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올인 '관피아 수사' 중간체크

혼돈의 정국 '게이트'로 돌파한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용두사미로 끝날 것인가. 검찰의 '관피아'(관료+마피아) 수사가 고비를 맞았다. 전국 18개 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던 검찰은 기대했던 '대어'를 낚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철피아' 수사가 정상궤도에 오른 점이 유일한 위안이다. 거물급 고위 관료나 정치인이 연루된 게이트는 아직 터지지 않았다. '권영모 리스트' '박상은 리스트' 등 소문은 많았지만 정권 초 폭발력이 있었던 대기업 수사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참사로 떨어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반등하지 않고 있다. 침몰한 정국의 키를 쥔 관피아 수사, 진행 상황을 중간 점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날은 5월19일이다. 박 대통령은 "수십년간 지속돼 온 고질적인 병폐인 민·관유착 고리를 뿌리뽑겠다"고 공언했다. 때를 맞춰 관피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민·관유착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전국 단위의 통일적인 수사체계를 구축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세월호 타개'
하명받은 검찰

정부가 관피아 카드를 꺼낸 건 이른바 '세월호 정국'과 관련 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공직사회로 돌린 것이다. 내사 없이 기획된 수사라 무리가 따르지 않겠냐는 우려가 나왔다. 문제는 이를 직언할 소신 있는 간부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명을 받은 검찰은 전국 18개 지검에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키로 협의했다. 5월21일 관피아 수사와 관련한 '전국 고검 및 지검 검사장 긴급회의'가 열렸다. 1명을 제외한 22명이 전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 불참한 유일한 검사장이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이다.

전국 18개 지검 특수본 구성…척결 사활
특수1부 철피아 속도…대기업 수사 확대


당시 최 전 지검장은 유병언 일가 비리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검찰 수뇌부도 최 전 지검장을 찾지 않았다. '윗선'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던 최 전 지검장. 그러나 그는 두 달 뒤 스스로 옷을 벗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수사 실패의 책임을 진 것이다. 최 전 지검장이 물러난 수사팀은 표류하고 있다. 수사관들끼리 주먹 다툼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유병언 일가 비리 수사와 더불어 세월호 정국 타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관피아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지난 5월 검찰은 관피아 수사에 착수하면서 선박과 철도, 원전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공공인프라 분야의 비리를 최우선으로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호탄은 몸집이 큰 서울중앙지검이 쏘아 올렸다.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 수사를 궤도에 올린 것이다.

철피아 수사
조현룡 덜미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는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냈던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의 측근 2명을 체포했다. 검찰은 철도부품 납품 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조 의원의 운전기사 위모씨와 지인 김모씨 등 2명을 조사했다고 알렸다. 조 의원은 지난 2008년 8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검찰은 조 의원이 이사장을 지내던 시절 위씨 등이 국내 최대 철도궤도 업체인 삼표이앤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삼표이앤씨로부터 "위씨 등을 통해 조 의원에게 억대의 금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금품 수수과정에서 조 의원이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사실관계를 추궁하고 있다. 금품을 받은 시기와 액수, 구체적인 경위도 함께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이주 내로 조 의원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삼표이앤씨는 철도기술연구원과 공동 개발한 '사전 제작형 콘크리트궤도(PST)'를 2011년부터 코레일 등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삼표이앤씨는 이 PST를 고속철도 건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을 상대로 로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PST는 서울 지하철 중앙선 등 일부 구간에 시험 부설됐다. 그런데 지난 6월 코레일이 현장 점검을 벌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궤도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안전성 논란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기관인 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은 문제의 PST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당시 공단은 성능검증심의위원회를 열고 '조건부 승인' 결론을 내렸다. 이에 삼표이앤씨는 호남고속철도 등에 PST 공법을 누차 적용했다.

검찰은 삼표이앤씨 측이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다른 의원들에게도 금품 로비를 벌인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에는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야당 의원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검찰은 삼표이앤씨로부터 납품 관련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한국철도시설공단 전 감사 성모씨를 구속했다. 성씨는 감사원에서 건설·환경감사국장과 공직감찰본부장(1급)을 지낸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확인됐다.

철피아 비리로 감사원 공무원 출신이 구속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13일 검찰은 철도납품업체 AVT사 등 관련업체 9곳으로부터 2억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감사원 기술직 감사관(4급) 김모씨를 구속기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AVT사가 충청권 출신 여당 의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AVT사는 지난해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실이 발각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을 시켜 철도시설공단에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또 다른 철도관련업체인 H사와 관련한 비리 정황도 수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사에 대해서는 다른 사정기관의 조사가 시작된 상황이다. 전방위로 확대된 철피아 수사가 어떤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교피아 통피아
성과 이어질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임관혁)는 교피아(교육+마피아) 수사에 한창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수사 핵심 인물은 거액의 학교 공금을 빼돌린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이하 SAC) 김민성(55) 이사장이다. 지난달 검찰은 김 이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두 차례 조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2003년 SAC 설립 이후 10여 년간 등록금 및 국비 지원금 등 학교 자금 수십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이사장을 상대로 횡령 금액의 정확한 액수와 경위, 교육·문화계 및 정·관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해 추궁했다. 또 김 이사장이 학교 명의의 건물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매매대금 빼돌려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다.

2년제 학점은행 전문학사과정만 운영되던 SAC는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4년제 학사 학위기관으로 승격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 이사장은 횡령액 일부를 로비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또 서울시교육청 교육지원국장·교육부 대학정책국장·총리실 부이사관 등을 지낸 관료 출신 학장 A씨가 일종의 로비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학교 운영 과정에서 최모 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등 임원진을 상대로 수억원대 로비를 벌인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을 확인했다.

평생교육진흥원은 학점은행 운영과 독학학위검정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SAC와 같은 학점은행 교육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교육부로부터 위임받고, 인가 취소 등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특수2부 '교피아' 난항…로비규명 관건
요란한 특수3부·4부 ‘통피아’도 답보

검찰은 SAC와 평생교육진흥원의 유착 의혹과 함께 SAC 일부 재학생들이 규정 수업일수를 채우지 않아도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인정받는 대가로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평생교육진흥원 성과감사실장 문모(43)씨가 구속됐다. 문씨는 학점은행 운영 등 학교 운영과 관련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SAC로부터 수천만원의 뒷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경과상 문씨의 구속은 김 이사장에 대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스타 제조기'로 불리며 연예 매니지먼트 1세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 이사장은 KBS 탤런트 출신이다. 1987년 우리나라 연기학원의 효시격인 한국방송문화원을 차린 뒤 1989년 매니지먼트사인 MTM을 설립해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그렇지만 특수2부는 '이름값'에서 철피아 수사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특수2부는 STX그룹 정·관계 로비 의혹을 함께 수사 중이다. 교피아 수사에만 집중할 수 없는 여건인 셈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송광조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불구속)한 게 나름의 성과다. 앞으로도 특수2부는 대기업 수사에 좀 더 비중을 둘 것으로 관측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문홍성)는 준정부기관인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하 NIPA)과 민간업체 간의 유착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른바 '통피아(통신+마피아)'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NIPA는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한국전자거래진흥원 등 기존 3개 기관이 통합된 기관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옮겨졌으며, 정보통신산업과 전자상거래 육성, 소프트웨어 산업 지원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NIPA는 국가보조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소속 직원과 업체 간의 청탁성 금품이 오간 정황이 있다. 검찰은 NIPA 직원이 특정업체에게 지급 기준보다 부풀려진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건네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NIPA가 업계 관행에 따라 옛 지식경제부 출신 고위 관료들을 통해 정·관계에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NIPA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NIPA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뒤 7월 말까지 공식 브리핑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압수한 회계장부의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3부 역시 특수2부처럼 다른 수사에 좀 더 힘을 실은 모양새다. 지난달 21일 특수3부는 삼성물산과 삼환기업 등의 하청업체가 도로건설 공사대금을 횡령한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삼환기업이 시공한 함양~성산간 고속도로 터널공사에서 하청업체가 일부 부품의 단가를 부풀려 허위로 청구하거나 설계 기준보다 적은 양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공사대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검찰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환기업, 하청업체 1곳을 압수수색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자료, 공사·계약 관련 서류 등을 확보했다.

만약 특수3부가 하도급 비리에 집중한다면 통피아 수사는 진척이 더딜 수 있다는 관측이다. 마찬가지로 통피아 색출에 나선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의 수사 성과에 우려의 시선이 모인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수백억원 규모의 회사 자금을 빼돌리고 거액의 사기 대출을 받은 혐의로 장병권 한국전파기지국 부회장을 구속했다. 장 부회장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셋톱박스 전문 업체 인수비용 마련을 위해 계열사로부터 무담보로 회삿돈을 빌려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계열사 명의로 무단 지급 보증을 하고, 회사의 보증 서류를 위조해 수백억원의 사기성 대출을 받은 혐의도 함께받고 있다.

전방위 수사에도
관피아는 여전해

검찰의 칼끝은 장 부회장의 아버지인 장석하 대표에게도 향했다. 검찰은 장 부회장과 범행을 공모한 한국전파기지국 전 부사장 최모씨 등을 상대로 장 회장의 범행 가담 여부와 정·관계 로비 여부를 추궁했다.

한국전파기지국은 WCDMA, WiBro, Wi-Fi 등 이동통신서비스에 필요한 설비 구축 및 운용·보수 사업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이동통신 기지국 사업을 거의 독점으로 수주해 왔다. 297억원 규모의 전국 지하철 LTE망 구축 계약을 KT와 체결한 게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수사 막바지 단계에도 거물급 고위 관료나 대기업 임원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요란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다. 통피아가 아닌 장 부회장 개인 비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처럼 철피아 수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관피아 수사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관피아 수사에 '올인'한 것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소홀히했던 것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언제나 그렇듯 '진짜 권력'의 구조적인 비리에는 손을 뻗지 못하는 모습이다.

최근 청와대 출신 고위공직자 집단은 '관피아' 논란을 일으켰다. 최금락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과 최순홍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은 각각 LS산전 고문과 법무법인 광장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심사대상 27명 중 17명이 취업승인을 받았다. 취업이 제한된 인사는 4명에 불과했다. 관피아를 잡겠다면서 관피아를 양산하고 있는 정부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