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일파만파 1심 판결 후폭풍

'한통속' 박근혜·이명박·원세훈 모두 살았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대선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달궜던 2012년 12월11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는 오피스텔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갔다. 김씨는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에 정치댓글을 단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서둘러 김씨의 혐의를 벗겨줬다. "대선 개입은 없었다"는 중간 수사 결과가 5일 뒤인 12월16일 밤 11시에 발표됐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무려 640일이 걸린 수사는 1심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유죄를, 박근혜정부는 면죄부를 받았다.


"정치 관여는 했지만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지만 위법성은 인식하지 못했다" 지난 11일 사법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내린 판결의 요지다.

국정원법 유죄
선거법은 무죄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 및 국가정보원법(이하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세부적으로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됐다. 의혹의 핵심은 지난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여당 대통령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문제가 된 댓글을 보면 특정 정치세력을 비난하고자 하는 인상이 강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뒈져야 할 사람' '문죄인'으로 비하됐다. 반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우호적인 문장이 쓰였다. 국정원의 댓글 활동으로 득을 보게 될 이가 누구인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이른바 '댓글사건'은 현 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된 '태풍의 눈'으로 확대됐다. 만약 국가정보기관이 대선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 여론을 조작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박근혜정부가 입게 될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6월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현 정부의 대리격인 법무부와 갈등을 빚었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작업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채 총장은 원 전 원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징역 2년6월 집유 4년…선거법 위반 무죄
정부 한숨…채동욱 찍어내기 등 숱한 논란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법률가로서의 양심"을 거론하며 구속영장 청구 및 선거법 위반 적용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법무부 입장에서 정권에 해가 되는 수사를 방관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힘겨루기를 하던 두 기관은 절충안을 만들었다. 구속영장 청구를 검찰이 포기하는 대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채 총장은 청와대 눈 밖에 났다는 게 정설이다. 채 총장은 원 전 원장 기소 후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혼외아들 보도로 낙마했다.

수사팀 안에서는 '항명 파동'이 일었다. 윤석열 당시 특별수사팀장은 국정원 대선개입수사 과정에서 상관과 법무부의 외압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상의 결재권자였던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야당 도와 줄일 있느냐"는 말로 윤 팀장과 맞섰다고 전해진다. 문제의 사건으로 윤 팀장은 수사팀에서 배제된 후 좌천됐다. 조 지검장은 결백을 주장하며 스스로 검찰을 떠났다.

박근혜 면죄부
반토막 난 검찰


검찰 안에서 나름 중립을 지키고자 애썼던 조 지검장의 사임, 특별수사팀 핵심 인물로 꼽힌 윤 팀장의 부재는 사건 공소유지에 어려움을 불러왔다. 재판이 시작되자 수사팀에 새로 투입된 검사들은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을 검토할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수사팀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한 트위터 멘션(글) 및 리트윗의 증거능력을 둘러싸고도 공방이 가열됐다. 압수수색으로 국정원의 광범위한 사이버 활동을 입증한 것까진 좋았으나 정작 문제는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사건의 꼬인 매듭을 풀 핵심 증인들은 출석을 거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안이 가진 폭발력 때문에 심리는 1년 넘게 이어졌지만 권부의 핵심에는 접근조차 못했다.

지난 7월15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채동욱호 검찰이 원 전 원장을 기소한 2013년 6월14일 이래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공판에서 검찰은 "국가정보기관이 일반 국민으로 가장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트위터를 대량으로 퍼뜨린 것은 인위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반헌법적인 행태"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검찰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원 전 원장이 국정원법 9조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며 "이는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허용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행위로 죄가 무겁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인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무죄 판결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국정원의 사이버 활동은 북한의 사이버 활동에 대한 대응이 주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원 전 원장은 관련 댓글 활동 등에 대해 위법성을 인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과거부터 지속된 국정원 심리전단의 잘못된 업무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답습한 점 ▲특정 후보자를 당선 또는 낙선시키기 위해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이 참작됐다.

특히 재판부는 "보통의 선거운동이라면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특정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은 대선을 앞둔 11월에 감소했다"며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또 논란이 됐던 '전부서장 회의 발언(지시·강조 말씀)'에 대해선 "오히려 선거에 절대 개입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지시한 사실만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은 선고를 앞두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떨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진보 성향의 방청객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원 전 원장이 법정을 빠져나간 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와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 등은 기자들 앞에서 "정치 개입은 맞지만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건 도둑질은 했지만 절도범은 아니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이 정치 관여는 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하지 않았다는 판결은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2012년 4월 전부서장 회의 발언에서 "북한이 총선에서 야당(이) 되면 강성대국은 완성된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얘기했어요. 우리 국정원은 잘못 싸우면 없어지는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원 전 원장의 발화 시점을 지목하며 후보자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특정인을 위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짚었다.

도둑질 했지만
절도범 아니다

원 전 원장과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 국정원 직원이 매달 원 전 원장으로부터 하달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비방한 점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선거법 위반에 대해선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정보기관의 특성상 이 같은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범행의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댔다.

이번 판결로 청와대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 정치권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최대 수혜자로 꼽았다.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의심과 혹시 모를 정치공세를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patriamea)에 "원세훈 개인은 처벌하되 정권의 정통성은 살려주는 판결"이라고 적었다.


현직 한 법원 관계자는 "정치적인 고려를 제외하고 판결문만 봤을 때 재판부의 논리를 납득할 만한 했다"고 평했다. 이 관계자는 "선거법은 국정원법과 입법 취지가 다르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다만 이 판결로 다른 선거사범들에게 선거법 위반을 어떻게 적용할지, 쉽게 인정한다면 차별적인 법해석으로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스갯소리'라고 강조한 뒤 "중앙(서울중앙지법)인데다 공안사건인데 우리 식구도 승진해야 하지 않겠냐"며 "내가 검사라면 흥분할 상황"이라고 비꼬았다.

언론 안팎에서 제기된 강한 책임론, 자성론과 달리 검찰은 표정관리에 한창이다. 예상했던 결과가 나온 것에 담담해하는 눈치다. 이번 정부 들어 본의 아니게 라이벌로 부상한 국정원을 견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최대 수혜자' GH '숨은 수혜자' MB
사정 라이벌 검·국 나란히 표정관리
[여] 마지막 리스크 해결 
[야] 무너진 최후의 보루

판결 직후 검찰 일각에선 무리한 기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진두지휘한 채 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현 수뇌부가 책임질 사안은 아니라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을 사실로 확인했고, 전직 국정원장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냄으로써 맡은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다.

올 초 검찰은 이른바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휘말리며 국정원에게 빚을 졌다. 앞서 국정원은 일부 공안라인의 견제가 있었지만 내부 평이 좋았던 채 총장을 넘어뜨린 '주범'이라는 의심을 샀다. 때문에 이번 판결로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수장을 찍어낸 국정원에게 '모종의 복수'를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항소 과정에서 국정원법 위반에 대한 공소유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정원은 잃은 게 많은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혐의를 떠나 그간 국정원이 수행해온 대북·방첩활동이 잘못됐음을 수차례 지적했다. 원 전 원장의 양형 감경 사유로는 '국정원의 잘못된 업무 관행'이 언급됐다.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사이버 활동이 이전보다 위축됐을지언정 북한과 연관된 활동을 사실상 묵인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범죄 사실을 "정부의 정책기조에 반대하는 특정 정당 및 정치인을 비판한 행위"로 한정했다.

때문에 국가 안보라는 이유를 붙이면 언제든 유사행위가 반복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다음 대선 과정에서 똑같은 수위의 댓글이 달려도 선거 개입이 아니라는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번 판결의 숨은 수혜자로 꼽힌다. 원 전 원장이 본인의 직무 범의로 제한된 국정원법 위반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배후로 주장했지만 재판부가 대선개입 의혹을 부정하면서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됐다.

날개 단 여당
벼랑 끝 야당

여당은 반색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정권 차원의 리스크를 덜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세월호 특별법'을 제외하고 여당에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형 이슈가 전무하다. 이제 여당은 여론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지난 12일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은 "판결을 비난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며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고 집요하게 주장해왔던 사람들, 또 이걸 갖고 입지를 키워온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라"고 힐난했다.

야당은 벼랑 끝에 몰렸다. 무려 600일 넘게 공들인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 규명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정국을 타개할 마땅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 지지세를 결집할 동력도 정부를 압박할 최후의 보루도 모두 잃었다.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판결 다음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렇게 한다면 앞으로 공무원들이 특정 후보를 당선·낙선시키기 위해 비난글을 여기저기 퍼 나르고 악의적으로 유포해도 어떻게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겠냐"고 우려했다.

결과적으로 '산 권력'은 어느 누구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죽은 권력'인 원 전 원장만 지루한 법정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별건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2월을 선고받은 원 전 원장은 지난 9일 형기만료로 출소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법정에 섰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은 이번 판결로 재수감될 처지를 면했다. 따지고 보면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세훈 선거법 무죄' 이범균 부장판사는?

이범균(50·사법연수원 21기) 부장판사는 서울 출신으로 1995년 부산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양승태 당시 대법관(현 대법원장)의 전속 재판연구관을 했다. 이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판결 업무만 맡았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부임한 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다뤘다. 그가 속한 형사21부는 선거법과 부정부패 사건 전담부로 알려져 있다. 이 부장판사는 올 초 이른바 '공무원 간첩 사건'을 심리했는데 당시 그는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진보·보수 각 진영 입장에선 한 번씩 유리한 판결이 나온 셈이다.

때문에 복수 언론은 법원 내부 관계자를 인용, 이 부장판사가 정치 중립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고를 둘러싸고 법원 내에선 큰 소란이 일었다. 이유인 즉 이 부장판사가 법리를 어기고 정치적인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는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며 "서울중앙지법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름)'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부장판사는 "집행유예 선고 후 어이가 없어서 판결문을 정독했다"며 "재판장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따라 정말 선거개입의 목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또 "선거개입과 관련이 없는 정치개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라며 "이렇게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형식논리로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 이것은 궤변이다"고 일갈했다.

더불어 김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정의를 위한 판결인가, 아니면 재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심사를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인가.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파문이 커지자 대법원은 직권으로 김 부장판사의 글을 삭제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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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