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허재호 수수께끼' 키맨들

'검은돈 가득' 판도라 상자 열린다

[일요시사=사회팀] 일당 5억원의 사나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나 되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는 꼴이 꼭 '그분'과 닮았다. 그렇지만 "29만원 밖에 없다"던 할아버지도 끝내는 꼬불친 돈을 토해냈다. 여론의 힘이었다. 이제 관심은 '황제 노역' 대신 추징이 가능한지에 쏠린다. 차명으로 은닉된 재산, 그를 비호한 정관계 스폰서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통칭 '허재호 의혹'의 핵심 키맨들을 꼽아봤다.

지난 2007년 <일요시사>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두 얼굴을 도려낸 적이 있다. 당시 <일요시사>는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연속 시리즈로 고발했다. 특히 압류 대비용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가 하면 여성편력 등 위험한 사생활도 과감히 파헤쳤다.

실제 허 전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10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2011년 대법원은 허 전 회장에 대한 벌금형을 확정하며 그의 죗값을 물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내라는 벌금은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해외 재산도피
도운 인물은?

뉴질랜드에서 허 전 회장은 황제마냥 호화생활을 했다. 초고급호텔로 지인들을 초청해 파티를 여는가 하면 입버릇처럼 "돈이 없다"면서도 카지노는 꼭 들렀다. 카지노 VIP룸에서 베팅을 할 때면 어디서 났는지 없던 돈이 생겼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루 3000달러 이상을 꾸준히 쓴 것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 현지 언론은 "허 전 회장이 80억원대 저택을 샀다"고도 보도했다. 세계일주를 위한 호화 요트는 덤이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빼돌린 재산이 없다"며 관련한 의혹을 부인했다.

허 전 회장이 '5일 노역'으로 탕감 받은 30억원(체포됐던 1일도 노역에 포함)을 제외하고 남은 벌금은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다. 여기에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도 추징 대상이다. 또 금융권 빚 233억원은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다.


허 전 회장의 주요 재산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동양저축은행 땅 100여평, 오포 땅 2만여평, 전남·광주 일대 임야 13곳, 압수한 미술품 및 도자기 141점. 이밖에도 관련 재산을 모두 처분하면 최소한 벌금만큼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정가는 300억∼500억원이다.

하지만 공매를 했을 때 유찰이 되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밀린 세금을 받으려고 세무당국 등에서 근저당을 설정해 놓은 것도 변수다. 추징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난해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때처럼 허재호 일가에게도 강도 높은 추징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관건은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차명 재산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 자연스레 의혹의 눈초리는 그의 측근들에게 쏠린다.

허재호 차명재산
문어발 관리됐다

지난 3일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과 관련해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알려진 10여명을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종범)는 지난 2002년께부터 허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 대주그룹 고문변호사 유모씨와 이를 폭로한 하청업체 대표 백모씨 등을 조사했다고 알렸다. 관련자들은 검찰조사에서 "명의를 빌려줬다"며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백씨는 허 전 회장을 협박해 5억원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허 전 회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백씨는 허 전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백씨는 전직 농협 직원으로 1980년대부터 허 전 회장과 친분을 맺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 허 전 회장의 재산형성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백씨는 농협에서 나온 후 대주건설과 관련한 하청업체를 20년 가까이 운영했다.


재산은닉 의혹 눈덩이…핵심 주변인 누구?
금고지기 백씨 구속 차명재산 윤곽 드러나

둘의 관계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악화됐다고 한다. 허 전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던 2010∼2011년 사이 백씨는 허 전 회장 측을 협박해 모두 5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당시 허 전 회장은 백씨로부터 "국외 재산 반출과 차명 주식거래 등에 관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백씨는 "과거 대주그룹 계열사였던 대한화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제3자 명의로 맡겨 뒀던 회사 주식을 허 전 회장이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과거 허 전 회장은 2곳의 계열사와 함께 대한화재 주식 56%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경영난이 오자 해당 주식 전량을 3500억원을 받고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만약 백씨의 주장대로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주식을 거래에 이용했다면 그에겐 횡령 혐의가 씌워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백씨가 허 전 회장의 재산관리인 자격으로 재산 은닉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불법적인 외환거래나 부동산 매입이 있었는지 등을 따지고 있다. 또 검찰은 허 전 회장 부부와 대주그룹 계열사들이 뉴질랜드 현지 법인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250만달러(한화 약 26억원)를 비밀리에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허 전 회장과 관련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금감원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증빙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 KNC건설 등 10여개 법인을 설립하면서 관계 당국에 알리지 않는 등 관련법을 위반했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허재호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거나 출자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허재호 일가가 아닌데도 등기이사를 꿰찬 이모씨다.

이씨는 뉴질랜드 교민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민주평통 뉴질랜드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KNC건설의 새로운 CEO로 자리했다. KNC는 대주그룹의 후신이며 주력회사 KNC건설의 경우 허 전 회장의 아들로 알려진 '스캇허'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허 전 회장이 이씨에게 부탁해 일가의 재산관리를 맡겼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비슷한 시기 KNC건설이 뉴질랜드에서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또 이씨는 KNC글로벌매니지먼트 이사를 겸임했는데 같은 회사 대주주(지분 85%)는 스캇허씨로 확인된다.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따라서 스캇허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허 전 회장과 '조력자' 이씨의 특별한 관계는 허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씨는 자신이 등기이사로 있던 KNC엔터테인먼트 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진 직후다. 이밖에도 허 전 회장 측근들이 다수 이사로 포진한 '페이퍼컴퍼니'는 결국 허 전 회장의 자금 세탁을 위한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허재호 친인척
뭉칫돈 주고받고

정황상 백씨와 이씨는 숨겨진 키맨이다. 배후에 있던 이들과 달리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는 핵심 키맨으로 부각되며 사정당국의 타깃이 되고 있다. 황씨는 허 전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강하게 의심받는 담양다이너스티(골프장)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골프장을 소유한 법인 HH레저는 황씨가 대주주다. 그는 HH레저 지분 50%를 갖고 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황씨는 "담양 골프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팔아서라도 벌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HH레저의 총자산은 800여억원으로 파악된다. 이중 400억원 가량이 골프장 회원권 입회 보증금이다. 보증금과 같은 유형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겠다는 건 위험성이 높아 은행 입장에서 대출을 거부할 확률이 높다. 골프장 매각 역시 단 시간 내에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해당 골프장 입회 보증금 명목으로 40여억원 규모의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또 HH레저에 무이자로 빌려준 단기채권이 100억여원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즉 허 전 회장이 갖고 있는 140억원 상당의 채권을 현금화하는 게 순서임에도 담보대출이나 매각을 운운하는 건 눈속임이란 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씨가 뉴질랜드에 소유한 30억원대 아파트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이란 정황도 드러났다. 이 아파트는 거래 과정에서 허 전 회장이 세운 회사(페이퍼컴퍼니)가 최초 매입하고, 회사 이름을 바꾼 뒤, 다시 회사를 황씨에게 넘기는 복잡한 수법이 가동됐다. 다시 말해 허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이 뉴질랜드로 들어왔고, 아파트를 통해. 다시 황씨에게 전달된 것이다. 징세 회피나 세금 탈루 등 악의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황씨는 묵묵부답이다.

뉴질랜드 실세 주목 '조력자' 의심
친인척 총동원된 자금 세탁 의혹도

황씨의 곁에는 그의 형부(황씨 언니 A씨의 남편) 차모씨가 있다. 담양다이너스티 대표이사로 활동한 그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명품가구 전문점 '뮤제오'를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문을 연 뮤제오는 유럽에서 수입한 고급 가구만을 취급했다고 한다. 당시 임대계약자는 차씨, 하지만 여러 정황상 황씨가 이 회사 실소유주란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허 전 회장 측은 "뮤제오와 황씨는 관련이 없다"며 날을 세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뮤제오 지분은 HH레저 관련사인 HH개발이 100% 보유하고 있다. 뮤제오의 대표이사는 허모씨, 등기이사는 황씨다. 허씨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사이에 태어난 맏이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허씨는 앞서 밝힌 스캇허씨와 다른 인물로 현재 스캇허씨는 대학생이라고 전해진다.

허 전 회장의 조카인 허숙 전 대주건설 상무는 황씨와 공동 명의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주차장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27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땅은 2008년 허 전 회장이 90억원을 들여 매입한 땅이다. 허 전 상무는 최근 빅토리아타워개발로 이름을 바꾼 대주하우징의 이사로 선임됐고, KNC엔터테인먼트 이사에선 '조력자' 이씨와 함께 동반 사퇴했다.


대주하우징은 뉴질랜드 현지 분양 등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광범위한 '허재호 해외 은닉 부동산'의 뿌리로 의심받고 있다. 대주하우징은 법인 유토피아타워가 대주주(지분 76%)인데 유토피아타워는 허재호 부부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즉 허 전 상무는 허재호 부부의 대리인으로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주건설에서 일했던 황씨의 언니 A씨도 P건설을 운영하며 자금 세탁에 관여했는지 관심이다. P건설은 광주 금남로에 있는 건물관리업체로 황씨 자매가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HH개발과 관계회사임에도 감사보고서상 이를 명시하지 않아 의문을 자아낸다.

허 전 회장 측은 주로 HH개발을 통해 개인자금을 다른 곳으로 분산했다. 일각에선 HH개발을 허 전 회장의 개인금고로 보고 있다. 그만한 이유도 있다.

HH개발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허 전 회장은 2007년 138억원을 HH개발에 빌려주고, 34억원을 상환 받았다. 2008년에는 회사에 맡긴 채권 466억원 중 263억원을 한꺼번에 돌려받았다. HH개발의 총 자산규모가 403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한 눈에 봐도 이상한 거래다. 이후에도 허 전 회장은 HH개발에서 수십억원의 현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HH개발로 흘러간 돈이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둔갑해 빠져 나간 셈이다. 

쏟아지는 의혹
숨겼나 막았나

허 전 회장의 동생 B씨는 지난 2월 근로기준법 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 중이다. B씨는 기아자동차 직원으로 취업시켜 줄 것처럼 속여 2명으로부터 3200만원을 절취한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간 B씨는 법조계에 쌓아 놓은 인맥이 비교적 탄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2000년대 중반 법조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법구회'의 스폰서로 소개된 바 있다. B씨는 법구회에서 수년간 총무역할을 하며 판사들의 차명 골프예약을 하고 식사비 등을 내주며 친목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당발로 알려진 B씨는 대주그룹 성장과정에서 대외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6년 허재호 일가의 횡령·탈세 및 분양 비리 의혹과 관련한 투서가 접수됐을 때 B씨가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리 수사기관과 각본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정관계 로비가 있었다면 키맨은 B씨가 될 것이란 게 주된 예측이다. 다만 검찰 입장에서 허 전 회장의 탈세 및 배임 등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미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을 다시 파고드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신들의 허물을 들춰야 하기 때문에 '환부'만 도려내는 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수뇌부 역시 "이번 수사는 조속한 벌금 집행을 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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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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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