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자신의 직업을 신문기자라고 밝힌 한 청년이 있었다. 강모(25)씨는 어린 나이에 사법고시를 패스, 변호사 업무까지 병행했다고 한다. 20대 초반인 A(24)씨는 강씨의 이런 든든한 배경이 마음에 들었다. 교제를 시작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소개하는 등 남자친구 강씨와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7개월 뒤 이들의 만남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A씨는 강씨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러자 베일에 가려 있던 강씨의 살벌한 민낯이 드러났다. 그는 신문기자는커녕 범죄경력만 4차례나 되는 악질 전과자였다.
지난달 24일 경기 고양 일산에 있는 한 주택가에서 한밤중 대소동이 일어났다. 마을을 순찰 중이던 한 경비원은 "처음엔 젊은 남자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한밤의 인질극
그러나 사태는 심각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할 서에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관은 "경찰특공대까지 출동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자칫하다간 인명 피해가 우려됐던 상황. 다행히 인질은 무사히 구출됐고, 범인은 쇠고랑을 찼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자신의 여자친구 A씨를 납치한 뒤 감금한 강모씨를 살인미수 등 혐의로 붙잡아 조사했다고 이날 밝혔다. 그는 이별을 요구하는 여자친구를 납치해 협박한 뒤 10일 동안 전국을 떠돌며 성폭행하고 이 과정에서 살해시도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달 15일 오전 2시께 이별을 통보한 A씨에게 "오늘 한번 만나면 헤어져 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A씨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했다. 강씨를 만나러 간 것이다. 고양시 일산동구 모처에서 만난 이들은 다툼 끝에 부산으로 향했다.
강씨와 A씨의 부산행은 이별여행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강씨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강씨가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도착한 강씨는 인근 모텔로 A씨를 끌고 갔다. 그리고 A씨의 옷을 벗기고 성폭행했다. A씨 입장에선 원치 않는 성관계였다. 아침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다음날 이들은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모텔에 투숙한 강씨와 A씨는 그곳에서 또 한 번 성관계를 맺었다. 이때에도 A씨는 강씨의 해코지가 두려워 저항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씨는 A씨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돌았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휴대전화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상시적인 협박과 감시로 A씨를 괴롭혔다고 한다.
속초를 거쳐 다시 고양으로 건너 온 강씨는 일산서구에 있는 한 모텔에서 A씨와 함께 묵었다. 침대로 올라간 강씨는 또 한 차례 A씨를 성폭행했다. 또 그는 성관계 후 잠이 든 A씨의 옷을 벗겨 알몸을 만든 뒤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잠에서 깬 A씨가 '집에 보내 달라'고 하자 강씨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험악한 기세에 A씨는 강씨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 알고보니 전과 4범 백수
이별 요구하는 애인 납치해 협박
몹쓸짓에 알몸촬영…살해 시도도
강씨의 다음 목적지는 자택이었다. 일산에 있는 모텔에서 나온 강씨는 본인의 집으로 A씨를 데려갔다. 강씨의 집에는 부모님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층 대담해진 강씨는 방 안에 A씨를 가두고 흉기로 위협하며 감금했다. 더불어 "밖으로 나오거나 소리를 내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강씨가 검거될 때 집에 함께 있던 어머니는 "A씨가 집에 있었는지 몰랐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강씨가 A씨를 집에 가둔 19일부터 검거 직전까지 강씨는 줄곧 A씨와 함께 있었다. 특히 강씨는 집 안에서 A씨에게 이별 이유를 묻다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A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했다. A씨에게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비슷한 시각 A씨의 부모는 행방불명된 자식 때문에 애가 탔다. 그들은 "딸아이가 며칠 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남자친구가 의심된다"고 지난 22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전산조회 결과 강씨는 특수강도 등 전과 4범에 무직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용의자 강씨의 소재를 적극 파악하기 시작했다.
23일 오후 10시40분께 사건을 맡은 수사팀이 강씨의 주거지를 방문했다. 수사팀은 자신들이 경찰임을 밝히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집 안에서 "살려 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A씨였다.
당시 강씨의 아버지는 업무 때문에 외출 중이었다. 집 안에는 강씨의 어머니만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어머니가 문을 열려고 하자 강씨는 흉기로 어머니를 위협하며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또 빠져나가려던 A씨에게도 "죽이겠다"며 협박했다.
이후 문을 사이에 두고 수사팀과 범인 간의 긴박한 대치상황이 연출됐다. 수사팀은 강씨를 자극하지 않는 한편 경찰특공대에 협조를 요청했다. 다음날 오전 3시께 현장에 출동한 경찰특공대는 강씨의 집에 잠입했다. 강씨는 A씨를 인질로 삼고 있었지만 제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단 검거 과정에서 A씨는 상처를 입고 병원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서운 스토킹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6월 지인의 소개로 만난 뒤 약 7개월 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직업이 없던 강씨는 A씨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신문기자 겸 변호사라고 속였다. 이들은 서로 집과 가족을 알고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A씨는 헤어질 것을 요구하며 강씨를 만나주지 않았다. 복수심에 불탄 강씨는 이성을 잃고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강씨에게 집과 가족을 모두 노출시킨 상황이라 범인(강씨)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판단에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강씨에 대해 살인미수와 특수감금, 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