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방통위 스캔들 전말

'거사' 끝났지만 첩첩산중…도로 '최시중판'?

[일요시사=사회팀] 종편 재승인 후폭풍이 거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 사업자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하면서 또 한 차례 종편을 둘러싼 고지전이 예고되고 있다. 같은 시기 조직을 비교적 무난히 이끌었던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낙마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장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불거진다. 방통위를 둘러싼 마찰은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사업자(이하 종편)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한 가운데 '봐주기 심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9일 방통위는 이경재 방통위원장의 주재로 전체회의를 열고, 오는 31일 승인유효기간이 만료되는 <TV조선>, <JTBC>와 다음달 21일 승인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채널A> 등 4개 방송사업자에 대한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유효기간은 3년이다.

종편 재승인
거센 후폭풍

이날 상임위 의결에 앞서 야당추천 인사인 김충식 부위원장과 양문석 위원은 각각 종편 선정 심사위원들이 작성한 채점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고성이 오가던 회의는 야당 추천위원들이 심사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퇴장하면서 남은 세 위원(이경재·홍성규·김대희)의 전원 찬성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정치적 심사'였다는 방통위 안팎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회의 자리에서 양 위원은 "(종편 재승인 검토를 위한) 항목별 채점표를 방통위 사무국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면서 의혹을 지폈다.

당시 양 위원은 "세부 채점표도 안 보고, 중간 총계도 모르고, 사무국이 만들어준 평가 문건만 보고 어떻게 심의를 하고 의결을 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정종기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5월에 백서를 만들어 공개할 내용이지만 그 사항이 공개되면 심사위원의 인적사항 등 심사위원들이 개별적으로 곤란한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논란을 없애고자 공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양 위원은 '상임위원의 적법한 권리행사'라는 취지로 채점표 공개를 촉구했다. 그는 "채점표를 보여주지 않으면 (점수) 조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압박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외부 비공개를 전제로 양 위원에게 채점표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당추천 인사인 홍성규 위원은 "만약 채점표를 공개할 경우 다음에는 아무도 종편 선정 심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의 날선 공방은 결국 채점표를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럼에도 '종편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은 불식되지 않았고 회의는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

종편 재승인은 정부·여당이 추천한 3명의 위원만으로 우여곡절 끝에 의결됐다. 그러나 '퍼주기 채점' 의혹을 놓고 대립각을 세운 야권의 공세는 점차 격화되고 있다.

종편 재승인 의결 십자포화…봐주기 심사 있었나
친박중진 이경재 중도경질 뒷말…야당과 친해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소속 야당 측 간사인 유승희 의원(민주당)은 종편 재승인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심사 결과를 무효로 선언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또 유 의원은 종편 재승인 과정에 불거진 여러 의혹들에 대해 추후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크건 작건 국회 안에서의 진통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국회 밖에서는 법적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 양 위원은 재승인 안건이 방통위를 통과한 다음날(20일) 언론 인터뷰를 갖고 "관련 공무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과 방통위의 재승인 의결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함께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종편발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국회나 법원으로 옮겨 붙고 있는 셈이다.


친박 이경재
경질 배경은?

때문에 방통위는 지난 이명박정부 때처럼 또다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둘릴 공산이 커졌다. 최근까지 '이경재 체제'의 2기 방통위는 '최시중 체제'의 1기 방통위와 비교해 여야 합의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3월24일 취임한 뒤 방통위를 별다른 잡음 없이 이끌어왔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오랜 기간 신뢰를 다져왔기 때문에 방통위 안팎에선 그의 연임을 유력하게 내다봤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재신임에 대한 대통령 결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이번 달 초부터 본격적인 교체설이 불거졌다.그러나 파행 운영된 마지막 회의를 끝으로 2기 방통위는 전원 물갈이를 앞두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연임이 점쳐졌던 이 위원장이 사실상 경질되면서 오는 25일을 끝으로 물러난다는 점이다. 친박 중진으로 알려진 그는 왜 청와대 눈 밖에 난 것일까.

일정대로라면 오는 26일 3기 방통위 출범에 맞춰 청와대는 최소 20일 전까지 차기 위원장을 지명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5일에도 이 위원장을 차기 위원장으로 유임한다는 언질은 없었다. 당시 이 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문제로 얘기하는 건 옳지 않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가 이 위원장의 교체를 결심한 배경은 대외적으로 이동통신사를 컨트롤하는 문제, 구체적으로 말하면 휴대폰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과다지급 문제 개선을 꾸준히 방통위에 요구해왔다.

지난 2월 있었던 미래창조과학부 및 방통위 업무보고에서도 박 대통령은 "스마트폰 가격이 시장과 장소에 따라 몇 배씩 차이나고, 스마트폰을 싸게 사기 위해 추운 새벽에 수백 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선 안 될 것"이라고 톤을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입법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 상임의원들이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들면서 표류했고, 같은 시기 이동통신사 3사의 불법 보조금 경쟁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청와대가 결심을 굳혔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코드설'이 거론된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위원장이 여당보다 야당에서 평가가 더 좋아 경질됐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련 언론보도를 살펴 보면 야당추천 인사인 김 부위원장과 양 위원은 이 위원장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 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은 같은 <동아일보> 출신이자 선후배 관계라는 묘한 인연이 있다. 최근 간담회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김 부위원장이 자신을 추켜세우자 "야당에서 칭찬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뼈있는 응수를 했다.

또 지난달 19일 있었던 국회 업무보고에서 이 위원장은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직 KBS 앵커출신인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임명된 것에 대해 "KBS 윤리강령에 위배됐다고 생각한다"며 원론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이 청와대의 인사에 부담을 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시각이다.

선거 앞두고
변수 급부상

이명박정부 당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한 부처인 방통위는 지난 정권 핵심실세인 최시중 전 위원장이 군림하며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이름 높았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로 상당 업무가 이관되면서 조직의 위상과 예산은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정치권이 가장 눈여겨보는 정부기관인데 그 이유는 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방통위는 언론장악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로 의심을 샀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과 관련한 상납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최 전 위원장이 힘을 받을수록 각 언론사 경영진은 최 전 위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현 정부 입장에서 이명박정권의 가장 큰 공로는 언론 환경을 권력을 쥔 편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고 설명했다.

익혀 알려진 대로 종편 재승인은 선거를 앞둔 야권 입장에서 득이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특히 비교적 '반야당' 성향이 뚜렷한 <TV조선>과 <채널A>의 존재는 다가올 지방선거의 중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한 보좌관의 말을 빌면 "종편을 놔두는 한 정권 탈환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야권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그런데 여기서 종편을 감시·견제해야 할 방통위가 종편의 꼭두각시가 된다면 위기감은 곧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반대로 새누리당 입장에선 종편만큼 든든한 우군이 없다. 새누리당 한 보좌관은 "아무래도 정치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얼굴이나 말을 오랜 시간 노출시켜주는 매체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종편을 옹호한다기보다는 이해관계가 맞는 거고, 반대로 온라인 언론 생태계에서는 진보 쪽의 주장이 더 비중 있게 실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배경으로 정치권의 주된 관심은 '누가 방송 언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 방통위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이들이 정부 통신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험난한 인사청문회가 예고되는데 종편을 내준 야권은 최 내정자를 향한 검증의 수위를 높이면서 난국을 타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21일 최 내정자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최 의원은 "최성준 후보자가 1억2000만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관련한 사실을 공개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지난 2009년 어머니의 사망으로 6억300만원에 해당하는 주택을 상속받았음에도 상속세를 낸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최 후보자 측은 후보자는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데 증빙이 빠져있어 실상을 파악 중인 것으로 답했다.

언론장악 놓고 여야 정치공방 격화
지방선거 앞두고 돌발 변수로 부상

하지만 최 의원은 "국세청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최 후보자가 납세한 현황을 증빙하기 위해 발급한 '납세사실증명 문서'에는 상속세를 납부한 사실이 없었다"며 "상속세법에 따른 세율을 적용하면 1억2000만원의 상속세를 납부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또 "최씨가 20세이던 2005년 7000만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동안 꾸준히 예금이 증가해 현재 1억4000만원의 예금재산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세금을 납부한 사실이 없었다"며 "만약 세금 탈루가 아니라면 후보자는 최씨가 학생 또는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추궁했다.

최 내정자가 받고 있는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의원은 '최 내정자 자녀의 세금 탈루 의혹'을 함께 제기하며 각을 세웠다. 최 의원은 "후보자 외동딸인 최씨의 예금재산이 1억4000만원에 이르는데도 증여세 납부사실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신임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 난항

이처럼 신임 방통위원장을 향한 검증 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경우에 따라선 최 내정자가 낙마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법에는 정통하지만 방송이나 통신 영역에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최 내정자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방통위 안팎에서 제기된다. 종편 재승인으로 시작된 '방통위 스캔들'은 출범을 앞둔 3기 방통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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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