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영등포교도소 '구구절절' 히스토리

육중한 철문 사이로 사연도 가지가지

[일요시사=사회팀] 영등포교도소(현 서울남부구치소)가 65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새 교정시설이 들어서면서 빈 건물로 남아있던 영등포교도소는 빠르면 이번 달 내로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때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며 현대사의 영욕을 지켜봤던 영등포교도소. 우리 사회 한 단면을 거울처럼 비췄던 영등포교도소의 남다른 이력을 살펴봤다.

불의한 사회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던 운동가도, 불의한 정권에 빌붙어 사욕을 챙겼던 부역자도, 불의한 시대상에 분노하며 인질극을 벌였던 탈주범도 그곳에선 모두 수의를 입었다.

역사 뒤안길로

영등포교도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41년 '부천형무소'로 문을 연 영등포교도소는 1961년 '부천교도소'로 시설명이 바뀌었다가 1968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영등포교도소란 이름을 갖게 됐다. 1969년 영등포교도소 옆에는 영등포구치소가 들어왔다.

1980년 영등포교도소가 자리한 서울 고척동은 영등포구에서 구로구로 행정 관할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영등포교도소란 명칭은 변함없었다. 2011년 5월 서울남부교도소로 개칭된 영등포교도소는 같은 해 10월 모든 수감자가 떠나면서 빈 시설이 됐다.

영등포교도소에 있던 수감자들은 구로구 천왕동에 새로 만들어진 교정시설(서울남부교도소)로 몸을 옮겼다. 규모 6만7696㎡ 부지에 수용동, 작업장 등을 갖췄던 영등포교도소는 지난날의 영욕을 뒤로하며 쓸쓸한 퇴장을 준비 중이다. 


높은 감시탑과 두꺼운 담장을 지나 교도소 내부로 진입하면 차가운 콘크리트 벽이 황량한 분위기를 더한다. 2011년까지 영등포교도소 내에는 교도소 14개 동과 구치소 42개 동이 있었는데 이중 교도소는 800여명을 구치소는 1500여명을 각각 수용했다고 한다. 또 감옥에 들어온 이들은 혼거실 또는 독거실에 배치됐는데 혼거실의 경우는 14m²의 방을 6∼16명이 같이 썼고, 독거실의 경우는 2m²의 방을 혼자 이용했다.

이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죄목으로 육중한 철문 속에 갇혔다. 원칙적으로 철문 밖의 세상은 이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꺼운 쇳덩이를 뚫고 나온 메시지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횃불이 되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영등포교도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수사관들은 박종철의 선배인 박종운의 소재를 추궁하며 10시간 넘게 폭행·고문을 자행했다. 박종철은 전기고문에 이어 물고문을 받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스물 셋이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은폐하려 했다.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해명으로 공분을 일으켰다. 또 사건 진상은 축소 발표됐다. 5명이던 범인이 2명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진실은 숨길 수 없는 법. 남은 3명의 범인을 처음 알린 곳이 바로 영등포교도소다.

당시 시국사건으로 투옥 중이던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박종철을 숨지게 한 수사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는 영등포교도소에 근무하고 있던 한 교도관이 일러 준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에 이 고문은 급히 메모도구를 찾았다.

이때 말없이 펜을 건넨 이가 이 고문을 감시했던 교도관이다. 이 고문이 작성한 메모는 재야 민주화 인사인 김정남(후일 청와대 비서관)씨에게 넘어갔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이 고문의 메모를 담장 밖으로 넘긴 '밀사'도 있었으니 그 역시 전직 교도관이었다.

이처럼 교도관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은 아직까지 미제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의의 편이었고, 5월18일 역사적인 추모 미사에서 전두환정권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성난 여론은 들불처럼 번져 거리를 가득 매웠다. 전두환정권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이후 영등포교도소는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가 됐다. 앞서 유신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긴급조치 1호 위반 사건의 첫 피고인으로 영등포교도소에 갇혔다. 김지하 시인과 함세웅 신부,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도 영등포교도소를 거쳐 갔다. 1986년 민청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영등포교도소에 투옥됐다.

서울구치소에서 영등포교도소로 이송된 김 전 고문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치아가 흔들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 전 고문을 악랄하게 고문했던 이근안은 2000년 10월 김 전 고문이 투옥됐던 영등포교도소로 이송돼 7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근안은 수감생활 중 교도소 내 두부공장에서 일했는데 자신에게 중형이 내려진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부공장에서 그의 특기인 '관절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89년 6월 머리가 벗겨진 한 사내가 영등포교도소로 들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였다. 그는 새마을운동본부 회장으로 있으면서 공금 70억원을 횡령하는 등 부정부패를 저질러 이른바 '범털'이 됐다. 경환씨는 교도소에서 화초에 물을 뿌리는 편한 일만 하다가 3년여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경환씨가 받은 징역은 7년이었다.
 

비슷한 시기 경환씨처럼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한 사내가 있었다. 그에게는 보호감호 10년까지 더해졌다. 탈주범 지강헌. 그는 556만원을 절도한 혐의로 경환씨와 같은 징역형을 받았다. 1988년 10월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지강헌은 다른 재소자와 함께 탈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지강헌이 꿈꾸던 '할리데이'는 그리 길지 못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절규가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몇 발의 총성, 지강헌은 숨을 거뒀지만 그가 남긴 세기의 명언은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안타깝게도 지강헌의 절규는 영등포교도소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도 제법 유효한 듯 보인다.

민주화의 상징

영등포교도소 인근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 봄이면 살랑살랑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영등포교도소. 그 터에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작은 비문 하나 남겨두면 어떨까. 여기 정의가 있었노라고.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등포구치소 거친 범털은?

형이 확정된 수형자가 머무는 곳은 교도소,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가 머무는 곳은 구치소다. 영등포구치소에는 정치인부터 연예인까지 다양한 인물이 오고 갔다.

먼저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른바 '서울대 522' 사건에 연루,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된 전력이 있다. 또 이광재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09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영등포구치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세기의 스캔들로 화제를 뿌린 신정아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영등포구치소로 나란히 수감돼 이목을 집중시켰다.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도 영등포구치소 출신이며, 방송인 신정환, 이성진 등도 각각 위법 행위로 영등포구치소에 갇힌 경험이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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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