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비화 조짐 '정치권 데스노트' 소문과 진실

여의도 살벌한 피바람 몰아친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치권이 떨고 있다. 최근 검찰이 관피아 수사와 관련 다각도로 첩보를 수집하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칼날은 결국 정계를 향할 것이 분명해서다. 앞서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공천헌금으로 의심되는 뒷돈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며 수사망에 올랐고, 김형식(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의원은 수천억원대 자산가인 송모씨를 살인교사한 혐의와 함께 이른바 ‘철피아’ 사건에 연루되며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사정당국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포함된 이른바 ‘정치권 X파일’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권력형 게이트에 여의도 정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여의도 정가의 최대 화두는 7·30 재보선이다.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민심의 향배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코너에 몰린 박근혜정부는 ‘인사 참극’으로 구겨진 체면을 사정 드라이브로 돌파하고 있다. 핵심 타깃은 명확하다. 바로 관료사회 밖에 있는 의회 권력이다. 

사정 드라이브
정치권 겨눴다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정부는 ‘관피아 척결’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이에 발맞춰 검찰은 전·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게이트 정황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내사 없이 진행된 수사는 번번이 벽에 막혔고 관련자들은 몸을 사리면서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성과 없이 변죽만 울린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정부다. 
 
하지만 관피아 수사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사건이 검·경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사주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강서구 재력가 살인사건이 불거진 것이다. 사정당국 입장에서 이 사건은 가뭄 끝에 단비였다. 
 

지난 7일 검찰은 김 의원의 청부살해 사건과 관련해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더 인력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검찰이 운을 띄운 인력 보강은 김 의원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정치권 로비 의혹 규명에 있었다. 
 
검찰은 현재 강력 전담 부장검사와 평검사 3명을 투입해 피해자 송모(67)씨가 생전에 작성한 이른바 ‘뇌물리스트’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매일기록부’라고 적힌 이 장부는 A4용지 크기의 공책 1권 분량으로 지난 1991년 말부터 송씨가 만난 사람의 이름과 지출 내역 등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YTN> 등의 보도에 따르면 수천억원대 재력가로 알려진 송씨는 생전 김 의원을 통해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로비 금액은 최소 억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검찰은 이 돈이 실제로 해당 정치인에게 건네졌는지를 확인 중이다. 
 
그리고 송씨의 로비 의혹은 앞서 밝힌 매일기록부에 비밀이 담겨 있다. 송씨는 금품을 전달하면서 돈을 준 시간과 장소, 최종 로비 대상까지 꼼꼼히 작성한 것으로 검찰은 전했다. 무엇보다 김 의원에게 건네진 5억2000만원 중 일부 금액에는 해당 정치인의 이름이 병행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송씨가 유력 정치인에게 로비를 시도했고, 평소 친분이 있던 김 의원이 전달책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는 것이다. 
 
‘펑펑’ 터지는 로비장부에
떨고 있는 유력 정치인들
 
검찰에 앞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자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장부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 및 공무원들의 자금흐름을 추적 중이다. 경찰 한 고위 관계자는 “철도 비리와 관련된 사안이 (장부에) 포함돼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철도 관련 업체인 AVT사가 김 의원의 측근인 팽모씨에게 13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팽씨는 김 의원으로부터 재력가 송씨를 살해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실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AVT사는 과거 팽씨의 아내에게 1300만원을 송금했다. 경찰은 이 돈이 결국 김 의원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경찰은 AVT사의 회사돈 3000만원이 김 의원에게 직접 전달된 정황도 확보했다. 김 의원 측은 이 돈이 모두 빌린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유력 정치인
이름 나온다
 
이제 관심은 두 가지로 쏠린다. 유력 정치인이 실제로 대가성이 있는 금품을 수뢰했는지 여부와 김 의원이 금품을 전달했다면 어떤 정치인이 돈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김형식 리스트’가 존재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회 보좌관 출신으로 여의도 사정에 정통한 김 의원이 한 사람에게만 로비를 하진 않았을 것이란 추론이다.
 
때문에 김 의원이 입을 연다면 현역 국회의원의 목줄이 위태로울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대형 게이트로 번질 여지가 있어 그의 출신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곤혹스러워 하는 눈치다. 
 
특히 정치인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로 지목되는 공천 문제와 관련해 일종의 상납구조가 드러날지도 관심이다. 공천을 받기 위해 위로는 중앙당에 로비를 하고, 아래로는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제공받는 상납구조가 실재할 개연성이 농후한 까닭이다. 이래저래 김 의원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이른바 ‘박상은 스캔들’의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불법 정치자금 수뢰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은 최근 운전기사인 김모씨의 폭로로 궁지에 몰렸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돈가방째로 검찰에 들고 갔던 3000만원 외에도 수천만원이 더 있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인천지방검찰청 해운비리수사팀(팀장 송인택 1차장검사)은 박 의원의 운전기사인 김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난 5월말 모두 2차례에 걸쳐 각각 현금 3500만원과 2000만원을 박 의원의 차 안에서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당시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으며, 현금 다발이 찍힌 사진도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 해운·항만업계의 비리 근절을 목표로 했던 이번 수사는 어느덧 박 의원의 개인 비리 규명으로 수사의 중심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시사저널> 등은 박 의원의 비리 의혹이 담긴 일명 ‘X파일’이 실재하며 이 파일이 검찰로 넘어갔다고 보도했다. 소위 ‘박상은 X파일’로 불리는 이 문서는 박 의원과 지역 기업 간의 유착 사례와 불법 정치자금 의혹 등 10여가지가 사례별로 정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신중한 입장이다. 지난 9일 한 검찰 관계자는 “해운비리와 관련된 정·관계 로비 의혹은 운항관리자들이 연루된 비리를 수사한 뒤 마지막에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개인 비리 의혹은 우선 수사대상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통상 정·관계 비리 수사는 지검급 수사력을 집중해야 하며, 공소 유지에 필요한 증거 발굴이 핵심이다. 그렇지만 관피아 수사로 벌린 일이 많은 상황에서 김 의원을 본격적으로 수사할 여력은 없다는 설명이다.
 
특별수사팀은 지난 두 달 동안 해양수산부 출신인 이인수 전 해운조합 이사장과 김상철 안전본부장을 재판에 넘겼고, 인천항 선주들과 유착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해경 경정과 해운조합 사업본부장 등을 구속했다. 사실상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와의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박 의원까지 구속한다면 자칫 공소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못 잡는 검찰?
안 잡는 검찰?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은 먼저 ‘쪼개기 후원금’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천지역 기업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일 검찰은 대형 제강사 D사의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했다. D사는 박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동구 소재로 박 의원에게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업체들 중 하나로 지목된 곳이다. 검찰은 현재 D사가 회사 자금을 소액으로 쪼갠 뒤 직원들 명의로 박 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한 경위를 파악 중이다. 
 
[김형식 리스트] 야당 정치인 거론
[권영모 리스트] 여당 실세들 구설
[박상은 리스트] 정재계 유착 회자
 

정치권을 겨냥한 로비에서 ‘쪼개기 후원금’은 단골 소재다. 사법당국의 추적을 교묘히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철도비리의 중심에 있는 AVT사 대표 이모씨는 김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7년과 2010년 국회의원 두 명에게 각각 정치후원금을 냈다. 2007년 2월에는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에게 200만원을 후원했고, 2010년 3월에는 당시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였던 A의원(전직)에게 후원금 한도액인 500만원을 냈다. 그런데 같은 날 A의원은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으로부터도 500만원을 후원받았다. 권 전 대변인은 AVT사로부터 로비 명목으로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철피아 비리로 구속된 첫 번째 정치인이다. 
 
그런데 권 전 대변인과 A의원은 대학 선후배 관계로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다. 즉 권 전 대변인이 AVT사를 대신해 A의원에게 정치 후원금을 전달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이는 AVT사가 전달책 권 전 대변인을 통해 국회에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다는 정황으로도 해석된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김후곤)는 철도부품 제조업체로부터 납품 관련 로비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권 전 대변인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권 전 대변인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호남고속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사업과 관련해 AVT사로부터 비자금 명목으로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권 전 대변인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씨로부터 부탁을 받고,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에게 수천만원을 대신 건넸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권 전 대변인이 2년여 전부터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과 만나 설이나 추석, 연말마다 납품·수주 등에 관한 청탁성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한 가지 뼈아픈 대목은 중요 인물인 김 전 이사장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것에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 전 이사장이 남긴 유서를 보면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갔다. (정계 진출 유혹에 끌린) 길의 끝에는 업체의 로비가 기다리고 있더라”는 내용이 있다. 업체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당사자가 정치권으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을 남긴 셈이다. 
 
일각에선 권 전 대변인이 김 전 이사장에게 공천을 미끼로 정치권 로비를 부탁하지 않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권 전 대변인은 김 전 이사장에게 수상한 3000만원을 전달한 바 있다. 또 권 전 대변인은 AVT사의 고문을 지낸 전력이 있다. 사실상 로비가 주 업무였던 것으로 보이며 검찰은 권 전 대변인이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배달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달콤한 유혹
결국은 파국
 
검찰은 AVT사 관계자로부터 “권 전 대변인이 여당 실세 의원과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이씨와 김 전 이사장에게 소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형식·박상은 리스트’처럼 이른바 ‘권영모 리스트’가 실재하는 셈이다. 더구나 ‘권영모 리스트’는 그 정황이 앞선 ‘김형식 리스트’보다 더욱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전·현역 국회의원이 망라된 각종 ‘로비 리스트’에 여의도는 폭풍전야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이버사령부 ‘정치글 작성’ 파문
사실로 드러난 ‘국풍’ 의혹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관련 댓글 작업에 관여한 의혹을 받은 연제욱(소장)·옥도경(준장) 전 사이버사령관이 정치관여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6일 “지난 달 중순께 국방부 조사본부가 연제욱·옥도경 전 사이버사령관을 군 형법상 정치관여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며 “피의자 신분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조사본부가 이들 전직 사이버사령관을 형사 입건한 것은 요원들에 대한 지휘 감독을 소홀히 하고 정치글 작성과정에 역할을 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연제욱·옥도경 입건
대선 댓글 관여 혐의
 
연제욱 소장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냈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관여 의혹을 받아 지난 4월 육군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전보됐다. 옥도경 준장은 연 소장에 이어 2012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사이버사령관을 지냈다. 이후 연 소장과 같은 시기에 자리에서 물러나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정책연수를 받고 있다.
 
앞서 조사본부는 지난해 12월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 심리전단 요원들이 작성한 ‘정치관련 글’이 1만5000여건,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한 ‘정치글’이 2100여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추가 수사 과정에서 정치관련 글이 3만여건, 정치글도 6000여건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간수사 당시보다 2∼3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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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