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사 들어간> 김지훈 일병 사망 '사건의 재구성'

600만원 주고 억울한 죽음 덮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군 복무 중 사망한 김지훈 일병. 상관의 가혹행위가 자살의 중요한 이유로 지목됐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군은 순직처리를 약속했다. 유족들은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군은 1년도 못가 약속을 뒤집었다. 유족에게 일반사망을 통보하면서 보상금 600만원을 와서 받아가라고 했다. 김 일병을 괴롭힌 가해자는 징계 없이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사고 책임자는 진급 후 공군본부 요직으로 영전했다. 심지어 그들은 김 일병을 가리켜 정신병자라고 했다.

지난달 21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 한 장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제갈국현군이 써 붙인 대자보였다. 대자보에서 제갈군은 학교 후배인 김지훈 일병의 사망소식을 알렸다. 김 일병은 지난해 2월 입대한 뒤 5개월 만에 공군 생활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거부된 순직처리

2013년 7월1일 제갈군은 김 일병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빈소로 달려갔다. 제갈군은 김 일병의 영정사진을 마주한 뒤 오열했다고 했다. 생전 김 일병이 제갈군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형 군대 와요. 컴퓨터도 쓸 수 있어요. 좋은 곳이에요"였다.

입대 전 김 일병은 서울 한 식당에서 "잘 다녀오겠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김 일병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독 어른스러웠다고 했다. 그랬던 김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평소 나약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주변에서 느끼는 충격은 더 컸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까.

김 일병은 입대 후 공군훈련소를 거쳐 서울공항(경기도 성남 소재)에 있는 제15특수임무비행단(이하 비행단)으로 근무지를 배정받았다. 비행단 본부단장실 부관병으로 복무 중이던 김 일병은 2013년 7월1일 6장 분량의 메모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김 일병은 사망하기 전날인 6월30일 오후 9시께부터 약 1시간가량 완전군장(20∼30kg)을 메고 연병장을 도는 얼차려를 받았다. 김 일병에게 얼차려를 준 간부는 당시 비행단 소속이었던 한모 중위로 확인된다.

한 중위는 김 일병의 직속상관이다. 그러나 국방부 내부 규정상 한 중위는 임의로 부하에게 얼차려를 줄 수 있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 중위는 김 일병과 그의 선임들을 야간에 집합시킨 뒤 연병장 10바퀴를 돌게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거짓말을 했다"였다. 그렇다면 김 일병이 어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일까.

같은 날 정오 무렵부터 오후 3시까지 김 일병은 부대로 찾아온 자신의 부모와 면회했다. 당시 면회장에 있던 김 일병은 같은 장소에 있던 선임을 보지 못했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 일병의 선임은 “‘김 일병을 봤다”고 했다. 한 중위는 이를 트집 잡았다.

김 일병은 얼차려를 받으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김 일병의 선임도 "부모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를 보지 못했을 거다"라고 했다. 그러나 한 중위는 "거짓말을 한다"며 김 일병을 쏘아붙였다.

김 일병은 끝내 "거짓말 했다"고 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4시 김 일병은 비행단 내 생활관 계단 한켠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일병 사망사건을 조사한 헌병대는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이 없으므로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김 일병이 목숨을 끊게 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사망 전날 받은 얼차려도 거짓말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중위는 '대통령 의전 실패'의 책임을 병사들에게 돌렸다. 김 일병의 유족은 "간부인 한 중위가 김 일병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고 했다.

김 일병은 죽기 전 마지막 업무를 받았다. 비행단 단장인 허모 준장이 입을 정복에 단추를 다는 일이었다. 허 준장이 총책임자로 있던 서울공항에는 때때로 대통령 전용기가 이착륙했다. 공교롭게도 6월30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하는 날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6시15분께 서울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복무 중 업무상 스트레스로 사망
가혹행위 가해자 징계 없이 전출

문제는 허 준장이 대통령 영접행사에 지각하면서 생겼다. 허 준장의 부관인 한 중위는 정복 단추를 꿰매느라 VIP(대통령)의 변경된 도착 예정시간을 알리는 휴대전화를 받지 못했다. 당연히 허 준장도 대통령의 바뀐 일정을 보고받지 못했다. 한 중위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 중위는 "정복 준비가 미비해서 생긴 일"이라며 김 일병을 질책했다. 모든 책임의 화살을 김 일병에 돌린 것이다.

앞서 김 일병은 본부단장실로 차출되기 전 보급대대에서 손꼽히는 병사였다. 허 준장은 이런 김 일병을 본인이 직접 선발했다. 김 일병은 부관실 배속 후 이뤄진 암기력테스트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직속상관인 한 중위는 김 일병을 길들이기 위해 군대말로 매일 갈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야단치며 '네가 문제'라는 식으로 힐난했다. 수많은 지휘관의 계급과 성명을 시간도 안주고 외우라고 했다. 사고 발생 8일 전에는 출근을 늦게 했다는 이유로 완전군장 구보를 시켰다. 김 일병은 한 중위가 자신을 소집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한 중위는 집요하게 '군기'를 따져 물었다.

김 일병이 죽기 5일 전 한 중위는 김 일병의 건강 상태를 허 준장에게 보고했다. 김 일병은 "업무 중 생각이 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증상이 있다"며 국군수도병원에 외진을 요청했다. 외진 예정일은 7월3일이었다. 그러나 외진 당일 김 일병은 세상에 없었다.

지난해 허 준장은 장례식장에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도 약속했다. 실제로 그해 비행단은 "사망자가 가혹행위에 준하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공군본부에 순직 처리를 요청했다. 김 일병의 유족들은 상급자가 한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군은 유족의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다. 공군본부는 올 1월 김 일병의 죽음을 정신질환에 의한 자살로 결론지으며 '일반사망'을 통보했다. 보상금 600만원도 와서 받아가라 했다. 군은 김 일병이 입대 전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를 현역으로 입대시킨 뒤 부관병으로 발탁한 이유에 대해선 해명하지 않았다.

허울뿐인 약속

허 준장은 올 초 공군본부 감찰실장으로 영전했다. 계급도 소장으로 높아졌다. 최근 청와대로부터 해당 사건과 관련한 진상파악을 요구받은 그는 자신이 지휘했던 김 일병 사망사건을 다루게 됐다.

한 중위는 어떤 징계도 없이 타부대로 전보 조치됐다. 한 중위의 아버지는 예편한 공군 중령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한 중위의 처벌을 놓고 일종의 '전관예우'가 있었을 것이란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은 최근 열린 간부급 회의에서 철저한 사건 재조사를 지시했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지훈 사건' 재심의 될까?


고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인 김경준씨는 지난 6일 "공군본부 법무실 검찰과에서 진정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방부 조사관과의 면담도 성사됐다"고 밝혔다.

앞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은 "유족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 사건을 처리하라"며 사건 재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공군 측은 자체 재조사 결과 및 별도로 진상을 파악 중인 국가인권위원회의 검토 의견 등을 수렴해 김 일병의 순직처리 여부를 재심의할 방침이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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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