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방통위 스캔들 전말

'거사' 끝났지만 첩첩산중…도로 '최시중판'?

[일요시사=사회팀] 종편 재승인 후폭풍이 거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 사업자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하면서 또 한 차례 종편을 둘러싼 고지전이 예고되고 있다. 같은 시기 조직을 비교적 무난히 이끌었던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낙마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장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불거진다. 방통위를 둘러싼 마찰은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종합편성채널사업자(이하 종편)에 대한 재승인을 의결한 가운데 '봐주기 심사'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9일 방통위는 이경재 방통위원장의 주재로 전체회의를 열고, 오는 31일 승인유효기간이 만료되는 <TV조선>, <JTBC>와 다음달 21일 승인유효기간이 만료되는 <채널A> 등 4개 방송사업자에 대한 조건부 재승인을 의결했다. 유효기간은 3년이다.

종편 재승인
거센 후폭풍

이날 상임위 의결에 앞서 야당추천 인사인 김충식 부위원장과 양문석 위원은 각각 종편 선정 심사위원들이 작성한 채점표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고성이 오가던 회의는 야당 추천위원들이 심사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퇴장하면서 남은 세 위원(이경재·홍성규·김대희)의 전원 찬성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정치적 심사'였다는 방통위 안팎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회의 자리에서 양 위원은 "(종편 재승인 검토를 위한) 항목별 채점표를 방통위 사무국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면서 의혹을 지폈다.

당시 양 위원은 "세부 채점표도 안 보고, 중간 총계도 모르고, 사무국이 만들어준 평가 문건만 보고 어떻게 심의를 하고 의결을 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정종기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5월에 백서를 만들어 공개할 내용이지만 그 사항이 공개되면 심사위원의 인적사항 등 심사위원들이 개별적으로 곤란한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논란을 없애고자 공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양 위원은 '상임위원의 적법한 권리행사'라는 취지로 채점표 공개를 촉구했다. 그는 "채점표를 보여주지 않으면 (점수) 조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압박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외부 비공개를 전제로 양 위원에게 채점표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당추천 인사인 홍성규 위원은 "만약 채점표를 공개할 경우 다음에는 아무도 종편 선정 심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의 날선 공방은 결국 채점표를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럼에도 '종편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은 불식되지 않았고 회의는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

종편 재승인은 정부·여당이 추천한 3명의 위원만으로 우여곡절 끝에 의결됐다. 그러나 '퍼주기 채점' 의혹을 놓고 대립각을 세운 야권의 공세는 점차 격화되고 있다.

종편 재승인 의결 십자포화…봐주기 심사 있었나
친박중진 이경재 중도경질 뒷말…야당과 친해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소속 야당 측 간사인 유승희 의원(민주당)은 종편 재승인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심사 결과를 무효로 선언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또 유 의원은 종편 재승인 과정에 불거진 여러 의혹들에 대해 추후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크건 작건 국회 안에서의 진통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국회 밖에서는 법적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 양 위원은 재승인 안건이 방통위를 통과한 다음날(20일) 언론 인터뷰를 갖고 "관련 공무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과 방통위의 재승인 의결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함께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종편발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국회나 법원으로 옮겨 붙고 있는 셈이다.


친박 이경재
경질 배경은?

때문에 방통위는 지난 이명박정부 때처럼 또다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둘릴 공산이 커졌다. 최근까지 '이경재 체제'의 2기 방통위는 '최시중 체제'의 1기 방통위와 비교해 여야 합의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3월24일 취임한 뒤 방통위를 별다른 잡음 없이 이끌어왔다. 또 박근혜 대통령과 오랜 기간 신뢰를 다져왔기 때문에 방통위 안팎에선 그의 연임을 유력하게 내다봤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재신임에 대한 대통령 결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이번 달 초부터 본격적인 교체설이 불거졌다.그러나 파행 운영된 마지막 회의를 끝으로 2기 방통위는 전원 물갈이를 앞두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연임이 점쳐졌던 이 위원장이 사실상 경질되면서 오는 25일을 끝으로 물러난다는 점이다. 친박 중진으로 알려진 그는 왜 청와대 눈 밖에 난 것일까.

일정대로라면 오는 26일 3기 방통위 출범에 맞춰 청와대는 최소 20일 전까지 차기 위원장을 지명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5일에도 이 위원장을 차기 위원장으로 유임한다는 언질은 없었다. 당시 이 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문제로 얘기하는 건 옳지 않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가 이 위원장의 교체를 결심한 배경은 대외적으로 이동통신사를 컨트롤하는 문제, 구체적으로 말하면 휴대폰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과다지급 문제 개선을 꾸준히 방통위에 요구해왔다.

지난 2월 있었던 미래창조과학부 및 방통위 업무보고에서도 박 대통령은 "스마트폰 가격이 시장과 장소에 따라 몇 배씩 차이나고, 스마트폰을 싸게 사기 위해 추운 새벽에 수백 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돼선 안 될 것"이라고 톤을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입법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 상임의원들이 개점휴업 상태로 접어들면서 표류했고, 같은 시기 이동통신사 3사의 불법 보조금 경쟁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청와대가 결심을 굳혔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코드설'이 거론된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위원장이 여당보다 야당에서 평가가 더 좋아 경질됐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련 언론보도를 살펴 보면 야당추천 인사인 김 부위원장과 양 위원은 이 위원장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 위원장과 김 부위원장은 같은 <동아일보> 출신이자 선후배 관계라는 묘한 인연이 있다. 최근 간담회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김 부위원장이 자신을 추켜세우자 "야당에서 칭찬하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뼈있는 응수를 했다.

또 지난달 19일 있었던 국회 업무보고에서 이 위원장은 소신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직 KBS 앵커출신인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임명된 것에 대해 "KBS 윤리강령에 위배됐다고 생각한다"며 원론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이 청와대의 인사에 부담을 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시각이다.

선거 앞두고
변수 급부상

이명박정부 당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한 부처인 방통위는 지난 정권 핵심실세인 최시중 전 위원장이 군림하며 한때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이름 높았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들어 미래창조과학부로 상당 업무가 이관되면서 조직의 위상과 예산은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정치권이 가장 눈여겨보는 정부기관인데 그 이유는 선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방통위는 언론장악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로 의심을 샀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과 관련한 상납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며 "최 전 위원장이 힘을 받을수록 각 언론사 경영진은 최 전 위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현 정부 입장에서 이명박정권의 가장 큰 공로는 언론 환경을 권력을 쥔 편에 유리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고 설명했다.

익혀 알려진 대로 종편 재승인은 선거를 앞둔 야권 입장에서 득이 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특히 비교적 '반야당' 성향이 뚜렷한 <TV조선>과 <채널A>의 존재는 다가올 지방선거의 중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한 보좌관의 말을 빌면 "종편을 놔두는 한 정권 탈환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야권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그런데 여기서 종편을 감시·견제해야 할 방통위가 종편의 꼭두각시가 된다면 위기감은 곧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반대로 새누리당 입장에선 종편만큼 든든한 우군이 없다. 새누리당 한 보좌관은 "아무래도 정치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얼굴이나 말을 오랜 시간 노출시켜주는 매체를 찾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종편을 옹호한다기보다는 이해관계가 맞는 거고, 반대로 온라인 언론 생태계에서는 진보 쪽의 주장이 더 비중 있게 실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배경으로 정치권의 주된 관심은 '누가 방송 언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 방통위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이들이 정부 통신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정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험난한 인사청문회가 예고되는데 종편을 내준 야권은 최 내정자를 향한 검증의 수위를 높이면서 난국을 타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21일 최 내정자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최 의원은 "최성준 후보자가 1억2000만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관련한 사실을 공개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최 내정자는 지난 2009년 어머니의 사망으로 6억300만원에 해당하는 주택을 상속받았음에도 상속세를 낸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최 후보자 측은 후보자는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는데 증빙이 빠져있어 실상을 파악 중인 것으로 답했다.

언론장악 놓고 여야 정치공방 격화
지방선거 앞두고 돌발 변수로 부상

하지만 최 의원은 "국세청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최 후보자가 납세한 현황을 증빙하기 위해 발급한 '납세사실증명 문서'에는 상속세를 납부한 사실이 없었다"며 "상속세법에 따른 세율을 적용하면 1억2000만원의 상속세를 납부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또 "최씨가 20세이던 2005년 7000만원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동안 꾸준히 예금이 증가해 현재 1억4000만원의 예금재산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세금을 납부한 사실이 없었다"며 "만약 세금 탈루가 아니라면 후보자는 최씨가 학생 또는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는지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추궁했다.

최 내정자가 받고 있는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 의원은 '최 내정자 자녀의 세금 탈루 의혹'을 함께 제기하며 각을 세웠다. 최 의원은 "후보자 외동딸인 최씨의 예금재산이 1억4000만원에 이르는데도 증여세 납부사실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신임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 난항

이처럼 신임 방통위원장을 향한 검증 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경우에 따라선 최 내정자가 낙마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법에는 정통하지만 방송이나 통신 영역에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최 내정자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방통위 안팎에서 제기된다. 종편 재승인으로 시작된 '방통위 스캔들'은 출범을 앞둔 3기 방통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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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