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비화 조짐 '정치권 데스노트' 소문과 진실

여의도 살벌한 피바람 몰아친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치권이 떨고 있다. 최근 검찰이 관피아 수사와 관련 다각도로 첩보를 수집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칼날은 결국 정계를 향할 것이 분명해서다. 앞서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공천헌금으로 의심되는 뒷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며 수사망에 올랐고, 김형식(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의원은 수천억원대 자산가인 송모씨를 살인교사한 혐의와 함께 이른바 ‘철피아’ 사건에 연루되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사정당국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포함된 이른바 ‘정치권 X파일’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권력형 게이트에 여의도 정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의 최대 화두는 7·30 재보선이다.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민심의 향배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코너에 몰린 박근혜정부는 ‘인사 참극’으로 구겨진 체면을 사정 드라이브로 돌파하고 있다. 핵심 타깃은 명확하다. 바로 관료사회 밖에 있는 의회 권력이다. 

사정 드라이브
정치권 겨눴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정부는 ‘관피아 척결’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이에 발맞춰 검찰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게이트 정황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내사 없이 진행된 수사는 번번이 벽에 막혔고 관련자들은 몸을 사리면서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성과 없이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정부다. 
 
하지만 관피아 수사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사건이 검·경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사주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사정당국 입장에서 이 사건은 가뭄 끝에 단비였다. 
 

지난 7일 검찰은 김 의원의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더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검찰이 운을 띄운 인력 보강은 김 의원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정치권 로비 의혹 규명에 있었다. 
 
검찰은 현재 강력 전담 부장검사와 평검사 3명을 투입해 피해자 송모(67)씨가 생전에 작성한 이른바 ‘뇌물리스트’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매일기록부’라고 적힌 이 장부는 A4용지 크기의 공책 1권 분량으로 지난 1991년 말부터 송씨가 만난 사람의 이름과 지출 내역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YT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수천억원대 재력가로 알려진 송씨는 생전 김 의원을 통해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로비 금액은 최소 억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검찰은 이 돈이 실제로 해당 정치인에게 건네졌는지를 확인 중이다. 
 
그리고 송씨의 로비 의혹은 앞서 밝힌 매일기록부에 비밀이 담겨 있다. 송씨는 금품을 전달하면서 돈을 준 시간과 장소, 최종 로비 대상까지 꼼꼼히 작성한 것으로 검찰은 전했다. 무엇보다 김 의원에게 건네진 5억2000만원 중 일부 금액에는 해당 정치인의 이름이 병행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송씨가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고, 평소 친분이 있던 김 의원이 전달책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것이다. 
 
‘펑펑’ 터지는 로비장부에
떨고 있는 유력 정치인들
 
검찰에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자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장부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 및 공무원들의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다. 경찰 한 고위 관계자는 “철도 비리와 관련된 사안이 (장부에) 포함돼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철도 관련 업체인 AVT사가 김 의원의 측근인 팽모씨에게 13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팽씨는 김 의원으로부터 재력가 송씨를 살해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실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AVT사는 과거 팽씨의 아내에게 1300만원을 송금했다. 경찰은 이 돈이 결국 김 의원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AVT사의 회사돈 3000만원이 김 의원에게 직접 전달된 정황도 확보했다. 김 의원 측은 이 돈이 모두 빌린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유력 정치인
이름 나온다
 
이제 관심은 두 가지로 쏠린다. 유력 정치인이 실제로 대가성이 있는 금품을 수뢰했는지 여부와 김 의원이 금품을 전달했다면 어떤 정치인이 돈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김형식 리스트’가 존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여의도 사정에 정통한 김 의원이 한 사람에게만 로비를 하진 않았을 것이란 추론이다.
 
때문에 김 의원이 입을 연다면 현역 국회의원의 목줄이 위태로울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대형 게이트로 번질 여지가 있어 그의 출신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곤혹스러워 하는 눈치다. 
 
특히 정치인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로 지목되는 공천 문제와 관련해 일종의 상납구조가 드러날지도 관심이다. 공천을 받기 위해 위로는 중앙당에 로비를 하고, 아래로는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제공받는 상납구조가 실재할 개연성이 농후한 까닭이다. 이래저래 김 의원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이른바 ‘박상은 스캔들’의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불법 정치자금 수뢰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최근 운전기사인 김모씨의 폭로로 궁지에 몰렸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돈가방째로 검찰에 들고 갔던 3000만원 외에도 수천만원이 더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인천지방검찰청 해운비리수사팀(팀장 송인택 1차장검사)은 박 의원의 운전기사인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말 모두 2차례에 걸쳐 각각 현금 3500만원과 2000만원을 박 의원의 차 안에서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당시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으며, 현금 다발이 찍힌 사진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 해운·항만업계의 비리 근절을 목표로 했던 이번 수사는 어느덧 박 의원의 개인 비리 규명으로 수사의 중심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시사저널> 등은 박 의원의 비리 의혹이 담긴 일명 ‘X파일’이 실재하며 이 파일이 검찰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소위 ‘박상은 X파일’로 불리는 이 문서는 박 의원과 지역 기업 간의 유착 사례와 불법 정치자금 의혹 등 10여가지가 사례별로 정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9일 한 검찰 관계자는 “해운비리와 관련된 정·관계 로비 의혹은 운항관리자들이 연루된 비리를 수사한 뒤 마지막에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개인 비리 의혹은 우선 수사대상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통상 정·관계 비리 수사는 지검급 수사력을 집중해야 하며, 공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 발굴이 핵심이다. 그렇지만 관피아 수사로 벌린 일이 많은 상황에서 김 의원을 본격적으로 수사할 여력은 없다는 설명이다.
 
특별수사팀은 지난 두 달 동안 해양수산부 출신인 이인수 전 해운조합 이사장과 김상철 안전본부장을 재판에 넘겼고, 인천항 선주들과 유착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해경 경정과 해운조합 사업본부장 등을 구속했다. 사실상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와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박 의원까지 구속한다면 자칫 공소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못 잡는 검찰?
안 잡는 검찰?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은 먼저 ‘쪼개기 후원금’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천지역 기업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일 검찰은 대형 제강사 D사의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했다. D사는 박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동구 소재로 박 의원에게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업체들 중 하나로 지목된 곳이다. 검찰은 현재 D사가 회사 자금을 소액으로 쪼갠 뒤 직원들 명의로 박 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경위를 파악 중이다. 
 
[김형식 리스트] 야당 정치인 거론
[권영모 리스트] 여당 실세들 구설
[박상은 리스트] 정재계 유착 회자
 

정치권을 겨냥한 로비에서 ‘쪼개기 후원금’은 단골 소재다. 사법당국의 추적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비리의 중심에 있는 AVT사 대표 이모씨는 김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7년과 2010년 국회의원 두 명에게 각각 정치후원금을 냈다. 2007년 2월에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에게 200만원을 후원했고, 2010년 3월에는 당시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였던 A의원(전직)에게 후원금 한도액인 500만원을 냈다. 그런데 같은 날 A의원은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으로부터도 500만원을 후원받았다. 권 전 대변인은 AVT사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철피아 비리로 구속된 첫 번째 정치인이다. 
 
그런데 권 전 대변인과 A의원은 대학 선후배 관계로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다. 즉 권 전 대변인이 AVT사를 대신해 A의원에게 정치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이는 AVT사가 전달책 권 전 대변인을 통해 국회에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다는 정황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는 철도부품 제조업체로부터 납품 관련 로비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권 전 대변인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권 전 대변인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사업과 관련해 AVT사로부터 비자금 명목으로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권 전 대변인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게 수천만원을 대신 건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권 전 대변인이 2년여 전부터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과 만나 설이나 추석, 연말마다 납품·수주 등에 관한 청탁성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한 가지 뼈아픈 대목은 중요 인물인 김 전 이사장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것에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전 이사장이 남긴 유서를 보면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정계 진출 유혹에 끌린)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내용이 있다. 업체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당사자가 정치권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을 남긴 셈이다. 
 
일각에선 권 전 대변인이 김 전 이사장에게 공천을 미끼로 정치권 로비를 부탁하지 않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권 전 대변인은 김 전 이사장에게 수상한 3000만원을 전달한 바 있다. 또 권 전 대변인은 AVT사의 고문을 지낸 전력이 있다. 사실상 로비가 주 업무였던 것으로 보이며 검찰은 권 전 대변인이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배달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달콤한 유혹
결국은 파국
 
검찰은 AVT사 관계자로부터 “권 전 대변인이 여당 실세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이씨와 김 전 이사장에게 소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형식·박상은 리스트’처럼 이른바 ‘권영모 리스트’가 실재하는 셈이다. 더구나 ‘권영모 리스트’는 그 정황이 앞선 ‘김형식 리스트’보다 더욱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전·현역 국회의원이 망라된 각종 ‘로비 리스트’에 여의도는 폭풍전야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이버사령부 ‘정치글 작성’ 파문
사실로 드러난 ‘국풍’ 의혹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관련 댓글 작업에 관여한 의혹을 받은 연제욱(소장)·옥도경(준장) 전 사이버사령관이 정치관여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6일 “지난 달 중순께 국방부 조사본부가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을 군 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며 “피의자 신분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조사본부가 이들 전직 사이버사령관을 형사 입건한 것은 요원들에 대한 지휘 감독을 소홀히 하고 정치글 작성과정에 역할을 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연제욱·옥도경 입건
대선 댓글 관여 혐의
 
연제욱 소장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관여 의혹을 받아 지난 4월 육군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전보됐다. 옥도경 준장은 연 소장에 이어 2012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냈다. 이후 연 소장과 같은 시기에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정책연수를 받고 있다.
 
앞서 조사본부는 지난해 12월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 심리전단 요원들이 작성한 ‘정치관련 글’이 1만5000여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한 ‘정치글’이 2100여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추가 수사 과정에서 정치관련 글이 3만여건, 정치글도 6000여건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간수사 당시보다 2∼3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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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