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머신 대부' 정덕일 롤러코스터 인생

'파친코 왕' 허망하게 잠들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슬롯머신 대부'로 알려진 정덕일씨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정씨는 한 시대를 풍미한 '파친코 왕'으로 1990년대 6공 최대 스캔들인 '박철언게이트'를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정씨는 지난 15일 자택에서 호흡에 이상을 느껴 병원으로 후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슬롯머신 대부 정덕일씨의 빈소가 서울순천향대병원 VIP실에 마련됐다. 평소 지병이 없던 정씨였기에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그의 허망한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형 덕진씨와 함께 슬롯머신 사업으로 권부의 핵심에 이르렀던 그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돈 쓸어 담아

'음지'에 있던 정덕일이라는 이름은 1993년 '양지'에 알려졌다. 정씨는 같은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되며 '슬롯머신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죽는 순간까지 정씨는 슬롯머신의 대부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과거 정씨가 자신의 사업을 확장시킨 배경은 이렇다. 1980년대 중반까지 슬롯머신 업소는 허가받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슬롯머신 업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 당시 79개 업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고, 전국적으로는 330여개의 업소가 새로 생겨났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우후죽순 번지는 슬롯머신 업소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사정당국의 단속 의지도 없었다. 사행성 조장, 승률조작, 탈세 등의 우려에도 사정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슬롯머신 업자들은 이들 사정기관과의 '검은 공생'으로 국내 슬롯머신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신데렐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씨의 형 덕진씨다. 덕진씨는 주먹세계의 신흥강자로 군림하며 슬롯머신 업소 9곳을 운영했다. 호텔도 5개나 갖고 있었다. 돈냄새를 맡은 조폭들은 덕진씨와 한 배를 탔다. 이들은 덕진씨의 호텔을 기점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슬롯머신 업소가 호황을 맞으면서 덕진씨와 '파친코 왕' 정씨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당시 이들 형제에게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유력 정치인 및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가 정씨 형제를 비호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됐다. 실제로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쓴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를 보면 정씨의 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신씨는 1987년 지인의 주선으로 정씨를 만난 뒤 친형체처럼 가까워졌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자 정씨는 서울 석촌호수 맞은편에 뉴스타 호텔을 지었다. 정씨의 사업은 실패를 몰랐고 급기야 그는 신씨에게 스폰을 제안했다.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그렇지만 신씨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거절했고, 그럼에도 정씨는 선뜻 1억원의 수표를 건넸다. 1990년대 초반 정씨는 노태우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의원을 소개해달라고 신씨에게 부탁했다. 신씨는 자신의 경북고 후배인 박 의원을 정씨와 만나게 해주었다.

신씨는 정씨에게 1987∼1993년까지 모두 4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영화제작에 쓰였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이처럼 '파친코 왕'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자금을 사회 각계각층에 살포했다. 자신들을 외풍에서 막아줄 비호세력을 찾은 것이다. 정씨가 쓴 돈은 일종의 '공작금'으로 이해됐다. 정씨가 무차별로 뿌린 돈에 사회고위층이 중독됐다. 자타공인 6공 2인자였던 박 의원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검은 돈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했다.

재기 준비하다 자택서 심장마비 돌연사
6공 최대 스캔들 '박철언 게이트' 주역


그의 화려한 전성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았다. 1993년 김 전 대통령은 사정당국에 '거악 척결'을 지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현 경남도지사)는 정씨를 비호한 조폭, 정치인, 검찰 등에 대한 사정작업을 벌였다. 권력층은 긴장했다. 슬롯머신 사업권을 둘러싼 로비에서 자유로웠던 정치인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심지어 정씨의 큰형 덕중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자신이 직접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상황이었다. 정씨는 1992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YS의 선거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다. 생전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YS가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씨 일가는 YS가 휘두른 매서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일격을 당한 셈이다. 정씨 일가 입장에선 '대통령이 되도록 도왔는데…'라는 원망이 나올 법도 했다.

검찰 수사에서 정씨 일가는 관료와 정치권 등 사회 권력층이 대거 연루된 게이트의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요샛말로 '정덕일 리스트'가 수사대상이 된 것이다.

작심한 홍 검사는 정씨 형제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정씨가 전날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는데도 호텔을 급습해 기어이 체포했다. 검찰은 정씨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5억원이 담긴 007가방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 등 각종 비리 혐의를 밝혀냈다.

최초 박 의원은 금품수뢰 혐의를 부인했지만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 권력층 인사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수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끝내는 정권 '넘버2'인 박 의원도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후 홍 검사는 일명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돈을 건넨 정씨는 저 유명한 '플리바게닝'으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박철언 게이트' 이후 정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까지 대거 동원해 군 위문공연을 다녔다는 정씨는 유착했던 정관계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잃었다. 신씨 등 연예인에게 수억원이 넘는 용돈을 건넸던 위세도 잠시, 정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00년대 들어 정씨는 제주도 모 호텔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며 '카지노의 대부'로 자리하는가 싶더니 최근 투자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카지노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300억원 규모의 제주도 부동산을 '경매사기'를 당해 헐값에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기를 꿈꾸던 정씨는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검은돈' 뿌려

정씨의 빈소 앞에는 정관계와 연예계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빼곡했다. 그러나 정씨의 유족들은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히 막아섰다. '음지'에서 꽃폈던 정씨는 결국 '양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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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