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GKL 비리 대해부

곪을 대로 곪아…툭하면 터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영종도 리조트 설립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 한편에선 이른바 '중국인 타짜'에게 수십억원을 털려 눈총을 받고 있다. 이들의 부실한 카지노 관리가 도마에 오른 데 이어 최근엔 한 간부급 직원이 거액의 횡령 사건에 연루돼 체면을 구겼다. 다가올 국회 국정감사에선 'VIP 성접대 지원' 의혹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매년 정부 당국의 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알짜 공기업' GKL. 사업 확장의 걸림돌은 도덕성이다.

카지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원칙적으로 우리나라는 영내 자국민에게 카지노 출입을 불허하고 있다. 강원랜드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도 있지만 아직까지 카지노는 국가가 규제하는 금단의 영역이다.

금단의 영역
사실상 독과점

그런데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 GKL은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정확히 10년을 맞았다. 대주주 한국관광공사가 지분 51%를 갖고 있으며 영업 대상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다. GKL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명목으로 국내 카지노시장을 사실상 '양분'해 왔다.

박정희정부부터 김대중정부까지 카지노 산업을 독점해 온 업체가 있다. 파라다이스다. 파라다이스는 지난 1968년부터 37년간 외국인 전용 카지노시장을 독점해 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부가 파라다이스 측에 유리하도록 신규 카지노 진입장벽을 높게 쳐 줬다"고 지적했다.

리조트 사업 진출 등 영역 다각화
이면에선 직원·손님 비위 '펑펑'


이런 파라다이스의 아성을 서울에서 무너뜨린 카지노가 바로 GKL의 세븐럭이다. 세븐럭은 비교적 단기간에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븐럭의 성장 배경엔 공기업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몫을 했다. 외국인 VIP를 주로 상대한 까닭에 국내 경기 불황에도 그 여파가 크지 않았다.

지금은 여러 경쟁 후보군 업체가 있지만 GKL은 여전히 증권시장에서 독과점적인 지위로 투자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카지노 산업의 이익은 주변국의 경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GKL은 중국의 경제 부흥과 더불어 성장세가 뚜렷했다. 증권시장에서 수익성이 보장되는 고배당 공기업을 꼽을 때면 GKL은 매번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믿었던 GKL
도덕성 도마에

이런 GKL에도 악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올 8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GKL 차장급 직원 박모(46)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조사했다고 알렸다. 박씨는 공금 20억원을 빼돌리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사건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7월18일 낮 회사 금고에서 20억원상당의 수표를 들고 나와 현금으로 바꾸려 했다. 당시 박씨는 500만원짜리 수표 400매를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급작스런 거액 인출을 의심한 은행 직원이 GKL 측에 확인 전화를 하면서 그의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박씨는 은행 창구에서 달아났다가 사건 당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혐의 사실을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리 담당자로 알려진 박씨는 회사에서 금고 관리 등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식투자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GKL은 사건 직후 박씨를 면직 처분했다고 알렸다.


지난 4월에는 세븐럭이 중국인 사기 도박단에게 30억원을 털릴 뻔한 사연이 전해졌다. 당시 GKL는 경찰 신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한 언론은 2013년 말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에 비춰 사기도박이 최소 수회 이상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먼저 지난 3월 GKL은 바카라 게임에 사용한 카드를 자체 조사한 결과 한 덱(8벌 카드)의 카드에서 똑같은 카드 한 장이 더 발견되고, 다른 한 장은 부족한 것을 확인했다.

문제의 게임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인 도박단은 최소 카드 1장 이상을 숨겨 사기도박에 이용한 것으로 의심됐다. 차후 드러났지만 당시 중국인들은 상의 소매 깃에 미리 감춰둔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하룻밤 30억원의 돈을 땄다.

문제의 사기도박 사건은 GKL 내부 직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바카라 테이블팀 한 간부가 게임이 끝난 카드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카드를 바꿔치기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카지노는 무늬가 독특한 카드를 미국이나 영국의 전문업체에 의뢰해 제작하고 있다. 사용 기간은 1년으로 한정된다.

그런데 사기도박을 한 중국인들이 사용한 카드는 'GKL 전용카드'여서 이들이 게임을 앞두고 미리 카드를 건네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내부자 공모 의혹이 일었던 이유다. 또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등 승부에 문제가 있을 시 경고음이 울리도록 설계된 슈통(카드를 담는 통)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직원들이 이를 제지하지 않은 점은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꼽혔다.

중국인 타짜
수십억 챙겨갔다

결과적으로 GKL은 사기도박 현행범들을 눈 앞에서 놓쳤다. 사법기관에 신고조차 하지 않아 용의자들이 공항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가도록 방조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사건 관련자들은 "지난해 12월 문제의 중국인 2명이 강남에 있는 세븐럭 VIP게임 테이블에서 불과 몇 시간 만에 12억원 이상의 돈을 따갔지만 누구도 사기도박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알렸다. 당시 GKL 관계자는 "(올 4월 게임과 달리) 12월 게임은 사기 도박이 아닌 정상 게임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후 GKL은 중국인 사기도박단이 따낸 3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금 2억원을 돌려준 뒤 뒤늦게 신고해 논란이 일었다. GKL은 지난 7월 사건 관련자들을 상대로 자체 감사를 벌여 모두 9명을 징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감사원은 금전사고 부적정 사후 처리 등 방만 경영을 한 GKL에 시정 요구를 내렸다. GKL은 지난해에도 예산 편성 문제로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접대 지원 의혹이다.

GKL을 상대로 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2013년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PR고객들의 유흥단란주점 출입기록을 조사한 결과 주로 강남 일대 유흥단란주점에서 26회 걸쳐 6600만원을 지출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된 PR고객은 PR여권 소지자로 국적은 외국이지만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박 의원은 "해외 고객 유치를 위해 항공 숙박 등의 용도로 사용돼야 할 고객유치비가 매출 증대라는 명목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해외 동포의 유흥비로 제공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 PR고객은 GKL 홍보 담당 직원이 성접대를 제공해 게임을 하도록 하는 등 부당 유인행위를 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잇단 횡령 사건에 사기 물의
성접대·특혜 등 방만경영도

지난해 기준 파악된 세븐럭의 VIP고객은 모두 34만5917명(실버급 단골고객 일부 포함)이다. 이중 PR고객은 651명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들이 5년 동안 GKL에서 쓴 돈이 3103억원이란 사실이다. 이는 같은 기간 GKL 전체 매출의 무려 13.1%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당시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이 성접대 지원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GKL이 지난 2010년 8월부터 약 2년간 외국인 고객을 위해 강남의 룸살롱 어제오늘내일(YTT)에서 11억 7201만원을 결제했다"며 "이는 사실상 성매매를 도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같은 기간 GKL이 YTT를 제외한 또 다른 유흥단란주점에서 결제한 금액은 48억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이 약 60억원의 매출을 룸살롱 등에 올려 준 셈이다.

업체 밀어주기
임직원 자녀 특혜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도 일었다. 지난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은 GKL의 용역 입찰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격 선정 및 낙찰자 선정 과정에서 일부 기업에게 특혜가 주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롯데관광개발의 경우 임의로 입점 여행사가 됐으며, 2012년 '서울 2개점 입점 여행사 용역 계약'에서는 연 매출액 등을 지나치게 높여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롯데관광개발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학재 의원은 관피아 의혹을 지폈다. 그는 "GKL과 모회사인 한국관광공사에서 채용과정을 불투명하게 처리했으며 임직원 자녀들이 채용규정에서 특혜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올 10월께 GKL은 정기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1년이 지난 지금 상기한 지적 사항들이 개선됐는지 여부가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리조트 사업 진출 등 사세 확장을 꾀하고 있는 GKL이 잇단 악재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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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