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인선 관전포인트' 막후 파워게임 전말

청와대·정치권·금융권 지원군 전쟁 승자는?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KB금융 사태가 다시 재현될 것인가.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을 둘러싼 막후 쟁탈전이 치열하다. 소수 권력집단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가장 잘 부합하는 회장을 앉히기 위해 이미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 그룹이 먼저 발을 뻗었고, 이에 대항해 노동계가 움직였다. 유력 후보군을 앞세운 정치권은 호시탐탐 입김을 불어넣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파워게임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권력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이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를 돌연 사퇴했다. 지난 8일 금융권 한 관계자는 김옥찬 전 행장이 KB금융지주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에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앞서 회추위는 지난 2일 제3차 회의를 열고, 전체 84명의 후보군 가운데 9명의 1차 후보를 결정했다. 이 중 후보군에 포함됐던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최종 후보군은 8명으로 압축됐다. 여기에 김옥찬 전 행장까지 사퇴행렬에 동참하면서 후보군은 다시 7명으로 추려졌다. 회추위는 오는 16일 제4차 회의에서 차기 회장 후보를 4명으로 좁히고, 이달 말까지는 1명의 최종후보를 선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전문가인가
낙하산인가

지난 10일 기준 남은 7명의 후보는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양승우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회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CFO),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다. 정치권과 금융권의 말을 종합하면 위 7명의 후보 가운데 최종후보 선정이 유력한 후보는 모두 3명이다. 이들은 각각 정치인과 관료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급된 3명의 면면을 살펴보기 전에 이철휘 사장과 김옥찬 전 행장의 사퇴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철휘 사장은 9명의 후보 가운데 정통 모피아로 꼽힌다. 행정고시 17기로 재정경제부 공보관과 국고국장,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이철휘 사장과 KB금융지주는 지난 정권 때 악연으로 부딪혔다. 2009년 있었던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당시 이철휘 사장은 막판까지 후보로 경쟁했다. 그러나 최종후보를 추리는 과정에서 "BH(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선진국민연대 출신 정모 비서관이 회장 선임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철휘 사장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이사진 면접을 거부한 뒤 후보직을 사퇴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사퇴를 종용한 것이란 소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뒤늦은 사실 확인에 나서 정 비서관의 혐의를 벗겨줬다. 이 같은 앙금은 이철휘 사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철휘 사장은 이번 회추위 발표 직후 후보에서 서둘러 사퇴했다. KB금융지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KB금융지주 측은 "이철휘 사장이 '후보로 선정된 것은 영광이지만 사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일한 '관 출신'이던 이철휘 사장의 사퇴로 KB금융지주 회장 선출은 '내부인사' 대 '외부인사' 구도로 재편됐다. 그런데 내부인사의 대표격인 김옥찬 전 행장이 물러나면서 무게의 추는 외부인사 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분위기다.

김옥찬 전 행장은 KB금융지주에서만 경력을 쌓은 자타공인 'KB맨'이다. 재직기간만 31년에 이른다. 일각에선 "국민은행 출신으로 주택은행계와 갈등 요인이 있었다"며 깎아내렸다. 그러나 주택은행계가 내심 밀었던 인물은 김옥찬 전 행장이란 얘기도 들린다.

성낙조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주택은행 출신이지만 김옥찬 전 행장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후보 선정에 앞서 노조 측은 회추위와 면담을 갖고 내부 출신을 회장으로 선임해 줄 것을 적극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영진 회추위 의장 대행은 "외풍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외이사들이 동의하고 있다"며 내부인사를 중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면담 이후 이른바 '노치(勞治)' 논란이 언론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정보의 근원은 외부출신 인사를 밀고 있는 '특정세력'으로 의심됐다. 노조 측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을 선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반대론자들은 "전문성과 중량감이 떨어질 수 있다"며 노조의 개입을 적극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내부인사의 입지는 좁아졌다. 성 위원장과 만난 김옥찬 전 행장은 노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러 갈등을 우려해 사퇴를 선택했다. 더구나 내부 출신이 회장이 되면 노조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서 경합 중인 외부인사는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한쪽에서는 김옥찬 전 행장에게 "일종의 딜이 들어오지 않았겠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김옥찬 전 행장은 지난해 7월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과 은행장 자리를 놓고 경합하다가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김옥찬 전 행장을 밀어낸 이건호 은행장(현재 사임)은 짧은 은행경력으로 이른바 '낙하산' 논란을 지폈다. 이는 KB금융지주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됐다.

관련한 과정을 지켜본 김 전 행장은 또다시 내부인사 대 외부인사 구도가 짜인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후보 접수 절차가 진행 중인 서울신용보증기금 사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문제는 김옥찬 전 행장이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부분인데 정권 차원의 입김(혹은 배려)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차기회장 선임 과정서 '내 사람심기' 감지
'박근혜라인' 이동걸 급부상…내부인사 주춤
'산 권력'이냐 '뜬 권력'이냐

KB금융지주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다. 그러나 주인에 근접해 있는 권력은 존재한다. 바로 정부다. KB금융지주는 정부가 이사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그간 정부는 KB금융지주 회장을 사실상 내정했다. 낙하산 논란이 해마다 되풀이된 이유다.

또 역대 회장은 저마다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고 사임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속된 말로 ‘찍어내기’를 당한 셈이다. 최근 물러난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렸다는 게 정설이다.

금융당국이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내부 관계자는 많지 않다. 임 전 회장의 경질을 예상한 시점에 이미 대체 후보를 염두에 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금융권 일각에선 모피아와 말이 통하는 특정후보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항명의 여지가 다분한 모 후보는 금융당국이 기피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KB금융 사태에서 엇박자를 낸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미묘한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적으로 금감원의 관심이 더 높은데 KB금융지주가 정상화되면 그에 따른 '명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는 최 원장이 차기 금융위원장으로 영전할 것이란 소문과 맞물려 양 기관의 셈법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모피아 그룹이 지지하는 후보 쪽에 금융위가, 정권이 미는 후보 쪽에 금감원이 각각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는 NO?
외부는 YES?

최근 복수 언론은 이동걸 전 부회장을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꼽았다. 금융권도 '이동걸 대세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동걸 전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금융인들을 모아 박근혜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대구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한 대표 TK(대구·경북)인맥이기도 하다.

현재 금융권 회장단 대부분은 TK와 PK(부산·경남)로 채워져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경남고 출신이며, 김종준 하나은행장도 고향이 부산이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대구고 동문이다. 박근혜정부가 해왔던 고위직 인사 경험과 이동걸 전 부회장의 이력·출신 등을 종합하면 그를 제칠 만한 후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권이 내려 보낸 낙하산이란 시선이 부담이라면 부담이다.

이동걸 전 부회장을 지지하는 쪽은 그가 KB금융지주를 거치지 않은 '순수 외부인사'란 사실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거꾸로 이동걸 전 부회장을 반대하는 쪽은 "다른 사람은 돼도 이동걸만은 안 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노조는 "차기 회장은 내부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이동걸 전 부회장에게 전달하는 등 강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그럼에도 내부인사 가운데 특별히 믿을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소신 있는 내부 출신보다는 코드가 맞는 외부 출신을 앉혀놔야 정권 입장에서 덜 불안하지 않겠냐"며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후보가 있다. 바로 하영구 은행장이다.

하영구 은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의 전신인 한미은행장으로 2001년 취임해 현재까지 10년 넘게 연임 중이다. 2010년부터는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을 겸했다.

현 금융당국 최고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보였던 신 위원장은 하영구 은행장을 통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하영구 은행장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같은 회사(한국씨티은행)에서 행장과 부행장으로 일했다. 뿐만 아니라 하영구 은행장은 대관업무를 위주로 정관계와 두터운 교분을 쌓았는데 그때의 공로가 이번 인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단 하영구 은행장은 현직 금융지주 회장이 다른 곳도 아닌 경쟁 금융회사 회장으로 지원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울러 10년이 넘는 은행장 경력이 있음에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한 점이 리스크로 분류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동걸 대 하영구' 구도가 유력시되는 가운데 중대 변수로는 최경환 부총리가 언급된다. 국내 경제정책을 총괄할뿐더러 '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은 최경환 부총리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능가하는 실력자로 부상 중이다. KB금융지주가 사실상 정부 영향하에 있는 만큼 최 부총리의 의중은 후보자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권 입장에서 총자산 300조원의 금융회사 회장 선출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반면 최 부총리가 월권을 행사했다고 판단할 경우 청와대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2인자'를 용납해오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상 이번 회장 선출은 둘의 관계에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친박계에 대항하는 비박계가 내부인사 선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노조 측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일화는 이를 암시한다. 만약 내부 출신이 여러 악조건을 뚫고 회장이 된다면 그 자리는 윤종규 전 부사장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다고 점쳐진다.

마지막 반전
어디서 터질까

윤종규 전 부사장은 2002년 김정태 당시 국민은행장이 영입한 인물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것이 강점이다. 무엇보다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역임해 회추위 구성원인 사외이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희망적인 부분이다. 차기 회장 후보는 회추위 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 1명이 선정된다.

때문에 '본선'까지만 가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옥찬 전 행장에게 쏠린 표심이 윤종규 전 부사장에게 더해질 것도 예상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윤종규 전 부사장의 거취를 놓고, 그를 떨어뜨리기 위한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 간에 치열한 물밑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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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