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머신 대부' 정덕일 롤러코스터 인생

'파친코 왕' 허망하게 잠들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슬롯머신 대부'로 알려진 정덕일씨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정씨는 한 시대를 풍미한 '파친코 왕'으로 1990년대 6공 최대 스캔들인 '박철언게이트'를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정씨는 지난 15일 자택에서 호흡에 이상을 느껴 병원으로 후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슬롯머신 대부 정덕일씨의 빈소가 서울순천향대병원 VIP실에 마련됐다. 평소 지병이 없던 정씨였기에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그의 허망한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형 덕진씨와 함께 슬롯머신 사업으로 권부의 핵심에 이르렀던 그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돈 쓸어 담아

'음지'에 있던 정덕일이라는 이름은 1993년 '양지'에 알려졌다. 정씨는 같은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되며 '슬롯머신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죽는 순간까지 정씨는 슬롯머신의 대부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과거 정씨가 자신의 사업을 확장시킨 배경은 이렇다. 1980년대 중반까지 슬롯머신 업소는 허가받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슬롯머신 업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 당시 79개 업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고, 전국적으로는 330여개의 업소가 새로 생겨났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우후죽순 번지는 슬롯머신 업소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사정당국의 단속 의지도 없었다. 사행성 조장, 승률조작, 탈세 등의 우려에도 사정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슬롯머신 업자들은 이들 사정기관과의 '검은 공생'으로 국내 슬롯머신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신데렐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씨의 형 덕진씨다. 덕진씨는 주먹세계의 신흥강자로 군림하며 슬롯머신 업소 9곳을 운영했다. 호텔도 5개나 갖고 있었다. 돈냄새를 맡은 조폭들은 덕진씨와 한 배를 탔다. 이들은 덕진씨의 호텔을 기점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슬롯머신 업소가 호황을 맞으면서 덕진씨와 '파친코 왕' 정씨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당시 이들 형제에게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유력 정치인 및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가 정씨 형제를 비호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됐다. 실제로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쓴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를 보면 정씨의 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신씨는 1987년 지인의 주선으로 정씨를 만난 뒤 친형체처럼 가까워졌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자 정씨는 서울 석촌호수 맞은편에 뉴스타 호텔을 지었다. 정씨의 사업은 실패를 몰랐고 급기야 그는 신씨에게 스폰을 제안했다.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그렇지만 신씨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거절했고, 그럼에도 정씨는 선뜻 1억원의 수표를 건넸다. 1990년대 초반 정씨는 노태우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의원을 소개해달라고 신씨에게 부탁했다. 신씨는 자신의 경북고 후배인 박 의원을 정씨와 만나게 해주었다.

신씨는 정씨에게 1987∼1993년까지 모두 4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영화제작에 쓰였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이처럼 '파친코 왕'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자금을 사회 각계각층에 살포했다. 자신들을 외풍에서 막아줄 비호세력을 찾은 것이다. 정씨가 쓴 돈은 일종의 '공작금'으로 이해됐다. 정씨가 무차별로 뿌린 돈에 사회고위층이 중독됐다. 자타공인 6공 2인자였던 박 의원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검은 돈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했다.

재기 준비하다 자택서 심장마비 돌연사
6공 최대 스캔들 '박철언 게이트' 주역


그의 화려한 전성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았다. 1993년 김 전 대통령은 사정당국에 '거악 척결'을 지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현 경남도지사)는 정씨를 비호한 조폭, 정치인, 검찰 등에 대한 사정작업을 벌였다. 권력층은 긴장했다. 슬롯머신 사업권을 둘러싼 로비에서 자유로웠던 정치인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심지어 정씨의 큰형 덕중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자신이 직접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상황이었다. 정씨는 1992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YS의 선거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다. 생전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YS가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씨 일가는 YS가 휘두른 매서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일격을 당한 셈이다. 정씨 일가 입장에선 '대통령이 되도록 도왔는데…'라는 원망이 나올 법도 했다.

검찰 수사에서 정씨 일가는 관료와 정치권 등 사회 권력층이 대거 연루된 게이트의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요샛말로 '정덕일 리스트'가 수사대상이 된 것이다.

작심한 홍 검사는 정씨 형제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정씨가 전날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는데도 호텔을 급습해 기어이 체포했다. 검찰은 정씨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5억원이 담긴 007가방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 등 각종 비리 혐의를 밝혀냈다.

최초 박 의원은 금품수뢰 혐의를 부인했지만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 권력층 인사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수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끝내는 정권 '넘버2'인 박 의원도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후 홍 검사는 일명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돈을 건넨 정씨는 저 유명한 '플리바게닝'으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박철언 게이트' 이후 정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까지 대거 동원해 군 위문공연을 다녔다는 정씨는 유착했던 정관계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잃었다. 신씨 등 연예인에게 수억원이 넘는 용돈을 건넸던 위세도 잠시, 정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00년대 들어 정씨는 제주도 모 호텔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며 '카지노의 대부'로 자리하는가 싶더니 최근 투자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카지노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300억원 규모의 제주도 부동산을 '경매사기'를 당해 헐값에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기를 꿈꾸던 정씨는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검은돈' 뿌려

정씨의 빈소 앞에는 정관계와 연예계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빼곡했다. 그러나 정씨의 유족들은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히 막아섰다. '음지'에서 꽃폈던 정씨는 결국 '양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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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