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와대-전경련 '극비 작전' 의혹

"교황 오면 사제단 막아 달라"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8월로 예정된 교황 방한을 앞두고 "청와대가 전경련에 모종의 청탁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청탁의 내용은 "(정치적인 시위가 예상되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막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 간의 은밀한 거래일까.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일까. 관련한 내막을 취재했다.
 

지난 18일 교황청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8월14일부터 4박5일간 한국에서의 일정을 소화한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3월10일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 및 한국 천주교회의 초청으로 오는 8월 방한할 것임을 알렸다.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대통령 면담 및 대전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종북 색출?

그런데 교황 방한과 관련해서 믿기 힘든 주장이 나왔다. 익명의 전경련 관계자는 사석에서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는 "지난 3월께 BH(청와대)에서 전경련으로 전화를 걸어 '(교황 방한 즈음) 정구사를 막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정구사'는 바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이다.

사제단은 지난 1974년 있었던 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결성됐다. 사제단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특히 사제단은 1987년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던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며 6월 항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국민·참여정부를 거쳐 이명박정부에 이르자 사제단은 이른바 '색깔론'에 휘말렸다. 사제단은 4대강 사업 반대 등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는데 뜻을 달리한 보수 성향 언론들은 사제단을 일컬어 '종북세력'으로 규정짓기도 했다.


2013년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종북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격화됐다. 사제단은 같은 해 11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시국미사를 열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다. 이는 천주교계 안팎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왔다.

시국미사 직후 청와대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도라는 것은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인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되라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제단은 며칠 뒤 '저항은 믿음의 맥박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대통령의 결단'을 거듭 촉구했다.

지난 일련의 과정들로 미뤄봤을 때 청와대가 사제단의 행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만약 교황 방한 때 사제단이 시위 등의 방법으로 '정권의 부당함'을 알린다면 곤혹스러워지는 건 청와대였다. 교황과 함께 당도한 전 세계 외신들의 눈과 귀가 사제단으로 쏠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론적으로 청와대가 "막아 달라"고 할 근거는 충분해 보였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다수 국회 관계자와 접촉했다. 이 중 복수 여권 관계자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이들은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BH가 확인을 해주겠냐"고 회의적인 입장을 폈다.

하지만 미약한 실마리가 있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전경련 비선 반응이 수상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전경련 비선라인으로 알려진 A씨는 '교황 방한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들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들은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상황에서 덮어놓고 부인부터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통화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었다. 진위를 둘러싼 궁금증은 더해갔다.
 

기자는 두어 차례에 걸쳐 사제단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러나 사제단 측은 신중한 입장이었다. 사제단 관계자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막은 모른다"며 "우리도 (사실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그는 교황 방한 시 사제단의 일정과 관련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 17일 기자는 서울대교구 사무처가 있는 명동성당을 방문했다. 서울대교구는 이번 교황 방한을 준비하는 곳 중 하나다. 급작스런 방문에 관계자는 일정상 만나지 못했다. 대신 언론담당 팀장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사제단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다른 곳도 아닌 전경련에 사제단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왜 하필 전경련이었을까.

이와 관련 팀장에게  '교황 방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외부(기업)의 지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팀장은 "확인해 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는 "교황의 방한 일정이나 동선을 정부(청와대)와 사전 협의했고, 경호 등 행사 지원과 관련해서도 조율 중에 있다"고 답했다.

8월 교황 방한 관련 "모종의 입김" 주장
그런데 왜 하필 전경련?…미스터리 증폭

기자는 전경련에 공식적으로 문의했다. 그러나 전경련 측은 "금시초문"이라며 주장을 일축했다. 전경련 측은 "우리가 그런 부탁을 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우리가 무슨 재주로 사제단을 막겠냐"고 말했다. 전경련과 친분이 있는 한 언론인도 "연결고리가 느슨하다"며 의문을 표했다.

그렇다면 혹시 최초 전경련 관계자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당사자의 주장이다. 해당 관계자는 "생각보다 전경련이 개입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면서 "당시 통화내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정구사'라는 말이 나온 것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강조했다.

의혹을 풀기 위해 기자는 지난 1984년과 1989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방한했던 시기의 기록물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재계가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였다.

국내외기자가 머물 프레스센터를 제공하고, 외국으로부터 공수해 온 방탄차량의 운반비용을 한 기업에서 부담한 일이 전부였다. 더구나 오는 8월 방한할 교황은 방탄차량을 타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번과 비슷한 의혹이 첫 교황 방한 때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9년 12월 공개된 '국회 5공특위 전두환 증인 질의서 요지'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에 앞서 안기부·치안본부·보안사 등을 동원해 종교계에 대한 사찰을 벌인 것으로 의심받았다.

질의서에는 각 기관이 '예산에 개의치 말고 종교계에 침투한 북괴 간첩을 로마교황 방한 전에 기필코 색출하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쓰여 있다. 만약 이번에도 청와대 차원에서 같은 일을 꾸몄다면 이는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부인

지난 3월을 전후해 유력 일간지 등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박근혜정부는 정권출범 초부터 교황 방한 성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교황청으로부터 교황 방한을 통보받았을 때도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한 것이 정부였다고 한다. 교황 방한에 지분이 있는 청와대다.

기자는 청와대 가톨릭교우회 쪽으로 관련 사실을 문의하려 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또 전직 청와대 관계자를 우회해 의혹을 규명하려 했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아울러 교황 방한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룹 계열사에도 접촉했지만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한 언론 관계자는 "개인적인 청탁이었을 수도 있다"며 의견을 덧붙였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