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개파 5378명> '최신판' 조폭 동향보고서

정권 바뀌어도 그대로…설치는 '형님'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철없는 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조폭. 밤거리를 활보하던 조폭은 음지로 스며들었다. 박근혜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으로 '조폭과의 전쟁'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성과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조폭은 그대로다. 최근 경찰청이 한국형사정책원구원과 공동으로 발간한 '2013 범죄통계' 등을 토대로 현황을 분석했다.

2012년 7월을 기준으로 파악된 국내 조직폭력배(이하 조폭) 수는 5384명, 5년 전인 2007년에는 5296명이었다. 지난해 4월 사법당국이 발표한 조폭 수는 5425명. 몇 년째 5000여명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이다. 박근혜정부 2년차인 올해는 어떨까. 현재 경찰이 집계한 조폭 수는 5378명, 조직 수는 216개로 확인됐다.

조폭 오천명
전국 곳곳에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찰 관리대상에 포함된 조직 수는 217개였다. 그러나 '정치깡패' 김태촌으로 대표되는 '범서방파'가 와해되면서 그 수는 216개로 줄었다. 칠성파, 국제PJ파 등의 폭력조직은 아직 당국의 감시 하에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은 지난 19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1년 이후 조직폭력배 검거 및 구속, 불구속 현황'의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먼저 시도별 조직 및 조직원 수는 ▲경기(31개·879명) ▲서울(22개·477명) ▲경남(17개·393명) ▲경북(12개·391명) ▲부산(22개·385명) ▲전북(16개·343명) ▲광주(8개·326명) ▲인천(13개·324명) ▲대구(11개·312명) ▲충남(18개·307명) ▲충북(6개·237명) ▲강원(14개·232명) ▲울산(6개·240명) ▲전남(8개·234명) ▲대전(9개·165명) ▲제주(3개·133명) 순이었다.


위 통계와 관련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조폭 수와 실제 조폭 수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조폭은 자신의 신분이나 조직 이름을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 국내 3대 폭력조직으로 불렸던 '범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의 작명은 수사기관의 솜씨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조폭은 무슨 사정으로 조직의 이름을 함구하는 것일까.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조폭을 겨냥한 수사 과정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단체 등의 구성·활동) 위반 혐의는 '조폭 맞춤형' 규정으로 불린다. 법정에서 '단체 등의 구성·활동' 혐의가 인정되면 피의자가 개별 폭력 행위로 처벌받았더라도 가중 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조폭들은 중형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조직명과 조직 계보를 숨기는 일이 많다.

따라붙는 경찰
뒷돈 주고 쉬쉬

하지만 오리발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조직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된다. 그럴싸한 근거가 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일반 사람들 통념에 조폭하면 전부 나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들이 알고 있거나 알아봐 주는 범죄정보가 중요할 때가 있다"며 "한 조직의 덩치가 갑자기 커지면 자연스레 견제하는 세력이 생겨나 관련한 첩보가 우리 쪽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조폭은 동종 전과가 있거나 주변으로부터 견제받은 전력이 있는 셈이다.

조폭이 연루된 범죄사건은 초동수사 때부터 용의자가 조폭임을 인지하고 시작하는 일이 많다. 경찰 입장에서 평소 조폭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수사기관에 신원이 노출된 5000여명의 조폭은 잠재적인 내사 대상이다. 이들 중 일부는 "죄가 없다"며 항변하기도 한다. 당국의 감시에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실제로 "조폭도 아닌데 조폭과 엮여 수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18일 복수매체는 '아름다운 컨벤션' 회장 여운환씨가 경찰로부터 부당한 사찰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잡으면 또 생기고, 잡으면 또 생기고
그렇게 단속해도…몇년째 제자리걸음

과거 여씨는 호남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제PJ파의 두목으로 지목됐다. 이후 여씨는 대법원에서 국제PJ파의 자금책 및 고문이라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런데 여씨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끼워맞추기식 검찰수사에 당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수사 담당검사는 '모래시계'로 유명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다. 여씨는 "내가 조폭 두목이란 증거가 없자 고문이라는 가상의 직책을 만들어 형을 살게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여씨는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조폭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씨는 이번 진정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사복형사 및 거주지 경찰관들에게 수시로 사찰받았다"고 적었다. 또 "가족 모두가 연좌제식 사생활 침해로 고통받았고 사업장에 이유 없이 형사가 오는 등 경제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고 읍소했다. 여씨는 자신이 민간인이므로 경찰이 임의로 동향을 파악하는 건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경찰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여씨의 동향 파악은 '우범자 동향 관찰'에 해당한다는 반론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사찰은 불법이지만 우범자나 수사 연루자 등을 상대로 한 정보수집 활동은 규정 안에서 허용돼 있다고 했다. 진정을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에 눈길이 쏠리는 상황이다.

여씨와는 반대로 따라붙은 경찰을 돈으로 구워삶은 조폭도 있다. 지난 19일 서울 강동경찰서 소속 박모 경위는 기업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조폭으로부터 2천여만원의 현금을 받은 혐의로 입건됐다. 박 경위에게 현금을 건넨 조폭은 '신(新)종합시장파' 행동대장 이모씨다.

이씨는 강동경찰서 관할에 있는 소위 '텍사스촌'에서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며 수년간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지난달 체포됐다. 이씨는 업소 3곳에서 모두 100억원 가량의 이득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난 2003년부터 박 경위가 돈을 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 조사에서 박 경위는 "친구인 이씨로부터 빌려 준 돈을 받았거나 잠시 돈을 빌렸던 것"이라며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했다. 돈의 성격은 논외로 하더라도 박 경위는 조폭 이씨와 '호형호제'하며 친구로 지내온 셈이다.

체포는 되는데
구속은 어렵고

조폭들은 이씨처럼 사업가 행세를 하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처럼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해 사람을 해치는 빈도는 줄고 있다.

주지한 바와 같이 21세기형 조폭들은 본인의 활동무대를 사업 영역으로 옮겨왔다. 건설, 금융, 유통,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포함해 합법적인 투자회사 형태로 주식시장에 진출하기도 한다.

변신에 실패한 조폭들은 성매매업소, 불법도박장, 유흥업소 등 전통 '나와바리'를 지키며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낮에는 사업가 명함을 뿌리고 밤에는 '식구'들을 관리하는 식이다. 이들의 범죄 성향은 점차 화이트칼라 범죄 또는 개인 범죄화되면서 구속률이 낮아진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의 조폭 구속률은 꾸준히 감소했다. 2008년 27.12%였던 구속율은 ▲2009년 23.55% ▲2010년 22.77% ▲2011년 18.02%로 떨어졌다. 김 의원이 건네받은 '2011년 이후 조직폭력배 검거 및 구속, 불구속 현황' 자료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

2012년 검거된 조폭은 3688명이다. 이 중 구속된 인원은 649명, 구속률은 17.59%였다. 2013년도 마찬가지, 검거된 조폭은 2566명으로 크게 줄었고 구속된 인원은 444명으로 구속률은 17.30%를 기록했다.

올해도 감소세는 계속됐다. 2014년 7월까지 조폭 1346명이 검거됐고, 구속된 조폭은 230명으로 확인됐다. 구속률은 17.08%로 전년에 비해 하락했다.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검거된 인원은 모두 1만1590명, 이 가운데 불구속 처분된 인원은 9548명이었다. 범죄 혐의가 있는 조폭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그대로 풀려나는 상황인 것이다.

법망 피한 지능범죄 다수…검거돼도 풀려나
조폭 추종세력 여전…"엄정한 법집행 필요"

관련 자료를 분석한 김 의원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먹을 앞세우던 과거 조폭과 달리 최근 폭력조직은 대규모 기업화되어 각종 이권사업은 물론, 자체 사업확장을 통해 날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사회정의 실현과 치안질서 확립을 위해 조폭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이 실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폭력조직의 규모는 그대로고 ▲검거율은 낮아지면서 ▲우범률은 높아지는 악순환을 끊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조폭을 추종하거나 필요로 하는 세력이 아직 있다는 것이 걱정이다.

지난 18일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칠성파 추종세력 김모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한 자영업자를 상대로 연 1263%의 고리를 챙기며 불법 대부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 등은 부산 재래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에게 지난해 10월 500만원을 빌려주고 올 6월까지 1주일에 60만원씩 이자와 원금을 갚도록 하는 등 폭리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들은 이씨가 제때 돈을 갚지 못하자 수차례 위협을 가하고 폭행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형적인 조폭 모방 범죄다.

같은 달 13일에는 유흥업소를 빼앗기 위해 조폭을 동원한 5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 혐의로 이모씨와 조폭 국모씨 등 5명을 조사했다고 알렸다.

이들은 지난 3월 광주 한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씨와 부하 직원 등 2명을 집단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김씨에게 2300여만원을 빌려 준 뒤 그의 유흥업소를 갈취할 목적으로 조폭을 대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법상 범죄를 목적으로 한 단체 또는 집단을 구성하거나 그러한 단체 또는 집단에 가입하고 활동한 범죄자에 대해선 ▲수괴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간부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그 외의 자(조직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리고 해당 조직의 일원이 청부살인, 공용물 파괴, 업무방해, 경매 및 입찰 방해, 강도 등의 범죄행위를 실행 또는 계획했을 경우엔 선고형의 절반을 가중토록 돼 있다. 이는 조폭에게 매우 엄격한 법률이란 평가다.

그런데 지난해 관련 법조항으로 검거된 인원은 664명이다. 이 가운데 구속은 71명, 불구속은 593명이다. 10명 중 1명 정도만 구속된 셈이다. 또 구속요건이 충분치 않아 영장이 기각된 인원도 12명으로 확인됐다. 처벌이 중한 만큼 아무에게나 조폭의 딱지를 붙이진 않은 것이다. 바꿔 말하면 조폭들 역시 붙잡히지 않도록 조심했다는 결론이다.

법보다 주먹
처벌은 물렁

전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입건되는 조폭은 줄어드는 추세다. 2011년 868명이 검거됐던 서울은 2012년 566명, 2013년 398명으로 검거인원이 급감했다. 2014년 7월 기준 검거인원은 150명으로 전년에 비해 최종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1년 475명이었던 검거인원은 2012년 283명, 2013년 118명으로 크게 줄었다. 2014년 7월 현재 검거인원은 24명에 불과하다.

일부 반등 기미를 보인 도시도 있다. 대구의 경우는 2012년 287명에서 2013년 142명으로 반토막이 났지만 올 상반기 81명을 검거했다. 인천도 2012년 306명에서 2013년 112명으로 추락했다가 올 들어 반년 만에 93명을 검거하면서 페이스를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입건하자마자 혐의 불충분으로 풀어준다면 눈가리고 아웅식의 생색내기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불과 10여년 전 조폭은 남자다움과 의리의 상징으로 묘사됐다. TV 등 매체의 힘이었다. 한때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은 많은 청소년의 롤모델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조폭은 어디까지나 '깡패'였다.

시대가 바뀌었고 이젠 조폭이라고 여기저기 떠벌릴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조폭들은 음습한 지하로 숨어 들었다. 횟칼 대신 돈으로 무장한 그들은 합법을 가장해 배를 불리고 있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늘 조폭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당국의 수사 의지가 약한 것일까. 아니면 법망을 피해가는 그들의 지능이 유별난 것일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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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