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YS정권 데자뷰 '기막힌 이야기'

재난 트라우마…집권 2년차 벌써 레임덕?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또 사람들이 죽었다. 눈만 뜨고 일어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이 잇따른 인명사고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주 여기저기서 불이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 뉴스 시청이 두려울 정도다. 뜻하지 않은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의도 안팎에선 현 정국을 김영삼정부 3년차와 비교하고 있다. 정권 초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높은 국정지지율을 보였던 김영삼정부는 연이은 대형 참사로 집권 3년 만에 중대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김영삼정부를 무력화시킨 '인재'란 먹구름은 19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드리우고 있다.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세월호 참사 후 재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 연이은 안전사고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를 시작으로 잇따른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했고, 하루를 간격으로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가 이어지면서 국민적 불안감은 점차 가중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사고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터지는 안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 수습을 위해 내정된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전관예우' 논란을 버티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정국은 또 한 차례 격랑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김영삼정부 3년차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전후로 레임덕 조짐을 보였던 김영삼정부처럼 박근혜정부도 이른 시기에 레임덕이 현실화되지 않겠냐는 우려다.

끝나지 않은
세월호 트라우마

사실 박근혜정부와 김영삼정부는 출범 과정에서 인사파동 등 여러모로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검찰수사 등 사회고위층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으로 인기를 모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각 정부의 수장인 두 대통령은 각기 다른 인생역정을 밟았다. 이들은 모두 새누리당(구 민자당·한나라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지지기반이 달랐고 정치스타일 역시 극과 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은 이들의 껄끄러운 관계를 잘 보여준다.

지난 2012년 7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가올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박 대통령에게 '칠푼이'라며 혹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예방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박 대통령(당시 후보)을 사자, 본인을 토끼에 비유하자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화재 등 대형사고 잇달아 
YS정부 3년차 닮은꼴…잘 나가다 '와르르'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현철씨는 대선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에게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현철씨는 자신의 SNS에 "혹독한 유신시절 박정희와 박근혜는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 나라를 얼음제국으로 만들었다"며 "아버지(YS)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고 적었다. 현철씨는 "(지지의사 표명 전) YS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자는 박 대통령이었다. 집권 후 박 대통령은 몇 차례 부침이 있었지만 대체로 50%가 넘는 국정지지율을 굳건히 지켰다. 특히 '윤창중 성추문 사태'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 등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만큼은 철통같이 방어했다.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대(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기준)였다. 심지어 사고 첫 주에는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종자 수색작전이 지연되고 정부의 무능한 재난위기관리대응시스템이 노출되면서 지지율은 다시 50%대로 가라앉았다.

닮은 듯 다른 듯
박근혜와 김영삼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로 지난 4월부터 맞닥뜨린 난맥상이 김영삼정부가 삼풍백화점 붕괴를 전후로 부딪친 난국과 유사하다는 데 있다. 먼저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될 김영삼정부 3년차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때는 1995년 2월.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하 안기부)의 '6·27 지방선거 연기 문건'을 폭로함으로써 정국을 강타했다. 민주당은 앞서 안기부가 1994년 11월 작성한 '단체장 선거 연기 검토'라는 제하의 문건을 입수하고 "안기부가 지방선거 연기를 위해 관계 법령 개정을 추진하려 했으며, 정치·경제·언론 등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폭로했다.
 

'6·27 지방선거 연기 문건' 사건은 박근혜정부 2년차에 있었던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같이 국가권력기관의 정치개입 시비가 쟁점화된 사건이었다. 당시 야권은 정권퇴진운동과 함께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는데 김영삼정부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김덕 통일부총리의 옷을 벗겼다.

그럼에도 등 돌린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있었던 6·27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은 참패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이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는 안기부의 정치개입 파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계가 주목한 패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집권 내각인 김영삼정부의 재난관리대응 실패다.

'지방선거 끝나고' 무너진 삼풍백
'지방선거 앞두고' 침몰한 세월호

역대 대한민국정부를 통틀어 문민정부는 가장 많은 대형사고가 있었던 정권으로 꼽힌다. 시국을 뒤흔든 안전사고가 많아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국민사과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은 실질적인 사후조처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민심은 정부 책임론 쪽으로 기울었고, 반사이익을 본 곳이 민주당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출범한 1993년부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명사고가 있었던 것일까. 당시 언론보도와 국가기록원 자료, 관련 서적 등을 종합한 연혁은 다음과 같다.

먼저 YS가 당선된 지 1달도 지나지 않아 충북 청주에 있는 우암상가아파트가 붕괴됐다. 1993년 1월 있었던 이 사고로 모두 27명이 사망했으며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그리고 YS가 청와대로 들어간 지 1달여 만에 또 다른 대형사고 발생했다. 부산 구포역을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된 것이다. 같은 해 3월 있었던 이 사고로 모두 78명이 숨졌으며 198명이 부상을 입었다.

4월에는 충남 논산에 있는 서울신경정신과의원에서 입원 중인 환자 등 34명이 숨졌다. 대형화재가 부른 인명참사였다. 이로부터 2개월 뒤 경기 연천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현역 장병과 예비군 등 모두 20명이 사망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7월에는 아시아나항공 733편의 추락으로 승객 등 68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아시아나항공에서는 2건의 추락사고가 추가로 발생해 '7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온 국민을 경악시킨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300여명을 싣고 서해 앞바다를 항해 중이던 서해훼리호는 과적 등을 원인으로 침몰했다. 사망자는 292명. 생존자는 70명에 불과했다.

집권 2년차인 1994년에도 안전사고는 계속됐다. 상반기에는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하반기 들어 집중적으로 사고가 이어졌다. 같은 해 8월 서울 팔레스 룸싸롱에서 난 불은 1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두 달 뒤인 10월에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대교가 무너졌다. 그 유명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다. 이 사고로 여고생 8명을 포함한 32명이 숨졌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대국민사과 후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충주호에 있는 유람선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모두 25명이 숨졌는데 사고 당시 뜨거운 불길을 견디다 못해 호수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기도 했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있었다. 계량기 점검 중 방출된 가스가 현장에 있던 모닥불에 옮아 붙으면서 폭발한 사고다. 이 사고로 12명이 사망했고 101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송년모임의 화두는 "내년에 살아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해가 바뀐 후에도 대형사고는 멈출 줄 몰랐다. 1995년 2월에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컨테이너 운반선 화재로 19명이 희생됐다. 또 같은 해 4월에는 대구지하철공사장이 폭발하면서 사망자 102명을 포함, 사상자 229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그런데 YS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지방선거를 의식해 사건의 여파를 최소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이 축소·은폐됐다는 등의 의혹으로 일부 유족이 분노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대여공세를 높였다.그리고 예상대로 집권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레임덕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운명은 어찌 될까. 과거에 해답이 있다. 김영삼정부가 즐겨 썼던 국정운영방식은 박근혜정부에 대거 이식됐다. 놀랍게도 박 대통령은 YS의 통치수법을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박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YS처럼 예상치 못한 인명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괜히 'YS의 데자뷰'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땅에서 바다에서
사람이 죽어났다

두 대통령은 1기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 정부 핵심관료를 PK(부산·경남)출신으로 채웠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TK(대구·경북)에 정치적 기반이 있었음에도 PK 인사를 중용했다. 이들은 정권출범 후 나란히 인사실패로 파문을 일으켰는데 보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사스타일 역시 닮았다는 평이다.


하나회 숙청으로 인기를 끌었던 YS처럼 박 대통령은 전두환 일가 추징금 환수 작업으로 신군부와 민심을 동시에 '공략'했다. 집권 초 조선총독부 철거를 지시하며 친일파와 선을 그었던 YS처럼 박 대통령은 일본 아베 총리를 상대로 국제무대에서 각을 세우며 강경한 대일기조를 부각하고 있다.

아울러 YS가 중견 정치인 등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사정을 벌인 것처럼 박 대통령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겨냥한 릴레이 수사로 대항세력을 옭아 메는 중이다. 또 YS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명목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고 한다면 박 대통령은 같은 명목으로 검찰과 국세청 등 모든 기관을 동원해 세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닮지 말아야 할 것을 닮아 버린 박근혜정부다. 비록 김영삼정부 때만큼은 아니지만 연이은 안전사고는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조짐은 지난 2월부터 있었다.

경북 경주에 있는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됐다. 이 사고로 건물 안에 있던 대학생 9명과 이벤트업체 직원 1명 등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이들 유족의 눈물샘이 마르기 전 서해훼리호의 악몽이 재현됐다.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사망자 288명, 실종자 16명으로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로 기록됐다.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육지에서는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열차 2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안대희 내정자도 자진사퇴
YS식 개혁드라이브 만지작?

그리고 한 달도 못가 고양종합버스터미널 공사현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모두 66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선 방화벽이나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피안내방송도 일부 층에서만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7일에는 경기 시화공단 내에서 스파크가 튀며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28일 자정에는 전남 장성 삼계면에 있는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사망했다. 이날 오전부터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홈플러스 주차장 내 폭발화재, SK그룹 본사 지하주차장 화재,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에 이르기까지 무려 3건의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다.

다음날 오후에는 울산 송정동과 서울 중앙대에서 각각 큰 불이 났다. 며칠 간격으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자 많은 시민들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라며 인터넷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연달아 대형사고
국민들은 '멘붕'

박근혜정부 2년차가 김영삼정부 3년차와 다른 점은 아직 지방선거를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YS의 경우는 지방선거 참패 후 삼풍백화점까지 붕괴되면서 레임덕이 본격화됐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 참사로 YS정권은 식물정권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YS는 전두환·노태우 구속수사라는 일생의 승부수로 분위기를 일순했다. 이후 YS는 1996년 말 있었던 '노동법 파문' 전까지 권력 누수를 잘 막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결국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6·4 지방선거 성적표는 매우 중요하게 됐다. 사실상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우려하던 레임덕이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박근혜정부가 전직 대통령 구속수사와 같은 초강수로 난국을 타개할지 관심이다. 어찌됐던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부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20년 전 '정치 9단' YS의 깜짝쇼에 넘어갔던 그때의 국민들은 이제 없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패로 끝난 총리 지명 사례

지난주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사퇴한 가운데 박근혜정부와 김영삼정부의 엇갈린 운명이 화제다. 박근혜정부는 대법관 출신인 안 내정자를 앞세워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이는 지난 1993년 서해훼리호 참사로 궁지에 몰렸던 YS가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이회창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사정당국의 총책임자였던 이 전 대법관은 율곡비리 등 굵직한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며 대통령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 전 대법관이 사정작업의 수위를 높일수록 YS의 지지율도 덩달아 올랐다. 그런데 서해훼리호 참사로 위기를 맞은 YS는 난맥상을 해소할 적임자로 이 전 대법관을 골랐다. 안팎의 반향은 뜨거웠다. 그런데 이들의 허니문은 얼마 못가 끝났다.

김영삼은 이회창
박근혜는 안대희

이 전 대법관은 총리가 되자마자 정권 2인자였던 최형우 내무장관을 면전에서 호통 치는 등 YS의 심기를 거슬렀다. 또 '얼굴마담'이 아닌 '책임총리'를 주창하면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 이를 월권으로 본 YS가 분노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던 이 전 대법관은 YS를 들이받았다. 파워게임의 승자는 YS였고, 이 전 대법관은 4개월 만에 경질됐다.

하지만 이 전 대법관의 소신을 높이 산 국민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 전 대법관은 그때의 '사표'로 대선 후보까지 올랐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박근혜정부는 안 내정자를 통해 '이회창의 단꿈'을 재현하려 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안 내정자를 앞세워 어수선한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고, 안 내정자 입장에서는 단번에 대선후보군이 되는 윈윈 전략이었다. 그러나 안 내정자가 칼도 뽑기 전에 자진사퇴하면서 박근혜정부는 되레 쓴맛만 다시게 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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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