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리얼리즘 새지평 여는 현대미술가 김준식

"해 뜨는 그림 보고 '눈 부셔'라고 해야 진짜 리얼리즘"

[일요시사=사회팀] 훤칠한 얼굴의 사내가 홍대 한 커피숍에 모습을 드러냈다. 몇 해 전까지 그는 '한국 팝아트의 차세대 주자' '컨템포러리 아트의 샛별' 등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김준식 작가는 더 이상 '차세대 주자'도 '샛별'도 아닌 '리얼리즘 아티스트'로 세계 곳곳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페인팅으로 평면 위에 '현실'을 증강하고 있는 김 작가, 그의 놀라운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으로 대변됐던 현대미술은 영국을 거쳐 최근 중국으로 시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미술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중국을 주목하기 전 김준식 작가는 황해를 건너 중국 심천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조용한 작업 환경을 찾아갔던 김 작가는 그곳에서 중국 미술시장의 팽창을 경험하며, 중국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가 무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으로 간 작가 중에선 1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실제 해외에 나가보니 국내에 있는 것과는 파급 효과가 달라요. 제 그림은 서울은 물론 홍콩·대만·싱가폴·중국·미국 등 국경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다음 전시는 LA가 될 텐데요. 재밌는 건 제가 작업하는 곳이 심천이란 지방이에요."

"전 생산자 입장이니까 아무래도 조용한 작업 환경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데 완성된 작품은 심천이 아닌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 걸리는 구조죠. 그래서 후배들을 만나면 미술의 중심지로 가는 걸 권하지 않아요. 런던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중 런던에서 전시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김 작가의 그림은 언뜻 보면 특정 사물을 붙여서 만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재현한 매화나 캠벨수프 등은 모두 직접 그린 것이다. 때문에 김 작가의 그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림 안의 대상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에 압도된다. 한 그림 안에서 동서양의 상이한 이미지가 '몽타주(montage)'처럼 충돌하고 있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그의 그림 '솜씨'가 관객의 '감각'보다 더 '현실'적인 까닭이다.


"예술에는 주류가 있을 수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젠 정말 다 해도 되거든요. 설치미술이든 미디어아트든 전위예술이든 소재나 표현 방식이 다양해져서 한 가지 흐름으로 정리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거고. 테크닉적으로 전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인데 20여년 전까지 사진을 보고 베꼈던 포토 리얼리즘의 뒷이야기, 수직적으로 진보된 형태의 미술로 제 그림을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 작가에 따르면 회화와 사진은 분명한 경계가 있다. 작가의 의도와 구상이 작품에 반영되는 정도가 다르며, 관객의 감상법도 다르다. 또 사진은 평면이지만 회화는 평면이 아니며 기술적인 영역에서의 차이, 예컨대 무광과 유광의 사용법에서도 회화와 사진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페인팅 "독보적 테크니션"
동서양 모티브…캠벨수프·매화·심슨 등 자유자재

"사진도 그렇고 회화도 그렇고, 조소까지 포함하면 결국은 '어떤 예술적 수단을 선택할 것이냐'인데 이건 작업 주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만약 '리얼리즘'이란 주제에 사진이 더 부합했다면 전 사진을 선택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진으로는 제 작업을 할 수 없었죠."

"'사실'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미술사 전체로 봤을 때 회화는 결국 리얼리즘의 역사예요. 어떻게 하면 더 사실적으로 그릴까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근법이 개발되고, 명암을 넣고 한 거죠. 이건 다 회화가 입체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거예요. 그런데 사진과 만나면서 입체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잠시 접었던 거고, 혼란이 온 거죠. 하지만 모든 예술은 입체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3D가 발전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회화도 이제는 2차원이 아닌 3차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심슨·미키마우스·스파이더맨과 같은 소재는 김 작가의 작품 안에서 기호화된 이미지로 '부유'한다. 다분히 팝아트를 의식한 그의 작업은 팝아트의 대표적인 형식을 익살스럽게 빌려옴으로써 오히려 '팝아트의 종언'을 고한다.

새로운 실험


"팝아트는 이제 사라져도 좋은 말이에요. 요즘은 누구도 마이클잭슨을 그린 사람에게 '이건 예술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게 상표고, 유명 연예인이고, 캐릭터죠. 이걸 그리지 않는 게 더 고의적인 거예요. 팝아트는 일상이기 때문에 더는 예술로 존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리얼리즘의 시대가 다시 올 거라 확신해요. 그러나 이전의 리얼리즘과는 다를 거예요."

"이것만 말씀드리죠. 해 뜨는 그림을 보고 '정말 진짜 같네' 이런 반응이 나오면 리얼리즘의 발전이 아니에요. 그림인지 모르고 '눈 부셔'란 말이 나와야 이게 진짜 리얼리즘이에요. 이번 LA 전시는 이런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어요. 다만 페인팅도 조소도 아닌 새로운 방식의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리얼리즘의 역사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고요. 그간 고전과 현대를, 동양과 서양을, 리얼리즘과 팝아트를 그림 안에서 관계 맺게 했다면 이제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리얼리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김준식 작가는?]

▲2007 홍익대 회화과 졸업
▲2010 Between Painting and Sculpture(인사아트센터, 서울)
▲2011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서울옥션, 북경 798)
▲PS35갤러리(뉴욕 2007) 세종문화회관(서울 2010) 등 단체전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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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