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어린이를 주 관람층으로 삼은 미술관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에 없었다. 헬로우뮤지움은 지난 2007년 11월14일 국내 최초의 사립 어린이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는 어느덧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동안 헬로우뮤지움의 위상도 함께 높아졌다. 수준 높은 전시와 놀이형 맞춤 프로그램으로 국내 미술교육의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다.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을 만나 개관 7주년을 맞은 소감을 물었다.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은 전도유망한 큐레이터였다.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개인 작업보다는 전시 기획에 흥미를 느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무렵 김 관장의 마음속에는 미술교육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이 자라고 있었다.
개관 7주년 맞아
김 관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관교육학을 전공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한국관에서 경력을 쌓았다. 귀국 즈음에는 국내 1세대 '에듀케이터'가 돼있었다.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한 용산박물관 개관에 참여한 그는 어린이박물관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김 관장은 어린이박물관이 아닌 어린이미술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해진 구성에 따라 유물을 그저 보기만 하는 관람문화에서 탈피해 어린이 스스로가 미술에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는 형태의 문화기관을 만든 것이다.
김 관장은 "박물관은 어쩌면 과거의 유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박물관은 전쟁에서 승리한 쪽이 귀족을 상대로 전리품을 전시하던 데서 비롯됐다. 소장품이 많은 박물관은 자연스레 정치·문화적 우월성을 획득했다. 따라서 박물관은 태생적으로 '계몽'이란 목적을 갖고 있고, 문턱이 높다는 것이 김 관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찻잔에 새겨진 그림도 미적가치를 지닐 수 있는 사회가 됐다. 맹목적으로 소장품을 보기 위해 박물관에 가던 시절은 지났다. 김 관장은 "내 집 앞에 편하게 갈 수 있는 미술관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7년 김 관장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헬로우뮤지움을 개관했다. 헬로우뮤지움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헬로우뮤지움은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삼성어린이박물관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세계어린이박물관협회에 등록되기도 했다.
수준 높은 전시와 놀이형 맞춤 프로그램
유망한 큐레이터서 미술교육전문가 변신
시행착오가 있을 법 했지만 헬로우뮤지움은 큰 부침 없이 꾸준히 성장했다. 매년 미술관을 찾는 관객이 늘었고, 지난 2012년에는 예술의전당으로 전시 장소를 옮겨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지역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고려해 서울 서남부에서 기획전을 갖기도 했다. 김 관장을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이 노력한 결과 헬로우뮤지움은 훌륭한 미술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관장은 "어린이뿐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미술관은 건립 사례가 많지 않다. 최근 헬로우뮤지움에 작품을 내건 한 스웨덴 출신 유명 디자이너는 국내에 어린이미술관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국가의 예술문화 지원정책과 관련해 김 관장은 "외국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추세"라면서 "오히려 우리나라가 나은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헬로우뮤지움은 거대 재단을 등에 업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마다 기획안을 올려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획과 전시, 연구와 포럼 등을 통해 수년간 축적된 전문데이터는 어린이 미술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김 관장은 어린이가 미술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끔 주입식이 아닌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숨바꼭질 등과 같은 놀이와 미술 체험을 결합시킨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1년에 한 번씩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으로 전시를 갖는데 "부족해 보이더라도 아이가 표현한 것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라는 것이 김 관장의 견해다.
새로운 이정표
김 관장은 지난 어린이날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자신보다 키가 커진 남자아이가 찾아와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선생님 저 이제 여기 못 와요. 올해부터는 어린이가 아니거든요"라고 퉁명스레 말했다. 이 아이는 어린 시절 미술관에서 그림을 만끽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유년기의 마지막을 추억하기 위해 헬로우뮤지움을 찾았다. 헬로우뮤지움을 다녀간 수많은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 나가는 문화인이 되길 바래본다.
[김이삭 관장은?]
▲조지워싱턴대 미술관교육학 석사
▲전 스미소니언 박물관 내셔널겔러리 교육프로그램 담당자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 에듀케이터
▲박물관·미술관 교육학예사(문화부 1호)
▲한국유아정책연구소 예술분야 심의위원
▲한국사립미술관협회·한국박물관학회 이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