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이 알면 넘어갈' 군내 가혹행위 백태

무시무시한 후임병 괴롭히기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윤 일병 사망사건의 충격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국방부를 비롯한 군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려다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스물셋 윤모 일병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와 구타로 끝내 숨졌다. 가해자 이모(26) 병장 등 병사 4명은 상식을 초월한 괴롭힘으로 윤 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사건의 진상 규명과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또 다른 윤 일병을 '폭력'이라는 악마로부터 구하는 일이다. 24시간 365일 폐쇄된 그곳에서는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인격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같은 인간임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범죄 행위가 선량한 병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직업군인을 아버지로 둔 한 언론계 관계자는 "과거 아버지가 근무했던 부대 인근에서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병사를 창고에 가뒀고, 창고 안에서 병사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섬뜩한 얘기였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증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부대 지휘관이 사체를 포함한 현장 증거를 없앴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군대에서 죽으면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 현장 보존은 엉망이었고, 수사권이 있는 군 간부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는데 급급했다.

위 사건으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군 복무 중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병사는 많이 줄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유족들을 중심으로 군 의문사 의혹을 제기하면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착각이었다. 군내 가혹행위는 창군 이래 근절된 적 없었다. 3일에 한 번 꼴로 병사가 죽어나갔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은 '군대 부적응'이라는 핑계로 은폐됐다.

윤 일병 사망사건의 충격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에도 군 당국은 평소처럼 사건을 감추려 했다. 하지만 윤 일병의 시신은 가혹행위를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온몸에 멍이 들고 고문을 당한 것처럼 흉터가 진했다. 실제로 윤 일병은 가해자 이모 병장 등 동료 병사들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지금도 군대 어디에선가는 또 다른 윤 일병이 도움을 청하고 있다. 선임병들의 구타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발생한다. 대체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동료를 괴롭히는 것일까. 잔인한 가혹행위를 군 인권센터가 발표한 사례와 일부 수사 기록, 전역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벌레 먹이기]

지난 2011년 7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해병대 2사단 해안 소초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김모 상병은 따돌림 등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으며, 공범 정모 이병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에 질려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면 아래 있던 해병대의 가혹행위가 드러났다. 사건 직후 군인권센터는 군내 가혹행위 및 인권침해에 대한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해병대 병영생활 사례 요약' 사례 4-1을 보면 "먹어봐, 먹어봐" 하며 벌레 억지로 먹였다고 쓰여 있다. 한 해병대 전역자는 "지렁이나 개구리를 삼켰다가 뱉은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후임병의 충성도를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며, 명백한 가혹행위다.

육군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강원도 양양에 있는 한 부대에서 선임병이 경계근무 중 후임병에게 벌레를 먹으라며 강요했다는 증언이다. 후임병이 이를 거부하자 선임병은 벌레를 전투복 속에 넣고 "가만히 있으라"며 협박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최전방 GP에서는 한 병사가 후임병의 입을 벌린 뒤 풍뎅이를 먹으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기바리]

김치를 담는 커다란 '락앤락'에 담긴 '짜파게티'를 토할 때까지 억지로 먹이는 가혹행위가 있다. 일명 '악기바리'라고 하는데 먹다 목이 메기 쉬운 샌드류의 과자나 입천장이 잘 까지는 '맛동산류'의 과자, 퉁퉁 분 유탕면류가 주된 음식이라고 군인권센터는 밝혔다.

최근 들어 악기바리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부 부대에서는 아직 신병이 들어오면 PX를 데리고 간 뒤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고 하고, 신병이 고른 음식을 토할 때까지 먹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형사사건 기록을 참고하면 식사 직후 야식을 과다 섭취하도록 한 뒤 주먹으로 배를 수차례 때려 구토하게 한 선임병, 라면을 끓여 국물과 면을 남김없이 먹게 하고 25차례 폭행한 선임병이 확인된다.

또 '생선뼈까지 먹기' '바닷물 마시기' 등을 경험한 병사도 있다.

[불로 지지기]

한 선임병이 불에 달군 숟가락으로 살이 타는 냄새가 날 때까지 후임병의 엉덩이를 지진 일이 있었다. 동일 사건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불을 이용한 가혹행위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A씨(당시 이병)는 선임병으로부터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머리카락에 불을 붙여야 했다. 당시 A씨는 헌병 조사에서 "선임병이 라이터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태웠다"고 진술했다. 해당 선임병은 전출 조치됐다.

또 '인내력을 시험한다'는 구실로 혀를 이용해 담뱃불을 끄게 하는 행위, 피다 남은 담배로 손등이나 손바닥, 배 등을 지지는 행위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군인권센터는 '해병대 병영생활 사례 요약' 사례 19에서 "화염 방사기처럼 에프킬라 뿌리고 라이터로 불붙이면 후임병은 벽에 매미처럼 붙어 피했다"고 적었다.

또 다른 부대에서는 "성기를 태워버리겠다"며 바지 지퍼 부분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불을 붙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토바이]


선임병이 보는 앞에서 "성경험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자위행위를 강요당한 병사들이 있다. 한 육군 병장은 소속 생활관(당시 내무실)에서 후임병을 눕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누르고 옷 위로 성기를 2∼3분가량 만졌다. 이어 모두 7차례에 걸쳐 일병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30분~2시간가량 만지거나 흔들어 사정을 유도했다.

또 다른 부대에서는 병사 3명이 6개월 간 육군 이병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이병의 양쪽 다리를 잡은 뒤 발바닥으로 성기를 문지르는 일명 '오토바이' 고문을 가했다.

익명의 전역자는 "속된 말로 꼬인 군번이었는데 선임들이 샤워실에서 자위를 강요하고, 샤워기 호스를 이용해 성기를 자극하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판결문을 보면 후임병이 자위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선임들로부터 집단 조롱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변기 핥기]

지난 7일 해병대에서는 선임병이 전입 신병에게 소변기를 핥게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소속 전모 일병은 저녁점호 청소 때 소변기 상단에 물기가 있다는 이유로 부대에 전입한지 2개월 된 B 이병에게 변기를 핥도록 강요했다.

과거부터 청소와 관련한 가혹행위는 다수 부대에 존재했다. 이등병만 걸레를 빨도록 돼있기 때문에 걸레에 물기가 남아 있으면 이를 이등병에게 먹이는 식이다. 단지 '간부가 보기에 깨끗하지 않다'는 이유로 유사 가혹행위는 대물림되고 있다. 때문에 변기를 핥게 하는 행위도 군 조직 특유의 청소에 대한 강박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부대에서는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박게 한 뒤 물을 내리는 악습이 최근까지 내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윤일병 사망 여파로 피해 사례 속속 드러나
벌레 먹이고 불로 지지고 '악마 선임들'
주먹·발폭행 기본…전기·물고문 다양
자위행위 강요에 성기삽입까지  

[호흡 방해]

지난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피해자 C씨(당시 이병)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2012년 육군 6사단 의무중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해당 부대 선임병들은 군 생활 적응이 더디다는 이유로 C씨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선임병들은 혈압을 재는 측정기를 C씨 목에 넣고,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바람을 넣는 일명 '풍선 놀이'를 즐겼다.

또 다른 부대에서는 후임병에게 방독면을 억지로 씌운 뒤 호흡이 가능한 구멍을 손으로 막은 선임병이 적발됐다. 이 선임병은 수사 과정에서 후임병의 발을 라이터로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부터 병사가 훈련 외 용도로 방독면을 쓰면 가혹행위로 의심받았다. 후임병에게 방독면을 씌운 뒤 특정 자세를 잡게 하고 주먹이나 팔꿈치 등으로 구타한 선임병도 있었다. 피해를 당한 후임병은 방독면 안에서 구토를 할 때까지 폭행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투 미싱]

의경 출신인 D씨는 휴식시간 중 컴퓨터를 이용했다가 '사수'로부터 수십차례 폭행 당했다. 온라인 메신저로 자신의 의경생활을 알린 사실이 탄로 났기 때문이다. 선임은 D씨의 멱살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가 주먹과 발 등을 이용해 사정없이 때렸다. 이어 미싱을 하도록 지시했다. 의경에서 미싱은 가혹행위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법은 이렇다. 치약을 뿌린 수건을 양손으로 잡는다. 수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신의 몸도 최대한 바닥에 밀착시킨다. 얼핏 무릎 꿇은 자세와 비슷하지만 손목을 제외하고 쭈그린 상태로 몸을 일정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근육에 상당한 무리가 간다. 치약이 달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닦는데 물은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치약 박기]

군용 치약 뚜껑에 머리를 박는 체벌은 공포의 대상이다. 때로는 반합뚜껑이나 야삽자루가 같은 용도로 이용된다. 온 체중이 치약뚜껑에 쏠리다 보니 이마가 움푹 패는 외상을 입기 일쑤다. 미끄러질 경우에는 이마가 찢어지기도 한다.

C씨는 수술 외과용 칼을 복부 밑에 놓고 머리박기를 했다. 쓰러질 경우 칼이 배를 뚫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선임들은 수술 외과용 가위 모서리에 이마를 박도록 했다.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면 군화발로 짓밟았다.

[전기 고문]

지난 2006년 공군에서는 선임병 2명이 신병에게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개그맨 흉내를 내도록 신병에게 강요한 뒤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전기고문을 가했다.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신체에 대고 1.5ℓ의 물을 들이붓기도 했다. 피해를 입은 사병은 손등이 감전돼 치료를 받았다.

최근 통신병 출신이라고 밝힌 한 예비역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목이나 복부 등에 감은 뒤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성폭행]

2000년대 군생활을 했던 한 예비역은 샤워 도중 성폭행을 당할 뻔 했다고 했다. 한 선임병이 자신의 항문을 만지며 성기 삽입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인권센터가 작성한 '군대내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기 삽입 시도 또는 성기 삽입'을 목격한 병사는 19명이었다. 이밖에도 한해 373건의 성범죄가 목격됐다. 하루에 한 명꼴로 성범죄 피해자가 생겨났던 셈이다.

한 선임병은 후임병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빨아보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가 전출됐다. 선임이 후임의 가슴을 만지거나 엉덩이를 밀착시키고 성행위를 흉내 낸 사례도 있었다.

[팬티 근무]

이밖에도 한여름 팬티바람으로 야외에 내몰아 모기에 물리도록 하는 행위, 한겨울 수통 등에 있는 물을 뿌리는 행위 등이 가혹행위로 꼽혔다. 또 근무 중인 후임병을 표적으로 대검을 던지는 행위나 소총을 이용해 목을 가격하는 행위 등도 전역자가 기억하는 가혹행위로 전해졌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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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