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두고…" CNK 기획입국 의혹

MB정권 실세들 날릴 '다이아 게이트' 열릴까

[일요시사=사회팀] 2000년대 초반까지 목욕탕 주인이었던 그는 아프리카에서 광산을 발견하며 일약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전직 부장판사, 현직 방송사 간부, 정치권 핵심 인사까지 차례로 그와 손잡았다. 정부가 보증 선 노다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여기저기서 돈뭉치가 굴러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주식시장에 밀물처럼 들어왔던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다이아몬드를 쥐어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오덕균 CNK 대표. 그는 유능한 사업가일까.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일까. 갑작스러운 그의 귀국에 관심이 모아진다.

해외 다이아몬드 개발을 미끼로 주가조작을 통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아온 오덕균(48) 씨앤케이인터내셔널(CNK) 대표가 도피생활 2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13일 카메룬 현지에서 자진 귀국할 뜻을 검찰에 전한 오 대표는 23일 새벽 4시30분께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가조작 몸통
2년 만에 귀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귀국한 오 대표를 현장 체포한 뒤 곧바로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송했다. 이날 오전 6시3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오 대표는 "광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오 대표는 사회고위층은 물론 정관계 핵심인사가 연루된 CNK 주가조작 사건의 몸통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의 수사 착수 2주 전인 2012년 1월8일 광산 사업 등을 이유로 카메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오 대표는 그로부터 2년 넘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오 대표가 소환조사에 불응하자 CNK 변호인을 통해 귀국을 종용했다. 그러나 오 대표는 광산 기공식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귀국을 미뤘다. 참다못한 검찰은 외교부와 공조해 오 대표의 여권 반납을 명령했다. 그러나 오 대표는 이마저 불응했다. 결국 검찰은 같은 해 3월6일 오 대표의 여권을 무효화했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인터폴에 공개 수배했다.


한 달 뒤 오 대표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4월에서 5월 중으로 귀국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 카메룬 한국대사관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린 오 대표는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에도 오 대표는 입국하지 않았고, 검찰은 인터폴에 요청해 오 대표의 수배 단계를 적색으로 높였다.

'주가조작 몸통' 2년 도피 오덕균 구속
입국 전 핵심공범 자수…시기 조율한 듯

그럼에도 오 대표는 카메룬에 남아 별다른 제재 없이 사업 활동을 계속했다. 이를 지켜보던 검찰은 2012년 8월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인도청구를 카메룬 측에 정식 요청했다. 하지만 카메룬은 이를 거부했다. 이렇듯 신병 확보에 난항을 겪던 검찰은 지난해 2월19일 오 대표를 기소 중지한 뒤 국내에 있는 피의자들의 혐의 입증에 주력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CNK 수사는 사건 관계인이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난항에 부딪혔다. 그 사이 오 대표는 틈틈이 국내에 있는 측근들을 통해 "카메룬에서 볼 일을 다 보면 당당히 돌아가겠다"고 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카메룬은 2012년 8월 다이아몬드 수출입과 관련한 국가들의 협의기구,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y Process)에 가입했다. 이는 CNK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호재였다. 킴벌리 프로세스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수출입에 관한 사항을 조정하는 UN 산하 국제 협의체다. 가입건만 놓고 보면 얼마가 됐든 간에 다이아몬드는 진짜 있었던 셈이다.

핵심공범 자수
입맞춤 있었나

관련 보도 직후 "카메룬 광산에 다이아몬드가 없다"고 했던 여론은 주춤했다. 주가도 반등했다. 오 대표는 국내 취재진을 카메룬으로 불렀다.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다는 광산이 공개됐다. 채굴 과정도 보여줬다. 오 대표는 결백을 주장했다.


지난해 9월에는 CNK가 광산 개발에 따른 토지사용권을 획득했다는 공시가 나왔다. 당연히 주가는 뛰었다. 주주들이 오 대표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오 대표가 중국 대기업의 투자 유치를 받아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카메룬 모빌롱 다이아몬드 광산에 대한 5000만달러(한화 약 550억원)의 지원이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오 대표는 성공을 확신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생겼다. 지난해 말,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공범 중 한 명인 CNK 이사 정승희씨가 전격 귀국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도피생활을 마치고 자진 귀국한 정씨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

앞서 정씨는 오 대표와 함께 카메룬에서 4억2000만캐럿이 매장된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따냈다고 속여 주가를 띄우는 수법으로 900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같은 날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적다는 사유였다.

정씨가 체포되기 2주 전 서울 성북동에 있는 오보코(OVOCO) 갤러리에선 CNK가 주최한 카메룬 다이아몬드 전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CNK는 그간 카메룬 광산에서 캐낸 원석을 한국으로 반입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탐사와 생산을 했다는 영상자료와 함께 원석을 나석으로 만드는 시연이 병행됐다. CNK 측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원석은 있고 가공도 된다." 하지만 CNK가 반입한 원석은 고작 2000캐럿. 오 대표가 주장한 4억2000만캐럿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정씨는 전시회 직후 한국 쪽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는 그의 귀국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정상 오 대표와 정씨가 입국 시기를 조율했을 가능성도 높다. 결정적으로 정씨는 구속수사를 피하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오 대표 입장에서 정씨에게 청구된 영장이 기각됐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시 불붙은
정관계 로비설

이로부터 3개월 뒤 오 대표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12일 변호인을 통해 재기신청서를 제출한 것.  그는 검찰 수사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해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오 대표의 귀국 배경을 놓고 복수 언론은 "결국 오 대표가 카메룬에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신이 있는 것 아니겠냐"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오 대표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경우를 가정하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킴은 물론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 대표가 꺼낸 승부수는 뭉개졌다.

지난 26일 검찰은 오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영장을 심사한 서울중앙지법 윤강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매우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과정에 비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CNK는 당시 중앙정부부처의 이례적인 사업 홍보로 3000원대인 주가가 1만8000원까지 급등하는 등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몇 달 사이 매장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오 대표는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를 꼬드겨 외교부가 CNK 측 입장을 두둔하는 자료를 배포토록 지시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오 대표 측이 챙긴 차익은 약 9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빼돌린 돈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증권 전문가는 대략 1조원대의 돈이 증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CNK의 원래 주가는 3000원대였는데 외교부 발표 직후 1만4000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또 7000원대로 내려간 주가는 다시 1만8500원으로 급등했다. 이후 CNK 주가는 검찰 수사로 폭락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3000~4000원대로 수렴되는 분위기. 때문에 몇몇 전문가는 이 시기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한 사람을 리스트로 뽑으면 숨겨진 연결고리가 드러날 것이라고 제언한다.


증발한 1조원 어디로?
정관계 로비설 재점화

앞서 검찰은 지난해 2월 CNK 주가조작에 관여한 김 전 대사와 안모 CNK 기술고문, CNK 카메룬 현지법인 기업 가치를 허위로 과대평가한 회계사 등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오 대표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나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 실장 등에 대해선 단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 대표의 구속으로 묵혀놨던 정관계 로비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띨지 관심이다. 당시 박 전 차관은 카메룬 정부당국에 CNK의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권 획득을 직접 요청하는 등 부적절한 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대가로 박 전 차관이 수십억원의 보수를 요구했다는 증언도 확인된다.

오 대표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매각한 점도 수사대상이다. 오 대표는 지난 2009년 10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신주 172만2352주의 인수권을 주당 1262원에 넘겼다. 자신이 매입한 취득가(1599원)보다 더 싼 값에 손해를 보며 판 것이다. 만약 오 대표가 자신의 신주인수권을 정치권 등에 로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밝혀질 경우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에는 큰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 하필 지금
기획입국 의혹

검찰은 CNK의 BW 매매계좌 수십여개 중 사회지도급 인사 40여명이 연루된 계좌에 대한 수사를 벌여왔다. 때문에 정치권은 오 대표가 입을 연다면 지난 MB정권 실세는 물론, 현 정부와 연결된 인사도 수사망에 오르지 않을까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타이밍이 참 애매하다"며 "기획입국이 아닌가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타이밍에 오 대표가 돌연 귀국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 측에서 지난 정권에 대한 사정작업의 일환으로 오 대표를 설득시켰든, 반대로 오 대표 측이 로비리스트를 언급하며 '플리바게닝'을 요청했든, 다시 불붙은 '다이아몬드 게이트'에 눈길이 쏠린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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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