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군이 들쑤신' 동두천 가보니

기지촌 불은 꺼졌지만…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시기가 2020년대 중반 이후로 미뤄졌다. 사실상 무기한 연기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달 23일 제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같이 협의하고, 미2사단의 210화력여단을 동두천 캠프케이시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동두천 시민들은 반발했다. "60년을 참고 살았는데 더는 못 참겠다"며 "청와대 상경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별렀다. 5일 오후 미2사단 정문 앞에선 미군 잔류결정에 반대하는 '동두천시민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 정부의 약속 파기를 따져 물었다.

지난 4일 동두천시청 앞에는 20여명의 고교생이 모여 현장학습을 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났는지 자전거를 타고 시청 옆길을 지나가는 중학생도 있었다. 청사 정면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는 이 아이들에게 남겨줄 동두천시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동두천 지원 없는 미군 잔류 절대 반대."

얼핏 반미구호를 연상케 하는 현수막은 청사뿐아니라 시내 한복판에도 버젓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현수막 하단에는 주로 보수시민단체의 명의가 적혀 있었다. 동두천시 안에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반미 아냐"

박용선 동두천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 사무장은 보산동 중심가로 기자를 안내했다. 박 사무장이 건넨 첫 마디는 "한 번 거리를 보세요. 사람이 없습니다"였다. 허울이 좋아 중심가였지 행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동두천시를 관통하는 지하철 1호선 보산역 앞 상점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 남짓한 이른 저녁시간 동안 가게를 찾은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인근 가게는 모두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종료한 듯 했다.

한국전쟁 휴전과 함께 미군이 주둔하면서 동두천시는 자연스레 기지촌 역할을 했다. 많은 상인은 미군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때문에 미군은 그들에게 일종의 전략적 동반자였다. 그렇게 63년을 살았다. 명암은 뚜렷했다. 경제적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졌고, 한편에선 늘 기지촌이란 오명에 짓눌려 살아야 했다.

박 사무장도 그랬다. 그는 "솔직히 어릴 때 (미군과 한국인이) 거리에서 진한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부끄러웠다"며 "요즘은 현저히 줄었지만 그때는 크고 작은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참고 살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시민들이 지금껏 동두천에 터를 잡고 살았던 것은 정부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002년 LPP(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2016년까지 동두천에 주둔하는 미군을 평택으로 완전 이주하기로 협의했다. 미군이 떠나고 남은 캠프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생활·여가·교육시설 등으로 탈바꿈할 것이라 기대됐다.

그러나 시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23일 제46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2사단 210화력여단을 동두천 캠프케이시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했다. 동두천시민들의 상실감은 컸다. 시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도시개발계획은 삽도 떠보기 전에 중단됐다. 많은 시민들은 "미군이 주둔하는 한 동두천시는 영원히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탄식했다. 왜일까.

전작권 전환 미루면서 미군 사실상 잔류
도시개발계획 수포…시민들 반발 최고조


박 사무장은 "동두천시의 절반 가까이를 미군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무상 제공한 미군 공여지는 40.63㎢로 시 전체면적(95.68㎢)의 42%를 차지했다. 여기에 주민 대부분이 미군을 상대하는 자영업자인 것을 고려하면 미군이 활용하는 땅은 훨씬 넓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문제는 미군이 쓰고 있는 토지에 비해 경제 기여도가 낮다는 점이다. 박 사무장은 "한때 2만명 넘게 주둔하던 미군이 지금은 2000여명 수준으로 줄었다"며 "미군 1명당 1만평씩 깔고 앉아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수치(2014년 기준 미군 규모는 약 4000여명으로 추산된다)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그만큼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은 상당했다.

클럽가의 원조나 다름없는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는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들었다. 오후 영업을 준비해야 할 클럽이나 주점 등은 적막했다. 호황을 누렸던 옷가게도 서너 곳만 명맥을 잇고 있었다. 보산역 개통과 함께 미군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분위기의 홍대나 이태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클럽가의 몰락은 주변 상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객관적인 지표라 할 수 있는 경기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0여년간 동두천시가 입은 경제적 피해액은 18조원으로 추산됐다. 또 매년 300억원대의 재산세 손실이 추정 집계됐다.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매년 430억원의 지방세와 연간 32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한종갑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장은 재향군인회 출신이다. 그는 "우리가 반미하자는 것도 아니고 희생에 상응하는 합당한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미군의 존재가 한때는 안보적인 불안을 해소했던 것도 맞다"며 "시 인구가 채 10만명도 안 되는데 인구 유입이 안 되는 것은 지역에 변변한 공장 하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그러면서 국방부로부터 받은 문서를 공개했다. 대책위가 9월26일 '동두천에 미군이 잔류하는 것'이냐고 물은 것에 대한 답변이다. 10월13일 국방부는 "미2사단이 LPP에 따라 재배치되면 계획대로 평택으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는 같은달 24일 SCM에서 LPP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불과 9일 만에 자신들의 답변을 뒤집은 셈이다. 일부 언론은 미군 기관지 <성조>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동두천 캠프케이시 잔류를 먼저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평택 기지로의 이전이 지연되면서 우리 정부가 부담하게 될 이자는 연간 84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한 위원장은 "기본적인 행정이라면 주민과 최소한 협의를 거치든가 그게 어려웠으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려줬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평택의 경우는 '국가지원도시'로 지정돼 국고보조를 받고 있지만 동두천은 정부 지원 없이 미군 입만 쳐다보다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제는 파탄

기자가 방문한 당일 미2사단 정문 앞에선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박 사무장은 "집회 신고를 해도 경찰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1인 시위에 참석한 김성보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장은 "여건이 되는 한 계속 (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시민 2000여명은 같은 곳에 모여 '동두천시민 규탄대회'를 열었다. 동두천시는 지금 폭풍전야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두천시 범시민 궐기대회


지난 5일 미군 잔류에 반대하는 '동두천시민 규탄대회'가 미2사단 정문 앞에서 열렸다. 동두천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집회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약속을 뒤집은 박근혜정부를 강력 규탄했다. 이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잔류가 불가피하다면 평택에 준하는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뿐 아니라 공무원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선두에서 집회를 독려했다. 오 시장은 "지난달 24일 정부는 동두천 미군기지 이전 약속을 깨고 아무 대책 없이 210여단을 남기겠다고 통보했다"며 "동두천을 폐허로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오 시장은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두시민이 국방을 위해 희생한다면 그에 따른 최소한의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1200여명(주최측 추산 200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구호 제창을 하다 기습적으로 캠프 케이시 정문으로 행진을 시도했으며 이를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지속된 대치는 오 시장이 흥분한 시민들을 설득하면서 마무리됐다. 이후 시위대는 예정대로 중앙시장 쪽으로 행진했다.

한편 경찰은 시위대 중 일부가 현행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사법처리할 방침을 밝혔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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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