 ▲하트 표시 등 각종 기호를 집어넣었고 ▲대화 내용 중에는 '처음 보자마자 반했다'는 고백도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구치소 접견록 중에는 B씨가 A양에게 "짧은 치마 입고 다니지 말라" "주거지 인근에 성폭행범이 있느냐" 등의 대화가 있어 일반 성폭행범과 피해자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것으로 재판부는 해석했다.

특히 재판부는 최종 판결에서 "A양은 처음부터 B씨에게 사랑을 느꼈고 이 같은 감정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파기환송심에서 법리가 뒤집힐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현행법상 13세 이상이면 위력에 의한 성관계임이 입증돼야만 성폭행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대법서 뒤집혀

판결 직후 대법원 관계자는 "파기환송심에서 위계에 의한 성관계나 대가성 성매매 등 다른 법률을 적용해 다퉈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소장이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A양의 진술이 법원에서 신빙성을 잃은 터라 판결이 뒤집히긴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앞서 2심 재판부는 B씨의 재범 가능성을 언급했다. A양과 간음하던 시기에도 길거리 등에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상대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이성관계를 가지려 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A양과 같은 중학생도 섞여 있었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