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YS정권 데자뷰 '기막힌 이야기'

재난 트라우마…집권 2년차 벌써 레임덕?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또 사람들이 죽었다. 눈만 뜨고 일어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슬픔에 빠진 대한민국이 잇따른 인명사고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주 여기저기서 불이 나고 사람들이 죽었다. 뉴스 시청이 두려울 정도다. 뜻하지 않은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의도 안팎에선 현 정국을 김영삼정부 3년차와 비교하고 있다. 정권 초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높은 국정지지율을 보였던 김영삼정부는 연이은 대형 참사로 집권 3년 만에 중대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김영삼정부를 무력화시킨 '인재'란 먹구름은 19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드리우고 있다.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세월호 참사 후 재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 연이은 안전사고로 패닉에 빠졌다. 지난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를 시작으로 잇따른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했고, 하루를 간격으로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가 이어지면서 국민적 불안감은 점차 가중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사고로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한창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터지는 안전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 수습을 위해 내정된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전관예우' 논란을 버티지 못하고 사퇴하면서 정국은 또 한 차례 격랑이 불가피해 보인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대로 가다간 김영삼정부 3년차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전후로 레임덕 조짐을 보였던 김영삼정부처럼 박근혜정부도 이른 시기에 레임덕이 현실화되지 않겠냐는 우려다.

끝나지 않은
세월호 트라우마

사실 박근혜정부와 김영삼정부는 출범 과정에서 인사파동 등 여러모로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검찰수사 등 사회고위층에 대한 강도 높은 사정으로 인기를 모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각 정부의 수장인 두 대통령은 각기 다른 인생역정을 밟았다. 이들은 모두 새누리당(구 민자당·한나라당)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지지기반이 달랐고 정치스타일 역시 극과 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은 이들의 껄끄러운 관계를 잘 보여준다.

지난 2012년 7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가올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박 대통령에게 '칠푼이'라며 혹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예방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박 대통령(당시 후보)을 사자, 본인을 토끼에 비유하자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박근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화재 등 대형사고 잇달아 
YS정부 3년차 닮은꼴…잘 나가다 '와르르'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현철씨는 대선을 며칠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에게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현철씨는 자신의 SNS에 "혹독한 유신시절 박정희와 박근혜는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 나라를 얼음제국으로 만들었다"며 "아버지(YS)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고 적었다. 현철씨는 "(지지의사 표명 전) YS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자는 박 대통령이었다. 집권 후 박 대통령은 몇 차례 부침이 있었지만 대체로 50%가 넘는 국정지지율을 굳건히 지켰다. 특히 '윤창중 성추문 사태'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 등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만큼은 철통같이 방어했다.

세월호 참사 직전까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대(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기준)였다. 심지어 사고 첫 주에는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종자 수색작전이 지연되고 정부의 무능한 재난위기관리대응시스템이 노출되면서 지지율은 다시 50%대로 가라앉았다.

닮은 듯 다른 듯
박근혜와 김영삼


그런데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로 지난 4월부터 맞닥뜨린 난맥상이 김영삼정부가 삼풍백화점 붕괴를 전후로 부딪친 난국과 유사하다는 데 있다. 먼저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될 김영삼정부 3년차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때는 1995년 2월.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하 안기부)의 '6·27 지방선거 연기 문건'을 폭로함으로써 정국을 강타했다. 민주당은 앞서 안기부가 1994년 11월 작성한 '단체장 선거 연기 검토'라는 제하의 문건을 입수하고 "안기부가 지방선거 연기를 위해 관계 법령 개정을 추진하려 했으며, 정치·경제·언론 등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동향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폭로했다.
 

'6·27 지방선거 연기 문건' 사건은 박근혜정부 2년차에 있었던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같이 국가권력기관의 정치개입 시비가 쟁점화된 사건이었다. 당시 야권은 정권퇴진운동과 함께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는데 김영삼정부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김덕 통일부총리의 옷을 벗겼다.

그럼에도 등 돌린 민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있었던 6·27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었던 민자당은 참패했다. 그런데 당시 여당이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는 안기부의 정치개입 파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계가 주목한 패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집권 내각인 김영삼정부의 재난관리대응 실패다.

'지방선거 끝나고' 무너진 삼풍백
'지방선거 앞두고' 침몰한 세월호

역대 대한민국정부를 통틀어 문민정부는 가장 많은 대형사고가 있었던 정권으로 꼽힌다. 시국을 뒤흔든 안전사고가 많아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대국민사과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은 실질적인 사후조처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민심은 정부 책임론 쪽으로 기울었고, 반사이익을 본 곳이 민주당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출범한 1993년부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명사고가 있었던 것일까. 당시 언론보도와 국가기록원 자료, 관련 서적 등을 종합한 연혁은 다음과 같다.

먼저 YS가 당선된 지 1달도 지나지 않아 충북 청주에 있는 우암상가아파트가 붕괴됐다. 1993년 1월 있었던 이 사고로 모두 27명이 사망했으며 48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그리고 YS가 청와대로 들어간 지 1달여 만에 또 다른 대형사고 발생했다. 부산 구포역을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된 것이다. 같은 해 3월 있었던 이 사고로 모두 78명이 숨졌으며 198명이 부상을 입었다.

4월에는 충남 논산에 있는 서울신경정신과의원에서 입원 중인 환자 등 34명이 숨졌다. 대형화재가 부른 인명참사였다. 이로부터 2개월 뒤 경기 연천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현역 장병과 예비군 등 모두 20명이 사망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7월에는 아시아나항공 733편의 추락으로 승객 등 68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아시아나항공에서는 2건의 추락사고가 추가로 발생해 '7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온 국민을 경악시킨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 300여명을 싣고 서해 앞바다를 항해 중이던 서해훼리호는 과적 등을 원인으로 침몰했다. 사망자는 292명. 생존자는 70명에 불과했다.

집권 2년차인 1994년에도 안전사고는 계속됐다. 상반기에는 조금 잠잠한가 싶더니 하반기 들어 집중적으로 사고가 이어졌다. 같은 해 8월 서울 팔레스 룸싸롱에서 난 불은 1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두 달 뒤인 10월에는 서울 한복판에 있던 대교가 무너졌다. 그 유명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다. 이 사고로 여고생 8명을 포함한 32명이 숨졌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렇지만 대국민사과 후 또 다른 대형사고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충주호에 있는 유람선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모두 25명이 숨졌는데 사고 당시 뜨거운 불길을 견디다 못해 호수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기도 했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있었다. 계량기 점검 중 방출된 가스가 현장에 있던 모닥불에 옮아 붙으면서 폭발한 사고다. 이 사고로 12명이 사망했고 101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송년모임의 화두는 "내년에 살아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해가 바뀐 후에도 대형사고는 멈출 줄 몰랐다. 1995년 2월에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컨테이너 운반선 화재로 19명이 희생됐다. 또 같은 해 4월에는 대구지하철공사장이 폭발하면서 사망자 102명을 포함, 사상자 229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

그런데 YS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지방선거를 의식해 사건의 여파를 최소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이 축소·은폐됐다는 등의 의혹으로 일부 유족이 분노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대여공세를 높였다.그리고 예상대로 집권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레임덕의 서막을 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운명은 어찌 될까. 과거에 해답이 있다. 김영삼정부가 즐겨 썼던 국정운영방식은 박근혜정부에 대거 이식됐다. 놀랍게도 박 대통령은 YS의 통치수법을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박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YS처럼 예상치 못한 인명사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괜히 'YS의 데자뷰'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땅에서 바다에서
사람이 죽어났다

두 대통령은 1기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 정부 핵심관료를 PK(부산·경남)출신으로 채웠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TK(대구·경북)에 정치적 기반이 있었음에도 PK 인사를 중용했다. 이들은 정권출범 후 나란히 인사실패로 파문을 일으켰는데 보안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인사스타일 역시 닮았다는 평이다.


하나회 숙청으로 인기를 끌었던 YS처럼 박 대통령은 전두환 일가 추징금 환수 작업으로 신군부와 민심을 동시에 '공략'했다. 집권 초 조선총독부 철거를 지시하며 친일파와 선을 그었던 YS처럼 박 대통령은 일본 아베 총리를 상대로 국제무대에서 각을 세우며 강경한 대일기조를 부각하고 있다.

아울러 YS가 중견 정치인 등 고위공직자를 상대로 사정을 벌인 것처럼 박 대통령은 대기업과 공기업을 겨냥한 릴레이 수사로 대항세력을 옭아 메는 중이다. 또 YS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명목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고 한다면 박 대통령은 같은 명목으로 검찰과 국세청 등 모든 기관을 동원해 세수를 늘리고 있다.

그러나 닮지 말아야 할 것을 닮아 버린 박근혜정부다. 비록 김영삼정부 때만큼은 아니지만 연이은 안전사고는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조짐은 지난 2월부터 있었다.

경북 경주에 있는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됐다. 이 사고로 건물 안에 있던 대학생 9명과 이벤트업체 직원 1명 등 모두 10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이들 유족의 눈물샘이 마르기 전 서해훼리호의 악몽이 재현됐다. 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사망자 288명, 실종자 16명으로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로 기록됐다.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육지에서는 서울지하철 2호선 전동열차 2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었다.

안대희 내정자도 자진사퇴
YS식 개혁드라이브 만지작?

그리고 한 달도 못가 고양종합버스터미널 공사현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모두 66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선 방화벽이나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피안내방송도 일부 층에서만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7일에는 경기 시화공단 내에서 스파크가 튀며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28일 자정에는 전남 장성 삼계면에 있는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사망했다. 이날 오전부터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홈플러스 주차장 내 폭발화재, SK그룹 본사 지하주차장 화재,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에 이르기까지 무려 3건의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다.

다음날 오후에는 울산 송정동과 서울 중앙대에서 각각 큰 불이 났다. 며칠 간격으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자 많은 시민들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라며 인터넷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연달아 대형사고
국민들은 '멘붕'

박근혜정부 2년차가 김영삼정부 3년차와 다른 점은 아직 지방선거를 치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YS의 경우는 지방선거 참패 후 삼풍백화점까지 붕괴되면서 레임덕이 본격화됐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형 참사로 YS정권은 식물정권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YS는 전두환·노태우 구속수사라는 일생의 승부수로 분위기를 일순했다. 이후 YS는 1996년 말 있었던 '노동법 파문' 전까지 권력 누수를 잘 막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결국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6·4 지방선거 성적표는 매우 중요하게 됐다. 사실상 중간평가 성격인 이번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우려하던 레임덕이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박근혜정부가 전직 대통령 구속수사와 같은 초강수로 난국을 타개할지 관심이다. 어찌됐던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부가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20년 전 '정치 9단' YS의 깜짝쇼에 넘어갔던 그때의 국민들은 이제 없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실패로 끝난 총리 지명 사례

지난주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가 사퇴한 가운데 박근혜정부와 김영삼정부의 엇갈린 운명이 화제다. 박근혜정부는 대법관 출신인 안 내정자를 앞세워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이는 지난 1993년 서해훼리호 참사로 궁지에 몰렸던 YS가 당시 감사원장이었던 이회창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 사정당국의 총책임자였던 이 전 대법관은 율곡비리 등 굵직한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며 대통령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 전 대법관이 사정작업의 수위를 높일수록 YS의 지지율도 덩달아 올랐다. 그런데 서해훼리호 참사로 위기를 맞은 YS는 난맥상을 해소할 적임자로 이 전 대법관을 골랐다. 안팎의 반향은 뜨거웠다. 그런데 이들의 허니문은 얼마 못가 끝났다.

김영삼은 이회창
박근혜는 안대희

이 전 대법관은 총리가 되자마자 정권 2인자였던 최형우 내무장관을 면전에서 호통 치는 등 YS의 심기를 거슬렀다. 또 '얼굴마담'이 아닌 '책임총리'를 주창하면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려 했다. 이를 월권으로 본 YS가 분노했다. 그러나 거칠 것 없던 이 전 대법관은 YS를 들이받았다. 파워게임의 승자는 YS였고, 이 전 대법관은 4개월 만에 경질됐다.

하지만 이 전 대법관의 소신을 높이 산 국민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냈다. 결국 이 전 대법관은 그때의 '사표'로 대선 후보까지 올랐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박근혜정부는 안 내정자를 통해 '이회창의 단꿈'을 재현하려 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안 내정자를 앞세워 어수선한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고, 안 내정자 입장에서는 단번에 대선후보군이 되는 윈윈 전략이었다. 그러나 안 내정자가 칼도 뽑기 전에 자진사퇴하면서 박근혜정부는 되레 쓴맛만 다시게 됐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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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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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