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인선 관전포인트' 막후 파워게임 전말

청와대·정치권·금융권 지원군 전쟁 승자는?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KB금융 사태가 다시 재현될 것인가.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싼 막후 쟁탈전이 치열하다. 소수 권력집단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가장 잘 부합하는 회장을 앉히기 위해 이미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 그룹이 먼저 발을 뻗었고, 이에 대항해 노동계가 움직였다. 유력 후보군을 앞세운 정치권은 호시탐탐 입김을 불어넣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파워게임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권력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를 돌연 사퇴했다. 지난 8일 금융권 한 관계자는 김옥찬 전 행장이 KB금융지주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앞서 회추위는 지난 2일 제3차 회의를 열고, 전체 84명의 후보군 가운데 9명의 1차 후보를 결정했다. 이 중 후보군에 포함됐던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최종 후보군은 8명으로 압축됐다. 여기에 김옥찬 전 행장까지 사퇴행렬에 동참하면서 후보군은 다시 7명으로 추려졌다. 회추위는 오는 16일 제4차 회의에서 차기 회장 후보를 4명으로 좁히고, 이달 말까지는 1명의 최종후보를 선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인가
낙하산인가

지난 10일 기준 남은 7명의 후보는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양승우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회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CFO),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다. 정치권과 금융권의 말을 종합하면 위 7명의 후보 가운데 최종후보 선정이 유력한 후보는 모두 3명이다. 이들은 각각 정치인과 관료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급된 3명의 면면을 살펴보기 전에 이철휘 사장과 김옥찬 전 행장의 사퇴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철휘 사장은 9명의 후보 가운데 정통 모피아로 꼽힌다. 행정고시 17기로 재정경제부 공보관과 국고국장,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이철휘 사장과 KB금융지주는 지난 정권 때 악연으로 부딪혔다. 2009년 있었던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당시 이철휘 사장은 막판까지 후보로 경쟁했다. 그러나 최종후보를 추리는 과정에서 "BH(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선진국민연대 출신 정모 비서관이 회장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철휘 사장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이사진 면접을 거부한 뒤 후보직을 사퇴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사퇴를 종용한 것이란 소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뒤늦은 사실 확인에 나서 정 비서관의 혐의를 벗겨줬다. 이 같은 앙금은 이철휘 사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철휘 사장은 이번 회추위 발표 직후 후보에서 서둘러 사퇴했다. KB금융지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KB금융지주 측은 "이철휘 사장이 '후보로 선정된 것은 영광이지만 사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일한 '관 출신'이던 이철휘 사장의 사퇴로 KB금융지주 회장 선출은 '내부인사' 대 '외부인사' 구도로 재편됐다. 그런데 내부인사의 대표격인 김옥찬 전 행장이 물러나면서 무게의 추는 외부인사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분위기다.

김옥찬 전 행장은 KB금융지주에서만 경력을 쌓은 자타공인 'KB맨'이다. 재직기간만 31년에 이른다. 일각에선 "국민은행 출신으로 주택은행계와 갈등 요인이 있었다"며 깎아내렸다. 그러나 주택은행계가 내심 밀었던 인물은 김옥찬 전 행장이란 얘기도 들린다.

성낙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주택은행 출신이지만 김옥찬 전 행장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후보 선정에 앞서 노조 측은 회추위와 면담을 갖고 내부 출신을 회장으로 선임해 줄 것을 적극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영진 회추위 의장 대행은 "외풍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외이사들이 동의하고 있다"며 내부인사를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면담 이후 이른바 '노치(勞治)' 논란이 언론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정보의 근원은 외부출신 인사를 밀고 있는 '특정세력'으로 의심됐다. 노조 측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선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반대론자들은 "전문성과 중량감이 떨어질 수 있다"며 노조의 개입을 적극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내부인사의 입지는 좁아졌다. 성 위원장과 만난 김옥찬 전 행장은 노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러 갈등을 우려해 사퇴를 선택했다. 더구나 내부 출신이 회장이 되면 노조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 경합 중인 외부인사는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한쪽에서는 김옥찬 전 행장에게 "일종의 딜이 들어오지 않았겠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김옥찬 전 행장은 지난해 7월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과 은행장 자리를 놓고 경합하다가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김옥찬 전 행장을 밀어낸 이건호 은행장(현재 사임)은 짧은 은행경력으로 이른바 '낙하산' 논란을 지폈다. 이는 KB금융지주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됐다.

관련한 과정을 지켜본 김 전 행장은 또다시 내부인사 대 외부인사 구도가 짜인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후보 접수 절차가 진행 중인 서울신용보증기금 사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문제는 김옥찬 전 행장이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부분인데 정권 차원의 입김(혹은 배려)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기회장 선임 과정서 '내 사람심기' 감지
'박근혜라인' 이동걸 급부상…내부인사 주춤
'산 권력'이냐 '뜬 권력'이냐

KB금융지주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다. 그러나 주인에 근접해 있는 권력은 존재한다. 바로 정부다. KB금융지주는 정부가 이사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그간 정부는 KB금융지주 회장을 사실상 내정했다. 낙하산 논란이 해마다 되풀이된 이유다.

또 역대 회장은 저마다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고 사임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속된 말로 ‘찍어내기’를 당한 셈이다. 최근 물러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렸다는 게 정설이다.

금융당국이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내부 관계자는 많지 않다. 임 전 회장의 경질을 예상한 시점에 이미 대체 후보를 염두에 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금융권 일각에선 모피아와 말이 통하는 특정후보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항명의 여지가 다분한 모 후보는 금융당국이 기피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KB금융 사태에서 엇박자를 낸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미묘한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적으로 금감원의 관심이 더 높은데 KB금융지주가 정상화되면 그에 따른 '명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는 최 원장이 차기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할 것이란 소문과 맞물려 양 기관의 셈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모피아 그룹이 지지하는 후보 쪽에 금융위가, 정권이 미는 후보 쪽에 금감원이 각각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는 NO?
외부는 YES?

최근 복수 언론은 이동걸 전 부회장을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꼽았다. 금융권도 '이동걸 대세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동걸 전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금융인들을 모아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한 대표 TK(대구·경북)인맥이기도 하다.

현재 금융권 회장단 대부분은 TK와 PK(부산·경남)로 채워져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경남고 출신이며, 김종준 하나은행장도 고향이 부산이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대구고 동문이다. 박근혜정부가 해왔던 고위직 인사 경험과 이동걸 전 부회장의 이력·출신 등을 종합하면 그를 제칠 만한 후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권이 내려 보낸 낙하산이란 시선이 부담이라면 부담이다.

이동걸 전 부회장을 지지하는 쪽은 그가 KB금융지주를 거치지 않은 '순수 외부인사'란 사실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거꾸로 이동걸 전 부회장을 반대하는 쪽은 "다른 사람은 돼도 이동걸만은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노조는 "차기 회장은 내부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이동걸 전 부회장에게 전달하는 등 강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내부인사 가운데 특별히 믿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신 있는 내부 출신보다는 코드가 맞는 외부 출신을 앉혀놔야 정권 입장에서 덜 불안하지 않겠냐"며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후보가 있다. 바로 하영구 은행장이다.

하영구 은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의 전신인 한미은행장으로 2001년 취임해 현재까지 10년 넘게 연임 중이다. 2010년부터는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을 겸했다.

현 금융당국 최고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보였던 신 위원장은 하영구 은행장을 통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하영구 은행장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같은 회사(한국씨티은행)에서 행장과 부행장으로 일했다. 뿐만 아니라 하영구 은행장은 대관업무를 위주로 정관계와 두터운 교분을 쌓았는데 그때의 공로가 이번 인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단 하영구 은행장은 현직 금융지주 회장이 다른 곳도 아닌 경쟁 금융회사 회장으로 지원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울러 10년이 넘는 은행장 경력이 있음에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한 점이 리스크로 분류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동걸 대 하영구' 구도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중대 변수로는 최경환 부총리가 언급된다. 국내 경제정책을 총괄할뿐더러 '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은 최경환 부총리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능가하는 실력자로 부상 중이다. KB금융지주가 사실상 정부 영향하에 있는 만큼 최 부총리의 의중은 후보자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권 입장에서 총자산 300조원의 금융회사 회장 선출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반면 최 부총리가 월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할 경우 청와대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2인자'를 용납해오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상 이번 회장 선출은 둘의 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친박계에 대항하는 비박계가 내부인사 선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노조 측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일화는 이를 암시한다. 만약 내부 출신이 여러 악조건을 뚫고 회장이 된다면 그 자리는 윤종규 전 부사장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점쳐진다.

마지막 반전
어디서 터질까

윤종규 전 부사장은 2002년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이 영입한 인물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것이 강점이다. 무엇보다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역임해 회추위 구성원인 사외이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희망적인 부분이다. 차기 회장 후보는 회추위 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 1명이 선정된다.

때문에 '본선'까지만 가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옥찬 전 행장에게 쏠린 표심이 윤종규 전 부사장에게 더해질 것도 예상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윤종규 전 부사장의 거취를 놓고, 그를 떨어뜨리기 위한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 간에 치열한 물밑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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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쪼개는 보이지 않는 손

민주당 쪼개는 보이지 않는 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7일 이재명정부가 출범 6개월을 맞았다. 정부가 안정 궤도에 접어들면서 탄핵 정국부터 바짝 긴장한 더불어민주당의 결집력이 이전보다 느슨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을 형성하고 때로는 한발 앞서 나가는 당원들에 의해 각기 다른 목소리가 분출되면서 이견이 드러난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린다는 지적이 나온 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개딸(개혁의 딸)을 자처하고 나선 ‘원조’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팬덤 정치 대물림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놓고 개딸의 집단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했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이들은 친문(친 문재인),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 이름이 적힌 ‘수박 리스트’를 만들어 문자 폭탄을 돌렸다. 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 체포동의안에 부결했다는 확답 메시지를 받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는 ‘수박 색출’ 인증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일각에서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말리는 의원은 없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차기 권력이 누구인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았던 탓이다. 당시 이 대표를 따르는 팬덤은 점점 커졌고, 여기에 올라타는 정치인이 대거 확산되면서 견고한 친명(친 이재명)계 울타리가 세워졌다. ‘개딸에 휘둘리는 민주당’을 정면으로 비판하던 비명계 일부는 4·10 총선에서 컷오프됐고 이들 중 다수가 탈당하는 등 심리적 분당 상태로까지 내몰렸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팬덤이 들어섰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내걸었고, 개혁 의지로 똘똘 뭉친 민주당은 가장 강하고 전투적인 인물(정청래 후보)을 차기 대표로 세웠다. 지난 8월 전당대회서 당선된 정청래 대표 역시 ‘강경파’ 꼬리표를 달고 당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내란의 밤을 뒤로하고 이제는 강력한 개혁으로 대한민국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정 대표는 수락 연설을 통해 ‘당원 주권’이라는 단어를 거듭 강조했다. 정 대표는 “강력한 개혁 당 대표가 되겠다는 약속대로 검찰, 언론, 사법개혁을 추석 전에 반드시 마무리하고 전당대회가 끝난 즉시 검찰·언론·사법개혁TF를 가동시키겠다”며 “당원 주권 정당으로 1인 1표 시대를 열겠다. 당원 주권 정당 TF도 열어 당헌당규를 정비하고 중요한 당 의사 결정은 당원의 뜻을 묻도록 전 당원 투표를 상설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기점으로 당원중심주의라는 명분을 등에 업은 강성 지지층의 지배력이 빠르게 확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빈틈없이 굴러갔던 민주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와 엇박자를 보이는 정 대표를 향해 ‘자기 정치’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국민의힘과 협치를 보인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에게 사퇴 요구가 쏟아졌다. ‘개딸’이 밀어준 이재명, 정청래는? 마음 안 들면 ‘수박’…사라진 다양성 3대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민주당 의원에게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일컫는 은어)’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개혁 과도기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건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라지만 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경우 원인을 찾아 개혁의 걸림돌로 낙인 찍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등 다양성을 묵살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당원들의 목소리가 커진 건 ‘검찰개혁’의 속도와 수위를 두고 당정간의 온도 차가 노출되면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민주당은 강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장 검찰청을 없애자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실은 형사사법 체계를 바꾸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통해 논란을 최소화하기를 바랐다. 이후 사법개혁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조용한 개혁’을 주문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만이 터졌다. 우상호 대통령실 수석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접근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시끄럽지 않게 개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전하는 등 당정 간의 온도 차가 드러난 것이다. 강하게 개혁 고삐를 쥔 정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개혁의 적기라고 판단한 강성 지지층도 힘을 보탰다. 정 대표는 우 수석의 발언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상기하자 검찰 만행, 잊지 말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상기하자 조희대의 난, 잊지 말자 사법개혁!” 등의 글을 여러 차례 게시하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진통 끝에 개혁을 매듭지은 정 대표는 ‘1인1표제’를 시작으로 본격 당원 주권 시대를 열어젖혔다. 정 대표가 추진한 1인1표제는 당헌·당규상 현행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선출할 때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이 20:1 미만으로 규정된 것을 1대1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이를 기반으로 강성 지지층의 당내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이틀에 걸쳐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한 전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1인1표제 찬성률은 86.81%로 집계됐다. 이를 토대로 정 대표는 “90% 가까운 당원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대한민국 어느 조직도 1인 1표, 헌법에서 보장한 평등 정신을 위반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 투표율이 16.81%에 그치는 등 한계점도 드러났다. 결국 1인1표제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중앙위원회로 넘어갔다. 꺾이지 않는 여론 증폭기 지난 5일 중앙위원회에서 ‘1인1표제 도입을 위한 당헌 개정의 건’에 대한 투표를 진행한 결과 부결로 마무리됐다. 찬성 수는 271명, 반대 수는 102명으로 과반(299명) 찬성을 얻지 못한 것이다. ‘당원 대다수가 찬성했다’는 주장과 달리 정 대표의 ‘자기정치’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투표 직후 정 대표는 “전당대회 때 약속한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돼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1인1표 당헌개정안은 지금 즉시 재부의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며 당원에게 사과했다. 이어 “따라서 부결된 제2호 안건 1인1표제는 당분간 재부의하기 어렵게 됐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정부의 국민 주권 시대에 걸맞은 당원 주권 시대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당원들에게 길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당원들의 반응은 당혹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각종 친민주당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대의원을 ‘기득권’이라고 지적하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원 주권 명분을 앞세웠던 만큼 당내 기득권 세력에 의해 당의 ‘진짜 주인’인 당원의 목소리가 묻혔다는 점에서다. 지지자들은 커뮤니티, 유튜브 등의 공간에서 1인1표제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쏟아냈고, 앞과 다를 바 없이 ‘정청래의 자기 정치’와 ‘개혁 발목을 잡는 수박’이라는 두 프레임의 싸움으로 번졌다. 강성 지지층과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친민주당 성향 유튜브가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팬덤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우리(국민의힘)도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민주당은 굵직한 소통 창구가 정해져 있어 위(지도부)에서 지령이 떨어지면 의원들이 주요 유튜브에 출연해 아젠다 세팅을 하고 톤을 맞추는 등 깔끔하게 움직인다”며 “지금 국민의힘은 각개전투 중이고 출연하는 유튜브도 메시지도 다 다르다. 여론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니 쌍방향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성 지지층의 중심에 선 정 대표는 이미 ‘뉴스공장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이하 뉴스공장)’와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를 띄우면서 스피커를 키웠다. 정 대표는 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 워크숍에 참석해 “우리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봤을 때 <딴지일보>가 가장 바로미터다. 거기 흐름이 민심을 보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요즘 언론에서 <딴지일보> 게시판에 글 쓴다고 그러는데 저는 10년 동안 1500번 썼다. 평균 이틀에 한번 썼다”며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갈라치기 책임 전가 이 같은 정 대표의 주장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이었다. 곽 의원은 (뉴스 공장)을 향해 “이런 유튜브 방송이 ‘유튜브 권력자’라면, 저는 그분들께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반기를 들었다.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한 곽 의원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경선에서 손을 떼라’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셨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각종 커뮤니티 등 온라인 공간은 곽 의원을 향한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됐고 기사에 ‘좌표’를 찍는 등 지지층이 집단으로 움직였다. 강성 지지층은 지난해 치러진 국회의장 선거나 전당대회 등 크고 작은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정치 양극화가 강해지는 만큼 내년 치러질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해석이다. 먼저 다음달 11일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예정돼있다.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전현희·한준호·김병주 최고위원의 사퇴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중앙위원 50%·권리당원 50% 투표를 반영해 치러지는 만큼 여타 다른 선거처럼 당심 잡기가 최대 과제로 자리 잡았다. 사퇴한 최고위원 중 전현희·김병주 의원은 정 대표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분류됐던 만큼 새 지도부가 어떤 인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성격도 바뀌기 때문이다. 유동철 부산 수영지역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하자 이번 보궐선거가 친명 대 친청(친 정청래) 간의 대결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 시절 영입돼 친명으로 분류되는 유 위원장은 지난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컷오프된 뒤 정청래 지도부를 향해 “결자해지하라”며 공개적으로 항의했던 인물이다. 유 위원장은 지난 9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 보궐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당원들은 의심하고 우려하고 있다. 당내의 비민주적 제도를 개선하고 당내 권력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최고위원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현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했다. 최고위원 보선 당심 바로미터 급부상 진화 나선 당정 “우리 모두가 친명” 이어 “당 대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컷오프는 이미 현실이 됐다”며 “조직강화특위는 당헌·당규의 미비를 이용해 제어할 수 없는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주당에 무소불위의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처럼 정정당당하게 맞서 공정과 민주의 가치를 복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엔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변호인이었던 이건태 의원이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밖에도 친명계인 강득구 의원도 최고위원 후보군으로 거론되면서 당원들의 눈길도 보궐선거로 향했다. ‘심리적 분당’ 트라우마를 겪은 민주당은 다시 한번 원팀으로 모든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역시 출범 6개월째인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정 대표, 김 원내대표와 함께 만찬 자리를 가졌다.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회동서 그는 두 사람에게 “개혁 입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1인1표제가 부결되면서 정 대표의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해지자 이를 방어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민주당 역시 화합의 메시지를 내놨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에 ‘친청’은 없다. ‘친명’만 있을 뿐”이라며 “‘친명·친청’은 민주당을 분열시키려는 기우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재명정부의 성공과 공동운명체다. 이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이 민주당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외부의 갈라치기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갈라치기’는 당을 흔들고 결국 이정부를 흔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을 향해서는 “‘친명·친청’이라고 쓸 때 근거 아니면 자제를 요청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의 당부에도 이 같은 설명이 나오는 것 자체가 갈등을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앞으로 다가올 크고 작은 선거들이 한때 민주당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계파 싸움의 도화선이 될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네 편? 내 편? 한 민주당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양날의 검이 됐다”며 “(온라인은)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에 여론을 흐리려는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금세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끝없이 의심하고 반격하다 보면 같은 지지자끼리도 분란이 생긴다. 지난 전당대회서 선명성 경쟁을 할 때부터 민주당 내 갈등은 예견된 수순”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친청 라인은 강성 의원들을 시작으로 지금부터 조금씩 생길 것”이라며 “선수가 높거나 이름이 알려진 의원들은 대놓고 줄을 서지 못해도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등의 방법으로 민주당과 강성 지지층을 움직이고 있다”고 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힘도 당원 전쟁 강성 지지층을 대하는 국민의힘 상황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 6개월을 앞두고 ‘마이웨이’ 강성 우파 행보를 걸으면서 당내 중진들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서 국민의힘 지방선거총괄기획단은 ▲당원 투표 50% ▲일반인 여론조사 50%인 현재 경선 룰을 ▲당원 70% ▲일반인 여론조사 30%로 바꾸는 방안을 당 지도부에 건의했다. 당심과 민심이 다르지 않다는 취지인데, 중도 확보가 필수인 선거에서 해당 전략이 오히려 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심 70%로는 필패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밝혔으며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은 “민심에 역행하는 ‘정치적 자해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총괄기획단 위원장인 나경원 의원은 “당심 안에는 이미 민심이 녹아 있다. 당원은 국민의 일부이며 국민과 등 돌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며 “‘당심이 민심과 다르다’는 말은 결국 우리 스스로 당원을 과소평가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