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힘받는 'MB 사정설' 막후

"이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겨냥한 사정설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번에는 MB를 직접 칠거 라는 소문도 들린다. 정권 출범 초 박근혜정부는 MB를 간접 겨냥한 수사로 재미를 봤다. 정·재계에 포진한 MB의 측근들은 줄줄이 감옥으로 향했다. 박근혜정부가 MB라인으로 규정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옷을 벗으면서 지난 정권에 대한 사정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또 다시 MB를 겨눈 사정 카드가 부각되는 모양새다. 잊을만 하면 나오는 사정설의 실체와 그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BBK사건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한 간부급 사정기관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복수 관계자는 지난 정권을 겨냥한 사정 작업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 청산' 카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았던 것처럼 박근혜정부도 한때 '파트너'였던 MB를 조준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팔다리 잘린
MB 겨눌까

사실 지난해부터 MB를 간접 겨냥한 수사는 계속돼왔다. 대표적인 것은 원전비리 수사다. 이미 파이시티 사건 등으로 복역 중이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만기 출소를 하루 앞두고 원전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 상태로 항소심을 치르게 됐다.

횡령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채 전 KT 회장의 경우도 지난 정권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수사를 받게 된 경우다.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가 확정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어느덧 항소심 선고를 눈앞에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CJ·효성 등 '친MB기업'으로 낙인찍힌 재벌들은 권불오년을 체감하고 있다.

그간 정·재계 가릴 것 없이 죽은 권력을 할퀴고 물었던 검찰. 그런데 이 모든 수사에서 MB의 이름은 단 한 차례도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 '만사형통'으로 불리던 이상득 전 의원이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 외에는 '4대강 사업'과 같은 정권 차원의 의혹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MB의 대선 전 밀약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밀약은 휴지조각
정권안보가 우선

그런데 MB의 안위를 박 대통령이 챙기기로 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확인되지 않은 낭설이라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양측이 한 것은 정치적인 거래이지 누가 누굴 책임지거나 할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그는 "선거 전에는 '살아있는 권력'(MB)과 '미래 권력'(박근혜) 간에 어떠한 말이든 오고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이 바뀌면 남는 것은 '산 권력'과 '죽은 권력'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예전처럼 힘의 균형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고 (때문에) 구두로 한 밀약 같은 건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 대통령과 MB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생긴 앙금으로 서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MB를 믿지 않는 박 대통령은 내각을 꾸릴 때도 이른바 친이계 인사들을 배제했다. 차라리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겠다는 게 밖으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었다.

기본적으로 MB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은 MB정권 때 임명된 5대 권력기관장을 모조리 교체했다. 특히 청와대와 엇갈린 행보로 미운털이 박힌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대선 수사 여파가 컸다.

채 총장은 지난해 6월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청와대를 발칵 뒤집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박근혜정부는 '정권 안보'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기조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 지휘에 능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등장도 이 무렵 이뤄졌다.

이후 박근혜정부는 순항했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같은 외환도 있었지만 냉정한 평가로 정권이 뿌리째 흔들릴 스캔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벼랑 끝에 몰렸다. 세월호 사고가 터진 것이다. 사고를 전후로 70%에 육박했던 국정 지지율은 40%대로 주저앉았다.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여권은 위기론에 직면했다. 난맥상을 해소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과거로부터 정권이 궁지에 몰리면 지난 정권을 사정해 난국을 돌파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MB는 광우병 촛불 정국 이후 전직 대통령의 도덕성을 건드렸다.

따라서 박근혜정부 역시 자신들의 정권 안보를 위해 전임을 공격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이어졌다. 타깃은 MB. 그간 박근혜정부는 호시탐탐 MB를 향한 이빨을 드러냈다. 다만 물리지 않았다는 것이 변수였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원전비리 수사나 4대강 수사 등은 검찰 자의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 수사가 아니다. 정권 차원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어떤 검사가 날림으로 수사할 수 있겠냐는 반문이다.

원전비리에 정통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꼭대기로 가면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나오고, 노무현(전 대통령)도 나오고, MB도 나오는 게 바로 원전비리"라면서 "뿌리가 깊고, 외교적인 문제도 결려 있어서 청와대에서 많은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원전 수사는 처음부터 MB만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4대강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해 4대강 비리를 파헤쳤던 한 국회 관계자는 "장관급까지는 얘기가 되지만 그 위로는 꽉 막혀 있다. 범정(검·경 각 범죄정보과)에서도 자료를 가져갔지만 게이트로 엮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즉 4대강 수사가 게이트로 비화하려면 MB가 직접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그럴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지방선거 넘겼지만
인사실패 불안하다

결과적으로 MB와 연관된 대부분의 수사는 흐지부지 됐다. 청와대 입장에서도 무리한 기소로 벌집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일단은 지방선거 결과를 받아놓고 대응하면 되는 일이었다. 때는 박 대통령이 '국가개조론'을 들고 나온 시기였다. 'VIP'의 급작스런 주문에 검찰은 '관피아' 수사를 하기에도 벅찼다는 후문이다.

6월4일 지방선거 개표결과가 공개됐다. 여권은 기대보다 선전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을 재신임한 국민이었다. 청와대는 국정쇄신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못가 청와대는 발목이 잡혔다. 이번 정부의 고질적인 병폐가 도진 것이다. 바로 '인사 참극'이다.

안대희 전 대법관에 이어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한 건 뼈아팠다. 국무총리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정부에 언론은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지지율은 폭락했다. 이 무렵 등장한 것이 바로 MB사정설이다.

지난 6월30일 <시사저널>은 "검찰이 MB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주)다스(이하 다스)에 대해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검찰발로 다스 수사가 확인된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런데 관련 보도 배경에는 정권의 복합적인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드러내 놓고 수사하자니 다스 수사가 만만한 것도 아니고, 앞선 BBK 수사에서 검찰은 이미 실패를 경험한 바 있는 까닭이다.

한 경찰 전직 고위 관계자는 "BBK는 MB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말했다. BBK 사건은 정권 차원에서 강력한 의지로 풀어내지 않는 한 규명되기 어려운 사건이다. 국내 사정기관은 물론 해외 사법기관의 전폭적인 공조도 필수다. 복잡한 자금흐름의 종착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상장사로 실소유주마저 부정확한 다스 수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다스를 파헤치려면 그 뿌리인 BBK를 함께 건드려야 한다. BBK 사건은 이미 수도 없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늘 '복잡한 사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간략히 살피면 BBK 사건에서 BBK는 김경준씨가 설립한 투자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후 BBK는 코스닥 상장사 옵셔널캐피탈을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씨는 주가조작을 시도했다. 같은 기간 김씨는 BBK로 투자된 회삿돈을 횡령했다. 이 사실을 안 투자자들이 항의했다.

그러자 김씨는 이들의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옵셔널캐피탈의 회삿돈 320억원을 빼돌렸다. 이번에는 옵셔널캐피탈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당시 다스도 옵셔널캐피탈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다스는 투자금 50억원만 돌려 받고 나머지 140억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3년 김씨가 스위스 은행에 140억원을 예금했다. 예금 직후 김씨는 미국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이 140억원의 소유권을 놓고, 다스와 옵셔널캐피탈 간의 소송전이 진행됐다. 7년간의 다툼 끝에 미 연방법원은 옵셔널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의 140억원이 김씨가 옵셔널캐피탈로부터 횡령한 320억원 중 일부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돌연 140억원을 다스로 송금했다. 다스는 소를 취하했으며,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은 국내로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MB의 혐의는 명백히 벗겨졌는데 이를 두고 '이면합의'라는 논란이 일었다. 아직까지 김씨가 다스로 돈을 송금한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무엇을 수사하든
당장은 못꺼낸다


일각에선 다스를 MB의 비자금 창구로 보고 있다. 만약 다스와 관련한 계좌흐름을 추적한다면 의외의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BBK와 인연이 깊은 친박계 중 일각에선 "무너진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MB에 대한 사정을 재개하는 것 말고 답이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몇 달 후의 일이다. 당장 7·30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터뜨릴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아울러 MB사정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스와 연관이 없는 사건일 수 있다. 한 언론 관계자는 "적당한 타이밍에 여론의 흐름을 돌리기 위해 BBK 카드를 먼저 던져 놓고, 안에서는 수사를 미룬 채 관망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물 사랑 하더니…MB 생수회사 고문설 진상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물 관련 사업으로 유명한 A사의 고문으로 위촉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익명의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A사는 MB를 고문으로 위촉해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사의 대표는 수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부 기관으로부터 몇 차례 훈장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MB는 서울시장 시절 A사에 특별상을 수여했으며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공로상도 줬다. A사의 사무실에는 MB와 A사의 대표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지낸 MB가 직함을 맡기에는 너무 작은 회사로 보였다.

A사에 전화를 걸었다. A사는 "금시초문"이라며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알아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A사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해당 건(MB를 고문 혹은 이사로 등기한 것 아니냐)은 A사와 관련 없다"는 답변이었다. 확인을 위해 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관련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이냐는 물음에 A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고문설이 나온 배경은 무엇일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보가 나온 출처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기자들끼리 도는 '찌라시'인지 아니면 기관에서 나온 '정보'인지를 체크해야한다는 설명이었다.

전직 사정기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A사의 물 사업은 동종 업계에서 큰 사업은 아니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정도 되는 사람(MB)이 가기에는 먹을 것도 없고, 다소 생뚱맞지 않냐"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MB가 평소 물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다는 내부 주장도 있었다. 혹은 진짜 고문이 된 회사는 다른 회사인데 일종의 '역정보'를 퍼뜨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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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