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금' 국내 유입설 진상

김정일 공작금으로 선거 지원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과정에서 북한발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현역 국회의원 2명이 북한에서 건너온 자금을 지원받아 선거에 출마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21일 주체사상 이념서인 '강철서신'의 저자로 알려진 김영환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당 해산심판 청구 16차 공개변론에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두 의원이 법적대응을 불사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고도로 계획된 '종북몰이'일까. 아니면 밝혀지지 못한 '진실'이 있는 것일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관련한 증언이 나온 게 빌미가 됐다. 그리고 이 '말'을 하루 종일 특종으로 보도할 수 있는 'TV'가 있다는 게 과거와 다른 점이다.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총책이었던 김영환씨는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구미가 당길 증언을 했다. 이날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상규·김미희(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고, 이 돈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이었다"고 말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과거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주장에 언론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영환 '배신'
이석기 '감옥'

김씨는 1990년대 북한과 연계된 지하혁명조직 민혁당의 창당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 언론은 그를 '주사파의 대부'라고 칭하지만 이제 '대부'라는 수사는 적절치 않다는 게 '운동권'의 시각이다.

실제 김씨는 북한이 관리하는 점조직원에 불과했다. 지하조직의 핵심 인물들은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잦았다.


서울대 82학번이었던 김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독재자'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독재자'를 흠모한 것이다. 그의 필명으로 사용된 '강철(Steel)'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을 추종해 지어졌다고 한다.

김씨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89년 김씨는 북에서 남파된 간첩 진운방(가명·현재 사망)과 접촉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김씨는 북쪽에서 내려 보낸 잠수함을 타고 황해도 해주에 발을 디뎠다. 김씨는 북한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김일성 주석이 있는 묘향산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김 주석에게 남한지하조직 건설을 승인받았다. 남한으로 내려온 김씨는 1992년 3월 비밀조직 민혁당을 결성했다. 민혁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적시했다.

당사자 두 의원 결백 주장
"왜 수사 안했나" 강력 반발

김씨는 이 과정에서 북한으로부터 비밀리에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내용을 참조하면 북한은 공작금 명목으로 인천 강화도 인근에 미화 40만달러를 매립했다. 김씨는 이 돈을 땅에서 파낸 뒤 필요할 때마다 환전해 사용했다.

민혁당 중앙위원장(사실상 서열 1위)이었던 김씨는 당 하부조직에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 입후보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해당 지시를 북한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민혁당의 결정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성남에서는 김미희 의원이, 구로에서는 이상규 의원이 각각 시·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김씨는 "이때 후보 1명당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보도와 민혁당 사건 판결문을 일부 참조했다. 훗날 김씨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이른바 '사상전향'을 하게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씨가 체포될 당시 민혁당 중앙위원회는 모두 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은 수학강사인 하모씨와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가 된 박모씨, 그리고 김씨가 중앙위원회 멤버였다.

이들 중 김씨는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아 조직을 장악했다. 민혁당 사건에서 국정원은 주사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민혁당의 전신으로 지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직의 총책은 하씨였다고 전해진다.


과거 한총련 지근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과 직접 접선하는 연락책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만의 후계구도가 명확해 후계자로 낙점되지 못하면 누가 연락책인지 알 수 없었고, 외부로도 그 사실을 발설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운동권 문화 특성상 북한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비밀 조직원이 이른바 '판'을 주도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북한을 다녀온 김씨가 조직의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김씨는 1995년 민혁당 자진 해산을 결정한다. 북한정권에 회의감을 느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박씨 역시 해산에 동의했다. 하지만 하씨는 신념에 따라 끝내 해산을 거부했다. 이후 하씨는 1999년 민혁당 사건 핵심인물로 지목돼 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2003년 참여정부 당시 특별사면)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과거 하씨가 민혁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하부조직인 경기남부위원회를 장악했었다는 점을 들어 통합진보당 내분사태의 배후로 엮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경기남부위원회의 위원장은 내란선동죄로 수감된 이석기 의원이었다.

그러나 하씨는 2012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언론이) 나를 도구로 이용해 북과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지난해 아버님 상 당했을 때 문상 온 것 말고는 이석기 의원과 10여년 동안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기록 있는데
믿을 수 있나

그런데 하씨는 김씨에 의해 또 다시 과거로 소환됐다. 먼저 김씨는 1995년께 문제의 자금을 하씨를 통해 이상규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같은 기간 하씨를 통해 이석기 의원에게 돈을 건넸는데 이 돈이 결국 김미희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때 이상규 의원은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상규 의원과 김씨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며 같은 서클에서 활동한 바 있다.

1999년 <한겨레>와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민혁당 사건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 등에게 500만∼1000만원을 지급했고,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씨 등에게 1000만원을 지급했다.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된 사람은 모두 6명이었고, 재판 과정에서 이상규 의원의 이름은 실제로 등장한다. <민중의 소리>는 "김씨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를 포함한 3명에게 각 500만원을,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 후보 등 2명에게 각 1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단 김미희 의원은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기록에 김미희 의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또 김씨는 "김미희 의원이 민혁당 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인 데다 자금 흐름이 불분명해 이 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는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은 김씨가 1996년에도 부산지역 총선에 출마한 이씨에게 자금을 대줬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1995년께 민혁당 해산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김씨가 민혁당 활동에서 손을 뗀 시기는 이보다 늦은 1997년께로 추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민혁당 당원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민혁당 사건은 1998년 남한으로 내려왔던 진운방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망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진운방은 타고 있던 반잠수정 안에서 남한군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았다. 3개월이 지난 1999년 1월 인양된 반잠수정 안에선 북쪽이 작성한 각종 암호문이 나왔고, 이 가운데는 민혁당과 관련한 핵심 정보가 있었다. 국정원은 자체 해산한 민혁당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국 체류 중이던 김씨는 한국으로 입국해 자수했다. 김씨는 사상전향서를 쓰고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다. 함께 활동한 조유식(현 알라딘서점 대표)씨 등도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기소되지 않았다. 민혁당 해체 후 조직 재건에 나섰던 하씨 등 일부만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수사망을 피해 은신한 이석기 의원은 2002년 체포돼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으로 뒤늦게 실형(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관련 재판에서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증인으로 나서 민혁당 활동을 진술한 사실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석기 의원이 북한 자금을 받아 선거에 활용한 혐의는 판결문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과 그의 부인은 민혁당 사건 후 법정 이혼했다.

통진당 해산심판 과정서 의혹 제기
김영환 정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


김씨의 증언 다음날 김미희·이상규 의원은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는 본인의 새빨간 거짓말에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허무맹랑한 종북선동에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번 망언은 검찰과 법무부, 국정원이 공모해 진보당을 없애려는 해산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김영환의 망언에 대해 향후 법적인 책임을 물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의원은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김씨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라며 "진술이 그대로 인용 보도되면서 진위와 관계없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김씨가 한 증언의 진위 여부가 가려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통진당 반발
김영환 고소


이상규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에서 준 자금으로 20년 전에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면, 왜 저는 단 1원도 구경을 못 했느냐"며 "그 자금 당장 갖고 오라"고 비판했다.

또 YT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만약 그런 돈을 기부해 준 사람이 있다면 (현행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조사를 받지 않았다"며 "통합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하거나 폭력혁명노선을 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미희-<TV조선> 무슨 일이…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은 지난 22일 '신분 속인 기자와 TV조선에 공식사과 촉구'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최모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 카메라기자 등과 함께 의원실로 들어와 연합뉴스에서 왔다며 전날(21일) 김영환씨가 증언한 것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인터뷰에 불응했다. 이어 "명함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명함이 없다"며 서둘러 의원실을 나갔다. 김 의원은 "이로부터 13분 후 최 기자가 의원실로 전화를 걸어 사실은 TV조선기자인데 인터뷰를 거절할까봐 연합뉴스라고 속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사전 약속 없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을 속인 것은 기자윤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의원에 대한 모독이며 사기다"라며 "최 기자와 소속언론사인 TV조선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며, 진심어린 공개사과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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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