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①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6000원도 없다면서 회장님 행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무려 40조원에 달했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 회는 40억3400만원을 체납한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이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이하 나승렬)은 2004년 6월부터 취득세 등 23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수할 체납액은 40억34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나승렬은 1999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26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둬갈 세금은 38억4600만원이다. 그러나 나승렬은 "돈이 없다"며 10년 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버티는 이유는?

기자는 최근 세무당국 관계자를 만나 "나승렬이 서울 한남동 개발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세금 한 푼 내기 힘든 60대 체납범은 어떻게 '회장님'으로 불리고 있을까.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건설현장을 찾았다. 시공사 현대산업개발은 지하 7층, 지상 18층 규모의 대형 주상복합건물을 짓고 있었다. 모두 280세대가 입주하게 될 한남동 IPARK 공사의 발주처는 '만강건설PFV'였다. 만강건설PFV는 나승렬의 친척인 김모씨(1966년생)가 대표로 있는 자본금 50억원의 건설회사다.

김씨는 나승렬 일가가 매입 후 되판 제빵업체 기린의 사외이사, 강원도 횡성에서 생수를 만들었던 운무원(거평식품)의 대표이사, 여행레저 업체인 (주)프레야씨에스의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들 회사는 모두 나승렬 일가의 지배구조 아래 있었다.


또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올 9월까지 학교법인 만강학원의 이사장을 지냈다. 만강학원은 2014년도 예산총액이 327억여원에 달하는 나승렬 일가의 사유재산이다. 나승렬이 1994년 이사장이 됐고, 아내인 박문자씨가 이사장직을 넘겨받아 장남 나영돈씨에게 물려줬다. 김씨는 영돈씨 다음으로 이사장에 취임했다.

서울시가 발간한 관보에 따르면 김씨는 만강학원 이사장이던 2014년 4월 외국인 마크로버트 마두라스와 공동으로 만강건설PFV를 설립했다. 만강건설PFV는 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2100만달러(한화 233억원)를 차입해 개발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만강건설PFV로 등록된 주소지에는 사무실이 없었다. 그곳에선 IPARK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자는 수소문 끝에 김씨와 통화했다. 김씨는 "나승렬 회장님을 가끔씩 뵙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승렬이 경영에 참여하는 건 아니라고 부인했다. "가끔씩 조언만 해 준다"고 했다. 또 그는 자신이 "월급쟁이"라면서 "개발 사업을 이끄는 건 회장님의 아들인 영돈씨"라고 말했다. 또 "현재 회장님은 막내딸(나현정) 집에 살고 있다"고 확인했다.

나승렬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동광로에 있는 초고급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70평형으로 나현정씨가 매입했을 당시 감정가는 25억원이었다. 나승렬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한남동의 한 사무실이다. 징수를 피하기 위해 그곳에 침대를 갖다 놓고, 조사관이 들이닥치면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주민세를 내라고 하면 "거지라서 6000원도 없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 담당 조사관은 지난 10월21일 "딸 명의로 된 집에 거주하는 것을 CCTV로 확인했지만 나승렬이 '딸 집에 놀러온 것'이라고 부인해 징수에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취재 결과 문제의 아파트는 지난 8월 법원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채권자는 솔로몬저축은행의 파산관재인인 예금보험공사였다.

기자는 현정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자택을 찾았지만 아파트 경비업체에 제지당했다. 연락처를 남겼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현정씨는 최근까지 만강학원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시 40억·국세청 38억 10년째 체납
'땅부자' 직계·친인척은 여전히 재벌급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1월 만강학원이 소유하고 있는 대구 달성군 소재 D공고의 학교 이전 추진 과정에서 이사장이었던 영돈씨 등이 업무상 배임을 저지른 정황을 포착해 관할 교육청에 통보했다. 대구시교육청 사학담당 관계자는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영돈씨 등을 검찰에 고발했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교육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영돈씨는 학교 이전 예정부지 약 1만여평을 22억4000만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학교위치 변경 승인 전에는 재단명의로 학교이전 예정 부지를 취득할 수 없다"고 고지했다.

이 같은 과정을 미리 예측했던 영돈씨는 만강학원과 특수 관계인 소원기업(구 만강개발)에 부지를 매입하도록 했다. 소원기업은 34억9000만원에 해당 부지와 인근 토지를 사들였다. 이후 만강학원은 소원기업의 부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시행했다. 토지 감정가(146억여원)는 학교용지란 이유로 100억원 넘게 부풀려졌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 이전 부지의 적정 시가는 12억47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만강학원은 소원기업의 토지를 75억원이나 주고 매입했다. 교육청은 "만강학원이 38억여원이나 비싸게 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처분이 까다로운 사학재단의 돈을 빼돌려 관계사를 통해 자금을 세탁한 것이다. 소원기업의 대표는 거평그룹 기획조정실을 거쳐 기린의 비상근 이사가 된 우모씨(1961년생)였다. 당시 우씨는 나승렬 일가가 세운 부동산 관리업체 (주)용인에코벨리의 대표이사도 겸했다.

그런데 (주)용인에코벨리, 소원기업, 만강건설PFV는 얼마 전까지 같은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다. 한때 소원기업의 주소지로 등록됐던 서울 서초구 소재 고급 비즈니스센터를 찾아갔지만 "그런 회사는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우씨는 영돈씨가 물러난 후 만강학원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청은 "재단 소유주의 친인척이나 관계인이 이사가 돼도 이를 제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승렬의 부인인 박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유명 아트홀에서 전통 국악공연을 선보였다. 박씨는 자리를 메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38세금징수과는 "박씨가 체납한 세금이 있다"고 말했다. 2012년 2월 나승렬은 D공고의 마이스터 고등학교 유치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는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과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이 함께했다.

같은 해 장녀 나윤주씨는 고가의 사치품을 구매했던 것으로 의심됐다. 나승렬의 손녀는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했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죄 없는 아이를 볼모로 서류를 조작한 것이다.

D공고의 학교 이전 예정일은 내년 3월1일이다. 만강학원은 학교 이전이 완료되면 남은 후적지에 아파트를 세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만강건설PFV가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씨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사장님(영돈씨)이 30%, 사모님이 35%, 자매가 5%씩 지분을 갖고 있다. 나는 지분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김씨를 통해 영돈씨 등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거절당했다.

가족은 잘 산다

나승렬은 거평그룹 부도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같은 수법으로 거액의 차명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나승렬 일가 및 측근들은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수십·수백원대 주식·부동산 부자로 등극했다. 거평그룹을 믿었던 임차인, 협력업체 직원들만 피눈물을 뿌렸다. 하지만 세무당국 관계자는 "남편이 세금을 체납했다고 해서 배우자의 재산을 강제로 징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없다"고 답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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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