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동양화가 이기훈 작가가 오는 7월30일부터 7일간 서울 삼청로 갤러리도스에서 전시를 갖는다. '게으른 노동'이라는 공모 프로젝트에 선정된 이 작가는 '목림림'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동양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서양화의 형식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이 작가. 그가 선보일 '산수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그 본질이 있다.
게으름에도 종류가 있다. 노는 일에는 부지런하고 노동에는 게으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생활에는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한 개인을 판단할 때 모든 면에서 게으르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예술도 엄연히 노동
예술에도 엄연히 노동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런데 작가들의 노동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노동과는 다른 함의를 갖는다. 예술가가 만드는 작품은 오로지 생계만을 위해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작품에는 작가가 가진 삶의 철학이 스며 있다. 그것이 때로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작가의 창작행위를 노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 '게으름'은 어쩌면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 갤러리도스는 '게으른 노동'이란 주제로 공모전을 기획했다. 갤러리도스 측은 "노동의 행위에 낭만이 개입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 위해 '게으른'이란 단어를 썼다"고 했다.
동양화가 이기훈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에 선정된 6인의 작가 중 1명이다. 이 작가는 7월30일부터 8월5일까지 '목림림(木林林) 독락임장(獨樂林藏)-내 집 앞이 더 좋다'는 타이틀로 갤러리도스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수려하진 않지만 넉넉한 화풍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이 작가에게 유독 '낭만'이란 단어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이 작가는 몇 해 전부터 '목림림'이라는 전시 주제를 고집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지글>이라는 문화예술 웹진과 인터뷰했던 그는 목림림의 탄생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왜 사람들이 풍경화 그려요? 산수화 그려요? 물으면 할 말이 없었어요. 저는 교수님이 '나무 그려!' 그래서 그린 거예요. 수동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니까 교수님이 '네가 알아서 그려!'라고 하셨고…. 저는 그분이 마지막으로 시켰던 산수화를 계속 그리기 시작한 거예요. (중략) 그리다 보니까 산수화는 철학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부담이 됐어요. '목림림'은 이처럼 풍경과 나무에 집착하는 제 모습이에요. 한때는 목, 목, 목, 목, 이렇게 쓸까도 했었는데 '목'을 계속 쓰니까 '림'이 돼서 어감상 끊은 거죠."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한없이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업이 '게으론 결과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이 작가는 나무를 주제로 꾸준히 작업해 왔다. 나무 한 그루를 정성스레 그리기도 했고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 장관을 그리기도 했다. '산수화'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셈이다.
7월30일부터 '목림림' 주제로 전시
동양산수화 바탕…서양화 개념 차용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장기인 나무를 보여준다. 주로 먹과 연필을 이용한 그의 작업은 작가 본인의 말처럼 기술적인 면에서 특이하지 않다. 그러나 이미지만 따로 보면 강렬함이 있다. 동양화의 관념과 서양화의 직관이 세련되게 결합된 나무의 확장은 절묘한 경계에서 각 장르의 장점을 수반하고 있다.
전시서문을 쓴 박서우씨의 글을 보면 이 작가 작품의 고유한 특징들이 드러난다. 형태적인 면에서 이 작가는 정확한 묘사를 피하고 있다. 다른 것들을 배제하고 흰 화면에 검정색으로 나무만 그린다.
문제는 묘사된 나무가 우리가 아는 '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작품 속 나무는 일종의 추상적 이미지다. 이 작가는 각 작품들이 오히려 “빈 공간에 대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채워지지 않은 내면에 대한 그림인 셈이다. 보이지 않는 '무(無)'를 그리고자 했던 말레비치나 내적인 에너지를 추상으로 표현했던 칸딘스키처럼 이 작가의 작업은 묘사의 대상이 아닌 작가의 내면을 우위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저 그릴 뿐이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업노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은 내게 어떤 개념이 그림 안에 들어 있냐고 묻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릴 뿐이다. 사실은 그림이 완성되고 난 후, 그 이후에야 생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개념을 갖고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이 표출된다고 믿는다. 의도된 생각이 아니라 내가 다가갈 수 없고,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나무는 '풍경'이 아닌 나무를 그려야 하는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올 여름, 이 작가가 수놓은 '마음의 숲'으로 시원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이기훈 작가는?>
▲한성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 동양화전공
▲홍익대 동양화전공 박사과정 휴학
▲개인전 '수묵유운'(2006․백송갤러리), '풍경에 대한 집착'(2009․관훈갤러리), '목림림'(2012․SPACE CAN 북경) 등 8회
▲단체전 '미술세계/조선일보 우수 신진작가 초대전'(2008․조선일보갤러리), '주중 한국 문화원 자선경매 전시'(2010․주중 한국 문화원), '한국화 옛 뜰에 서다'(2011․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등 다수
▲외교부 재외공관 문화전시장화 작품소장, 필리핀 공관 외 다수 기업/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