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월호 참사에 묻힌' 새누리당 '차떼기 경선' 내막

"서초구 경선에 당원들 실어 날랐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새누리당 서초구 지역경선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확인 결과 경선에 참여한 한 후보자를 상대로 모두 3건의 고발이 이뤄진 걸 알 수 있었다. 고발 내용은 동일했다. '차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다. 비록 정식으로 고발되진 않았지만 지난 정권 핵심실세의 딸의 이름이 사건에 등장했다.

꽃다운 아이들이 차디찬 물속에 가라앉았다. 지난 4월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온 나라가 비통함에 잠겼다. 그러나 이 시각에도 "나를 뽑아 달라"며 선거 운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방선거 공천
당내경선 과열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17일 새누리당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구의원 후보자 선정을 위한 당내 경선 투표를 서초구에서 진행했다. 이날 서초구청 2층 대강당에 마련된 투표장에는 이른 시각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당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번 당내 경선은 새누리당이 공천 방법을 '상향식'으로 조정하면서 처음 치러지는 선거였다고 한다. 시의원 후보는 제1선거구부터 제4선거구까지 모두 12명이 경쟁을 벌였고, 구의원 후보는 가선거구부터 마선거구까지 모두 22명이 공천을 받기 위해 경합했다.

기자가 입수한 '경선 후보자별 득표율 현황'을 보면 당시 선거인수는 7000명(구의원 투표 기준), 투표자수는 1512명이었다. 새누리당 측은 해당 선거의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투·개표 작업을 서초구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서초구선관위)에 위임했다. 서초구선관위는 "당내 선거 전반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 투·개표만 위탁받아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초구선관위의 개표 결과 지방선거에 나갈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났다. 각 선거구 최다 득표자는 새누리당이 자체 선임한 공천심사위원들에게 우선 추천됐다. 공천심사위원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최다 득표자(구의원의 경우 차순위까지)를 공천하기로 합의했다.

예상된 인물이 하나둘 공천자 명단에 올랐다. 정치 신인들 대부분은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별 무리 없이 마무리된 선거였다. 그러나 다수 당원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증언했다.

먼저 익명을 요구한 한 당원은 "새누리당 당직을 갖고 있는 공천심사위원이 선거가 끝난 후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고 말했다. 17일부터 1박2일로 당원들을 인솔해 갔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처사란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또 다른 당원은 "경선이라도 공정하게 했으면 이런 말이 왜 나왔겠느냐"고 했다. 무슨 뜻일까. 이 당원은 경선 당일(17일) 이른바 '차떼기'가 있었으며, 지역 유력 인사 간의 '담합'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좀 더 정확한 내막을 따져 물었다.

'묻지마 투표'
선거과정 혼탁

지역 다수 관계자의 정황 설명 및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실 등으로 보내진 투서를 종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초을 구의원선거구(라) 출마자인 김수한 후보(현 서초구의원 및 서초구의회 운영위원장)는 지역 부녀회장 등을 동원해 투표 당일 수차례에 걸쳐 투표권이 있는 당원들을 실어 날랐다. 김 후보의 측근으로 전해진 강모씨 등은 2층 투표장 입구까지 사람들을 직접 안내했는데 이는 사전 합의된 경선룰상 금지된 행위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다수 관계자는 "강씨 등 4명이 미리 4개조를 편성해 승용차 2대, 봉고차 2대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실어 날랐다"고 말했다. 이들이 각각 '행동대원'으로 지목한 4인 중에서는 김 후보의 부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차떼기'의 타깃은 주로 노인과 장애인이었다. 투표가 시작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씨 등은 수차례에 걸쳐 서초구청을 들락거리며 사람들을 동원해 투표시켰다고 했다. 한 당원은 "강씨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수상히 여겨 녹화·녹음한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의회 운영위원장 선거법위반 혐의 고발
"승용·봉고차 4대로 선거인 실어 날라" 주장

또 다른 당원은 "김 후보 측이 '시의원은 A후보(현 서울시의원)를 찍고, 구의원은 나(김수한)를 찍어달라'고 선거기간 동안 말했다는 소문이 지역 내에 파다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 당원은 "봉고차로 실어 나르는 순간에도 '시의원은 A, 구의원은 김수한'을 주지시키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해당 선거구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김 후보 측이 본인과 A후보의 지지를 말하고 다닌 적이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들 입이 무거운데 사실대로 말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김 후보 측은 왜 본인도 아닌 A후보를 지지한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구 관계자는 "김 후보가 평소 A후보와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가 견제하는 사이였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경선이 임박하자 갑자기 러닝메이트가 됐다는 것이다.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은 "두 사람이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 후보의 경우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그는 "A후보가 처음에는 나에게 접근하더니 나중에는 김 후보와 붙었고, 어떤 날은 김 후보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니 '당신은 안 될 거니까 사퇴하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하는 등 선거가 혼탁했다"고 말했다.

경선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이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A후보는 제3선거구(구의원 라선거구 포함)에서 3명의 후보 중 모두 222표(총 투표수 367표)를 득표했다. A후보와 선거구(양재동·내곡동)를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김 후보는 라선거구에서 276표(총 투표수 388표)를 득표했다. 200표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후보는 이들이 '유이'하다.

다른 선거구는 대략 100표 안팎에서 당락이 확정됐다. A후보가 당선된 선거구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제2선거구(총 투표수 394표)의 경우 최다득표자는 이모씨로 105명의 선택을 받았다. 또 김 후보가 당선된 선거구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나선거구(총 투표수 384표)는 137명이 최모씨를 찍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만 갖고 담합을 예단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부정경선'에 관심을 보였던 일부 언론이 등을 돌린 터였다.

선거법 위반했다
당에 수차례 투서

앞서 사퇴압박을 받았다고 말한 구의원 후보 B씨는 이번 사건을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B씨는 지난 4월 김 후보 등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새누리당중앙당에도 같은 내용의 투서를 넣었다. 피고발자는 김 후보였다. A후보는 피고발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사건을 배당한 뒤 서초경찰서로 수사지휘를 내렸다. 서초경찰서가 하명수사에 들어간 시점은 지난 4월24일께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미 B씨를 불러 사전조사를 진행했고, 김 후보와 강씨 등을 차례로 소환해 사실여부를 캐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경찰은 서초구청 내에 있는 CCTV 기록 등을 입수해 고발의 진위여부를 가리고 있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지난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사진행 상황은 말할 수 없고, 절차대로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며 현재 법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수사 진행이 더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천천히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성급하게 할 이유도 없고 평소처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규명의 키를 쥐고 있는 CCTV 기록이 증거물로 쓰이게 될지는 미지수다. 서초구청은 모두 2차례에 걸쳐 CCTV 기록을 관련기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서초구청 홍보정책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초 신고를 접수한 서초구선관위가 CCTV 기록을 USB 형태로 가져갔지만 보안이 걸려 있었고, 그래서 다시 CCTV 기록을 넘겼지만 카메라 방향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선관위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신고를 듣고 현장에 가보니 주차장과 연결된 서초구청 정·후문, 2층 대강당에 설치된 CCTV가 중요할 것으로 보여 관련 자료를 확보토록 했고 검찰로 송부했다"며 "말끔한 화질이 아니었다는 통화를 수사당국과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답답한 눈치다. 그는 다른 곳은 몰라도 새누리당이 신고를 묵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B씨는 "수차례에 걸쳐 인터넷 게시물과 팩스, 이메일 등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기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경찰조사를 받고 나온 이들로부터 수차례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내부 고발자의 비밀보장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B씨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한 이를 특정하기도 했다.

기자가 입수한 '새누리당 서초구(을) 당원협의회 경선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금지된 선거운동 예시에 차량기부행위가 추가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B씨는 "강석훈 의원실 주관으로 4월2일 열렸던 설명회에 참석해 이 같은 경선룰을 모든 후보자와 공유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 착수
서초서 "절차대로 조사"
새누리당 진상규명 쉬쉬 왜?
포상금 노린 허위신고 가능성?

또 "연락처가 담긴 선거인명부는 5일 전 교부받기로 했는데 막상 전화를 돌려보니 죽은 사람도 있고 이사 간 사람도 많았다"며 "1200명 중 500명만 번호가 살아있는 엉터리 당원명부였다"고 분노했다. 기자가 자문을 구한 선관위 관계자 역시 이 같은 주장에 수긍하면서 "지구당을 없앤 뒤 당원관리가 잘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녹음된 당원 간의 녹취파일을 들어보면 한 자원봉사자는 '차떼기'로 추정되는 위법행위를 인정하면서 "(관내) 노인들을 모셔다드린 거죠"라고 했다. 또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다 해요"라면서 "한 사람 앞에 (배당된 인원이) 수백명씩, 기본이 200∼300명이에요"라고 통화했다.

공천 노림수?
포상 노림수?

B씨 등 다수 당원은 김 후보의 위법행위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만약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분이 왜 무리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관내 인지도나 현직이라는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굳이 차량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당선 확률이 높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자초했냐는 것이다.

앞서 서울 모처에서 기자와 만난 또 다른 신고자는 '포상금을 노린 신고가 아니냐'는 질문에 "숲을 보라는데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며 불쾌해했다. 이어 그는 "핵심은 선거법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라며 "공모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쪽에선 그냥 유야무야 덮이길 바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의혹을 사고 있는 당사자들의 해명을 듣기 전 강석훈 의원실과 접촉했다. ▲서초구(을) 공천심사위원의 제주여행에 대한 입장과 ▲경선 과정에서 후보 B씨가 제기한 의혹들을 외면한 이유 ▲김 후보 등의 득표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의원실 측은 "여행은 정말 처음 듣는 얘기고,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은 자세히 모른다"며 "김 후보와 A후보는 워낙 일을 열심히 하셨던 분들이라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기자가 B씨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B씨는 "강석훈 의원실 측 사람이 당협(당원협의회)을 겸해 선거 교육을 했고, 고발 후에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상황을 전달했는데 어떻게 사건을 모른다고 할 수 있냐"고 답답해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김 후보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22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조사를 받으면서 그놈들의 '목을 따다가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진술했는데 반드시 (기사에도) 똑같이 적어 달라"며 "내 아내는 운전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겠나. 저들이 집단으로 짜서 나를 음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후보는 "내가 우리 지역에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구민들이 다 알 것"이라며 B씨와 고소인들에 대한 인신모욕을 퍼부었다.

이에 기자가 '왜 시의원은 A, 구의원은 김수한이라고 말하고 다녔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어림잡아 30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자가 거듭 묻자 "증거가 있으면 가져와 보라. 지금 당장 현장으로 가자. 정보관들이 (나를 음해하려고) 역정보를 흘리는 거다. 그런 일 없다"고 해명했다.

A후보는 지난 23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A후보는 "얼핏 그분(김 후보)과 관련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내가 그런 일을 부탁하거나 요구한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후보는 "아마 그분이 자의적으로 선거운동과정에서 제 이름을 얘기하고 다녔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얘기를 지금껏 몰랐고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또 "어차피 (내가 현직의원이니까) 당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뭣 하러 그런 일을 하겠나. 안 그래도 내가 선거할 때 '아버님이나 어머님들 모시고 오면 안 될까'라고 김 후보한테 물은 적이 있는데 '선거법에 걸려서 안 된다'고 했던 분이 김 후보다. 나중에 김 후보가 고발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 말고는 모른다. 어디에서 연락 받은 적도 없다. 김 후보와 통화한 적도 없다. 믿어 달라"고 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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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